#068화
“안녕하십니까. 박한새라고 합니다.”
“네가 박한새라고?”
진수호가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마력을 느낄 줄 알았다.’
나는 일부러 진수호에게 내공을 강하게 발산하였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내 의도가 완벽하게 통한 것인지, 진수호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고개를 숙이며 재차 내 이름을 밝히자, 그가 아무 말 없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진수호 길드장님!”
보다 못한 진세희가 다그치는 목소리로 진수호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진수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소문이 마냥 과장된 것은 아닌 모양이지?”
“어떤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소문이란 건 믿을 게 못 되는 법입니다.”
“뭐 맞는 말이야. A랭크다, B랭크다, C랭크다, 별의별 이야기가 있었지만, 죄다 틀렸을 줄은 몰랐군.”
그 말에 진세희가 헉 소리를 냈다.
자신을 이긴 실력자가, A랭크도, B랭크도 아니라면 남은 건 S랭크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S랭크에는 못 미치는 실력입니다.”
“아직이라고 하는 걸 보면 언젠가 S랭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비각성자 주제에 말이야.”
“무공의 창시자로서 그 정도의 자신감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무공이라.”
진수호는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런 잠재력을 가졌다면 내가 시험해봐야겠군.”
“시험하겠다는 말씀은, 저와 대결을 하자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S랭크 헌터와 대결을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가르침을 주겠다는 거다.”
“길드장님! 갑자기 이게 무슨 무례한 행동이세요!”
“세희야. 너나 무례한 행동 하지 마라.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진세희 헌터님. 저는 괜찮습니다.”
나까지 손을 들어 말리자, 진세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났다.
“가르침을 주시겠다면,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호오, 의외군. 나에게 완패하면 자네의 명성에 큰 오점이 될 수 있는데 괜찮겠나?”
무공을 지지하는 인터넷 유저들은 무공만 익히면 지금의 헌터 계급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내 제자들 중에서도 무공 고수가 되면 S랭크 이상의 강자가 될 거라고 진지하게 믿는 이들이 적지 않았고 말이다.
이렇게 무공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확보된 상황인 만큼, 무공의 이름값을 실추할 행동은 피하는 게 좋았다.
“S랭크 헌터인 진수호 길드장님에게 패배한다고 해서 명성이 실추되겠습니까?”
“하긴, 맞는 말이야.”
“그리고 저는 완패할 생각이 없습니다.”
1갑자 무인이 되었다고 진수호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처럼 ‘완패’하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나는 이미 그의 실력을 몇 번이고 경험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진수호는 무공을 익힌 미래의 진수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하지.’
물론 어디까지나 미래의 진수호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S랭크 헌터는 아무나 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괜히 국가급 무력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 그 자신감이 과연 나의 가르침을 받고도 유지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진수호와 대결하고자, 인근 야산의 공터로 장소를 옮겼다.
괜히 이능관리부 본부에서 대결을 치렀다간 장관이나 다른 간부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이 정도 수준의 결계술사가 있는 줄은 몰랐군.”
진수호는 사방으로 쳐진 결계막을 보며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교관님 덕이에요.”
“교관? 아, 이자를 말하는 건가.”
“네. 박한새 교관님 덕분에 스킬의 효과가 많이 좋아졌어요.”
“원래는 랭크가 몇이었지?”
“원래도 E고 지금도 E예요.”
고정희가 수줍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진수호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녀가 펼친 결계는 누가 봐도 E랭크 수준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협회에서 무공을 익힌 헌터는 승급을 인정하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야.”
“이 정도의 결계라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겁니다.”
“그럼 더 시간 끌 필요 없이,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세 번의 기회를 양보할 테니, 가장 자신 있는 공격을 시도해봐.”
실로 오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진수호이기에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S랭크 헌터라는 것은 그 정도의 위치였으니까.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나는 진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수호가 눈을 부릅뜰 때 나는 이미 그에게 검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들렸다.
감각으로도 분명 뭔가 베인 거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내가 벤 것은 그의 실체가 아닌, 그림자일 뿐이란 사실을.
그렇기에 나는 재차 보법을 펼쳤다.
스르륵-
내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생겼다.
그림자 포박이라는, 진수호만의 주력 스킬이었다.
‘역시 미래의 진수호보다는 반응이 느리군.’
원래 같았으면 바로 나를 추격했을 터.
하지만 검은 그림자는 내 위치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지금이다!’
이번에는 진수호의 사각에서 검을 휘둘렀다.
다시금 베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아쉽게도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하지만 진수호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성공한 거 같았다.
헉 소리를 내며 기겁하듯, 거리를 크게 벌리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검기를 최대한 압축해서 베었는데도 그림자를 저 정도밖에 제거하지 못했다니.’
S랭크 헌터를 놀라게 했으니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회귀 전 절정 고수였던 나로서는 만족하기 어려운 성과였다.
원래의 목표는 진수호가 방심하고 있을 때 최대한의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피를 낼 생각은 없지만, 목숨의 위협 정도는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정신이 번쩍 들어서 무공을 배우려 들 테니까.
하지만 그림자의 방어력은 실로 엄청났다.
사각에서 응축 검기를 날렸는데도 진수호의 그림자는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내 공격에 반응한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 같군.”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을 때, 진수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빠르고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할 줄이야.”
“이게 무공의 힘입니다.”
“무공의 힘이라. 확실히, 무시할 건 못 되겠어.”
진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더는 방심하지 않고 전력으로 상대해주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몸이 사라졌다.
‘결국 그림자화까지 꺼내들었군.’
그림자화는 전신을 그림자로 만드는 진수호만의 스킬 활용이었다.
이 상태가 됐을 때의 그는 사실상 무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진수호가 있는 곳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사방은 그림자로 가득 찼고, 진수호의 본체는 그 안에 숨어있었기에 웬만한 은신 스킬 사용자보다 찾는 게 까다로웠다.
설령 본체를 찾아도 문제였다.
검기를 가득 모아서 공격해도 그림자가 공격을 상쇄하여 대미지를 흡수할 테니까.
‘심지어 속도까지 빨라지지.’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나는 상념을 멈추고 다급히 보법을 펼쳤다.
다행히 첫 공격은 보법으로 거뜬히 피했다.
하지만 이번의 그림자 공격은 나를 끝까지 따라올 것처럼 집요하게 굴었다.
그림자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려고 전력을 다했지만, 그림자는 포기하지 않고 내 뒤를 따라왔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인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격이 정답이야.’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 이미 수차례나 경험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결이 막 시작되었을 때부터 진수호는 당황의 연속이었다.
박한새는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낌새 없이 이동해서는 막강한 위력이 담긴 공격을 퍼부었다.
어떻게 반응해서 그림자 스킬로 공격을 막긴 했지만, 마력의 큰 손실을 보았다.
이때 이미 진수호는 세 번의 기회를 양보해주겠다는 약속을 잊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반격을 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반격은 수포로 돌아갔다.
박한새가 또다시 순간이동 한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사라진 박한새가 다시 나타난 곳은 그의 바로 뒤였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날아온 공격에 진수호는 오랜만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림자로 간신히 막기는 했지만, 박한새의 검에 의해 그림자가 뭉텅이로 잘려나가는 피해를 입었다.
겉으로야 멀쩡해도 상당한 마력의 손실을 본 셈이었다.
박한새의 실력이 녹록한 수준이 아님을 확인한 순간, 그는 그와 같은 선언을 하였다.
실제로 그는 이 선언 이후, 단 한시도 방심하지 않았다.
7성급 던전에서 보스를 레이드할 때보다 더 집중하여 박한새를 상대하였다.
놀라운 것은, 전력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박한새를 이기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내 공격이 어디로 올 것인지 예측하기라도 하는 거 같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림자 공격을 예측하는 적이라니.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도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 것이 그의 그림자였다.
하지만 박한새는 그의 그림자를 정확하게 보고 공격 방향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동체시력이 좋고 전투 지능이 뛰어난 수준을 넘어섰다.
‘심지어 내 위치까지 알아내다니.’
박한새는 진수호의 공격을 그저 피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회피에 집중하는 동시에 간간이 반격을 시도하였는데, 박한새는 그의 본체가 있는 장소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도 조금만 반응이 늦었으면 위험했을 정도로 정확하게 그의 본체가 있던 곳을 노렸다.
‘만만치 않은 실력자인 것은 인정하마. 하지만 나 진수호에게는 100년 이르다는 걸 보여주마!’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은 사실 진수호의 노림수였다.
박한새를 최대한 안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던 것.
그리고 박한새는 그의 의도에 넘어가 그림자에 완전히 갇힌 상태가 되었다.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사방에 펼쳐놓았던 그림자에 그대로 발이 묶인 것이다.
진수호가 자랑하는 기술, 천라지망에 갇힌 이상, 박한새의 빠른 발도 이제는 그 의미가 사라졌다.
사방이 막힌 상태에서 발이 빨라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끝이다.”
승리를 확신한 진수호는 박한새를 가둬놓았던 그림자에 마력을 강하게 실었다.
박한새의 사지를 꽁꽁 묶으려는 의도였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히 마력을 강하게 실었는데도 박한새를 포위한 그림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박한새의 몸에 도통 닿지가 않았다.
‘도대체 이 공격을 어떻게 막고 있는 거지?’
이 정도의 마력을 실은 그림자라면 7성급 던전 보스를 묶는 것도 가능하였다.
아예 그림자 세계로 보내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였고.
그런데 7성급 던전 보스에게도 통하는 공격이 박한새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던 박한새가 갑자기 위에서 아래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무언가가 발출되더니, 진수호 정면에 막아두었던 그림자의 벽이 좌우로 쩍 갈라졌다.
갈라진 그림자의 벽 사이로 박한새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진수호는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