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화
아직 나는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들에게 제대로 된 검법을 가르쳐주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는 아니, 내가 만든 검법은 ‘절정 고수’가 사용하는 검법이었다.
이성은 덕에 빠른 성장을 이루었던 회귀 전의 내가 절정 고수에 도달하고서 검법을 만들었는데, 이 검법은 절정 고수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부우웅.
검에 실은 내공이 쭈욱 늘어났다.
그러자 마치 검이 몇 m 길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내 검의 잔상이 스치자, 시야를 가득 메웠던 진수호의 검은 그림자가 일순 사라졌다.
‘검기는 단순히 검의 절삭력을 높이는 것으로 끝나는 기술이 아니지.’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든, 현재 무공 아카데미에서 무공을 배우는 사람들이든, 검기란 기술을 그저 공격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기술로 받아들였다.
베지 못했던 적을 벨 수 있게 해주는 것.
사람들이 기대하는 검기의 효과란 겨우 그 정도였다.
하지만 절정 고수가 되고 제대로 된 검법을 배우다 보면 진정한 검기의 쓰임새를 알 수 있게 된다.
‘검기는 공간까지도 벨 수 있다.’
검기로 공간을 뚫은 나는 보법을 펼쳐서 진수호에게 달려갔다.
저 멀리 당황하는 진수호의 얼굴이 보였다.
그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늘 제 뜻대로 움직였던 그림자가 이번만큼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역시 진수호는 진수호군.’
나는 혀를 찼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나 싶더니, 금세 정신을 차리고 그림자로 나를 공격하였다.
치지직.
그림자가 다시금 내 몸을 포위하였다.
아까와 같은 양상.
당연히 결과도 아까와 똑같았다.
그림자는 마치 결계에 막히기라도 한 듯, 내 몸에 접근을 못 하였다.
실제로 내 몸 주변에는 결계가 둘러싸여 있었다.
검막이라는 이름의 결계였다.
‘내공이 얼마 안 남았다.’
빠른 시간 안에 승부를 보아야 했다.
분명 많아 보이는 양이지만, S랭크 헌터를 상대할 땐 턱없이 부족하였다.
내 앞을 가로막는 그림자를 향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물론 내 검에는 검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그러자 정면을 가로막던 그림자가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반으로 갈라졌다.
잠시 공간이 열린 것인데, 나는 남은 내공의 양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이번 공격이 실패로 끝난다면 나는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이다.
이를 악문 나는 사력을 다해 진수호를 향해 접근하였다.
검기가 닿을 곳까지 접근할 수만 있다면 이번 대결은 나의 승리로 끝이 나리라.
“이렇게까지 가까운 거리를 허락한 것은 오랜만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더.
단 한 발자국만 더 전진했으면 내가 이겼을 것이다.
진수호는 자신의 본체를 숨겨줄 그림자조차 사용하여 나를 막았으니까.
한 발자국만 더 전진했으면 진수호는 꼼짝도 못 하고 기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발자국 때문에 나는 패배하고 말았다.
“…졌습니다.”
내가 가진 내공의 양이 조금만 더 많았거나, 진수호의 반응이 조금이라도 느렸으면 내가 이겼을 텐데.
하지만 승부에서 그런 핑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죽고 나서 비겁하다느니 불공평하다느니, 따져봐야 의미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와! 정말 멋있으셨어요! 박한새 교관님, 최고!”
대결이 끝나자, 진세희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면 대결에서 이긴 사람이 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진수호 길드장님, 어떠셨어요!?”
“뭐가 말이냐.”
“우리 교관님, 실력 엄청나지 않았나요?”
진세희가 나를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자 진수호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의 자식이고 어느 길드의 길드원인 것이냐?”
“일단 지금은 박한새 교관님에게 무공을 배우는 교육생인데요.”
“하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진수호는 이내 나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하더군. 박한새라고 했었지?”
“예, 박한새입니다.”
“자네의 실력은 솔직히 두려울 정도였어.”
옆에 서있던 진세희가 화들짝 놀랐다.
아마 추측이지만, 그의 입에서 두렵다는 말이 나오는 일은 극히 드물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진수호 길드장님과 비교하면 많이 못 미치는 실력입니다.”
“나와 비교하는 것부터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모르는 거야?”
글쎄.
S랭크 헌터와 비각성자로서 비교하면 확실히 말이 안 되는 이야기긴 했다.
‘하지만 나는 무공의 창시자다. 반면 진수호는….’
S랭크이긴 하나, 어떻게 보면 일개 헌터일 뿐이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실력자인 것도 아니었고, 세계 기준으로 보면 그와 비견되는 강자가 수두룩하였다.
오히려 나로서는 일개 헌터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에 굴욕을 느꼈다.
나는 무공의 창시자로서 모든 무인의 스승이기 때문이었다.
‘더 정진해야겠지.’
무공을 익힌 진수호에게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공도 익히지 않은 진수호에게 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를 악물며 더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거지?”
“무공의 힘입니다.”
“자네가 무공이란 걸 익힌 건 나도 알고는 있다. 그런데, 무공을 익힌 사람은 다 자네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건가?”
“모두가 저와 같은 절정 무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절정 무인이라. 절정이 있으면 초절정이나 화경 같은 경지도 있겠군.”
소싯적에 무협지를 봤는지 자연스럽게 화경이랑 초절정 이야기를 꺼내는 진수호였다.
“그럼 다른 걸 물어보지. 자네의 무력은 지금보다 더 상승할 여지가 있는가?”
내가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니, 진수호가 눈을 크게 떴다.
이미 S랭크에 버금가는 무력을 선보인 나다.
그런데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다니?
진수호로서는 내심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흠흠! 그럼 이것도 묻고 싶군. 무공을 익히면 모두가 자네와 같은 무력을 가질 수 있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공에도 재능의 유무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지?”
“예, 무공에도 재능의 유무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자도 노력만 하면 C랭크에 비견되는 무력은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노력만으로 상위 헌터의 무력을 가질 수 있다고? 놀랍군. 정말 놀라워.”
“길드장님! 그래서 제가 집에서 말했잖아요. 오성 길드에 무공을 도입해야 한다고!”
오늘 보니 진세희를 교육생으로 받아들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의 자질만 보고 뽑았는데, 영입사원으로서의 자질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혹시 무공을 배우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길드장님께서도 무공을 배우면 더 강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진수호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무공을 배울 것을 권유하였다.
애초에 결계까지 펼쳐서 그와 대결을 한 것도 바로 이 같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S랭크 헌터를 무인으로 만드는 것.
미래를 생각하면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었다.
‘회귀 전의 진수호는 무공을 일찍 배운 덕에 죽을 뻔한 위기에서 몇 번이고 살아날 수 있었다. 만약 무공을 배우는 게 늦는다면 어쩌면 그는 단명할지도 몰라.’
진수호는 싸움꾼 그 자체였다.
힘을 숭상하는 사람으로서 목숨을 걸고 투쟁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온갖 위험을 자초하였는데 8성급 던전이 열렸을 때도, 9성급 던전이 열렸을 때도 가장 먼저 달려간 것도 그였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생명의 위기를 수도 없이 경험하였다.
“지금 나보고 자네의 제자가 되라는 것이야?”
“굳이 제자라는 생각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자네가 실력을 보이지 않고 그딴 말을 지껄였으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무공을 배우시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충분히 강하고, 앞으로 더 강해질 거다.”
역시 S랭크 헌터의 프라이드는 엄청났다.
분명히 비각성자로서 믿을 수 없는 실력을 보여줬음에도 내게 무공을 배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겼으면 또 몰랐겠지만 그것도 아니니.’
이래서 사력을 다해 이기려고 했던 것인데.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S랭크 헌터를 무인으로 만들 기회였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테니,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반년.”
“반년 뒤에 다시 한번 저와 대결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오, 반년 뒤에는 결과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나는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실제로 반년 뒤에는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때의 나는 내공도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어쩌면 스킬로 중무장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나라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지. 좋아. 반년 정도는 기다려주지.”
진수호는 흔쾌히 대답하였다.
천생 싸움꾼이니, 나와 대결하는 거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길드장님. 이성은 헌터와 아는 관계십니까?”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진수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이성은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세희야, 네가 말했냐?”
“아니, 내가 그런 걸 왜 말해. 성은이 오빠랑 별로 친하지도 않아, 나는.”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들었다고? 하긴,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이성은과의 친분은 왜 묻는 거지?”
“이성은 헌터에게도 무공을 가르치고 싶은데 접촉할 방법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미 회귀라는 능력은 내가 써버렸기에 지금 시대의 이성은은 평범한 헌터였다.
하지만 회귀자가 아니어도 이성은은 반드시 끌어들여야 할 인재였다.
그의 뇌전은 무공과 조합이 잘 맞았고 애초에 무공의 자질부터 사기적인 수준이었으니.
“호오, 이성은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싶다라.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무공과 잘 어울리는 헌터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이성은 그놈이 무공을 배우면 위력적이긴 하겠어.”
진수호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이성은에게 자네의 이야기는 해주마. 뭐, 그놈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저로선 연락만 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수호와의 만남.
아쉽게도 대결에서는 패배했지만 충분히 유익한 만남이었다.
그에게 나의 무력을 확실하게 각인시킴으로써 오성 길드가 무공을 대대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반년 뒤에 있을 대결에서 승리한다면 그 역시 무공 아카데미로 끌어들일 수도 있었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성은과 끈이 닿았다는 게 중요하지.’
솔직히 이성은보다는 이성은의 성좌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지금 나를 이 시대로 보내버린 존재는 이성은이 아닌, 이성은의 성좌였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쥐새끼가 있군.”
결계에서 벗어나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와 진수호의 대결을 엿보고 있었던 거 같았다.
물론 결계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나오시죠.”
“나오지 않으면 제가 강제로 나오게 해주겠습니다.”
내가 검을 뽑고 위협하니, 그제야 누군가가 쭈뼛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