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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70화 (70/275)

#070화

C랭크 헌터, 민건우.

시영 길드의 길드장에게 모종의 지시를 받고 무공 아카데미의 교육생으로 잠입한 그는 지루한 눈으로 산속 공터를 바라보았다.

‘들어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무공 아카데미에서는 자습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다.

아무래도 교관들의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고, 교육생들의 열의가 워낙 상당하여 자습 효과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민건우가 박한새의 뒤를 몰래 쫓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자습 활동을 이용한 덕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 대박인데? 진수호 길드장이 무공 아카데미로 찾아올 줄이야.’

이건 진짜 희대의 특종감이었다.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와 S랭크 헌터인 진수호의 만남이라니.

두 사람이 서로 만난 것을 본 순간 민건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길드장에게 이 정보를 보고하기만 한다면 엄청난 포상을 받게 되리라.

하지만 민건우는 그 정도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진수호가 박한새를 찾아온 이유.

만약 그가 그 사실까지 알아낸다면 금전적인 보상을 넘어, 어쩌면 시영 길드의 간부 자리까지 꿰찰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박한새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민건우는 은신과 추적의 전문가였기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들키지 않았음에도 얻은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박한새와 진수호, 그리고 진세희, 고정희 이렇게 네 사람은 산속 공터로 향하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안개가 낀 것처럼 공터 주변이 뿌옇게 변하더니, 공터 내부가 아예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변한 것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무공 아카데미의 결계술사, 고정희의 결계이리라.

민건우는 고정희가 펼친 결계 때문에 아무런 정보를 알아내지 못한 채 공터 바깥에서 몰래 그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오! 보인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결계가 사라지고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사람은 잠시 대화를 하는가 싶더니, 세 사람이 먼저 하산하였다.

민건우는 공터에 혼자 남은 박한새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온갖 추측을 해보았다.

‘과연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가 떠올린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박한새가 진수호에게 무공을 가르쳐준 것.

두 번째는 반대로 진수호가 S랭크의 힘을 보여준 것.

세 번째는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친 것이었다.

‘뭐가 됐든 진짜 말도 안 되는 상상인데? S랭크 헌터가 일개 비각성자를 만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다니 말이야.’

영상으로 찍지 않았으면 과연 시영 길드의 길드장이 믿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성 없게 느껴지는 정보였다.

그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현실의 이야기인데.

순간, 민건우는 몸을 움찔하였다.

박한새가 자신이 있는 장소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설마. 저기서 나를 어떻게 보겠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박한새는 검을 빼 들기까지 하였다.

챙-!

눈을 마주쳤다는 확신이 들자, 민건우는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쭈뼛쭈뼛 모습을 드러내니, 박한새가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민건우 헌터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그, 이쪽에 수련하기 좋은 공터가 있어서 수련 좀 할까 싶어서 왔습니다.”

되지도 않는 그의 변명이 통한 것일까?

고개를 주억거리는 박한새의 모습에 민건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박한새의 말에 민건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휴대폰 좀 잠시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휴, 휴대폰을요? 왜 그러십니까?”

“제가 휴대폰을 놓고 와서 잠시 필요합니다.”

민건우는 거절할 명분이 없기에 일단 휴대폰을 꺼낸 뒤, 아까 찍어두었던 동영상을 삭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가 휴대폰을 꺼내서 지문 인식을 한 순간, 이미 휴대폰은 그의 손에서 사라진 뒤였다.

‘어,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보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순간이동이라고 생각될 정도.

“이건 뭡니까?”

“그, 진수호 길드장을 보고 놀라서 잠시 찍은 겁니다.”

실제로 놀라서 찍긴 했다.

물론 혼자서 보기 위해 찍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찍은 거지만.

“협회에서 얼마나 받기로 했습니까?”

민건우는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그의 소속은 시영 길드였다.

만약 그를 첩자로 의심한다면 당연히 시영 길드를 의심해야 할 터.

그런데 박한새는 정확하게 그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있는지를 간파하였다.

실제로 민건우는 시영 길드의 길드장을 통해 협회의 지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영원히 무공을 배울 수 없으실 겁니다.”

영원히 무공을 배울 수 없을 거라는 협박에 민건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이라면 그게 무슨 협박이냐며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어차피 그의 랭크는 C랭크였고 이 정도면 상위 헌터로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C랭크 헌터들은 대개 무공이란 것에 부정적이었다.

비각성자조차 쉽게 강해져서 C랭크 헌터를 능가하는 힘을 갖는다는 게 선뜻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온 민건우는 누구보다도 무공을 열정적으로 수련하였다.

무공을 익히면 C랭크를 넘어 B랭크 이상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무공을 더 배우지 못하게 된다고? 절대 안 될 일이야!’

앞으로 모든 헌터가 무공을 배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괜히 무공의 창시자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그만큼은 정말 무공을 배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마, 맞습니다. 협회에서 돈을 받고 그 대가로 무공 지식과 정보들을 넘기기로 했습니다.”

민건우는 시영 길드의 길드장에게 받은 지시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협회가 어떤 정보들을 주로 원하는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시영 길드와 협회는 그의 뒷배였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박한새 한 명보다 못한 뒷배였다.

그러니 과감하게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으니, 따로 징계는 내리지 않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대신 한 가지 해주실 것이 있습니다.”

“…이중첩자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문뜩 든 생각에 그렇게 물으니, 박한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에 관한 정보는 넘겨도 상관없습니다. 그 대신 협회와 시영 길드의 정보를 제게 넘겨주십시오.”

어차피 박한새의 줄을 잡기로 한 그였기에 민건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예, 알겠습니다! 정보를 넘겨서 저쪽의 신임을 얻은 뒤, 유용한 정보들을 잔뜩 가져오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민건우와 헤어진 나는 쓰게 웃었다.

‘무공 아카데미 내부에 잠입한 스파이가 한두 명이 아니겠지?’

1기나 2기야 어차피 공무원 헌터 중에서 뽑았으니 스파이가 잠입할 방법은 없었을 거다.

뭐 변절자가 있어서 나의 정보를 중간에서 팔아먹는 이들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3기 같은 경우, 외부에서 들어온 인원이 많았다.

89기 신입까지 포함하면 무공 아카데미의 3기 신입생은 총 400명에 달했다.

워낙 많은 인원을 뽑았으니 스파이는 수도 없이 많을 거다.

꼭 10대 길드뿐만이 아니라,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세력은 한국에서만 수백 곳이 넘었으니까.

‘하지만 스파이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다.’

헌터들은 원래 강해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거창한 신념이나 애국심을 가지고 잠입한 것이 아닌 이상, 결국 무공 아카데미에 잠입한 스파이들이 선택할 것은 나였다.

무공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중에는 더 생기게 될 수도 있겠지만, 설령 더 생기더라도 그들은 나의 제자이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일 터.

그 말은 결국, 대세는 나로 정해져있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기에 나는 스파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솎아내기는 해야겠지.’

돈 때문에 잠입한 스파이는 괜찮아도, 다른 목적을 갖고 잠입한 스파이는 경계해야 했다.

특히 여명회가 문제였다.

여명회에서 암살자를 보낸 것만 봐도 나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무공에 관해서도 관심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무공 아카데미 내부에 사람을 심어놨을 수도 있고 말이다.

‘파롤의 졸개들이 무공을 배우는 사태만큼은 반드시 막아야지.’

행복 보육원.

10대 초반에서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서는 특이한 자세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해야 해?”

“쉿. 조용히 해.”

“나 힘들단 말이야.”

“나도 힘들어. 그래도 참아야 해.”

“힝.”

집중력이 산만한 아이들이 명상에 몰두하기란 쉽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은 투덜거리며 몸을 배배 꼬았다.

“지금 뭣들 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원장님.”

“이것도 못 한다면 다른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 원장이 등장하였다.

원장이 등장하자, 아이들은 다시 명상에 집중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원장은 악마보다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늙은이.”

“몸은 다 나으셨소?”

원장은 난데없이 옆에 나타난 백인 여성을 보고도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었다.

그저 태연하게 몸 상태를 물을 뿐이었다.

“왜 또 모습을 바꾸어서 찾기 귀찮게 만드는 거야?”

“강력한 적이 나타났는데, 숨어야 하지 않겠소?”

“깔깔! 숨으려고 또 늙은이로 변한 거야? 늙은이, 어지간히 늙은이를 좋아하나 봐?”

“상대의 경계심을 낮추고자 한다면 노인으로 변하는 것만큼 좋은 건 없소.”

헌터 중 노인이라 부를 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처음으로 던전이 열릴 때도 주로 20, 30대가 헌터로 각성했지, 40대 이상이 각성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 당시 20대, 30대였던 이들이 이제 겨우 40대, 50대가 되었으니 헌터의 평균 나이는 젊을 수밖에 없었다.

“난 숨는 것도 이해가 안 가. 박한새, 그놈이 적이라면 어떻게든 죽일 생각을 해야지, 왜 숨어?”

“죽이려다 실패한 그쪽이 할 말은 아닐 거 같소만.”

“늙은이, 죽고 싶어?”

백인 여성, 루드밀라 벨로프가 웃음기를 지우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원장은 겁에 질린 얼굴로 사과하였다.

“농이었소. 미안하오.”

“조심해. 난 나보다 약한 사내가 날 놀리는 것은 용납 못 하니까. 깔깔깔!”

“근데 여기는 어쩐 일이오?”

“박한새, 그놈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며?”

“진수호가 박한새와 단둘이 만났소.”

“진수호라면, 오성 길드장을 말하는 거야?”

“왜?”

“두 사람이 만난 이유야 나도 모르오.”

원장도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무공 아카데미 내부의 정보를 구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한새를 암살로 처리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는 점이오.”

진수호와 인맥이 생겼다는 것은 절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여명회는 세계 각국에 다양한 형태로 세력을 만들고 있었다.

어디서는 마피아였고 또 어디서는 평범한 기업체였다.

종교 단체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에서처럼 길드를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어떤 형태든 간에 여명회에서 주의하는 것은 S랭크 헌터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이었다.

그만큼 S랭크 헌터의 존재는 위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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