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우두둑!
최성훈은 주먹의 관절을 꺾으며 정면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160은 될까?
키도 키지만, 체격부터 굉장히 왜소하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주눅이 든 건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어서 더 왜소하게 보였다.
“웃기는 새끼네. 내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나에게 대결을 신청해?”
그 역시 무공의 효과는 알고 있었다.
없던 스킬도 만들어주고 있던 스킬을 더 강화해주는.
심지어 비각성자조차 A랭크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무공이었다.
최성훈도 무공 아카데미를 다니는 연수원 동기들을 보며 부러움과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왜 자신은 무공 아카데미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만큼 최성훈은 무공을 높게 평가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홍준기, 저 새끼에게 질 정도는 아니지.’
비각성자도 A랭크에 버금가는 강자로 만들어준다지만, 그건 오직 단 한 명.
무공을 창시한 박한새만이 보여준 이적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파주에서 활약하였던 공무원 헌터들을 보면 실력이 많이 는 것은 사실이지만, F랭크가 A랭크 이상이 되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 말은 결국, 무공에도 재능의 유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최성훈이 판단하기에 눈앞의 홍준기는 절대 재능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공 따위 없어도 저런 놈 따윈 순식간에 박살 낼 수 있으리라.
“홍준기 파이팅!”
“어깨 펴! 네가 이길 거야!”
“무공의 힘을 보여줘라, 홍준기!”
관중들의 응원을 들으며 최성훈은 혀를 찼다.
‘신성한 연수원에서 좆목질 하고 지랄이네.’
꼴등 주제에 자신에게 대결을 신청했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 꼴등이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게 친구가 많다는 사실도 그로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살을 내주마.’
당분간 무공 수련 같은 건 꿈도 못 꿀 정도로 큰 타격을 입혀주겠다고 최성훈은 속으로 다짐하였다.
“두 분 다 준비되셨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준비되었습니다.”
“네, 네! 저, 저도 준비됐습니다!”
“그럼 3초 세겠습니다.”
3, 2….
최성훈은 교관이 1을 셀 때까지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경기 시작!’이라는 교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홍준기의 모습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미친, 뭐가 이렇게 저돌적이야?’
성격이 소심해 보이기에 신중하게 움직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저돌적으로 달려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심지어 빠르다.’
최성훈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홍준기가 휘두른 가검을 피하였다.
무공 아카데미에서 따로 검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는지, 홍준기는 무식하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검에 담긴 위력 자체는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신체 강화 스킬을 잔뜩 가진 헌터가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무슨 꼴등 실력이야!’
그 어느 기수도 꼴등이 스킬을 보유한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홍준기 정도의 실력자가 꼴등이 된 경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헌터 특유의 우월한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으로 간신히 버티던 최성훈은 마침내 한 대 맞고 말았다.
‘빌어먹을, 일어나야 하는데.’
검에 베인 것도 아니고 주먹을 한 대 얻어맞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최성훈 헌터! 최성훈 헌터!”
심판을 맡은 교관이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음성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다 결국, 조금씩 일어나는가 싶던 최성훈의 몸이 땅으로 엎어졌다.
홍준기에게 한 대 맞고 기절해버린 것이었다.
“누가 이길까?”
“야, 아무리 그래도 꼴등에게 지겠어?”
“그 꼴등이 무공을 배웠는데?”
“그래봤자 3단계도 간신히 통과한 놈이잖아. 고블린에게도 당하는 놈인데 뭐.”
두 사람이 대결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최성훈이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일단 체격부터 차이가 컸다.
그리고 최성훈은 헌터 자격시험에서 4단계를 통과한 사람이었고 반면 홍준기는 3단계도 간신히 통과한 사람이었다.
겨우 1단계지만 그 차이는 실로 컸다.
“뭐야? 존나 일방적인데?”
“와, 이게 무공의 힘인가?”
“조졌다. 꼴등이 저 정도로 강해졌으면 다른 놈들은 얼마나 강해졌다는 거야?”
하지만 홍준기와 최성훈.
이 두 사람의 대결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방향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모두가 최성훈이 이길 것을 점쳤는데, 시작부터 우세를 점한 것은 홍준기였다.
작은 체구로 강맹한 위력을 내뿜더니, 마침내 승리를 따낸 것이었다.
하지만 홍준기가 보여준 기적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꼴등의 반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무공’을 익힌 헌터들의 반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은 홍준기와 마찬가지로 400위권 바깥의 헌터들이 300위권의 헌터들에게 도전을 신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홍준기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그와 같은 도전은 백이면 백, 무공을 익힌 헌터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300위권을 넘어 200위권, 100위권, 마침내 100위 이내의 상위권까지 이어졌다.
“서동호가 권혁진에게 대결을 신청한다던데?”
“권혁진이라면 새벽 길드의 차기 에이스 아니야?”
“맞아. 새벽 길드장의 아들이기도 할걸.”
“존나게 용감하네. 어떻게 권혁진한테 덤빌 생각을 하지?”
“설마 권혁진도 지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권혁진인데.”
권혁진.
그는 이제 막 헌터 라이선스를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별명이 존재하였다.
마탄의 사수라는 별명이었는데, 주력 스킬은 별명답게 마탄을 쏘는 것이었다.
타타타타타탕!
권혁진이 쏘는 마탄은 그야말로 기관총이나 다를 게 없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투사체가 서동호를 향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무공 사용자라면 이길 줄 알았는데, 역시 저건 힘들겠네.”
“접근도 못 하는데 어떻게 이기겠어?”
“역시 스킬은 이길 수 없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서동호가 쓰고 있는 것도 스킬 아니냐?”
“뭐 그건 그렇지. 어쨌든 무공도 강력한 스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
“상성이 있는 거겠지.”
누가 보더라도 경기는 일방적으로 보였다.
서동호는 정작 근접 딜러이면서 권혁진에게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마탄을 얻어맞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뭐야, 방패 소환한 채로 움직일 수 있는 거였어?”
“미친, 저러면 오히려 권혁진이 불리한 상성인데?”
무공을 익힌 덕에 근접 딜러 소리를 듣지만, 서동호는 본래 탱커가 되어야 할 몸이었다.
그의 스킬은 허공에 방패를 소환하는 것.
고정된 방패로 적의 강력한 일격을 막아내는 게 그가 스킬을 사용하던 요령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뒤, 서동호는 스킬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스킬의 효과가 좋아진 만큼, 방패에 기동성을 추가한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전방에 방패를 유지한 채로 보법을 펼치는 게 가능해졌다.
챙! 챙! 챙! 챙!
권혁진은 더 빠르게 마탄을 쏘며 서동호의 접근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모든 공격은 방패에 막혔다.
결국, 권혁진은 제자리 사격을 포기하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근접전에선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거리를 벌리려는 것이다.
참고로 권혁진은 마탄을 쏘는 스킬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속 스킬도 가지고 있어서 상당한 기동력을 자랑하였다.
“따, 따라잡았다!”
“서동호, 뭐야 저거. 왜 저렇게 빨라?”
“보법이란 게 저리 효과가 좋다고?”
하지만 그의 가속 스킬도 보법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결국, 서동호에게 따라잡힌 권혁진은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는 기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연수원 정문에는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모여있었다.
“오늘은 랭킹이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또 무림인들의 랭킹만 올랐을 거 같은데.”
“나는 솔직히 하위권은 별로 안 궁금해.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하위권이 아니라 상위권이잖아?”
“그렇지. 근데 과연 무공이 상위권에서도 통할까?”
“무공 아카데미에서 교관 노릇 하는 주현근을 생각해봐. 하위권에서 순식간에 30위권으로 치고 올라갔잖아? 무공은 연수원에서 충분히 통해.”
랭킹 발표회 이후, 연수원은 뜨거운 감자였다.
연일 랭킹이 바뀌기 때문에 화제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단연코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들이었다.
꼴등의 반란을 일으켰던 홍준기를 시작으로 상위권까지 순식간에 치고 올라가는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들.
그들이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금 결과 나왔는데, 서동호가 랭킹 1위 됐다는데?”
“뭐? 권혁진이 졌다고!”
“권혁진은 새벽 길드장의 아들이잖아!”
“특종이다!”
권혁진과 서동호의 대결에서 서동호가 승리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것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은 연신 ‘특종’을 외치며 서동호가 정문에서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마침 연수원의 문이 열리며 헌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였다.
“저기, 서동호 보인다.”
“서동호다, 찍어!”
온 국민이 주목하는 헌터 연수원이었다.
랭킹 1위의 경우, 그 분기에 어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당연히 새롭게 랭킹 1위를 꿰찬 서동호에게 기자들의 관심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랭킹 1위가 되셨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본인이 권혁진 헌터에게 이길 것을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스킬 효과가 더 좋아졌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무공의 힘인가요?”
서동호로선 이 정도로 기자들의 관심을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신체 강화 스킬에다 방패 스킬이라는, 전혀 임팩트 없는 스킬만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10대 길드 출신이라든가,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인지도가 낮았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흥분되지는 않네.’
이미 그는 무공의 재미에 푹 빠진 상태였다.
단전을 처음 만들었을 때.
서동호는 생전 처음 짜릿한 희열감을 느꼈다.
경지가 더 높아져, 단전에서 뿜어지는 내공으로 신체를 강화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킬처럼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모르는 미지의 힘이 아니었다.
무공은 그가 그의 내공으로 만들어내는 순수한 그의 능력이었다.
당연히 스킬을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감을 물어봤나요? 솔직히 말하면 무덤덤합니다.”
“무덤덤하다? 랭킹 1위가 되었다는 사실이 별로 기쁘지 않다는 의미인가요?”
“권혁진 헌터를 이길 것을 처음부터 예상했던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쏟아지는 질문 속에 서동호는 제 할 말만 하였다.
“저는 랭킹 1위가 된 것보다 이제 제가 심화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쁩니다.”
연수원 랭킹 1위와 박한새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
서동호로선 후자 쪽이 훨씬 기쁠 수밖에 없었다.
연수원 정문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랭킹 1위가 된 소감을 발표한 서동호.
그가 발표한 소감은 곧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와 씨 ㅋㅋㅋㅋ 랭킹 1위 하고 이렇게 무덤덤한 사람 처음 봄.]
[88기도 대박이지만, 89기도 역대급인데?]
[ㄹㅇ 권혁진이 진 것부터 충격이었음.]
[근데 무공 아카데미 사람들은 랭킹이나 랭크 같은 걸 무의미하게 생각하나 봄. ㅇㅇ]
[당연하지. 무림인인데, 랭크가 뭔 소용? 무공 경지가 99999배 더 중요할 듯. ㅋ]
예전에 헌터 협회에서 무공 무용론을 주장하였다면 이제는 여론이 바뀌었다.
랭크 무용론.
정작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건만, 인터넷에서는 랭크가 무용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