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화
“이봐. 최 사장. 그거 알아? 나도 어렸을 적에는 최 사장 같은 헌터가 되는 게 꿈이었어.”
고급 정장을 입은 20대 후반의 사내가 최 사장이라 부른 험악한 인상의 사내에게 양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러자 최 사장이라는 이는 고개를 숙이며 양손으로 공손하게 술을 받았다.
“뭐 나이 든 이후로는 재벌 후계자란 놈이 헌터가 되고 싶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비웃을 걸 뻔히 알아서 꿈을 반쯤 포기했었단 말이지.”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재벌 2세.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단 하나.
헌터가 되는 것만큼은 불가능하였다.
‘선택된 자’들만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헌터였으니까.
“근데 말이야. 요즘 들어 생각이 다시 바뀌었어.”
“바뀌었다는 말씀은?”
“박한새 알지?”
“예, 무공의 창시자로 알려진 인물이지 않습니까.”
최 사장은 모르는 게 이상하다는 듯, 바로 대답하였다.
실제로 한국에서 박한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한새는 웬만한 헌터보다 강한 비각성자였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명할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그의 제자들도 하나둘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역대급 신인이었던 권혁진을 꺾기까지 하였다.
이전까지는 무명인사에 불과했던 서동호란 인물을 역대급 신인조차 꺾을 정도의 강자로 만든 것이다.
“박한새 그놈이, 비각성자잖아.”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놈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도 헌터가 될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헌터가 되는 게 아니지. 무림인이라고 했던가. 무인인지, 무림인인지 아무튼 비각성자인 나도 헌터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거잖아?”
비각성자치고 이런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헌터 규제라는 게 존재하여 헌터들이 일반인에게 힘을 쓰는 게 금지된 사회라지만, 헌터와 마주치면 일단 겁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재벌이라고 이 같은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재벌이기에 헌터들과 마주할 기회가 더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성 길드장처럼 재벌 출신의 헌터들도 존재하였는데, 사내는 그들과 만날 때마다 위축되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헌터가 아니라는 이유로 좋아하는 여인을 포기해야 했던 점에서 가장 큰 분노를 느꼈다.
‘나도 헌터였으면 진즉에 세희 그년을 내 여자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오성 길드장의 여식인 그녀는 20대의 모든 재벌 2세, 3세의 워너비와 같은 여인이었다.
사내 역시도 진세희를 좋아하는 재벌 2세 중 한 명이었는데, 진세희의 이상형이 ‘강한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반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강한 남자라는 게 단순히 마음이 강한 남자가 아닌, 실질적인 무력이 강한 남자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다면 나도 강자가 될 수 있다.’
무공만 익힌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를 손에 쥘 수 있다.
힘과 여자를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무공을 익힐 방법이 없겠나?”
“정상적인 방법을 원하십니까, 비정상적인 방법을 원하십니까?”
“정상적인 방법을 원했다면 최 사장을 찾아오지 않았겠지.”
맞는 말이었다.
사내는 5대 그룹 중 한 곳인 JS 그룹의 후계자였다.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간다든가, 아니면 박한새에게 직접 무공을 배운다든가.
만약에 JS 그룹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힘을 써서 무공을 배웠을 터.
그런데 최 사장을 찾아왔다는 것은 결국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무공을 배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알겠습니다.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최 사장만 믿고 기다리지.”
사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최 사장.
그는 강남 암흑가를 주름잡는 빌런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높으신 분’들의 해결사 노릇도 하고 있었다.
범죄에 사용하기에 유리한 그의 헌터 스킬은 그를 최고의 해결사로 만들어주었다.
“꽤 큰 의뢰가 들어왔다.”
“형님, 어떤 의뢰입니까?”
“무림인을 납치하라는 의뢰다.”
물론 JS 그룹의 후계자는 그에게 그런 의뢰를 한 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만 했을 뿐.
하지만 최 사장이 생각하는 최고의 수단과 방법은 바로 납치였다.
아마 JS 그룹의 후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수단과 방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림인을 납치하면 정부에서 나설 가능성이 큰데, 괜찮겠습니까?”
“무공을 얻을 수 있다면 감수할 만한 위험이다.”
비각성자뿐만이 아니라, 힘에 굶주린 모든 헌터가 탐을 내는 게 무공이었다.
극소수가 독점하는 무공 지식을 얻게 된다면 돈으로 환전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는 셈이었다.
“안 그래도 PENT를 빨아대는 약쟁이 놈들이 성가시게 굴고 있는데, 무공을 얻으면 여러모로 득 될 게 많겠습니다.”
“흐흐, 우리도 랭크를 높일 수 있겠군요!”
“그런데 박한새 그놈이 직접 나서서 우리를 잡으려 하면 어떡합니까?”
“흠, 오성 길드와 레이븐 길드도 무공에 제법 투자를 많이 한다던데, 혹여나 두 길드도 움직이면….”
최 사장의 말에 기쁨을 드러내는 간부는 절반에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여전히 우려를 표출하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광경이었다.
강남의 암흑가를 주름잡는 그들이 일개 비각성자를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최근 들어 급격하게 상승하는 박한새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파주 사태 때 보여준 박한새의 무력만 봐도 A랭크에 버금가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교관 노릇을 하는 놈들이나, 인지도 있는 놈들만 노리지 않으면 돼.”
이를테면 연수원에 다니는 300위권의 무림인을 납치하면 될 일이었다.
300위권이라고 해도 어쨌든 무공을 배운 헌터였으니 말이다.
321위.
낮은 순위였지만, 홍준기는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중위권까지 올라오다니!’
중위권이라고 보기는 다소 낮은 순위였다.
정확하게 보자면 중하위권 정도라고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찌 되었든, 언제나 뒤에서 순위를 세는 게 빨랐던 홍준기로선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평균에 가까운 성적을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홍준기 헌터님 맞으시죠?”
그때, 아담한 체형의 여성이 갑자기 나타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홍준기는 여성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예, 예쁘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홍준기는 확신했다.
여성은 그의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를 가졌다는 사실을.
지금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그의 심장이 이를 증명하였다.
“저기요?”
“마, 맞습니다.”
홍준기는 속으로 자책하였다.
말을 더듬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속으로 자책을 하면서도 헤벌쭉거리는 입은 숨길 수 없었다.
그 어떤 연예인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여성과 1:1로 대화한다는 것.
홍준기로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저, 팬이에요.”
“인터넷으로 봤어요. 홍준기 헌터님의 활약을.”
“저, 저의 활약이요?”
“가장 낮은 곳에서 300위권까지 올라오셨잖아요. 정말 멋있는 거 같아요.”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이 자신을 팬이라고 부르다니.
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기 힘들었을 상황이었다.
‘지, 지금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긴 한데….’
그야말로 망상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홍준기는 단전의 내공을 느끼며 자신감을 가졌다.
그는 이전의 홍준기가 아니었다.
무공을 익히고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을 소유하게 된 그였기에, 이상형이 접근하는 상황에서도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저에게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무, 물론이죠.”
원래라면 수련을 가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여성과 1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어디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정신이 비몽사몽하였다.
분명 자신은 지금쯤 모텔에 있어야 하는데 왜 이런 으슥한 폐공장이 보이는 것일까?
‘뭔가 이상하다.’
원래 그는 친구들에게 금사빠로 놀림을 당할 정도로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워낙에 덴 적이 많아서 조심성이 많아진 그였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조심성 하나 없이 처음 보는 여자와 갈 데까지 갔다.
식사하자마자 바로 모텔이라니.
연애를 했을 때도 이렇게 상황이 급전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꽃뱀인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다.
그녀가 꽃뱀이란 사실은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정신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여기는 어디죠?”
“어디긴요? 모텔이죠?”
“여기가 무슨 모텔입니까? 폐공장이잖아요.”
그의 말에 여성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녀의 얼굴은 이상하게 두렵게만 느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을 차리는 속도가 빠르네. 뭐 그래봤자 이미 늦었지만.”
홍준기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을 때, 여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설마 헌터였던 것인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여성.
홍준기로서는 그녀가 ‘텔레포트 능력자’라고밖에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녀의 정체가 아니었다.
“어이 형씨. 좋은 말 할 때 가진 것을 다 내놓는 게 좋을 거야.”
어디서 나타난 건지, 수십 명의 건장한 사내가 그를 포위한 채로 접근하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가진 것이란, 형씨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무공 지식도 포함되는 것을 알아둬.”
홍준기는 그제야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공을 탐내는 빌런이 그를 납치한 것이었다.
‘바보같이 당해버렸어!’
속으로 자책하는 그였지만, 겁쟁이처럼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수십 명의 사내에게 둘러싸였으면서도 그는 용감하게 주먹을 들었다.
“요즘 전화가 너무 걸려와서 미치겠어요.”
새롭게 교관이 된 김민경이 자신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신경철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인기 많다고 자랑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으로 받아달라는 청탁 전화가 걸려오는 거예요. 신경철 교관님은 전화 안 오세요?”
“난 안 와. 쓸데없는 걸로 전화질 하면 가만 안 두거든, 나는.”
“공무원 헌터가 그런 말을 하다니. 참 대단하시네요.”
“자르라면 자르라지. 어차피 나는 무공만 배우면 그만이야~.”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요즘 들어 무공 아카데미의 인기가 급증하였다.
서동호라는,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이 랭킹 1위를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능관리부에서 내 휴대폰 번호를 철저하게 보호해줘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사실상 휴대폰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일개 교관인 김민경도 무수한 청탁 전화에 시달리는데, 나는 어떻겠는가?
재벌부터 정치인까지.
심지어 여당의 5선 의원이 직접 찾아와서 자신의 자식을 제자로 받아들여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우우웅.
그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이재현 차관님.]
발신자를 보고 바로 전화를 받자, 이재현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교관님. 아무래도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 중 한 명이 납치를 당한 거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