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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74화 (74/275)

#074화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이 납치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가장 먼저 파롤의 졸개들을 의심하였다.

‘역시 놈들을 잡았어야 했나?’

점조직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는 자들이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신궁이라 불리는 루드밀라를 찾을 방법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고.

하지만 방법이 없었어도 최소한 DX 길드만큼은 일망타진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다른 이들이야 행적을 알 수 없지만, 말단 조직이라 할 수 있는 DX 길드만큼은 행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까.

내가 그렇게 속으로 후회를 하고 있는데, 이재현이 내게 CCTV 영상을 보여주었다.

“여길 보십시오. 홍준기 헌터가 혼잣말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이 증상이 바로 환술사에게 당한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홍준기를 납치한 범인이 파롤의 졸개라고 생각했지만, 범인은 파롤과는 관련이 없었다.

A급 범죄자이자, 일명 환술사라 불리는 최채환.

내 제자를 납치한 범인은 바로 그였다.

“환술사가 홍준기 헌터를 노린 이유는 아무래도….”

“무공 때문이겠죠.”

“예, 그럴 겁니다.”

물론 최채환은 해결사라 불리는 이였기에,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홍준기를 납치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건, 납치를 의뢰한 쪽도 무공을 얻기 위해 홍준기를 납치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게 아니라면 홍준기 같은 사람을 납치하는 데 A급 범죄자가 직접 나설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능관리부가 총력을 다하여 홍준기 헌터를 구해내겠습니다.”

이재현이 나를 위로하듯 그와 같은 말을 하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능관리부 전체가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무공 아카데미 멤버들만으로 이번 일을 해결해보겠습니다.”

제자의 복수는 스승인 내가 직접 하리라.

뭐 이런 단순한 마인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대신, 다른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부탁이라면?”

“이번 일에 정계 권력자나 재벌 인사들이 연루되어도 저희에게 힘을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최채환에게서 홍준기를 구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미 회귀 전에 그를 겪은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최채환이 몇 년 동안 강남의 암흑가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그가 단순히 좋은 스킬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킬보다는 그의 배후.

정계 실력자나 재벌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를 잡고 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언제나 박한새 교관님의 편입니다. 특히 이번처럼 빌런을 잡는 일이라면 더더욱.”

역시 이재현은 든든하기 그지없는 아군이었다.

“여러분, 소식은 모두 들으셨을 겁니다.”

“홍준기가 납치당했다는 소문이라면 저희도 들었습니다.”

“사부님! 홍준기는 어떻게 됐답니까?”

교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격앙되어 있었다.

비록 자신이 담당하는 교육생은 아닐지 몰라도 홍준기는 무공 아카데미의 교육생이었고 그들은 무공 아카데미의 교관이었다.

교관으로서 홍준기가 납치당한 것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로서는 환술사가 직접 나섰다는 정황만 확인되었을 뿐, 홍준기 교육생이 어디로 납치되었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빌어먹을, 환술사 그놈이면 A급 빌런 아닙니까?”

역시 공무원 헌터답게 신경철은 환술사 최채환에 대해 알고 있었다.

“환술사라면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예, 제가 생각하기에는 무공 지식을 빼가는 게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멍청한 놈들이군. 일개 교육생이 무공에 대해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이정이 혀를 찼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홍준기는 일개 교육생일 뿐이었다.

교관을 납치해도 성과가 없을 판인데, 일개 교육생을 납치한다고 무공을 배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호흡법을 비롯하여 무공의 원리만 조금 알게 되겠지.’

진짜 무공은 오직 나만이 가르쳐줄 수 있었다.

그러니 최채환이 저지른 짓은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란 뜻.

“여러분, 저는 환술사의 조직을 일망타진할 계획입니다.”

“조직이요? 환술사에게 조직도 있습니까?”

A급 범죄자지만, 최채환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높으신 분’들의 해결사라는 사실도.

강남의 암흑가를 주름잡는 조직의 수장이란 사실도 잘 감춰진 상태.

“화룡파라고 부르는 조직이 있는데, 이 조직이 바로 환술사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입니다.”

내 말에 신경철과 고정희, 김민경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 사람은 공무원 출신이기에 화룡파가 어떤 조직인지 알았다.

나이트클럽, 호텔 카지노 등.

화룡파는 돈 되는 유흥 사업이라면 전부 다 달라붙은 조직으로, 한국에서 손꼽히는 전국구 조직이었다.

“제가 홍준기 교육생을 구할 동안 여러분이 화룡파를 일망타진해주셨으면 하는데,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부탁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흐흐, 사부님. 그냥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뭐 빌런 몇 명 때려잡으면 되는 거니 어려운 일도 아니겠군.”

“저도 언제든 손을 거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신경철, 이정, 주현근이 가장 먼저 그와 같이 말했다.

고정희와 김수민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 뜻에 따라주겠다는 의사표현이었다.

물론 우려하는 이가 없지는 않았다.

김민경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아무런 명분 없이 화룡파를 공격해도 될까요? 화룡파의 뒤에 권력자들이 있을 텐데.”

다만 그녀의 우려는 화룡파를 우리의 힘으로 일망타진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아니었다.

화룡파를 일망타진하고 난 뒤에 생길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미 이재현 차관에게 허락을 구했으니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뭐.”

김민경은 모든 걱정거리가 해소되자,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홍준기를 찾는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추적의 낙인을 미리 찍어놓길 잘했군.’

카르마 상점을 오직 영약을 구매하는 데만 활용한다면 그건 카르마 상점을 절반도 채 활용하지 못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영약은 어디까지나 카르마 상점 안에 존재하는 상품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였다.

스킬, 아이템, 회복 포션, 영약 등등.

내가 얼마 전에 구입한 추적의 낙인은 이 중에서 스킬에 해당하는 상품이었다.

이름답게 추적을 돕는 스킬이었다.

‘추적의 낙인.’

나는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수백 개의 선이 내 시야에 떠올랐다.

이 선들은 내가 낙인을 찍어둔 사람이 있는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지 시간이 짧아서 이틀에 한 번씩 최신화를 해줘야 한다는 게 귀찮지만, 역시 효과 자체는 사기적인 수준이야.’

지속 시간 외에도 직접 피부에 손이 닿아야 한다는 등, 세부적인 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롭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홍준기를 구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보다 좋은 스킬은 없었다.

‘근데 이 여섯 개의 선 중에서 어느 쪽이지?’

교육생들이 아직 한창 무공 아카데미에서 자습하고 있을 시간이라서 선들은 한곳에 뭉쳐있었다.

소수의 몇몇 선들만 흩어져있었는데, 나는 그 선들을 바라보며 ‘직감’ 스킬을 사용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추적의 낙인’과 ‘직감’ 스킬은 최고의 조합이었다.

딱 한 곳.

남쪽을 가리키는 선에서만 직감이 발휘되었다.

홍준기가 있는 장소가 어디 있는지 알아차린 나는 망설이지 않고 선을 따라 달려갔다.

“준기야.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게 계속 저항하면 또 끔찍한 꿈을 꾸게 될 거야.”

“무슨 수를 써도 나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거다!”

최채환은 전혀 기세를 잃지 않은 홍준기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저항이 생각했던 것보다 거센데?’

분명 그가 조사했던 정보에 따르면 홍준기는 소심한 성격에 겁이 많은 인물이었다.

어렸을 때는 왕따를 당한 적도 있었기에 그의 환각 스킬을 이용하여 트라우마를 자극하면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홍준기는 납치를 당한 상황에서도 완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두려움에 찬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그가 원하는 정보는 절대 토해내지 않았다.

“큰형님, 꽤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요?”

“쯧. 귀찮게 됐어.”

“어떻게, 저놈의 가족들도 노려볼까요?”

가족을 인질로 삼아 협박한다면 더 강단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최채환은 부하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다. 이능관리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이미 보호 조치를 했을 텐데, 괜히 건드려봐야 손해만 볼 거다.”

“이능관리부가 나선다면 이곳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며칠 버티고 다시 장소를 옮겨야겠지.”

최채환은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 정도는 안전하리라 여겼다.

만약 그가 납치한 사람이 랭킹 1위라는 서동호였으면 이능관리부가 총력을 다해서 수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홍준기는 기껏해야 300위권에서 노는 그저 그런 수준의 헌터였다.

이런 듣보잡 헌터를 구하기 위해 이능관리부가 총력을 다할 일은 절대 없으리라.

‘이왕이면 며칠 동안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할 텐데.’

그는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다.

홍준기 한 사람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면,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 봐야 나흘.

최채환이 홍준기를 살필 수 있는 시간은 겨우 나흘뿐이었다.

‘근데 과연 나흘 안에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직 제대로 된 정보는 얻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홍준기의 환각을 들여다본 결과, 무공 수련이란 게 생각했던 것보다 난해하게 느껴졌다.

단순하게 호흡법만 익힌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만은 않으리라.

탁!

“정전인가?”

갑자기 불이 꺼지며 시야가 암전하였다.

헌터에게도 어둠은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화룡파 조직원들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홍준기부터 살펴! 놈을 구하러 왔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최채환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반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아, 안 보입니다!”

“시발, 어디 간 거지?”

“누군가가 구해준 모양인데?”

“사방을 막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이미 홍준기는 사라진 상태.

그의 자리엔 빈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찾아!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최채환이 다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 불이 켜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넌 누구냐!”

“내 제자를 납치했으면서 정작 나는 누군지 못 알아보는 건가?”

“제자? 설마 박한새!?”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최채환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능관리부도 한참 뒤에 올 거라고 예상했건만, 박한새가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당황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적이다! 공격!”

이번에도 그의 상황 판단 능력은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홍준기를 납치한 시점에서 박한새와는 이미 적대 관계가 된 상태.

그와 더 대화를 나눈다고 득 볼 것은 없었다.

그래서 바로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인데, 상황 판단은 신속했어도 그 결과 자체는 그리 좋지 못하였다.

‘저, 저리도 일방적이라고?’

박한새가 강하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괜히 무공을 탐했겠는가.

비각성자이면서 A랭크급의 무력을 선보이는 박한새 때문에 무공을 탐한 것이었다.

하지만 박한새의 무력은 그가 예상했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지금 이곳에 집결해있는 화룡파의 전력이면 어지간한 중소 길드도 박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중소 길드를 순식간에 박살 낼 수 있는 전력으로도 박한새만큼은 어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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