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화
말단 조직원이 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멀리 튕겨나갔다.
뒤이어 사시미를 들고 덤벼들던 말단 조직원 역시도 사시미를 동료에게 꽂은 채 그대로 사라졌다.
랭크가 높은 조직원들이라고 결과가 다르지는 않았다.
달려드는 족족 한 대를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한번 나가떨어진 조직원은 다시 싸움에 합류하지 못하였다.
그대로 기절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는 필패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고 있었다.
차륜전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노린다?
파주에서 보여주었던 박한새의 체력을 생각하면 그것도 힘들었다.
결국, 최채환.
그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네가 아무리 근접전의 최강자라도 내 스킬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최채환은 마력을 일으킨 채, 박한새의 눈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스킬이 사용되었는데, 바로 그의 주력 스킬인 환각이었다.
이 스킬에 당할 경우, 상대는 그의 의도대로 놀아나게 된다.
환각으로 그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피식.
최채환은 박한새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보며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환각이 먹혔으면 지금쯤 반응이 보여야 할 텐데, 박한새는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설마 내 스킬도 안 통한다고?’
이래 봬도 그는 A랭크 헌터였다.
그리고 환각이라는 스킬은 동급의 헌터에게도 곧잘 먹혔다.
실제로 그를 추격하던 A랭크 공무원 헌터와 맞붙어서 승리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박한새를 상대로는 환각이 전혀 먹히질 않았다.
박한새가 마치 A랭크 이상의 강자라도 되는 거 같았다.
스킬이 통하지 않는데 더 버텨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다급하기 그지없는 최채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가?’
아직 그의 몸에 접촉하지 않았기에 추적의 낙인은 찍지 못하였다.
하지만 추적의 낙인이 있고 없고는 크게 상관없었다.
절정 무인의 감각은 상식을 초월하였다.
최채환쯤이야 눈을 감고도 쫓을 수 있으리라.
‘그래도 빨리 끝내는 게 낫겠지. 옵니타에서 괜히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야.’
내가 홍준기를 구할 때, 교관들은 화룡파의 본거지를 치는 중이었다.
어차피 화룡파의 주 전력은 내가 쓰러뜨렸으니, 교관들만으로 화룡파의 본거지를 초토화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이쪽 일이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큰형님이 도망쳤다!”
“젠장! 환술도 안 통한다고?”
“이놈은 절대 못 이겨! S랭크나 다를 게 없다고!”
퍽! 퍽! 퍽!
마지막까지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는 화룡파 조직원들을 때려눕히고는 최채환의 뒤를 쫓았다.
예상했던 대로 최채환은 그리 멀리 도망가지는 못 하였다.
‘이런 허접한 놈이 뒷세계에서는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니.’
마피아, 삼합회, 야쿠자가 왜 한국으로 진출하려고 안달인지 알 거 같았다.
화룡파 같은 허접한 조직이 전국구 조직이라 불리니, 그저 같잖게만 느껴졌으리라.
클럽 옵니타.
VIP룸에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화룡파 소속으로 D랭크 이상의 헌터이기도 했다.
“정우야. 한잔 받아라.”
“감사합니다. 형님.”
“제시카는 어때? 예쁘지?”
정우라고 불린 이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여성을 힐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 봤을 때 정말 연예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치? 예서 닮았다니까.”
“아,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은 예서가 네 이거니까, 재미있게 즐기라고. 오케이?”
그때 또 다른 화룡파 간부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야 이정우. 우리 조직 어떠냐? 복지 개쩔지 않아? 신참한테 예서 닮은 여자도 제공해주고 말이야.”
물론 신입이라고 다 이렇게 배려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정우라는 사내가 C랭크 헌터이기 때문에 제공되는 혜택이었다.
그것도 범죄 이력이 없는 C랭크 헌터이기에 더 대우가 좋았다.
“근데 너 이 새끼, 표정이 왜 그러냐? 뭐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제시카가 별로인 거야?”
“아, 아닙니다. 이분은 정말 제 마음에 쏙 듭니다.”
“마음에 들면 즐겨야지, 왜 표정이 그따위야?”
“그냥 하나 걱정이 되는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걱정? C랭크 헌터의 귀한 몸이 걱정은 뭔 걱정?”
“이능관리부가 지금 난리를 치고 있지 않습니까? 납치범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설마 우리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래도 이능관리부 소속을 건드렸으니 후폭풍이 거셀 거 같습니다.”
무공 아카데미 소속이자, 이능관리부 소속인 홍준기가 납치당한 일로 세간이 떠들썩하였다.
이능관리부의 이인자인 이재현 차관이 ‘납치범은 각오해라.’라고 선언한 뒤에 더욱더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이정우로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재현이 ‘각오하라.’라고 선언한 납치범은 화룡파의 회장인 최채환이었기 때문이었다.
“푸하하하!”
“하하하하하!”
이정우의 말을 듣고 화룡파 간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그들 옆자리에 앉은 여성들도 눈치껏 따라 웃었다.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한 거냐?”
“우리 좆 됐단다! 푸하하!”
“대화룡파가 언제부터 이능관리부 따위를 두려워해야 하는 약소 조직이 된 거야?”
“이래서 신참은. 크큭!”
그들의 반응을 보면 이능관리부 따윈 안중에도 안 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들은 이능관리부는 물론이고 정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뒷배가 든든하기 때문이었다.
“정우야. 그딴 거 걱정할 시간에 무공이나 연구해라.”
“정말 괜찮은 겁니까?”
“당연히 괜찮지, 새끼야. 우리가 이능관리부를 두려워해야 할 레벨인 줄 알아?”
“홍준기인지 뭔지, 그놈 때문에 생긴 소란도 금방 잠잠해질 거다. 이능관리부 놈들이 쪽팔려서 입을 다물 거거든.”
이정우는 속으로 안심하였다.
간부들의 태도를 보니, 화룡파의 뒷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든든한 거 같았다.
‘헌터 협회의 간부가 뒤에 있다더니, 진짜였나 보군.’
협회뿐만이 아닐 거다.
재벌, 정치인, 유력 길드 등.
화룡파의 뒷배는 실로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과거의 이능관리부였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말이다.
“이놈들아!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올 생각을 해야지, 왜 애먼 교육생을 납치하고 지랄이냐!”
그때 갑자기 VIP룸의 문이 부서지며 6명의 남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부서진 잔해 뒤로 쓰러진 그들의 부하 조직원이 보였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정체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6명의 남녀가 그들의 적이라는 사실이었다.
화룡파 조직원들은 살기를 내뿜으며 적들을 노려보았다.
‘저, 저자들은 무공 아카데미 교관들이잖아?’
이정우는 화룡파 간부 중 유일하게 상대의 정체를 알아챘다.
평소 무공 아카데미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기에 바로 알아챈 것이다.
“뭣들 하고 있어! 담가버려!”
한 간부가 지시를 내리자 다른 간부들도 무공 아카데미 교관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정우는 교관들에게 달려드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창가로 다가갔다.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그로선 도저히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교관 중에는 B랭크 헌터도 있었고 B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진 헌터도 있었다.
주현근이라는 헌터 또한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그보다는 강할 것이리라.
6명 중 절반 이상이 C랭크 헌터인 그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창가로 다가가던 이정우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마치 가상의 벽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를 막고 있었다.
주먹에 힘을 주고 두드려봐도 그 가상의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방을 결계로 가두었습니다. 그러니 도망치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왜소한 체격의 여인.
결계라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그녀가 고정희라는 이름의 헌터인 거 같았다.
‘이정이나 신경철 정도만 아니라면 그래도 상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무공 아카데미 교관들은 죄다 강해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 역시 C랭크 헌터였다.
더군다나 고정희라는 여인은 아마 헌터 랭크로 따지면 E랭크 정도밖에 안 될 터.
C랭크 헌터로서 아무리 무공을 익힌 헌터라고 해도 E랭크 따위에게 패배할 리는 없으리라.
“뭘 믿고 혼자 나대? 내가 우스워?”
“당신 정도는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도발적인 그녀의 말에 이정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얼핏 듣기로 숫기 없고 소심한 성격이라 들었는데.
소문이란 것은 역시 믿을 게 못 되는 거 같았다.
“후회하게 해주마!”
이정우의 옷이 찢어지더니, 우람하기 그지없는 그의 전신이 훤히 드러났다.
키도 거의 2m에 근접할 정도로 늘어났다.
왜소한 체격의 고정희 앞에 서니 마치 거인을 보는 듯하였다.
“어머, 흉측해라.”
하지만 고정희는 그런 이정우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보면서도 태연한 반응이었다.
무공을 익힌 그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죽어라!”
체격만큼 거대해진 주먹이 고정희를 덮쳤다.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주먹.
이정우는 혀를 차며 다시금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그때 복부에서 참을 수 없는 격통이 느껴졌다.
그가 다음 공격을 준비할 때 고정희가 회심의 반격을 가한 것인데, 가냘픈 주먹에 맞은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이게 침투경인지, 뭔지 하는 그건가.’
내부가 고통스러웠다.
신체 내부의 내장이 직접 타격을 받은 거 같은 느낌이었다.
박한새가 가르치는 기술 중에 침투경이라는 것도 있다더니, 지금 당한 게 침투경인 듯싶었다.
“듣보잡 E랭크 헌터가 이렇게 강해지다니. 나도 무공만 익혔으면……!”
“화룡파만 아니었으면 언젠가 무공을 배울 기회가 왔을 텐데, 아쉽게 됐네요.”
그 말을 듣자 이정우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무공을 배울 기회를 잃었다니!
설마 자신은 영영 무공을 배울 수 없다는 말인가?
‘마, 말도 안 돼!’
이정우는 자신이 화룡파에 들어온 것을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돈과 여자, 심지어 값비싼 아이템까지.
화룡파에 들어오며 그는 많은 것을 얻었다.
앞으로 얻을 뒷세계의 권력까지 생각하면 화룡파의 조직원이 된 것을 후회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고정희에게서 무공을 배울 수 없을 거란 말을 듣고 나자, 화룡파에 들어온 것이 후회되었다.
돈과 여자, 권력.
그 모든 것보다 무공을 배워 더 강해지는 게 헌터로선 훨씬 이익이었기 때문이었다.
화룡파 조직원 다섯 명이 달려들자, 김수민은 자신의 스킬인 염동력을 사용하였다.
무공을 사용해도 다섯 명쯤은 거뜬히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공을 더 쓰는 한이 있더라도 염동력을 사용하여 화룡파 조직원들을 쓰러뜨렸다.
‘더러운 피가 튀기는 건 싫으니까.’
다섯 명의 화룡파 조직원은 그녀의 염동력에 묶여 꼼짝도 못 했다.
그 상태로 압력을 가하니, 화룡파 조직원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하였다.
원래도 강했던 그녀의 염동력은 무공을 배운 이후, 경천동지할 정도로 위력이 상승하였다.
마치 결계라도 친 것처럼, B랭크 이하의 헌터는 그녀에게 접근조차 못 할 정도였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고정희가 이정우를 쓰러뜨리면서 상황이 종료되려던 찰나, 제3의 인물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인물의 목소리는 김수민에게 있어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김수민은 휙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였다.
안지호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버지의 원수인 멸절 길드의 안지호 길드장이 말이다.
“네놈들, 공무원 헌터들이지? 공무원 주제에 이따위 행패를 부리다니. 이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