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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76화 (76/275)

#076화

그녀에게는 분명 원수인데, 상대는 김수민이 누군지도 알지 못하였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죄를 뉘우치고 있지 않다는 증거였다.

“지금 저희는 공무 집행 중입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죄 없는 민간인들을 마구 때려잡는 것을 공무 집행이라 하는 거지?”

누가 봐도 억지였다.

바닥에 쓰러진 화룡파 조직원들은 절대 ‘죄 없는 민간인’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공무원 헌터라지만, 선배에 대한 예의가 이리 없어도 되는 건가?”

“나이와 기수, 랭크가 어떻게 되지? 하나라도 나와 같은 것이 있나?”

“공무 집행 중입니다. 계속 공무 집행을 방해하신다면 공무 집행 방해죄로 연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민이 애써 무감정한 얼굴로 그같이 말하자, 안지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

“왜 웃으시는 거죠?”

“설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웃음을 멈춘 안지호는 언제 웃었냐는 듯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그 무공이란 것을 믿고 나를 연행한다, 만다, 지껄이는 건가? 우습기 그지없군. 10대 길드 수장이라는 이름이 우습게 보이더냐!”

쿠우우웅!

그가 버럭 외치자, 마치 무거운 바위가 얹어진 것처럼 김수민의 몸이 무거워졌다.

중력조작.

멸절 길드를 10대 길드 중 하나로 만들어준 안지호의 주력 스킬이었다.

“저에게 스킬을 사용한 것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감히…!”

자신의 주력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김수민이 변함없는 태도를 보이자, 안지호는 눈에 살기를 띠었다.

“정녕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쿠쿠쿠쿠쿵!

김수민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훨씬 더 강해졌다.

그러자 김수민의 무릎이 조금씩 굽혀졌다.

내공으로 신체를 강화하여 버티고자 했으나, 압박이 더 거세짐에 따라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김수민은 무공에만 의존하는 헌터가 아니었다.

그녀에겐 박한새조차 탐을 내던 염동력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염동력으로 몸 주변에 가해지는 중력을 차단하였다.

그러자 언제 무거웠냐는 듯, 그녀의 몸이 다시 가벼워졌다.

“이것도 버틴다고?”

안지호는 그런 김수민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김수민은 신경철이나 주현근, 이정 같은 교관들과 비교했을 때, 인지도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그나마 외모 때문에 커뮤니티에서나 몇 번 언급이 될 정도.

헌터로서의 랭크도 D에 불과했다.

그런 김수민이 자신의 중력조작을 버티고 있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김수민은 버티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군.’

깨진 술병과 의자, 사시미칼 등이 그에게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김수민이 염동력으로 물체를 조작하여 안지호를 공격한 것이다.

“같잖은 짓을!”

하지만 안지호는 단순한 A랭크 헌터가 아니었다.

A랭크에서도 최상위.

언제 S랭크 경지에 올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A랭크 최상위 실력자였다.

김수민이 날린 물체들은 안지호의 주변으로 가자 땅으로 처박혔다.

중력조작으로 막은 것인데, 김수민은 예상했다는 듯, 바로 다음 행동을 취하였다.

염동력을 자신의 몸 주변에다 펼친 뒤, 안지호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녀 역시 보법을 사용할 줄 알았기에 속도가 상당하였다.

순식간에 안지호의 바로 앞에 도착한 그녀는 강하게 쥔 주먹을 내뻗었다.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군. 나를 상대로 근접전을 시도하다니!”

내공이 가득 실린 그녀의 주먹은 허무하게 막혔다.

안지호가 팔을 휘둘러 그녀의 주먹을 쳐낸 것이다.

주먹이 욱신거리는 게, 뼈가 부서진 거 같았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뼈가 부러진 고통을 애써 참으며 이번에는 발차기를 시도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안지호의 주먹이 먼저 그녀를 타격하였다.

안지호에게 얻어맞은 그녀는 뒤로 날아가다가 염동력으로 간신히 벽에 부딪치지 않고 멈춰 설 수 있었다.

다시금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김수민의 모습을 보며 안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저리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설령 A랭크 헌터라고 해도 그의 주먹에 정통으로 맞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완력을 대폭 상승시켜주는 그의 스킬을 중력조작과 함께 사용하면 그 위력이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쯧!”

혀를 찬 안지호가 다시 주먹을 내뻗었다.

부우웅, 부우웅.

아까와는 결과가 달랐다.

그의 주먹이 연신 허공을 갈랐다.

“날파리 같은 년!”

실력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수민은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저 간격만 최대한 좁힌 채, 피하는 것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벌써 내 공격에 적응하다니.’

안지호의 얼굴에서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육탄전으로만 김수민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력조작이란 주력 스킬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아주 위험한 년이다.’

싸움이 길어지자, 안지호는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김수민은 이미 많이 지쳤고, 중력조작으로 압박도 계속 받았기에 당장이야 그가 이길 것이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겨우 20대 초반에 불과한 김수민이었다.

무공이란 것을 배운 지도 이제 몇 달밖에 안 됐을 터.

그런데도 이만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만약 무공을 더 배우고 스킬까지 성장하면 그때는 과연 안지호가 이길 수 있을까?

‘어차피 인지도도 없는 년이니, 실수로 죽인 척하면 문제 생길 것도 없겠지?’

안지호는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김수민을 죽이기로.

그만큼 그는 김수민에게서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꽤 하는군.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진짜 내 실력을 보여주마!”

쿨럭!

갑자기 중력장의 세기가 세지자, 김수민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였다.

마치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그녀의 몸이 받는 중력이 강해졌다.

우지직.

안지호가 펼친 중력장에 천장도 영향을 받았는지, 천장이 갈라지며 파편이 김수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파편 역시도 중력장에 영향을 받아, 그 속도가 총알이 날아드는 것처럼 빨랐다.

김수민은 무공을 익히면서 발달 된 오감 덕에 파편이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몸 상태였다.

이미 체력이 다한 그녀의 몸은 안지호가 전력으로 펼친 중력장을 견딜 수 없었다.

멀쩡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일 정도였다.

‘이렇게 허무히 죽는 거야? 아버지의 복수도 못 하고?’

김수민은 순간 머릿속으로 ‘죽음’을 떠올렸다.

하필 그녀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고 떨어지는 파편이었다.

그 파편에 담긴 가공할 위력이라면 그녀의 연약한 머리를 부수는 거야 일도 아니리라.

두 사람이 겨루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김수민이 위기에 처하자,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나섰다.

“그만하시죠.”

안지호는 내게 누구냐고 외치면서도 중력을 조작하여 김수민에 대한 공격을 이어나갔다.

물론 김수민이 당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내가 아니었다.

검기를 가득 실은 검을 휘두르자, 안지호의 중력장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너무 쉽게 자신의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일까?

안지호가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네놈은 설마 무공의 창시자라던 박한새인가?”

“네놈이 저년의 스승이란 말이지?”

마치 전장의 적을 보듯,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안지호 길드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내뿜는 살기의 이면을 나는 볼 수 있었다.

두려움과 초조함.

김수민의 무공 실력을 보고 아마 그는 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많이 흥분하신 거 같은데, 머리 좀 식히시죠.”

내가 침착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그는 오히려 더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이능관리부의 폭거를 눈앞에서 봤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10대 길드라고 해도 공무 집행을 방해할 권한은 없습니다만.”

“방해가 아니라 이능관리부의 폭거에 대해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거뿐이야.”

“어떤 것이 폭거라는 겁니까?”

“이자들, 왜 체포하려는 거지?”

안지호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화룡파 조직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야 화룡파라는 범죄 조직에 소속된 빌런이기 때문입니다.”

“빌런이라고? 글쎄, 여기 누워있는 이 친구는 내가 아는 동생인데, 빌런과는 거리가 멀어.”

“범죄의 유무는 법정에서 결정할 일이지, 안지호 길드장님께서 관여하실 일이 아닙니다.”

“난 그렇게 못 하겠는데.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감히 내 지인을 체포하려는데, 10대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가만있을 수가 있나.”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하지만 안지호가 괜히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10대 길드를 들먹인 것.

체포를 감행하려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10대 길드 전체와 척을 질 각오를 하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가만있지 않으면 어떡하시겠다는 겁니까?”

나는 말을 하면서 기세를 끌어올렸다.

절정 무인의 기세는 A랭크 헌터조차 압박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무공을 배우지 못한 상태의 A랭크 헌터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정녕 나와 척을 지겠다는 거야?”

잠시 주춤하던 그는, 이내 성난 얼굴로 말하였다.

“먼저 선을 넘은 것은 안지호 길드장님인 거 같습니다만. 지금도 저에게 반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까마득한 선배에게 반말을 듣는 게 그리 기분이 나빴던가?”

“저는 헌터가 아닙니다. 그러니 안지호 길드장님도 제 선배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 증거를 이야기하셨는데 만약 저에게 증거가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증거?”

그가 코웃음 치자, 나는 사람 한 명을 데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반쯤 끌고 왔는데, 아까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인간이 분근착골을 몇 번 당하고서 완전히 정신줄을 놓았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최채환이라고 화룡파의 수장입니다.”

“…내가 아는 그 최채환이라고?”

안지호가 최채환을 보더니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최채환이 무슨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태가 왜 그러는 거야?”

“말을 안 들어서 교육 좀 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하겠다. 질문을 듣고 사실대로 대답하도록.”

최채환은 침을 줄줄 흘린 채로 가만히 있다가, 내 말을 듣고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니 교육의 효과가 확실히 좋은 거 같긴 했다.

“저기,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아, 압니다.”

“화룡파 소속인가?”

“맞습니다.”

“평소에 어떤 일을 담당했지?”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간부입니다. 10대 길드와도 친분이 두터워서 앞에 있는 안지호 길드장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최채환은 내가 묻는 말이면 자신에게 아무리 불리한 내용이어도 거침없이 답변하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안지호의 길드인 멸절 길드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역시 추악하기 그지없군. 이래서야 누가 조폭인지 모르겠어.’

안지호가 괜히 화룡파를 보호하려고 하는 게 아니었다.

화룡파로부터 돈과 여자를 상납받고 있었기에 보호해주는 것이었다.

“이, 이놈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를 모함하는 거야!”

안지호가 분개해서는 최채환에게 공격을 시도하였다.

이성을 잃은 척, 최채환의 입을 다물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난 검을 휘둘러 최채환에게 날아오는 스킬을 베어냈다.

그러자 안지호가 펼친 중력조작이란 스킬이 허공에서 그대로 소멸하였다.

“안지호 길드장님. 여기서 더 선을 넘었다간,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죽을 겁니다.”

나는 검기를 가득 실은 검으로 안지호를 겨눈 채 그와 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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