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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77화 (77/275)

#077화

비각성자 주제에 A랭크이자 멸절 길드의 수장인 자신을 협박하다니!

원래의 안지호 성격이었으면,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정치권이나 재계의 인맥을 가졌다고 해도 호되게 혼냈을 터.

하지만 안지호는 박한새의 협박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 이상의 액션을 취하지 못하였다.

‘이 내가 겁을 먹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S랭크 헌터에게도 겁을 먹은 적이 없는데, 비각성자 따위에게 겁을 먹었다?

멸절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설령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더라도 박한새와 사생결단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100%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명분은 이능관리부에 있는 거 같으니 오늘은 이만 물러나지.”

결국, 명분이 없다는 핑계로 물러나는 안지호였다.

박한새와 싸워서 이길 각이 보이지 않자, 구차하게 변명을 한 것이다.

‘박한새가 키우는 무공 사용자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협적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멸절시켜야 한다.’

“또 저를 구해주셨군요.”

“스승이 제자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김수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내 말에 감동한 건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안지호를 만난 게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이라면 안지호를 쓰러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말하는 김수민의 모습을 보고 나는 쓰게 웃었다.

그녀가 안지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죽이고 싶었겠지.

안지호는 그녀의 부친을 죽게 만든 원수였으니까.

“조금만 더 수련하면 수민 씨의 실력으로 안지호 길드장을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내 생각에 그녀는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냉정한 목소리로 자기가 조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였다.

“그건 안지호가 무공을 익히지 않을 때의 이야기 아닌가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안지호가 무공을 익힌다면 실력 차이가 다시 벌어지긴 할 거다.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안지호도 무공 재능이 범상치 않았으니.

‘아마 회귀 전의 김수민이 안지호를 직접 노리지 않고 게릴라식으로 멸절 길드를 괴롭힌 것도 실력 차이 때문이었겠지?’

안 그래도 A랭크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안지호였다.

그런 그가 무공을 익히면 S랭크 이상의 무력을 보여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권속 후보, ‘김수민’에게 ‘권법’을 가르치십시오. 카르마 +50,000]

[‘권법’을 가르칠 시, 추가적으로 권속 후보, ‘김수민’에 대한 당신의 지분율이 30% 상승합니다.]

갑자기 떠오른 퀘스트를 보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런 식의 퀘스트가 뜰 줄이야.’

누군가를 구해라.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라.

뭐 이런 퀘스트는 몇 번 떴었다.

아니면 내 개인 성장에 관련된 퀘스트가 뜨던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특정 무공을 가르치라 주문하는 퀘스트는 처음인 거 같았다.

특히 보상으로 지분율이 걸린 적은 정소연을 내상에서 치료하고 10%의 지분율을 얻었을 때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분율이 30%나 걸려있으면 무조건 할 수밖에 없겠는데?’

권법을 가르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긴 했다.

내가 괜히 보법만 가르치고 검법이나 권법은 기본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권법과 검법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전부 배우는 데 한 세월이었다.

설령 배운다고 해도 드라마틱한 무력 상승을 이루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김수민의 지분율을 30%나 올릴 수 있다면 투자해볼 만했다.

현재 그녀의 지분율은 53%.

30%가 추가되면 80%대고, 권법을 배울 동안 자연적으로 상승하기도 할 테니 퀘스트를 깰 때쯤 100%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권법을 가르치는 게 좋을까? 신체 강화 스킬이 없으니까, 역시 이화접목을 극대화하는 권법이 좋겠지?’

헌터 매니아는 오늘도 박한새와 관련된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와, 화룡파라면 그래도 전국구 빌런 조직인데 순식간에 털리네 ㄷㄷㄷ.]

몇 시간 전.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이라는 홍준기가 납치당한 일로 떠들썩하였었던 헌터 매니아다.

하지만 지금은 화제가 조금 바뀌었는데, 홍준기를 구하고 화룡파를 응징한 박한새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감히 무공 제자를 납치했는데 빌런 조직 따위야 바로 밟히지 ㅋㅋㅋㅋㅋㅋ]

[박한새는 도대체 무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 거임? 환술가도 처발렸다던데.]

[A랭크는 확실히 넘는 듯.]

[박한새도 박한새지만 박한새 제자들도 심상치 않음. 환술가 말고는 박한새 제자들이 다 때려 부순 건데, 얘네는 무슨 다 괴물밖에 없음 ㅋㅋ]

[ㄹㅇ 괴물들 ㅋㅋ 무공 아카데미가 아니라 괴물 양성소야.]

화룡파는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빌런 조직이었다.

그런 빌런 조직이 단 하루 만에 거의 붕괴하다시피 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나도 무공 배우고 싶어서 솔직히 나쁜 생각 한 적 있었는데, 안 하길 잘했다. ㄷㄷ]

[ㅋㅋㅋㅋ 나쁜 짓 했으면 박한새한테 분근착골 당했을 듯.]

[근데 분근착골이 정확히 뭐임?]

[몰?루?]

[환술사 보니까, 거의 백치나 다를 게 없이 변했다고 함. 엄청나게 통증이 강한 고문인 듯.]

[박한새 개무서운 사람이었네. 후덜덜.]

헌터 매니아에서는 단순히 박한새의 무력이나 성정에 관한 이야기만 언급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은 달랐다.

<멸절 길드, 조폭 연루 의혹!>

<[단독] ‘화룡파 게이트’ 사건에 정성완 JS 그룹 부회장이 등장한 까닭은?>

<‘화룡파 게이트’ 정치권으로 불똥. 연루된 정치인은 몇 명?>

화룡파.

괜히 전국구 조직이 아니었다.

그들과 연루되어있는 권력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원래 같았으면 유야무야 덮였을 일이지만, 이능관리부가 제대로 나서니 일이 조용하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화제에 오르며 며칠 만에 ‘화룡파 게이트’라고 불릴 정도로 큰 사건이 되었다.

“이 멍청한 놈! 도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JS 그룹 회장의 고함에 정성완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여전히 노기등등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화룡파 게이트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 JS 그룹이었다.

최채환과 깊은 관계를 맺은 정성완으로 인해 그룹 전체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자에게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해!”

“그자라면 설마, 박한새를 말하는 겁니까?”

“그럼 누구겠어!”

JS 그룹 회장, 정원주의 말에 정성완은 그럴 수는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리 유명해도 비각성자에 불과한 놈입니다. 그런 놈에게 무릎을 꿇으라니요?”

“이 멍청한 놈 같으니!”

정원주는 육중한 자신의 손으로 정성완의 뺨을 후려쳤다.

그는 비록 헌터는 아니었지만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헌터가 아닌 정성완은 그런 정원주의 공격에 몸이 크게 휘청거리더니, 가까스로 자세를 유지하였다.

그는 빨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뺨보다 정원주가 자신에게 싸대기를 날렸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정성완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도, 마약을 하여 검찰에 구속되었을 때도 정원주는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겨우 이만한 일로 뺨을 후려치다니.

실로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헌터의 시대가 왔을 때, 기득권을 지키고자 헌터를 핍박하고 몰아세웠던 재벌 그룹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느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헌터에 대한 특혜가 적은 편에 속하였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세금도 오히려 적게 내고 헌터라는 이유로 온갖 국가 지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도 헌터라면 무죄 판결을 내리는 나라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한국도 헌터의 권력은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정당이든, 헌터에게 불리한 정책이나 법안은 전혀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헌터의 권력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득권과 싸우고 또 싸워서 지금의 권력을 만들었다.

“아버지께서는 헌터의 시대가 가고 무림인의 시대가 오리라 생각하는 겁니까?”

“헌터의 시대가 가는 게 아니다. 헌터가 무림인으로 바뀌는 거지.”

무림.

아직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협지에 영향을 받은 세대들이 박한새와 박한새에게 무공을 배운 이들을 무림인이라 불렀고 인터넷에서도 공공연하게 무림인이란 단어가 쓰였다.

“그러니 박한새라는 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무림인의 시대가 오면 지금의 헌터 협회장 이상의 권력을 누릴 것이 바로 박한새라는 인물이니까.”

헌터 협회장은 기껏해야 한 명의 헌터일 뿐이었다.

왕년에 영웅이라 불릴 정도로 공을 세웠으며 정치적인 능력도 출중하여 헌터의 이권을 대표하는 이가 되었던 것.

그렇기에 협회장의 권력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박한새는 달랐다.

그는 무공의 창시자였다.

헌터로 따지면 헌터의 스킬, 마력, 육체 능력 등을 창시한 사람이나 다를 게 없었다.

무공을 창시한 박한새가 헌터 협회장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JS 그룹 회장에게 단단히 훈계를 들은 정성완은 곧바로 박한새를 찾아가 사과하였다.

최채환 같은 이와 어울려 헛된 욕심을 부린 일에 대한 사과였다.

이른바 화룡파 게이트에 연루된 다른 재벌들의 행동도 이와 비슷하였다.

박한새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적이 없다고 해도 그들은 다양한 핑계를 대며 일단 박한새에게 접근하고 봤다.

“이 회장, 자네가 이능관리부 본부엔 어쩐 일인가?”

“다 알면서 물어보는 건 또 뭐야?”

“설마 자네도 무공을 배우러 온 건가?”

“이 나이에 무공은 무슨!”

“나는 못 배워도 손자 놈들은 나이가 어리니 배울 수 있지 않겠어?”

“그래서 선물을 그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온 거야?”

“초면인데 이 정도 선물은 가져오는 게 예의지.”

JS 그룹 회장이 무림인의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한 것처럼, 다른 재벌 역시 무공이 대세가 될 것을 예측하였다.

박한새와 친분을 쌓으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무림인의 시대가 온다면 박한새가 한국에서 손꼽히는 권력자가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JS의 그 망나니 놈도 찾아와 빌빌 기었다지?”

오성 길드의 길드장, 진종호.

그가 찾아와서는 불쑥 그같이 말하였다.

“빌빌 기었다는 소문은 과장된 거고 납치 교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사과한 적은 있었습니다.”

“그게 빌빌 긴 거지. 뭐.”

진종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솔직히 JS 그룹 후계자 말고도 워낙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 그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투자도 많이 받았겠어?”

“구두로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얼마 받기로 했는데?”

“1,000억은 받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다른 기업도 많이 찾아왔으니, 몇천 억은 쉽게 모이겠군.”

나를 찾아온 재벌 회장들은 하나같이 무공 아카데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진세희가 예전에 제안했던 것과 판박이였는데, 부지를 제공할 테니 지분을 인정해달라는 그런 제안이었다.

물론 자금이 넉넉한 내가 그런 제안을 받을 필요는 없었기에,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다음에는 자금 투자를 제안하였는데, 사실상 무이자 대출이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조건이 좋았다.

계약으로 무언가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보단 어떻게든 나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거 같았다.

“재계가 완전히 자네를 차기 권력자로 인정한 모양이야. 우리를 상대할 때는 돈을 아끼던 자들이 자네한테는 돈을 안 아끼는 것을 보면.”

“차기 권력자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재벌들이 먼저 찾아와서 손을 내밀 정도인데, 이게 권력자가 아니면 뭐야?”

권력자라.

회귀 전에도 한번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일까?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는 권력을 추구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공 아카데미를 만들 토대가 마련되어 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이야.’

더 많은 이에게, 궁극적으로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

이게 회귀하고 나서 내가 세운 원대한 목표였다.

나로선 권력자가 되었다는 사실보단 원대한 목표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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