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화
“근데 그거 알지? 헌터계에서 자네의 여론이 썩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헌터계의 여론이 아니라, 10대 길드의 여론 아닙니까?”
“10대 길드가 헌터계의 여론을 주도하는데 그게 그거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긴 했다.
“빌런 조직을 소탕했다는 이유로 분노하는 이들이라면, 저 역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정말로 화룡파 게이트 때문에 자네를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그럼 아닙니까?”
“화룡파도 하나의 이유겠지. 하지만 화룡파보다는 자네가 만든 무공이 문제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평화롭게만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10대 길드는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혈안이었다.
멸절, 볼케이노, 낙원 이렇게 세 길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성 길드나 레이븐 길드를 제외한 나머지 길드들도 점점 나를 적대하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가 빼앗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도 계속 초대하더군. 10대 길드끼리 힘을 모아서 자네를 완전히 밟아주려는 속셈이지.”
“그래서 길드장님은 어떤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긴? 내가 그딴 겁쟁이 놈들의 되지도 않는 소리를 들어줄 거 같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외치고 쫓아냈다.”
오성 길드까지 저쪽 편을 들면 골치 아팠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무공 아카데미라는 것을 최대한 빨리 만드는 게 좋을 거야.”
“왜 그렇습니까?”
“무공을 배운 이들이 늘어나면 그놈들도 결국엔 자네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니까.”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종호 길드장님은 무공을 배우실 생각이 없습니까?”
워낙 나에게 우호적인 말을 해주기에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진종호는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코웃음 쳤다.
“내가 그때 말했을 텐데, 그런 소리를 하려면 일단 날 이겨보라고. 왜, 벌써 날 이길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드나?”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기대하지.”
진종호는 진심으로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내가 새로운 스타일의 적수라서 그런지 더 기대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 그리고 이성은에 관해 말해주자면, 아직 이성은은 무공에 관심이 없어 보이더군.”
일전에 나는 진종호에게 이성은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하루라도 일찍 무공의 천재인 이성은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진종호의 답변을 듣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인지도가 어느 정도 생겼으니, 외국에 있는 이성은도 무공에 관심을 보일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무공 아카데미를 세우라는 진종호의 조언.
확실히, 흘려들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반무림 세력의 크기가 커질 테니까.
‘무엇보다 곧 이변이 발생할 거야.’
사실 10대 길드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정도야 대세에 영향을 줄 수 없으니까.
그들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공 아카데미를 세워야만 했다.
‘안 그래도 곧 독립할 생각이긴 했지.’
인지도는 이미 충분하였다.
내가 무공 아카데미를 세우는 순간, 국내 헌터뿐만이 아니라, 외국 헌터까지 찾아올 터.
자금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부족한 것은 오직 하나.
학생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줄 교사진이었다.
‘하지만 고정희까지 권속으로 만들었으니 교사진도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려워.’
권속으로 만들면 가장 큰 장점이 스킬을 후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마력흡수를 후원하는 게 가능해졌음을 의미하였다.
마력흡수는 격체전력의 훌륭한 대체제였다.
이 스킬만 있으면 고정희와 주현근도 새로운 무림인을 양성하는 게 가능하리라.
‘두 사람이 무공의 기초만 가르쳐줘도 마력 간섭 현상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거야.’
첫 번째로 발생하게 될 이변이 바로 마력 간섭 현상이었다.
헌터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이 이변은 무공의 기초, 그러니까 단전만 만든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변으로 격하할 것이다.
오크가 맹렬한 기세로 달려와서는 도끼를 내려찍었다.
김수민은 손을 들어 오크의 공격을 막았다.
흐느적흐느적.
몬스터와 싸우는 중이라는 게 상상이 안 갈 정도로 힘이 없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김수민이 오크의 도끼를 향해 비스듬하게 손을 휘저으니, 신기하게도 도끼가 속도를 잃고는 그대로 땅에 박혔다.
자신의 공격이 어이없게 막히자, 오크는 더욱 분노하였다.
부우웅, 부우웅!
분노한 오크는 김수민을 향해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마치 염동력으로 오크를 조종한 거 같았다.
‘이게 태극권의 힘!’
그녀에게 태극권을 가르쳐주었던 박한새는, 태극권이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그렇게 썩 효과가 좋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정작 던전에 들어가서 태극권을 사용해본 결과, 박한새의 겸손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이익!”
어느새 오크가 더 와서는 무려 네 마리가 그녀를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김수민은 오크가 한 마리에서 네 마리로 늘어났다고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염동력을 사용하면 순식간에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였다.
태극권을 연습하는 용도로 써먹으면 딱일 것이다.
“꾸에엑!”
“취익!”
한 오크가 저도 모르게 동료의 팔을 도끼로 내려찍었다.
분명 김수민을 노리고 도끼를 내려찍은 것인데 김수민의 팔이 스치고 지나가자, 도끼의 방향이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
이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해서 연출되었다.
전투의 달인이라던 오크들이 초보자도 잘 하지 않는 팀킬을 연달아 하였다.
그 결과, 맨손인 김수민을 상대하던 오크들은 전신이 상처투성이로 바뀌었다.
‘이화접목, 이 힘이라면 안지호도 이길 수 있어!’
오크들을 통해 태극권의 힘을 확실하게 체감한 김수민은 눈을 반짝였다.
처음엔 흐느적거리는 게 중국 무술처럼 실전성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전에서 사용해보니, 같은 인간은 물론이고, 몬스터를 상대로도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태극권의 숙련도가 조금 더 오른다면, 안지호와의 근접전에서도 반드시 이길 것이리라.
쿠우우우웅!
그때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뭐지?’
김수민이 의아함을 느낄 때, 신체 내부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신체 내부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마력 통로 즉, 혈도를 뜻하였다.
혈도에 무언가가 들어와서는 내공 순환을 방해하였다.
지금 상태로 내공을 사용하려 든다면 내상을 입게 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김수민은 당황하지 않았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제자리에 선 채로 잠시 박한새가 알려준 호흡법을 하니, 이질적인 감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혹시 몰라 내공을 순환해보자, 그녀의 내공이 아무런 문제 없이 혈도를 순환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처럼 손쉽게 이변에 대응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경험한 이변은 이 던전 안에 있는 모든 헌터가 똑같이 경험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크게 당황하였다.
“젠장! 이게 뭔 일이야!”
마침 그녀의 근처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스킬은커녕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 오크를 만났으니 비명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김수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그녀는 다른 헌터들의 상황을 알지 못하였다.
이 던전에서 그녀만이 무공 덕에 쉽게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다른 헌터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구해줘야겠지?’
원래의 그녀였으면 남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
하지만 박한새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감이 생겼다.
조금이라도 힘에 부친다면 모를까, 전혀 힘이 들지 않는 도움이라면 더는 마다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한편, 연수원에서 사용하는 던전에서도 이변이 발생하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맨 선두에서 외뿔 늑대를 상대로 시범 사냥을 하던 교관이,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외뿔 늑대라면 원래의 그에게는 한주먹거리도 안 될 상대였다.
그런데 마력이 들끓으며,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자, 외뿔 늑대 한 마리도 상대하기 버거워졌다.
“마, 마력이 이상해!”
“움직일 수가 없어!”
교관은 애가 탔다.
연수생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만 이변을 경험한 것이 아닌 거 같았다.
‘저주라도 걸린 건가? 하지만 1성급 던전에 저주라니.’
그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이며 외뿔 늑대의 정면에 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외뿔 늑대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상태가 상태인지라, 외뿔 늑대의 돌격은 그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마력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무기력해질 줄이야!’
이래서야 힘이 좀 센 비각성자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기본적인 피지컬이야 그가 압도하겠지만, 마력 간섭 현상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니, 비각성자만도 못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이 디버프는 언제쯤 풀리는 거지?’
5분, 아니 3분만 더 이어져도 그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지켜야 할 다섯 명의 연수생들.
아직 꽃도 다 피지 못한 다섯 명의 연수생들도 외뿔 늑대 하나 때문에 죽게 되리라.
‘외뿔 늑대 하나 때문에 팀이 전멸이라니. 최악이군.’
패닉에 빠져있던 연수생 중, 홍준기라는 연수생이 갑자기 자신의 동기를 향해 외쳤다.
“모두 침착하게 호흡법을 해봐!”
“호, 호흡법이라고?”
“호흡법을 하면 이질감이 사라져. 나는 이미 혈도가 정상으로 돌아왔어!”
만약 다른 헌터들처럼 혈도에 내공이 묶여있었다면 호흡법만으로 정상화하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홍준기는 모든 내공이 단전에 집약된 상태.
참고로 그의 동기들 역시 그와 상황은 똑같았다.
“와! 진짜 괜찮아졌어.”
“방금 그건 뭐였던 거지?”
“뭐였든 간에, 일단 교관님부터 도와드리자!”
마력 간섭 현상을 해결한 그들은 땅을 박차고 뛰어가 외뿔 늑대를 공격하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단전을 만든 그들에게 외뿔 늑대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깨깽!
연수생들의 손에 의해 외뿔 늑대가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러자 교관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였다.
그는 여전히 마력 간섭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공의 힘이란 말인가?’
갑작스럽게 발생한 던전 이변.
이 던전 이변은 한국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는데, 갑작스러운 이변으로 무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전 세계 덮친 던전 이변. 헌터들, 공포에 휩싸여.>
<던전 전문가, “8성급이 열릴 조짐으로 보여.“>
마력 간섭 현상이라 명명된 던전 이변에 관한 소식은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졌다.
그리고 이 소식이 퍼지자 던전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던전 이변에 대한 공포로 헌터들이 던전 사냥을 중단하였기 때문이었다.
“마력 없이 어떻게 몬스터와 싸워?”
“하지만 오늘 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잖아. 던전에 들어갔는데 또 그 상황이 벌어지면 그냥 개죽음이라고!”
스킬도 사용할 수 없고 심지어 내상을 입은 듯,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아무리 이변이 이어지는 시간은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지만, 몬스터에게 죽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헌터들로선 공포에 휩싸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소문 들었어?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마력 간섭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던데?”
그러던 중 한 가지 소문이 헌터계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 소문이란 다름 아닌,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던전 이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