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화
이석우는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성연 길드 소속의 A랭크 헌터를 세 명이나 끼고서 등장한 것.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성연 길드의 부길드장인 이석우라고 합니다.”
알 없는 안경을 낀 그의 모습은 굉장히 이지적으로 보였다.
안경을 끼는 헌터가 거의 없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았다.
‘하지만 새벽 길드의 망나니 놈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놈이지.’
나는 그의 겉모습에 속지 않았다.
미래를 알기 때문이었다.
뭐, 그렇다고 멀리서 온 손님을 내쫓을 수도 없었기에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었다.
“성연 길드도 무공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레이븐 길드와 오성 길드, 그리고 화영 길드가 그랬듯, 저희 길드의 길드원들도 무공 수련생으로 받아주시죠.”
“보내주시면 재능을 보고 다음 기수의 교육생으로 뽑을지, 말지를 결정하겠습니다.”
“재능을 보고? 만약 재능이 없으면 아예 안 받아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내가 당연하다는 듯, 짧게 대답하자, 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그 재능이란 건 누가 판단하는데요?”
“제가 보고 직접 판단할 겁니다.”
“어떠한 기준도 없이, 교관님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뽑는다고요?”
“무공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오직 저만이 압니다.”
오만하다면 오만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무공의 창시자인 내가 그렇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이석우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더 따지지 못하였다.
“그럼 다음 기수는 몇 명을 뽑을 계획입니까?”
“최대 500명입니다.”
“500명? 겨우 그거로 되겠어요?”
거의 모든 헌터가 무공을 배우기를 희망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외국에서도 무공 아카데미 입학을 희망한다는 것은 이미 언론을 통하여 알려진 사실.
500명이라는 숫자는 확실히 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무공을 가르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연 길드에서 50명만 뽑아주시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기에,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오직 재능만 보고 뽑습니다. 그러니 청탁을 해봤자 의미 없습니다.”
“성연 길드의 부길드장인 제가 이렇게 찾아와 부탁하는데도 안 들어주겠다는 겁니까?”
“부길드장이 아니라, 길드장이 직접 온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당신! 성연 길드를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
이석우가 데려온 헌터 한 명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버럭 성을 냈다.
A랭크 헌터다 보니, 꽤 유명한 이였는데 성격이 다혈질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다면 이만 물러나주시길 바랍니다.”
쓸데없는 신경전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축객령을 내렸다.
“이봐!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조금 대우해줬더니, 아주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오만한 것은 너야. 박태휘.”
“이정!?”
갑자기 나타난 이정을 보고 성연 길드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부탁하러 온 처지이면서 언성을 높이다니. 제정신이야?”
“이정! 네놈이 낄 자리가 아니다.”
“그걸 왜 네가 정해? 난 무공 교관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건데?”
“이 자식이….”
이석우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이정을 노려봤다.
동생을 보는 눈이 아니라,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눈이었다.
그냥 단순히 노려보는 것이 아니었는지 집무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마력으로 이정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공의 재능을 타고난 이정이 A랭크 헌터의 압박에 위축될 리가 없었다.
그의 기세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커져 갔고, 반대로 이석우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싸우고 싶거든, 장소를 따로 마련해줄 테니, 다른 곳에서 싸워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같이 말하자, 이석우는 코웃음을 쳤다.
“그딴 배려는 필요 없습니다.”
“쫄았나 보군.”
이정이 도발하자, 이석우는 다시금 살벌한 눈으로 이정을 노려봤다.
하지만 성연 길드 후계자가 남들 앞에서 동생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는 내게 다음에 또 찾아오겠다고 한마디 하고는 그대로 물러났다.
“쯧. 너에게는 못 볼 꼴을 보여준 거 같군.”
“사이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더군요.”
“기회만 생기면 나는 놈을 죽일 거다. 아마 놈도 마찬가지일 테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족이 없는 것이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닌 거 같았다.
애초에 이정은 이석우를 가족이라 생각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새벽 길드의 후계자, 김석민을 보니, 이석우는 그래도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이란 게 요즘 그렇게 핫하다며? 한번 배워보고 싶으니까, 알려줘 봐.”
다짜고짜 쳐들어와서는 무공을 알려달라고 말하는 김석민의 모습에 교관들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나는 단호하게 거절을 표하였는데, 김석민은 망나니답게 바로 주먹을 들었다.
“비각성자 따위가!”
지겹도록 들었던 ‘비각성자’ 소리를 김석민에게도 듣고 말았다.
아마 많은 헌터들이 이와 같은 선민의식을 갖고 있을 거다.
물론 김석민처럼 대놓고 ‘비각성자 따위’라고 말하는 헌터는 드물었지만.
“10대 길드라고 이능관리부에서 행패를 부릴 권한은 없습니다.”
A랭크라고는 하나 초입에 불과하였다.
나는 김석민이 주먹을 휘두르자마자 반격을 시도하여 그를 바닥에 때려눕혔다.
김석민은 내 반격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였다.
아마 ‘비각성자 따위’가 반격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이, 이 새끼가!”
“부길드장님, 진정하십시오.”
“놔! 놓으라고!”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시금 달려들려던 김석민이지만, 새벽 길드의 간부가 막았다.
아마 김석민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면 새벽 길드의 간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김석민이 먼저 공격했고 호되게 당한 이상, 그도 나설 명분이 없었다.
결국, 김석민은 새벽 길드의 간부가 막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후회하게 해주마!’라고 외치고는 물러났다.
“뭔가 데자뷔를 본 기분입니다.”
주현근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는 왜 아직도 10대 길드들이 무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비각성자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자존심 상하기 때문이겠지.”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나도 헌터가 아니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시간문제였다.
이변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도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길드들이야 그렇다 치고 협회는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나는 민건우를 불러서 협회 분위기를 물었다.
“요즘 헌터 협회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민건우는 본래 협회와 계약을 맺고 일종의 스파이로서 무공 아카데미에 잠입한 헌터였다.
하지만 나에게 발각된 이후로 이중첩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무공 재능도 꽤 뛰어나서 차기 교관 후보로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여전히 저희에게 적대적입니다. 한때는 무공을 익힌 헌터들의 라이선스를 박탈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했었습니다.”
“이변이 생긴 이후로 여론이 바뀌었나 봅니다.”
“예. 협회 내부에서도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협회장은 어떻습니까?”
“당연히 협회장은 반대파입니다.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을 망언이라 치부하고 있습니다.”
김범수, 그 양반도 어지간히 고집스러운 양반이었다.
하긴, 그의 권력욕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협회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들 역시도 두 번째 이변이 발생하면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협회의 동향을 살피는 와중에 고정희가 나를 따로 찾아와서는 마력 흡수에 적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제 몸에다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사, 사부님 몸에다가요?”
고정희도 나에게 사부라고 불렀는데, 어색한 것인지 사부라고 부를 때마다 말을 더듬거렸다.
“예. 제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등에다 손을 올렸다.
그러자 고정희의 따스한 내공이 등을 타고 전해졌다.
나는 그녀의 내공이 내 혈도를 타고 움직이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연습을 많이 했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는지, 그녀의 내공은 막힘없이 내 혈도를 따라 움직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조금 미숙하게 느껴져도 이 정도 실력이면, 단전까지 잘 이끌어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여기서 실력이 조금 더 상승한다면 단전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맡겨도 될 것이고 말이다.
“이 더러운 악신의 추종자들! 대협께서 너희를 반드시 응징해줄 것이다!”
사지가 결박된 중국 헌터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그를 결박한 의문의 사내들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그들은 헌터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주사기를 꺼내 헌터에게 주입하였다.
그 주사기는 한눈에 봐도 수상하게 느껴졌는데, 헌터도 그 주사기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나에게 뭘 집어넣은 거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주사기 속 용액을 접종하는 순간, 접종 부위의 근육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이 같은 반응만 봐도 헌터에게 주입한 용액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때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백발의 사내가 나타났다.
혼자만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유독 눈에 띄었다.
“사도님.”
흰색 가운을 입은 자들은 백발의 사내를 보고 허리를 숙였다.
헌터를 대할 때는 지독하리만치 무표정하였던 그들은, 어째서인지 백발의 사내를 대할 때는 두려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과는?”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접종 부위의 근육이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역시 C랭크 이상부터는 아예 안 통하는구나.”
백발의 사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실험체에겐 펜테리움을 투약하도록.”
“존명!”
헌터 각성제로 불리는 이 약은 여명회에서 제조한 마약이었다.
시중에선 극도로 희석한 제품만 유통하고 있었기에 아직은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 헌터 각성제를 주기적으로 투약할 시, 이지를 상실하게 된다.
“새로운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에, C랭크 이상에게도 통하게끔 만들어야 하느니라.”
백발의 사내, 여명회에서 사도란 신분을 가진 그는 알았다.
세간에서 흔히 마력 간섭 현상이라 부르는 던전 이변이 8성급 던전 출몰의 징조라는 사실을.
그리고 8성급 던전이 열리는 순간을 세계는 2차 대격변이라 기록할 것이다.
대격변이 벌어지면 많은 것이 바뀌게 될 터.
백발의 사내는 바로 그 2차 대격변 때, 아시아의 주인이 될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사도시여.”
“말하라.”
“혹시 한국의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한국의 소식? 어떤 걸 말하는 것인가.”
“무공이란 것을 익힌 자들은 마력 간섭에 저항한다고 합니다.”
시종일관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백발의 사내는 처음으로 흥미를 보였다.
여명회에게 있어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들은 던전 이변을 이용하여 펜테리움이란 헌터 각성제를 대량 유통할 계획이었다.
펜테리움은 마력 간섭 현상에 저항력을 가진 각성제이기에, 미심쩍은 눈으로 펜테리움을 바라보던 헌터들도 마력 간섭 현상이 주는 공포 때문에 펜테리움을 살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무공이란 것의 등장으로 헌터들에게 선택지가 생기게 되었다.
여명회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변수라고 볼 수 있으리라.
‘신궁이라 불리는 루드밀라가 암살에 실패했다고 했었지?’
여명회 전체에게는 변수였으나, 백발의 사내에겐 그저 흥미로운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박한새란 자를 잡아 온갖 실험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