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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83화 (83/275)

#083화

“상황이 나쁘지 않아.”

안지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던전 이변이 발생하고 무공의 가치가 재조명되었을 때, 그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었다.

화룡파 때문에 그는 현재 박한새와 악연이 된 상태였다.

박한새의 입지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그와 악연이 된 안지호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공을 창시했다는 자부심 때문일까?

박한새는 대단히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0대 길드의 요구에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카데미 교육생을 자신의 주관대로 뽑겠다니. 10대 길드를 아주 우습게 보고 있는 모양이야.’

따지고 보면 자신의 제자를 자기 기준대로 뽑겠다는데 뭐라 할 권리가 없기는 했다.

하지만 10대 길드가 괜히 10대 길드겠는가.

그들은 헌터 업계의 기득권 그 자체였다.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받는 상황을 너그럽게 바라볼 리가 없었다.

“볼케이노 길드장님이 로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낙원 길드장님도 10분 내에 도착할 거 같다고 연락 주셨습니다.”

박한새 때문에 최근 들어 10대 길드가 모이는 일이 많았다.

오늘 역시도 박한새 때문에 10대 길드가 한자리에 모일 예정이었다.

‘세이서 길드도 거의 넘어왔으니, 오늘 회의에서 확실하게 결론을 내야겠어.’

안지호의 목표는 무공 아카데미를 10대 길드 전용으로 만드는 것.

무공 아카데미를 10대 길드의 전용으로 만듦으로써, 무공이란 기술을 독점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목표에 이미 5개의 길드가 동참한 상황.

나머지 절반만 설득한다면 박한새가 만든 무공은 10대 길드의 것이 될 것이다.

‘설령 반발해도 의미 없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와 대적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만약 그가 박한새의 힘을 알지 못한 상태였다면 10대 길드 전체와 연합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다.

무공이란 기술을 멸절 길드가 오롯이 독점한다면, 10대 길드는 1강 9약으로 재편될 테니까.

하지만 안지호는 박한새의 힘을 알고 있었다.

박한새의 휘하에만 C랭크 헌터 이상의 무력을 가진 제자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 10대 길드 전체와 연합할 계획을 세웠다.

10대 길드 전체의 힘을 빌린다면 제아무리 박한새라도 저항할 수 없으리라.

“길드장님.”

“무슨 일이야?”

“세이서 길드에서 불참하겠다고 합니다.”

안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세이서 길드장인 유지은은 박한새가 자신의 중재를 단호하게 거절한 일을 두고 앙심을 품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의에 불참한다니?

“오성 길드에서도 지금 막 연락이 왔는데, 불참하겠답니다.”

“레이븐에서도 불참하겠다고 합니다.”

연이은 불참 소식.

안지호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의리 같은 건 아닐 테고.’

오성이든, 레이븐이든 박한새와 인연이 있다지만, 헌터로서의 자존심을 굽힐 정도는 아닐 터.

그렇기에 안지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연 길드로부터 불참 소식을 듣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는 10대 길드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게 되었다.

“이변이 또 발생했다고?”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던전 이변.

그저 자연재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건만, 다시금 던전 이변이 발생하였다.

한 번이면 우연일 수 있으나, 두 번이면 필연인 법이었다.

마력 간섭 현상이라 명명된 던전 이변이 일주일 사이 두 번이나 벌어졌으니 헌터들은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제길, 박한새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겠군.’

10대 길드 회의가 파투 난 것만 봐도 이미 그 사실은 증명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던전 이변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공이 유일하니, 박한새의 위세가 상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던전 이변이 재발한 바로 다음 날.

화영 길드의 길드장, 정승호가 이른 아침부터 나를 찾아왔다.

“7성급 레이드에 성공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는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7성급 던전을 클리어한 것.

이는 실로 엄청난 업적이었다.

그러니 축하해주는 게 마땅한 일이었다.

“자네 덕이야.”

“제가 뭘 했다고 그러십니까.”

“자네에게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면 호연이가 7성급 보스를 잡을 수 있었겠어?”

정호연이라면 언젠가 7성급 보스를 잡을 만큼 성장했을 거다.

다만 무공이 그 성장을 앞당겨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정호연 헌터는 곧 S랭크 헌터가 되겠군요.”

“돼야겠지. 7성급 보스를 잡았는데.”

“화영 길드도 다시 10대 길드로 불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영 길드가 단독으로 인도네시아의 7성급 던전 보스 레이드에 성공한 일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S랭크 헌터의 도움 없이 7성급 던전 보스를 잡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우리가 10대 길드로 돌아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럼 어떤 게 중요합니까?”

“무공을 배운 길드원이 몇 명이냐. 앞으로 이게 중요한 시대가 오겠지. 10대 길드 같은 건 전혀 중요치 않아질 것이고 말이야.”

정승호는 시대를 보는 눈이 있는 거 같았다.

아마 무공을 배웠기에 더 열린 시각을 가진 거겠지.

“그런데 다음 기수는 언제쯤 뽑을 생각이지?”

“이번 달 안에 뽑을 생각입니다.”

“이번 달이라. 엄청난 화제가 되겠군. 외국에서도 많이들 찾아오겠어.”

“봐야 알 거 같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 우리 길드에 가입을 문의한 외국인들이 몇 명인지 알아? 다음 기수 모집은 자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관심이 모일 거야.”

확실히 정승호의 말대로였다.

안 그래도 가입 문의가 폭주하던 이능관리부는 내가 새로운 아카데미 교육생을 뽑을 거라는 소문이 나돌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전화 연결이 아예 안 되니, 이능관리부로 직접 찾아오는 헌터만 수백 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중엔 심지어 외국 헌터들도 있었다.

“하지메마시떼~.”

귀여운 아이돌 상의 이시하라라는 일본 헌터가 나를 찾아와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떼썼다.

이시하라는 일본에서 상당히 유명한 헌터였다.

랭크도 무려 A.

남성 교관들은 일본에서 연예인이나 다를 게 없는 그녀가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떼쓰는 모습을 보고 헤벌쭉하였다.

“한국어를 하실 줄 아십니까?”

“와 데키마셍.”

“영어는요?”

“그럼 가르쳐줄 수 없습니다.”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니,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손나!’ 하고 외쳤다.

자신이 부탁하면 무조건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한국어나 영어를 배우고 오십시오.”

내 명성이 확실히 국내를 넘어 세계로 퍼진 게 맞는 것인지,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몇몇 헌터들이 찾아왔다.

당연히 그들이 요구하는 바도 이시하라와 똑같았다.

스승으로 모실 테니, 무공을 가르쳐달라는 것.

하지만 내 대답은 똑같았다.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일단 한국어나 영어를 배워라.

“한국어는 그렇다 치고 영어는 왜 배우라는 겁니까?”

“제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라서 그렇습니다.”

원래 무공을 가르치려면 의사소통이 되어야만 했다.

통역사를 끼고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무공이란 배움이 얕지는 않았으니.

기초반을 담당할 고정희나 주현근 역시도 외국어에는 소질이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한국어와 영어 가능자만 선호한다고 하니,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친미주의자라느니, 반일이나 반중, 반러주의자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나로선 황당하게만 느껴지는 소문이었다.

나는 딱히 국적을 가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꼭 언어가 전부는 아니지만, 당장은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무공 사용자를 양성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언어가 안 통한다면?

괜히 쓸데없는 곳에 시간이 잡아먹히게 된다.

그러니 나로선 구태여 언어가 안 통하는 헌터에게 무공을 가르칠 이유가 없었다.

한국에서만 뽑아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인재는 많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생각한 이유야 뭐가 됐건, 각 국가에서 나를 보는 눈이 고울 수는 없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벌써 나를 반일주의자로 몰아가고 있을 정도였다.

‘일본은 회귀 전이랑 똑같군.’

회귀 전에도 일본은 나와 이성은에게 적대적인 행보를 보였었다.

외국에 나가기만 하면 일본 헌터들과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여야 했었다.

그러다 이성은이 8성급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하는 무용을 선보이자, 뒤늦게 무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를 인류의 구원자라느니, 무공의 창시자라느니 떠받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사부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디에서 오신 손님이지?”

“미국의 스타크 길드에서 아론 길드 마스터가 직접 왔습니다.”

이변의 영향이 크긴 컸는지, 미국의 헌터까지 나를 찾아왔다.

놀랍게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길드 마스터, 그것도 헌터 최강국인 미국에서 30위권 안에 드는 스타크 길드의 아론 길드 마스터가 직접 찾아왔다.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해줄 무공의 창시자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성연 길드나, 새벽 길드에서는 A랭크 헌터를 여럿 데려와서 나를 은근하게 압박하였었다.

하지만 스타크 길드는 이들보다 훨씬 예의를 아는 길드인지, 길드 마스터 혼자서 찾아왔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지극히 공손하기 그지없었고 말이다.

“선물입니다.”

심지어 그는 선물이라면서 값비싼 아이템 하나를 주었다.

작열검이라는, 아무리 못해도 10억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무기 아이템이었다.

“이렇게 비싼 선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거절했으나, 그는 이 정도 선물은 그냥 예의상 챙긴 거뿐이라면서 거절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말하였다.

어쩔 수 없이 선물을 받으니, 그가 진짜 원하던 것을 말했다.

“미국으로 와달라는 겁니까?”

“예, 부디 미국에서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미국 헌터들에게 무공을 배울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말했다.

아카데미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자신이 대겠다고.

대신 몸만 미국으로 와달라고 말이다.

“무공을 익힌 헌터들의 실습 용도로 던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물론 있으면 좋습니다.”

“미국으로 오시면 던전도 드리겠습니다.”

“단순히 사용권만 드리는 게 아닙니다. 던전에 대한 모든 권리를 다 드리겠습니다.”

던전을 주겠다니.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그가 이야기한 던전은 보통 던전이 아니었다.

던전도 광산처럼 채산성이란 걸 따지는데, 이 채산성은 던전 레벨과 크게 관련이 없었다.

레벨이 낮은 던전도 사업성은 좋을 수 있고, 반대로 레벨이 높은 던전이 사업성은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론 길드장이 내게 줄 수 있다고 약속한 던전은 5성급 던전에 채산성도 높아 수익만 연 수천억 규모였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따져도 상위권에 속할 게 분명한 던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더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던전을 지배하십시오. 카르마 +30,000, 던전 상점 개방.]

갑자기 퀘스트가 하나 생겼다.

근데 보상이 심상치 않았다.

30,000의 카르마 보상이야 그렇다 쳐도 던전 상점을 개방해준다니?

던전 상점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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