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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84화 (84/275)

#084화

“죄송합니다. 미국에 가고 싶지는 않군요.”

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던전 소유권을 얻는 거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아론 길드장의 말처럼 무공 교육생들 실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던전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미국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저항을 받는데, 초강대국인 미국에선 얼마나 저항을 심하게 받겠어?’

미국이라고 무조건 개방적이란 법은 없었다.

어느 나라든 기득권은 보수적이었고, 실제로 회귀 전의 사례를 생각하면 미국 진출은 시기상조였다.

10대 길드의 반발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미국 기득권의 무공에 대한 저항감은 상당했으니까.

암살과 테러가 예사일 정도로 말이다.

“역시 군 출신이라 그런지, 애국심이 상당한 모양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면, 다시 한번 고민해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저희가 제시한 조건으로 부족하다면 미국 정부를 설득해서라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겠습니다.”

여기서 더 좋은 조건이라.

돈은 그냥 우습게 벌 거 같았다.

걸어 다니는 대기업이 되겠지.

하지만 돈이야 지금도 벌고 싶으면 언제든 벌 수 있었으니,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허어, 스타크 길드에서 그런 제안을 했단 말씀입니까?”

“포트 스콧 던전이라니! 제가 알 정도면 엄청 유명한 던전이라는 건데, 그런 던전을 준다고요?”

교관들에게 아론이 제안한 내용을 설명하자 하나같이 경악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내가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설마 던전까지 받을 줄은 생각 못 했을 것이기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타크 길드의 제안은 거절하기로 했습니다.”

“헉, 거절하셨습니까?”

“미국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스타크 길드가 제안한 조건들이 워낙 파격적이기 때문일까?

교관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미국에 가고 싶어 하였다.

“저는 무공이란 지식을 어느 한 나라가 독점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역시 사부님, 멋진 신념이십니다!”

“확실히, 인류를 위해서라도 무공은 한 나라가 독점해선 안 될 지식입니다.”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던 교관들은 한 나라가 무공을 독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나의 말에 크게 감복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퀘스트를 깨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긴 하네.’

사실 나라고 아쉬움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다른 제안이야 크게 끌리는 것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던전 소유권을 주겠다는 제안 하나는 무척이나 끌렸다.

퀘스트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기회는 언제든 생길 테니까.’

내가 그냥 평범한 비각성자라면 던전 소유권을 가지게 될 기회는 생길 턱이 없을 거다.

그러나 나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무공 아카데미의 수장이었다.

한국 정부도 내가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을 터.

스타크 길드가 제시한 조건을 알게 된다면 정부에서 직접 던전을 챙겨줄지도 몰랐다.

꼭 정부가 아니어도 던전을 얻을 방법은 많았고 말이다.

실제로 아론 길드장에게 제안을 받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던전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

“제가 한새 씨를 너무 낮게 평가했던 거 같아요.”

세이서 길드의 길드장인 유지은이 불쑥 나를 찾아와서는 그같이 말하였다.

“요즘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미국의 스타크 길드에서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면서요? 제가 듣기로 던전을 주기로 했다던데.”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아는 방법이 있답니다.”

유지은이 눈웃음을 지으며 의뭉스럽게 말했지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세이서 길드는 10대 길드에서 가장 정보력이 좋았다.

헌터 전력이 비교적 약한데도 10대 길드에서 중위권에 있는 것도 바로 그 정보력 덕분이었다.

‘아카데미 내부에도 유지은이 심어둔 첩자가 꽤 있었지.’

헌터 협회만 무공 아카데미에 사람을 심어둔 것이 아니었다.

세이서 길드도 무공 아카데미에 사람을 심어놓은 상태였다.

‘근데 조금 황당했을 거 같군. 자신이 심어둔 첩자가 바로 내 사람으로 바뀌는 모습을 쭉 지켜봤을 테니 말이야.’

10대 길드와 헌터 협회가 심어둔 헌터들은 무공을 배우기 무섭게 내 사람이 되었다.

무공을 배우면서 무공의 위력을 오롯하게 깨닫게 되었으니, 나에게 충성심을 갖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스타크 길드의 제안을 거절하신 것은 현명하신 선택이었어요.”

“포트 스콧 던전은 스타크 길드의 입장에서도 계륵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채산성이 그리도 좋은 던전이 계륵이었다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세한 정보는 말해줄 수 없지만, 포트 스콧 던전을 노리는 미국 길드가 한두 곳이 아니었어요.”

유지은이 괜히 없는 말을 지어내지는 않았을 거다.

그리고 사실 스타크 길드가 갑자기 보내는 호의를 그대로 믿는 것보다 유지은의 추측이 훨씬 더 신빙성 있기도 했다.

“애초에 미국의 던전보다는 한국의 던전이 더 낫지 않겠어요?”

“마치 던전을 줄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줄 수 있어요. 한새 씨를 설득하려면 던전 정도는 당연히 가져와야죠.”

“던전이라면 어떤 던전을 말하는 겁니까?”

“산본동에 있는 수리산 던전을 생각하고 있어요.”

수리산 던전이라면 꽤 가치가 있는 던전이었다.

위치 자체가 비교적 서울과 가까웠고 채산성도 나쁘지 않았다.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도 제법 다양하여 교육생들이 경험을 쌓기에 최적의 던전이었다.

“포트 스콧보다는 채산성이 낮을 수는 있겠지만, 4성급 던전이니 훈련 용도로 활용하기 좋을 거예요.”

4성급 던전이라면 기초반과 초급반을 데리고 실전 교육을 시키기에 딱이었다.

“일단 어떤 제안을 하실지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이전에 했던 제안은 완전히 잊어주세요. 저는 그때의 제안을 고집할 생각이 없어요.”

“그렇다면 어떤 조건을 원하십니까?”

“다른 10대 길드는 알 바 아니에요. 그저, 저희 길드원들만 무공 아카데미에 받아주셨으면 해요.”

그녀의 제안은 간단하였다.

다음 기수 교육생을 뽑을 때, 세이서 길드의 헌터들을 최대한 많이 뽑아달라는 게 그녀의 제안이었다.

“전 재능만 보고 제자를 뽑을 생각입니다.”

“재능 수준이 같을 경우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럴 때는, 저를 생각해서 세이서 길드원을 뽑아달라는 거예요.”

그 정도 조건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세이서 길드에도 인재라 부를 만한 헌터들이 적지 않기도 했으니까.

“30명. 세이서 길드에서 최소 30명은 뽑아드리겠습니다.”

500명을 뽑는데, 세이서 길드에서 30명이면 부담 없었다.

물론 유지은의 입장에서는 적게 느껴졌는지, 아쉬움을 드러냈다.

“겨우 30명이요? 조금 더 뽑아주면 안 될까요.”

“어디까지나 최소 인원을 이야기한 겁니다. 그리고 10대 길드만 경쟁 상대로 생각하시는가 본데, 전 세계의 명성 있는 길드들을 경쟁 상대로 본다면 30명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녀가 직접 그녀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스타크 길드가 파격적인 제안을 하면서까지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다고.

그렇기에 그녀는 내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좋아요. 30명의 헌터가 최소 하나의 랭크를 올릴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나쁘지 않네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간부들의 반발도 무릅쓰고 진행하는 협상이라서요.”

수리산 던전의 소유권을 내게 넘기는 것에 내부적으로 반발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제아무리 길드장이라고 해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수리산 던전을 타인에게 넘기는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심지어 던전 소유권이란 것은 돈이 있다고 무조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모든 길드가 부러워할 만한 최고의 선택이 될 거야.’

지금 그녀에게 반발한다는 간부들도 몇 달만 지나면 그녀를 높게 떠받들지 않을까 싶다.

유지은이 나와 무공 아카데미와 관련하여 협상한 일은 업계의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의 진원지는 세이서 길드였는데, 유지은이 내게 수리산 던전을 준다는 내용까지 알려졌다.

‘일부러 소문을 퍼뜨린 거 같군.’

세이서 길드의 의도가 눈에 뻔히 들어왔다.

나를 세이서 길드와 돈독한 관계인 사람처럼 만들려는 것이리라.

“사부님, 그 여자랑 무슨 관계예요?”

“그 여자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유지은 길드장이요. 소문을 들어보니, 사부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데, 사실이에요?”

김민경이 대뜸 그런 질문을 던지자 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유지은은 영악한 여자였다.

자신의 성별까지 이용하여 나와의 친분을 과시하다니.

“그런 관계 아닙니다.”

“역시 그렇죠? 믿고 있었어요. 사부님.”

믿고 있었다면서 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유지은이 내게 수리산 던전을 넘긴 일은 10대 길드 사이에서 엄청난 논란이 되고 있었다.

“안지호 길드장이, 세이서 길드가 손해 볼 것이 분명한 도박을 했다고 발언했습니다.”

“낙원, 볼케이노 길드에서도 유지은 길드장의 선택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겨우 몇 명 더 뽑아달라는 것에 던전까지 줄 필요가 있냐면서 말입니다.”

“대체로 유지은 길드장의 선택을 바보 같다고 보고 있는 거 같군요.”

500명 중에 겨우 30명.

적어도 너무 적은 것은 사실이었다.

겨우 30명이 무공을 배우게 만들려고 길드의 가장 큰 자산인 던전을 팔아넘기는 게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었다.

‘레이븐 길드나 오성에서도 지금쯤 고민을 하고 있겠군.’

원래도 무공을 높게 평가하는 레이븐 길드나 오성 길드도 유지은 길드장의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마 그들은 나와 거래하려면 무조건 던전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굳이 내가 그들의 선택을 기다려줄 필요는 없지.’

나는 교관들을 불러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오늘부터 무공 아카데미 4기 신청자 모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기는 오직 공무원 헌터만.

2기는 절반이 공무원 헌터고 절반이 신입 헌터.

3기는 200명은 신입, 100명은 민간 길드에서 받는 식으로 하였다.

그리고 이번 4기부터는 무려 ‘외국’으로 모집 범위를 넓힐 예정이었다.

“모집하는 인원은 총 몇 명입니까?”

“대략 500명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500명.

인원수도 역대급이었다.

3기까지 모집한 인원이 800명을 조금 넘는 숫자였으니까.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숫자였다.

내 무공 실력도 많이 복구되었고 무엇보다 든든하기 그지없는 교관들이 있었다.

특히 주현근과 고정희의 경우 나의 권속으로서 ‘마력 흡수’라는 스킬도 사용할 수 있었다.

마력 흡수는 격체전력의 훌륭한 대용 스킬이었다.

두 사람만으로 500명을 무공에 입문시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그런데 사부님, 혹시 비각성자도 모집 인원에 포함됩니까?”

주현근이 살짝 우려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다른 교관들도 한마디씩 했다.

“와, 비각성자까지 받으면 장난 아니겠는데?”

“지원자가 거의 10만 넘어가는 거 아니야?”

“10만이 뭐야. 우리나라에서만 100만 명 넘게 지원할걸?”

당연한 일이다.

비각성자가 헌터급의 무력을 가질 기회를 포기할 리가 없었다.

무슨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비각성자는 신청을 받지 않겠습니다.”

교관들의 우려에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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