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화
강충구는 모든 아이가 그랬듯, 헌터를 꿈꿨었다.
분명 위험한 직종이긴 했다.
던전이란 미지의 공간에서 괴물들과 혈투를 벌여야 했으니.
하지만 그만큼 헌터는 얻을 수 있는 게 많았다.
일단 남들보다 강해지는 것.
F랭크조차 평범한 일반인보다는 육체적으로 훨씬 강하였다.
초능력이라 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리고 헌터가 되면 명성도 얻을 수 있었다.
연예계에서 특A급, A급 소리를 듣는 연예인들도 거의 다 헌터일 정도였다.
헌터 하면 돈도 빠질 수 없었다.
던전에서 벌어들이는 수입만 봐도 직장인들의 월급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돈, 명성, 실질적인 무력까지.
모두가 헌터를 꿈꾸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였다.
헌터로 각성할 확률은 희박하기 그지없었다.
성인이라면 거의 제로에 근접하였다.
강충구도 23살까지 헌터에 대한 미련을 가졌었지만,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던전 브레이크 때,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던 어릴 적의 기억 때문에 누구보다 헌터가 되고 싶었으나, 신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구경꾼으로서 헌터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다.
박한새라는 비각성자가 연수원에서 랭킹 1위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그가 자주 가던 커뮤니티는 박한새와 관련된 소식으로 도배되었었다.
그리고 이날부터 강충구는 새로운 꿈을 품게 되었다.
헌터가 아닌, 무림인이 되겠다는 꿈을 말이다.
<무공 아카데미, 4기 신청자 모집!>
<신청자 폭주! 경쟁률 최소 10:1을 넘을 것으로 보여.>
무림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으며 살아가던 강충구에게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그토록 고대하던 소식이었다.
그 소식이란 다름 아닌, 무공 아카데미에서 4기 교육생을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왜 나는 신청도 못 하는 거야.’
희소식이었지만, 강충구는 기사를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경쟁률이 10:1이라느니, 20:1이라느니.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차피 경쟁률이 빡셀 거라는 사실은 진즉부터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직 하나.
비각성자는 신청을 받지 않을 거라는 문구였다.
“아니, 왜 우리는 안 된다는 거야!”
“빌어먹을! 박한새, 그놈도 비각성자면서!”
“저놈, 비각성자라는 거 다 구라 아니야? 그게 아니면 왜 헌터만 뽑아!”
무공 아카데미를 노리고 있던 것은 강충구뿐만이 아니었다.
헌터를 꿈꿨던 모든 이들이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이 되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그 숫자는 10만 단위를 넘어 100만 단위에 이를 정도.
당연히 이들은 강충구가 그랬듯, 엄청난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박한새가 비각성자였기에, 언젠가 비각성자들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실망과 배신감을 느낀 그들은 인터넷에 박한새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는 하였다.
심지어 그것만으로 불만이 안 풀렸는지 ‘비각성자에게 무공을 배울 권리를 줘라.’라는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순식간에 50만을 넘었다.
‘쓸데없는 짓이야.’
강충구는 냉소적인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박한새가 헌터 협회와 알력 다툼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박한새는 헌터 협회의 요구에 단 한 번도 굴복한 적이 없었다.
기득권 중의 기득권인 헌터 협회조차 박한새를 어쩌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과연 일반인들이 국민청원을 올려서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떼쓴다 해서 결과가 달라질까?
‘차라리 헌터를 사칭해서라도 일단 신청하고 보는 게 나아!’
헌터 사칭죄는 실로 무서웠다.
하지만 강충구는 법을 위반해서라도 무공 아카데미 4기에 신청하기로 하였다.
무공을 배울 수만 있다면 헌터 사칭죄로 인한 처벌은 두렵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4기 교육생을 뽑을지 관심이 많았다.
헌터 랭크냐.
아니면 10대 길드 소속이냐.
그도 아니면 3기 교육생을 뽑을 때처럼 점혈법 대응 속도를 보고 뽑을 것이냐.
아마 대부분은 이 셋 중 하나에서 결정된다고 봤다.
하지만 내가 뽑는 기준은 지극히 간단하였다.
‘황병준, 이 사람도 신청했군. 재능이 있는 사람이니 꼭 뽑아야겠어. 갈원준? 익숙한 이름인데 누구였더라? 아, 다짜고짜 나에게 대결을 신청했던 그놈이군.’
회귀 전, 내 손을 거쳐간 헌터는 거의 만 단위였다.
S랭크에서도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이성은이 사부로 추앙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대사부 소리까지 들으며 무수히 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그리고 이때 내가 키워냈던 제자들이 무공에 입문하기 위해 이능관리부로 신청서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이름만 보고 가려서 뽑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이들의 인성이나 재능에 관한 정보는 내 머릿속에 다 있었으니까.
‘강충구? 얘는 분명 비각성자일 텐데 왜 신청한 거지?’
이름만 보고 적합한 자를 찾아내고 있는데, 또 하나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였다.
근데 이 이름은 보여선 안 될 이름이었다.
헌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D랭크라고? 설마 내가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애먼 사람이 각성을 한 것은 아닐 테고, 헌터로 사칭한 건가?’
나이까지 같은 걸 보면 동명이인은 아닐 터.
그러면 내 추측대로 헌터를 사칭한 게 맞을 거다.
‘온갖 진법을 창시할 정도로 머리도 좋은 놈이 이런 대책 없는 짓을 저지르다니.’
어지간히 무공을 배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뭐, 어쨌든 그의 재능을 생각하면 한 번쯤 속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정식으로 무공 아카데미의 교육생으로 받아줄 순 없겠지만, 내가 사적으로 가르친다면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 이윤세 대선 후보가 찾아왔습니다.”
“이윤세 후보 말입니까?”
대선 후보가 참 할 일도 없는 거 같았다.
정치와는 거리가 먼 나를 계속 찾아오는 걸 보면.
하지만 ‘비각성자에게 무공을 배울 권리를 줘라.’라는 국민청원의 동의 수가 벌써 80만을 넘어간 상황이니, 내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박한새 교관님. 제게 분명 비각성자에게도 무공을 배울 기회를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상대로 이윤세 후보는 비각성자의 신청을 받지 않는 일을 거론하였다.
아무리 못해도 80만이 넘는 유권자를 얻을 기회니 대선 후보로서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겠지.
“언젠가 기회를 주기는 할 겁니다.”
“500명을 뽑는데 그중 일부라도 기회를 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 일부를 가르치는 노력으로 헌터를 가르친다면 더 많은 무공 사용자를 양성할 수 있을 겁니다.”
나라고 비각성자를 싫어서 안 뽑겠는가.
어디까지나 효율성의 문제였다.
마력도 없는 비각성자에게 무공을 가르치려면 단전을 만드는 것도 한 세월이었으니 말이다.
“100명 정도는 뽑으세요.”
“그건 안 될 거 같습니다.”
“허,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렵지는 않아도 불필요한 일입니다.”
내 단호한 답변에, 이윤세 후보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억지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비각성자시니, 헌터들과 다르게 오만함이 없을 줄 알았건만, 제 착각이었나 보군요.”
이윤세 후보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년에 이능관리부에서 독립하여 무공 아카데미를 설립하신다던데, 독립하시기 전에 정치부터 배우셔야 할 거 같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내가 태연하게 대꾸하니 그가 더욱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제 딴에는 살벌한 협박을 한 것일 텐데, 내가 들은 척도 하지 않자 분노한 것으로 보였다.
이윤세 후보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는 그대로 물러났다.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사람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소식을 들었는지 이재현 차관이 달려와서 그같이 물었다.
“10대 길드나 헌터 협회는 대통령과 척지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그렇군요.”
“대통령은 대통령일 뿐입니다. 그것도 이윤세 후보는 대통령도 아닌, 일개 후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윤세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다지만, 나는 알았다.
그가 곧 스캔들에 휘말려, 대선에서 패배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뭐 나비효과가 발생하여 스캔들도 없어질 수도 있을 테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이재현 차관에게 말했듯, 대통령이 나를 싫어하건 말건 대세에 영향을 주기는 힘들었으니까.
지금보다 훨씬 영향력이 세질 미래의 나라면 더더욱 그러했고 말이다.
‘그나저나 퀘스트 완료가 왜 안 뜨는 거지?’
유지은에게 던전 소유권을 받고 나서 나는 바로 ‘던전 상점’이란 것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조건이 더 있는 것인지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알람은 한참이 지나도 뜨지 않았다.
‘던전에 직접 들어가 봐야 하나?’
의아해서 수리산 던전에 직접 가 확인하니 이런 문구가 떴다.
[‘던전 정보’를 외치시면 던전 점유율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권속 후보에게 지분율이란 것이 있듯, 던전에는 점유율이란 것이 있었다.
그리고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점유율을 100%로 만들어야만 했다.
‘점유율을 올리는 방법은 뭐지?’
이미 광기의 가면으로 얼굴을 숨긴 채 던전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나는 점유율을 올릴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던전 속 몬스터들을 잡아보았다.
바로 근처에 오크 무리가 있었다.
던전의 지형은 평지였기에 오크 무리도 나를 쉽게 발견하였다.
오크 무리는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고 나 역시 마주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610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650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630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직접 사냥하니 카르마 보상이 짭짤하게 느껴졌다.
겨우 몇 마리 잡았다고 수천 카르마가 올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헌터가 아니기 때문인지, 던전에 들어올 때마다 카르마를 입장료처럼 내야 했다.
실시간으로 소모되는 카르마를 생각하면 내가 직접 사냥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효율이 좋지 않았다.
지금처럼 권속을 늘려서 카르마 수급량을 높이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역시 몬스터를 잡아야 이 점유율이라는 게 오르는 구조인가 보군.’
예상이 맞았는지, 오크 몇 마리를 잡으니 점유율이 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던전 정보>
위치 : 경기 군포시 산본동 수리산.
지형 : 저위 평지(48.5%), 저위 산지(24.5%), 중위 산지(16.2%), 고위 미경사지(10.8%)
몬스터 도감 : 오크, 샤먼 오크, 고크, 모크, 자이언트 랫, 트롤.
던전 점유율 : 녹색 예언자(7.1%), 스드라의 저격수(5.5%), 황금 사과의 주인(1.9%), 무에서 무를 이룬 자(0.1%)
던전 정보를 외치면 그 던전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정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훑어보고 말았다.
내가 가장 눈여겨본 것은 가장 하단의 던전 점유율이라는 부분이었다.
‘예언자, 저격수, 황금 사과의 주인. 이들은 다 누구일까?’
정보는 따로 없었다.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큰 추측을 해보자면 ‘무에서 무를 이룬 자’가 나의 칭호이니, 녹색 예언자나 스드라의 저격수 같은 칭호들도 성좌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만약 내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 수리산 던전을 노리는 성좌는 나 하나뿐이 아니었다.
무려 셋.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성좌 세 명이 수리산 던전을 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