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화
“오늘 가면 몬스터 몇 마리 정도 잡을 거 같냐?”
“난 오크라면 백 마리도 가능할지도?”
“지랄, 허세는. 무슨 백 마리야. 예전에 오크 한 마리도 겨우 상대했으면서.”
“무공을 익히기 전의 나를 지금의 나와 비교하지 마라.”
“근데 그거 알아? 수리산 던전에 쥐 몬스터도 나온대.”
“아, 자이언트 랫?”
“꺅! 어떡해!”
“뭘 그렇게 놀라?”
“생긴 거 징그럽잖아! 내가 잡을 수 있을까?”
“오크는 몇 마리든 잡을 거라더니. 그깟 자이언트 랫이 무섭냐?”
버스에 탄 헌터들은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들떠 있었다.
사실 그들에게 있어 이번 던전행은 소풍이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집, 수련, 집, 수련을 반복하던 그들이었으니까.
“과연 던전에 들어가서도 저렇게 즐거워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교육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이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그런 이정에게 부탁하듯 말하였다.
“교육생들이 다치지 않게 잘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걱정 마라. 겨우 4성급 던전에서 사고 날 일은 없을 테니까.”
이정의 당당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나는 든든함을 느꼈다.
‘던전 경험은 별로 없지만, 이정 교관의 실력이라면 문제없겠지.’
A랭크, 아니 사실상 S랭크 초입에 해당하는 실력이었다.
무공 아카데미에서는 물론이고 이능관리부 전체를 통틀어도 실력 하나는 탑이었다.
김수민 정도만이 아마 박빙의 싸움을 펼치지 않을까 싶었다.
뭐, 앞으로 들어올 A랭크 헌터나 S랭크 헌터들이 무공을 배운다면 이정도 지금의 위치에서 조금 내려가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권속 후보들을 계속 사냥에 보낸다면 던전 점유율도 올라가겠지?’
녹색 예언자, 스드라의 저격수, 황금 사과의 주인.
이들은 던전 정보를 보고 알게 된 수리산 던전의 경쟁자들이었다.
나는 경쟁자가 존재할 줄 몰랐기에 이 정보를 알게 되고서 강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던전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몇몇 던전도 혹시 하는 생각에 조사해본 결과, 다른 성좌들이 50% 이상 점유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1, 2성급 던전은 이미 주인이 정해진 던전도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나로선 조급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직접 던전 사냥에 나설 수는 없는 일.
다행히 권속이나 권속 후보가 던전 사냥을 해도 점유율이 올랐다.
내가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들을 수리산 던전에 데려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검법은 언제쯤 배울 수 있지?”
“전에 말씀드렸듯, 무공이란 건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니까 내가 이러고 있는 거다.”
이정이 답답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에게 줄 검법이야 이미 내 머릿속에만 수십 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주기엔 이르지.’
지금 검법을 가르쳐줬다간 교육생들은 내팽개치고 검법 수련에만 열중할 것이다.
나로선 그걸 원치 않았으니, 검법을 가르치는 것은 최대한 나중으로 미룰 생각이었다.
“이정 교관께서 원하는 쾌검으로 검법을 만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
보챈다고 바로 될 일이 아닌 걸 아는데 보채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조급하신 겁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다.”
“혹시 성연 길드 때문이라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정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역시 가족 이야기 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듯하였다.
‘성연 길드라…. 괜히 문제 안 일으켰으면 좋겠군.’
[270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150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330 카르마를 얻었습니다.]
서울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 잠깐 사이에 던전으로 들어가서 사냥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하루에 1만씩은 모이겠는데?’
권속 후보가 많아지니 카르마가 모이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다.
이전에는 퀘스트를 깨야지만 만 단위의 카르마를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퀘스트와 상관없이 권속으로 만 단위의 카르마를 매일같이 수급하는 게 가능해졌다.
아마 권속이 늘어나고 권속의 실력 수준이 상승한다면 10만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카르마를 보다 공격적으로 사용해도 되겠어.’
원래도 나 자신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었다.
강해지는 것.
세상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공이 1갑자를 넘어서면서 이른바 투자 대비 효과가 줄어들었다.
10만 카르마 이상의 가치를 지닌 영약을 복용해도 무력 상승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절약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이제 카르마 수급이 늘었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 확실시되었으니 보다 공격적으로 카르마를 사용해도 될 거 같았다.
‘일단 권속들에게 스킬부터 사줘야겠군.’
특히 주현근.
스킬이 직감이라는 패시브 스킬밖에 없어서 은근히 무시받고 있었는데, 좋은 스킬 하나 선물해서 기를 조금 세워주고 싶었다.
“비각성자에게도 무공을 배울 권리는 있다!”
“박한새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이능관리부 본부로 다시 돌아오니, 수백 명의 인파가 시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명 무모회라고, ‘무공을 모두에게’라는 이름의 모임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시위도 시위지만, 이능관리부로 계속 민원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이재현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무공을 배우고 싶었으면 저런 열정을 보이는 것인지.
무공의 창시자로서 이걸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던 거 같은데 말이지.’
뭐, 회귀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긴 했다.
회귀 전에는, 나보다는 S랭크 헌터인 이성은 위주로 무공이 확산되었으니까.
비각성자로 알려진 내가 헌터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니, 비각성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 계획을 일부 밝히긴 해야겠군.’
당장 비각성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희망을 완전히 꺾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비각성자에게도 무공을 가르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강충구 같은 인재들을 포기할 수는 없지.’
사실 ‘무공의 재능’만을 따지자면 헌터보다는 비각성자 쪽에 인재가 더 많이 있었다.
헌터 수에 비하면 비각성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공의 재능을 가진 인재도 당연히 비각성자 쪽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헌터가 가진 내공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헌터들에게 우선적으로 무공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길어야 1년. 1년 안에는 반드시 비각성자에게도 무공을 가르치고 말리라.’
카르마 상점이 있고 권속이라는 시스템이 있는 한, 1년이면 충분하였다.
하여 나는 이 같은 계획을 모두에게 밝히기로 하였다.
그래야 비각성자들이 희망을 품고서 무공을 배울 날을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기자들을 불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자들 말씀입니까?”
“예,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야 일반인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재현이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하였다.
그 역시 무공 아카데미 문제로 이 이상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내가 기자회견을 연다고 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국내 모든 언론사의 기자들이 찾아왔다.
심지어 외신 기자들도 적지 않게 모였다.
“비각성자는 무공을 배울 수 없어서 비각성자를 배제하는 겁니까?”
“이윤세 후보와 약속하셨다던데, 약속을 어기실 생각입니까?”
“유지은 세이서 길드장과는 어떤 관계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왜 무공을 익힌 사람은 던전 이변에서 자유로운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자들은 쉴 틈 없이 온갖 질문을 던져댔다.
하지만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크게 보면 세 가지였다.
지원자를 뽑는 기준은 무엇이냐.
10대 길드와의 관계는 어떠하냐.
던전 이변을 어떻게 생각하냐.
물론 그중에 유지은과 그렇고 그런 관계일 거 같다고 물어보는 기자도 있었다.
당연히 들을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기에 무시하였다.
나는 가장 먼저 무공을 익힌 사람이 던전 이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마력 간섭 현상이란 말 그대로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게 외부의 간섭이 생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무공을 익히면 단전이란 마력기관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 단전을 통하여 마력 간섭 현상을 피할 수 있습니다.”
무공의 원리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졌기에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기자들도 몇 가지 질문만 더 하고는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안지호 멸절 길드장은 10대 길드가 가장 먼저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데 이에 대해서 어떤 의견입니까?”
“외국 헌터를 뽑는 것에 여러 길드에서 우려가 큰 거로 아는데, 강행하실 겁니까?”
“마력을 각성하지 않은 일반인은 뽑지 않는다는 공지를 보고 여러 논란이 생겼는데,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지요?”
역시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공 아카데미 4기 교육생을 어떤 기준으로 뽑을지였다.
“지원자를 뽑는 기준은 명성이나 국적이 아닙니다. 오직 실력. 그리고 그 실력을 가려낼 수 있는 것은 저 한 명뿐입니다.”
“그럼 일반인을 뽑지 않을 거라고 하셨으니, 일반인은 무공의 실력을 갖추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마력이 있고 없고는 무공을 익히는 데 큰 차이를 보입니다. 제가 헌터 위주로 뽑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자들이 온갖 억측을 내놓기 전에, 나는 손을 들어 기자들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현재 저는 마력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심법을 연구 중입니다. 심법의 연구가 끝나면 일반인들의 신청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심법의 연구는 언제쯤 끝낼 수 있습니까?”
“1년. 1년 안에는 일반인들도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될 겁니다.”
1년 뒤에는 일반인들에게도 무공을 배울 기회를 준다는 말에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특종이라고 외치는 기자들의 모습만 봐도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 여론이 다시 잠잠해진 거 같습니다.”
“예, 헌터 매니아에서도 역시 믿고 있었다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이후, 적대적이었던 일반인들의 반응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느꼈다.
역시 1년이라고 확실하게 기간을 정해준 게 주효했던 거 같았다.
“10대 길드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오성이나 세이서처럼 이전부터 좋은 관계였던 곳은 따로 반응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근데 나머지 길드들은…, 괘씸하게 여기는 거 같습니다.”
“괘씸하다라.”
피식 웃었다.
예상했다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10대 길드는 내가 설마 기자회견에서 대놓고 ‘10대 길드라고 대우해줄 생각은 없다.’라고 밝힐 줄은 몰랐을 것이다.
“몇몇 길드에서는 협회와 힘을 합쳐서 혼쭐을 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기도 합니다.”
던전 이변이 두 번이나 발생했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았다.
무공을 배우지 않은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판국에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니.
‘이성은이 그랬던 것처럼 S랭크 헌터가 무공을 배웠다면 달랐을까?’
오성 길드의 길드장인 진종호가 무공을 배우지 않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진종호가 무공을 배웠다면 다른 10대 길드에서도 내게 자세를 낮추며 나의 제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을 텐데 말이다.
“무슨 일입니까?”
“이탈리아 헌터가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러 나라에서 가입 신청서가 오고 있는데 이탈리아라고 저런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 헌터가, S랭크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