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89화 (89/275)

#089화

E랭크 헌터, 최웅.

그는 본래 던전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랭크는 낮다지만, 어차피 그가 가는 던전의 등급도 겨우 2성급.

주로 출몰하는 몬스터도 고블린이나 코볼트였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던전 이변이란 게 일어나면서 던전에 들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던전 이변은 단순히 마력의 통제를 막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마력을 다루는 실력이 낮은 헌터의 경우 아예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는데, 최웅이 바로 그 마력을 다루는 실력이 낮은 헌터에 속하였다.

‘젠장, 무공만 배운다면 두려울 게 없을 텐데.’

무공.

헌터라면 모두가 배우고 싶어 하는 비기 중의 비기였다.

하지만 무공 아카데미에서 뽑는 인원은 고작 500명뿐.

심지어 S랭크 헌터조차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까지 기회가 주어질 리는 없었다.

“무공 같은 거, 굳이 배우지 않아도 돼.”

연이은 던전 이변으로 레이드를 멈추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사촌 형이 찾아왔다.

최웅의 사촌 형도 E랭크 헌터였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던전 이변이 두려워서 레이드를 피하던 사람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형. 무공을 안 배우면 던전 이변 때 개죽음을 당할 거라고.”

“웅아. 던전 이변은 이 각성제 하나만 있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사촌 형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봉지 하나를 꺼냈다.

새하얀 분말이 들어있는 투명한 봉지였다.

“이게 뭔데?”

“펜테리움이라고 헌터 전용 각성제야.”

“헌터 전용 각성제?”

의아해하는 최웅에게 사촌 형은 휴대폰을 꺼내 펜테리움에 관한 정보들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내용을 읽던 최웅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 이것만 있으면 마력 간섭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거야?”

“그렇다니까. 나를 믿어 봐!”

헌터라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던전 이변을 겨우 약 하나로 막을 수 있다니.

실로 믿기 힘든 정보였다.

하지만 그의 사촌 형은 집요하게 설득을 하였고, 마침 생활비도 다 떨어져 가던 상황이었다.

결국 최웅은 그의 사촌 형과 함께 펜테리움을 품에 넣고서 오랜만에 던전 사냥을 나섰다.

마치 그가 던전에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던전 이변이 발생하였다.

하필 고블린 무리가 바로 정면에 나타난 터라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던전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데!’

생활비가 급하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온 것이 실수였던 듯싶었다.

최웅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마력 간섭 현상에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A랭크 헌터는 물론이고, S랭크 헌터도 저항하기 힘들어하는 것이 마력 간섭 현상이었다.

E랭크 헌터에 불과한 그가 제대로 저항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웅아! 펜테리움을 써!”

그때, 뒤에서 사촌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각성제 하나로 과연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끼이이익!”

“끼익! 끼익!”

고블린들이 달려드는 상황.

그야말로 사면초가나 마찬가지였다.

“뭐 하고 있어! 어서 쓰라니까!”

사촌 형이 멀쩡한 모습으로 고블린들과 격돌하였다.

그의 사촌 형은 정말로 마력 간섭 현상을 해결한 듯싶었다.

‘나도 그럼?’

최웅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품에 넣은 주사기를 꺼냈다.

미리 펜테리움을 담아둔 주사기를 그대로 자신의 팔뚝에다 꽂자, 갑자기 몸속에 변화가 생겼다.

“저, 정말이잖아!?”

“펜테리움 복용했으면 빨리 와서 도와! 혼자 멍하니 서있지 말고!”

“아, 알았어!”

팔뚝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에 잠시 몸을 움찔하던 최웅은 사촌 형의 외침에 다급히 고블린을 향해 뛰어갔다.

펜테리움의 효과는 확실하였다.

원래였으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어야 할 그가 너무도 멀쩡하게 고블린 무리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게다가 펜테리움은 그냥 마력 간섭 현상만 해결해 준 것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몸 전체에 힘이 넘쳐흘렀다.

맨손으로 바위도 깨부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바로 각성제의 힘인가?’

각성제 효과가 이 정도라면, 꼭 던전 이변 때문이 아니더라도 펜테리움을 써야 할 것만 같았다.

노영배.

권법의 달인으로 백보신권이라는 고유 권법을 사용하는 인물이었다.

문파 장문인으로서 휘하 제자가 수백 명에 달할 정도로 ‘무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이야기지.’

40대의 무게감 넘치는 장문인이었던 노영배가 20대 후반의 젊어진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이게 내공이란 겁니까!”

내공을 느꼈다는 게 그리도 감격스러웠는지, 노영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회귀 전의 그를 떠올리면, 낯설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노영배는 순박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니까.

‘과연 이번에도 회귀 전처럼 나에게 승부욕을 불태우며 계속 도전할지 궁금하군.’

속으로 픽 웃고는 노영배의 단전 쪽으로 내공을 움직였다.

그러자 노영배가 입을 꾹 다물고는 내공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확실히 재능이 대단하긴 해.’

노영배가 내공을 느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을 거다.

그런데도 벌써 내공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서 내가 유도하는 대로 잘 따라주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아…!”

내가 손을 떼자, 그가 아쉬움이 역력한 탄식을 내뱉었다.

거창하게 깨달음이라고 부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공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내공이란 결국 마력의 다른 말이고, 헌터에게 있어 마력은 전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단전까지 향하는 길을 알려드릴 테니, 제가 가르쳐드린 길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이란, 혈도를 뜻하였다.

무공을 배우는 첫걸음이 바로 단전까지 향하는 길을 터득하는 것.

아마 노영배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면 첫걸음을 떼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길어야 사흘쯤 걸리지 않을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랬습니다.”

노영배는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부족한 자신을 뽑아줘서 감사하다고.

앞으로 나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말이다.

“재능이 있어서 뽑은 겁니다. 그러니 다른 생각 하지 마시고 열심히 배우기만 하십시오.”

나를 향한 노영배의 눈빛이 더욱더 강렬해졌다.

마치 생명의 은인을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게 이러한 눈빛을 보내는 헌터는 노영배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뽑은 500명의 헌터들.

그중에서 D랭크 이하 랭크의 헌터들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내게 존경심을 표하였다.

A랭크, 심지어 S랭크까지 가입을 신청하였는데도 랭크가 낮은 자신들을 뽑아줬으니 그런 감정을 갖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기초반, 초급반, 중급반, 상급반.

현재 무공 아카데미는 4개의 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에 상급반의 경우.

지금 이 시간에도 수리산 던전에서 한창 사냥에 열중하고 있었다.

참고로 ‘심화반’이란 곳도 있었는데 심화반 소속의 교육생들은 현재 조교가 되어 나를 비롯한 교관들을 보조하고 있었다.

“들었어? 유지은 길드장, 벌써 옥동쌍취 경지를 돌파했다던데?”

“벌써 옥동쌍취를 돌파했다고? 아니, 무공 배운 지 며칠 안 되지 않았어. 그 사람?”

“A랭크 헌터잖아. 실력 자체는 S랭크 헌터에 버금간다는 소문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그러게. 헌터로서 랭크도 높은데 무공의 재능까지 갖춘 건 너무한 거 같긴 해.”

“부럽다. 나도 유지은 길드장처럼 무공의 재능이 있었으면.”

“난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내공만 넉넉하면 좋을 거 같아. 내공이 얼마 없으니 검기도 오래 못 발현하잖아.”

“내공이라. 하긴, 다른 것보다 내공이 가장 중요하긴 하지. 근데 어쩌겠어. 노력만으로 내공을 늘릴 방법이 없는데.”

집무실 바깥에서 조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현재 조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였다.

‘역시 내공인가.’

몇몇 조교들은 새로 들어온 교육생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공을 배우는 속도가 차원이 달랐으니까.

새로 들어온 교육생들은 내가 이름을 알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당연히 무공의 재능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반면 공무원 헌터 출신의 조교들은?

공무원 헌터가 과거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생각하면 이들의 헌터 자질은 평균 이하였다.

그리고 헌터 자질이 평균 이하라는 말은 보유한 내공이 적다는 말이기도 했다.

[‘백년설령과’를 구매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나는 카르마 상점에서 ‘백년설령과’를 구매하였다.

가격은 대략 1만 카르마 정도 하는 영약이었다.

내공이 1갑자를 넘은 상황에서 내가 1만 카르마짜리 영약을 구매한 이유는 간단하였다.

조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함이었다.

“하나, 둘, 셋….”

총 50개.

무려 50만의 카르마를 소모하여 백년설령과 50개를 구매하였다.

그야말로 역대급 소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맞아.’

50만 카르마를 소모하여 내가 더 강해지고자 했다면, 과연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묵혈정령실 같은 영약을 구매했다면 아마 1갑자 이상의 내공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두 개를 구매했다면 나는 3갑자 고수가 되었겠지.

하지만 1갑자 고수에서 3갑자 고수가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내공은 많을수록 좋았다.

회귀 전에 내가 죽은 이유도 결국 내공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9성급 던전은커녕 8성급 던전도 열리지 않은 지금으로선 그 정도로 많은 내공이 필요하지 않았다.

3갑자가 된다고 지금 사용할 수 없는 상상 속의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차피 내공이 부족한 순간에는 카르마를 내공으로 전환해서 사용하면 돼.’

스킬을 구매하는 것 역시 크게 의미가 없었다.

8성급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고 그 이후에 더 큰 세상의 위기가 온다면 값비싼 스킬이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던전에 들어갈 일도 거의 없는 내가 이 이상 강해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나를 위한 스킬이나 영약을 구매하는 데 사용할 카르마로 제자들에게 영약을 주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이었다.

문정민은 상대에게 빠르게 접근한 뒤,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보통 상대였으면 그의 주먹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보법으로 순간이동 하듯 반응할 새도 없이 거리를 좁혔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보통 상대가 아니었다.

“역시 꽤 하잖아!”

여유롭게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는 상대를 보며 문정민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비록 헌터 랭크는 낮을지언정, 육체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자부하였다.

무공을 배울 때 이 같은 자신감은 더욱더 견고해졌다.

신체를 강화하는 그의 스킬들과 무공의 시너지 효과는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보법이면 보법.

권법이면 권법.

문정민은 몸을 다루는 모든 무공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데 왜 교관들에게는 안 통하는 거야.’

부우웅. 부우웅.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들리는 파공음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마치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거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위협적인 공격도 저렇게 다 피해낸다면 의미가 없었다.

“정민아. 다 끝났냐?”

“이번만큼은 스킬을 사용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무공을 겨루는 자리에서 스킬은 무슨 스킬이야?”

대련 상대, 신경철이 피식 웃으며 그리 말하였다.

“교관님도 위급한 상황에서는 스킬을 사용할 거 아닙니까?”

“뭐 그건 그렇지.”

“언젠가 꼭 스킬을 사용하게끔 만들 겁니다.”

“너, 아픈 거 즐기는 스타일이었냐? 내 스킬이 뭔지는 알고 하는 이야기지?”

“교관님의 불쯤이야 제 주먹으로 갈라버릴 수 있습니다.”

“이 자식이. 다시 덤벼. 내가 아주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겠어.”

“오늘은 됐습니다.”

문정민은 몸을 돌려서 문고리에 걸어두었던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결국 오늘도 발리고 말았군. 과연 언제쯤 교관들의 실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무공의 이해도는 교관들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이정이나 신경철, 김수민 같은 괴물들을 제외하면 권법의 숙련도는 오히려 그가 더 높기도 했고.

‘하지만 내공이 문제야.’

재능 자체는 그도 굉장히 우수한 편에 속하였다.

문제는 내공이었다.

내공에서 밀리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가 상대보다 보법 숙련도가 좋아도 상대가 내공으로 찍어 누르면 문정민은 상대를 잡을 수 없었다.

검기의 싸움으로 간다면 이보다 심했다.

그야말로 누가 더 내공이 많냐로 갈리는 것이 지금 문정민의 경지였으니까.

“문정민 조교님.”

그때, 무공 아카데미에서 박한새를 포함해도 단 세 명밖에 없는 비각성자가 문정민을 불렀다.

강충구란 이름의 비각성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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