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화
강충구를 보는 조교나 교관들의 시선은 썩 좋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강충구는 굴러 들어온 돌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강충구는 헌터 출신도 아니었다.
그는 박한새와 똑같은 비각성자였다.
갑자기 박한새의 옆자리를 꿰찬 그를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물론 그중에 문정민은 예외였다.
박한새에 대한 충성심이 넘치는 동기들과 다르게 문정민은 고마운 마음은 있을지언정 충성심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강충구에게 질투나 부러움을 느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총장님께서 문정민 조교님을 부르셨습니다.”
“박한새 교관님이 저를 불렀다는 거죠?”
총장이라니.
뭔가 거창하게 느껴지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창시한 박한새이니 어떤 화려한 호칭이나 별명이 붙어도 이상할 건 없을 거다.
‘분명 7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 연수원 동기였는데 말이지.’
문정민은 박한새와 똑같은 88기 기수였다.
참고로 그때만 해도 문정민은 박한새에게 라이벌 의식을 불태웠었다.
스킬은 없어도 육체 능력 하나만큼은 가장 좋을 것이라 자부했건만, 그의 자부심을 산산조각 낸 것이 바로 박한새였으니 말이다.
‘이제는 라이벌은커녕 총애만 바라는 신세가 되었네.’
지금의 처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88기 합격자로서 박한새의 동기가 되지 않았다면 그가 지금 이렇게 무공을 배울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아마 하위 헌터로서 지금쯤 바닥을 전전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정민은 이상하게 박한새를 만날 때마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동기였고 한때는 라이벌로 생각했던 이가 지금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까마득한 위치에 올라서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부르셨습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일까?
박한새는 처음 봤을 때보다 위엄이 넘쳐 보였다.
의자에 앉아있는데도 마치 눈앞에 거인이 서 있는 느낌이었다.
설령 S랭크 헌터라도 이 정도의 위압감은 보일 수 없으리라.
“신경철 교관과 대련은 잘 끝났습니까?”
“예,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교관들이 문정민 조교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저도 문정민 조교의 재능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박한새의 칭찬에 문정민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칭찬 몇 마디 들었다고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에 절로 쓴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무공을 배워서 언젠가 박한새를 한번 꺾어보겠다고 맹세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문정민은 다른 조교들이 그러하듯 박한새를 스승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능을 어기는 거 같아, 찝찝하게만 느껴졌다.
“지금 제가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선물을 하나 주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선물이라면?”
“백년설령과라는 이름의 과일입니다.”
‘과일 이름이 어떻게 백년설령과지’?
문정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박한새가 건네주는 과일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거는?’
분명 과일인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마력 감응력이 뛰어난 그이기에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지금 바로 복용하십시오.”
“복용하라고요?”
“영약입니다.”
백년설령과를 보는 순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박한새의 입에서 정말 영약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문정민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 비싼 영약을 내게 준다고?’
재벌 회장들조차 구하기 힘들어하는 게 마력을 품은 영약들이었다.
던전에서나 나오는 것이고, 영약들은 대개 피부 미용부터 발모, 상처 치료, 해독 등등 온갖 좋은 효과는 다 있다고 알려져 있기에 부르는 게 곧 값이었다.
가장 낮은 등급의 영약들조차도 몇백이 우스울 정도니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었다.
“이 영약을 복용하시면 부족하게 느껴졌던 내공이 조금은 늘어나게 될 겁니다.”
박한새를 생각할 때 늘 복잡한 기분을 느꼈던 문정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복잡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저 박한새에게 한없이 감사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사부님!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문정민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그같이 외쳤다.
“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내가 강충구에게 묻자, 강충구가 멍한 표정을 고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총장님. 교관과 조교님들 전체에게 영약을 지급하시는 겁니까?”
“예외를 둘 순 없으니까.”
“총장님께서는 자금력도 대단하신 거 같습니다. 복용 효과를 보니 영약이 상당히 값비싼 거로 보이던데….”
나는 그런 강충구를 보고 피식 웃었다.
“왜? 그래서 부러운 거야?”
“…솔직히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 같습니다.”
“너무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네 것도 하나 남겨뒀으니.”
“제, 제 것도 있단 말씀입니까?”
강충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그로선 나의 선의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비각성자인 자신을 비서로 두어 무공을 가르친 것부터 이미 뒷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편애였다.
그런데 영약까지 준다니?
이 정도면 거의 가족을 대하는 수준이었다.
“형평성 문제 때문에 남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너 역시 내 제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너 또한 내 제자인데, 당연히 예외를 둘 수는 없지.”
“총장님, 아니 사부님! 평생을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강충구가 뜨거운 눈빛으로 나에게 외쳤다.
스승도 아니고 무려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말이다.
‘딱히 충신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은데, 어째 주변에 충신만 생기는 거 같군.’
뭐 그나마 강충구의 경우는 회귀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관계였으니 어색하게 느끼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오늘은 또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수업 끝났으니, 가기 전에 한새 씨 얼굴도 좀 보고 가려고 왔죠.”
유지은이 윙크하며 내게 그와 같이 말하였다.
요즘 그녀는 틈만 나면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오늘 수업은 어떠셨습니까?”
“수업이요? 정말 좋았죠. 마력이란 거, 아니 내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내공을 이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리란 것은 상상도 못 했었거든요.”
처음으로 무공을 배우게 된 헌터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당연하게 보유하고 있던 마력이 이렇게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니 말이다.
“옥동쌍취의 경지는 어디까지나 기초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더 기가 막힌 것을 배우게 될 겁니다.”
“기가 막힌 것이라. 한새 씨가 그런 표현을 하니 무척이나 기대되는데요?”
기대해도 후회는 안 할 것이다.
단순히 보법과 검기만 배워도 근접전 실력이 많이 부족한 편에 속하는 그녀라면 엄청난 무력 상승을 이룰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정말 아쉬워요.”
아쉽다고?
무공을 배우게 된 마당에 무엇이 아쉽다는 거지?
“어떤 게 아쉬우십니까?”
“고정희 교관에게 배우는 것도 좋지만, 저는 한새 씨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녀가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오른손으로는 은근슬쩍 나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려고 하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허벅지를 오므렸다.
안 통할 걸 알면서도 집요하게 굴었다.
“그런데 한새 씨.”
“어떻게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좋은 거예요?”
“사람 보는 눈 말씀입니까?”
“예, 이번에 뽑은 사람들 보니까 다 재능이 뛰어나더라고요. 심지어 외국 헌터들도 그렇고요.”
그야 다 아는 이름들이라서 그렇다.
뭐, 동명이인일 경우 내가 직접 재능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비법 좀 알려주실 생각 없으세요? 아무래도 길드를 운영할 때 사람 뽑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거든요.”
“무공을 배우다 보면 사람 보는 눈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겁니다.”
“보다 보면, 한새 씨는 모든 게 다 무공으로 귀결되는 거 같네요. 그러다 무공이랑 결혼하시는 거 아니에요?”
무공과 결혼이라.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쭈어봐도 될까요?”
“한새 씨가 무공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요?”
“있습니다.”
“혹시 그 이유가 성좌 때문인가요?”
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 배후에 성좌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보군.’
완전히 틀린 추측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배후에 성좌가 있는 것과 나 자신이 성좌인 것은 같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대의를 위해서입니다.”
“대의라고요?”
유지은이 신기한 듯 바라봤다.
아마 그녀에게는 대의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지 않을까 싶었다.
정의나 대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 그녀였으니까.
“제가 무공을 전파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대의에 있으니, 유지은 길드장의 배후령께 말씀을 잘 전해주십시오. 괜한 오해를 하여 아군끼리 싸우는 일이 없게끔 말입니다.”
“그, 그게 무슨…?”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김민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사부님, 정승호 길드장이 찾아오셨어요.”
김민경은 평소보다 더 나긋한 목소리로 정승호의 방문 소식을 알려주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도록 하죠.”
“한새 씨, 잠시만요.”
“유지은 길드장님.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는 거로 합시다.”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리니,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로서는 답답한 기분일 것이다.
내가 마치 그녀의 성좌가 누구인지 다 안다는 것처럼 말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내 성격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더 보채지 않았다.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
유지은이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영 길드의 길드장, 정승호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면서 보니까, 사람이 많아졌더군.”
“많이 뽑았으니까요.”
“500명을 뽑았다고 했지?”
“기존의 인원도 있으니, 그럼 이제 무공을 익힌 인원이 1,000명에 가까워진 건가?”
“거의 1,000명에 근접해지긴 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많이 늘긴 했는데, 시기가 시기다 보니 썩 많아 보이지는 않는군.”
그가 말하는 시기란, 던전 이변이 발생하는 현재 상황을 가리켰다.
던전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무공을 최대한 전파해야 하는데, 아직은 무공을 익힌 이의 숫자가 1,000명이 채 안 되니 적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무공이란 게 단기간에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나라고 더 받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유지은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는 대의를 위하여 무공을 전파하는 사람이었다.
던전 이변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대의를 위한 일이었으니, 무공을 최대한 빨리 전파해야만 했다.
하지만 성좌의 능력을 사용해도 무공 사용자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력을 다루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무공을 배우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를 순 없지. 하지만 자네도 DX 길드의 소식은 들어봤을 것이 아닌가?”
들었다 뿐일까.
예의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DX 길드가 펜테리움이라는 각성제로 폭발적인 세력 확장을 하고 있었으니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놔두면 DX 길드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할 거야.”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라.
그건 이미 지금도 그랬다.
DX 길드의 배후에는 여명회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