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화
‘DX 길드의 성장은 확실히 위협적이야.’
예상은 했었다.
던전 이변이 발생하면 펜테리움을 무기로 DX 길드가 세력을 급격하게 확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DX 길드의 성장은 아니, 여명회 전체의 성장 속도는 내 예상을 훨씬 상회하였다.
‘아무래도 이성은이 없는 게 큰 영향을 준 거 같단 말이지.’
나는 회귀한 이후 무공을 전파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막으려면 인류에게 무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성은은 나와 정반대였다.
그는 인재를 모으고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위험요소란, 여명회를 말하였다.
회귀하자마자 이성은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여명회의 핵심 인물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성은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여명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만큼 무공의 전파도 늦추어졌지만 말이다.
“저 역시 DX 길드의 성장을 두고 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내가 생각했을 때는, 화룡파를 잡을 때처럼, 힘으로 다 때려잡는 게 확실할 거 같은데.”
힘으로 때려잡는 것.
DX 길드를 견제하려면 그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긴 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DX 길드를 와해시켜봤자 큰 의미는 없습니다. 전에도 말했듯, DX 길드는 국제 빌런 세력의 말단 조직에 불과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여명회는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한국처럼 기반이 거의 없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는데, DX 길드는 말단 중의 말단이었다.
DX 길드를 없앤다면 또 다른 DX 길드가 생겨날 터.
“흠, 힘으로 처리하는 게 소용이 없다면 다른 수가 있다는 건가?”
“거창한 수단은 필요 없습니다. DX 길드와 그들의 뒤에 있을 거대 빌런 세력을 견제하고자 한다면, 펜테리움의 필요성만 제거하면 될 일입니다.”
DX 길드가 급격하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던전 이변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헌터들이 던전 이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부작용이 있다고 알려진 펜테리움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DX 길드의 성장세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하지만 무력이라는 수단도 슬슬 쓸 준비를 하긴 해야겠어.’
나는 단전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1갑자의 기운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헌터들로 하여금 던전 이변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였다.
무공을 익힌 헌터를 대동하게 하는 것.
즉, 무공 아카데미의 교육생을 던전 레이드 팀에 파견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어떻습니까? 지원자는 많이 나올 거 같습니까?”
내가 교관들에게 물으니, 교관들은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럼요. 수리산 던전으로 사냥 가는 상급반을 부러워하는 교육생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맞습니다. 사부님도 공무원 헌터의 월급이 얼마나 짠지 아시지 않습니까?”
“지원자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련 안 하고 죄다 던전으로 가는 것을 걱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다름 아닌, 공무원 헌터의 겸직 제한 문제였다.
“그런데 과연 장관이 민간 길드와 협업하는 것을 허락할까요? 공무원 헌터라는 이유로 태클 걸 거 같은데.”
“수리산 던전에서 레이드하는 것도 결국에 허락받았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다른 문제죠. 수리산 던전은 어쨌든 다른 민간 길드와 협업하는 건 아니잖아요?”
김민경의 지적은 일리 있었다.
이능관리부 장관은 평소에도 틈만 나면 트집을 잡으려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공무원 헌터의 겸직 제한을 걸고넘어지면 무공 교육생을 다른 길드로 파견 보낸다는 나의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었다.
“역시 공무원 헌터로 있으니 제한이 너무 많은 거 같습니다.”
“내 말이.”
교관들은 하루빨리 무공 아카데미가 이능관리부에서 독립하길 원하고 있었다.
겸직 제한부터 시작하여 협소한 공간, 낮은 봉급 등.
공무원 헌터로 있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계약 기간은 아직 몇 개월이 더 남아있었다.
더군다나 이능관리부에 남아있는 게 내 입장에서 손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정부를 아군으로 두는 것.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익은 작지 않았다.
만약 내가 이능관리부 소속이 아니었다면 나와 적대하는 10대 길드에서는 더욱더 공격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헌터 협회에서도 별의별 수작을 부리려 했을 것이고.
그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몇 달간 더 이능관리부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어차피 계약 기간이 남아있기도 했고 말이다.
‘일단 차관을 설득해보자. 장관이라면 모를까, 이재현 차관이라면 충분히 겸직을 허락해주겠지.’
나는 바로 이재현 차관을 찾아갔다.
이재현은 오히려 기꺼워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던전 이변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정부에서도 우려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무공 교육생을 파견한다면 모두에게 이익일 거 같습니다.”
“차관님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오히려 정부가 먼저 요청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필 시기가 시기다 보니…….”
“이해합니다. 대선이 코앞이니 정신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겸직 제한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나는 굳게 신뢰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무공 아카데미 소속 공무원 헌터들의 겸직 제한은 바로 풀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외국에서의 활동은 불가하다고 합니다.”
교육생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공무원 헌터의 겸직 제한을 푼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헌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능관리부 소속이란 게 확실히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닌 거 같군.’
던전 이변은 계속해서 발생하였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특정 던전에서만 던전 이변이 발생한다던데?”
“이변이 발생하기 전에 던전의 마력이 불안정해지는데, 그때 안전지대로 가면 안전해.”
던전 이변이 세 차례 반복되었을 때쯤, 이미 헌터들은 던전 이변이 언제, 어디서 발생하는지 분석을 끝마쳤다.
마력 간섭 현상은 모든 던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 던전에서만 발생하였는데, 이 던전들을 피한다면 던전 이변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설령 던전 이변이 발생하는 던전에 들어가도 고랭크 헌터가 다수 포함된 팀이라면 대응 방법이 존재하였다.
던전의 마력을 실시간으로 체크하여 이상 징후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고랭크 헌터에게 마력 간섭 현상이 위험한 것은 순간적으로 마력 운용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던전 이변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던전 이변도 크게 두려워할 것이 못 됐다.
당연하겠지만 10대 길드들은 이미 던전 이변의 대응을 거의 완벽하게 끝마친 상태였다.
이 10대 길드 중에 무공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오성 길드의 경우, 던전 이변으로 본 피해가 아예 전무한 수준이었다.
“세희야. 부탁 좀 들어줘라~.”
“안 된다니까.”
“제발,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번에도 레이드는 포기해야 한단 말이야.”
이윤미의 말에 진세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오성 길드의 길드원을 다른 길드의 레이드 팀에 파견 보낼 수가 있어.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야!”
“내 팀으로 완전히 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몇 번만 같이 레이드 뛰면 되는 거라니까.”
“그래도 안 돼. 그런 건 우리 아빠한테 말해야지. 내가 오성 길드의 길드장도 아닌데.”
“오성 길드장님에게 내가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해.”
“나에게 하는 것은 되고?”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물론 이윤미의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5대 대기업 중 한 곳인, 명신 그룹의 자제로서 한창 치열한 후계 경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후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선택한 사업이 헌터 사업이었다.
즉, 오성 그룹과 오성 길드의 관계처럼 명신 길드를 크게 성장시켜서 종국에는 명신 그룹의 총수가 되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계획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그녀의 랭크였다.
오성 길드가 10대 길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건, 길드장인 진종호가 S랭크 헌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이윤미는?
S랭크는커녕 B랭크인 진세희보다 랭크가 낮은 C랭크였다.
겨우 C랭크로 명신 길드를 확장시키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자본력이 상당하다는 점과 그 자본력 덕에 그녀를 따르는 헌터가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리더십도 상당한 수준이라 명신 길드는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던전 이변이라는 위기였다.
이 예상치 못한 사태로 그녀의 길드는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냥을 멈춰야 했다.
하필 명신 길드가 소유한 던전이 한국에 몇 없는 던전 이변이 발생하는 던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 안에 던전 클리어를 하지 않으면 우리 길드는 어렵게 얻은 던전을 포기해야 해. 나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아!”
길드가 성장하려면 던전은 필수였다.
소유하고 있는 던전이 없으면 다른 길드의 견제를 당했을 때, 어디서도 사냥 못 하고 손가락만 빨아야 했으니까.
“그러면 공무원 헌터를 고용하는 게 어때?”
“응? 그게 뭔 소리야?”
“내가 다니는 무공 아카데미의 헌터들 말이야. 던전 이변이 두려운 거라면 무공을 익힌 헌터를 대동하면 되잖아.”
진세희에게서 무공 아카데미의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긴가민가하게 받아들였던 이윤미였다.
아무래도 공무원 헌터라고 하면 전투 경험이랄 게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없는 책상물림이라 인식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세희는 거듭 설득하였다.
과거의 공무원 헌터는 실력이 낮았을지 모르지만, 무공을 익힌 공무원 헌터는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심지어 자기 자신을 예로 들었는데, B랭크 헌터였던 진세희는 어느덧 A랭크 헌터조차 가볍게 상대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같은 성장의 비결은 바로 무공이었다.
‘무공이 그렇게 위력적이란 말이지? 좋아, 바로 데려와 보자.’
한번 결정을 내리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그녀의 성격이었다.
이윤미는 이능관리부 소속 공무원 헌터를 동급의 일반 헌터보다 무려 세 배의 돈을 더 줘서 레이드 팀으로 영입하였다.
“D랭크 공무원 헌터를 B랭크 헌터 이상의 돈을 주고 고용하는 게 맞는 거야?”
“무공을 익혔다잖아.”
“아니, 무공이 뭐 대수라고. 무공을 익히면 D랭크 헌터가 갑자기 B랭크 헌터가 되기라도 한대?”
“그 말도 맞긴 해. 솔직히 나는 펜테리움을 사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길드장은 펜테리움을 무슨 마약 같은 거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쨌든, 저놈 실수 한 번이라도 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
명신 길드의 헌터들은 이윤미가 데려온 무공 아카데미 소속 공무원 헌터를 불편한 눈으로 바라봤다.
공무원 헌터는 업계에서 은근하게 무시당하는 처지였다.
오죽 실력이 낮으면 공무원이 되냐는 그런 시선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윤미가 데려온 공무원 헌터에 대해서도 신뢰도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없었다.
하지만 이윤미가 데려온 헌터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