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화
명신 길드 헌터들이 무공 아카데미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 헌터, 강우석을 무시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D랭크 헌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템 상태가 저게 뭐야. 몬스터가 아니라 빌런을 잡으러 온 복장이잖아?”
“저 조그만 검으로 몬스터를 어떻게 잡겠다는 건지. 쯧.”
“몬스터를 상대해본 적이나 있겠어?”
랭크도 랭크지만 장비 상태부터가 던전 사냥에 맞지 않았다.
던전보다는 빌런을 잡으러 가는 복장이었던 것이다.
“경보기 역할이나 잘하길 바라야겠지.”
“뭐, 그 정도는 잘해주지 않을까?”
“혹시 몰라. 무공을 익혔다고 이상 징후를 빠르게 알아차릴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그러면 곤란한데.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의미가 없잖아.”
명신 길드 헌터들은 강우석의 겉모습을 보고 온갖 불만을 토로하였다.
하지만 강우석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던전 길을 걸을 뿐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해줬던 것처럼 실력으로 증명하면 될 일이다.’
모든 교육생의 사부인 박한새.
강우석을 비롯하여 민간 길드로 출장 가는 모든 교육생은 박한새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다.
그 교육이란 일종의 행동 규칙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지금처럼 무시당했을 때는 뭘 해야 할지.
그리고 박한새가 말해준,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행동은 바로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오크 무리다!”
“적어도 스무 마리 이상인 거 같은데?”
“젠장, 뭐가 저리 많아?”
마침 강우석에게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생겼다.
C랭크 헌터 한 명과 D랭크 헌터 다섯 명밖에 없는 레이드 팀에 오크 스무 마리가 들이닥쳤다.
물론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오크 떼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긴 했다.
오크가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조합을 충실하게 구성한 레이드 팀에겐 역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음 습격이 문제였다.
던전에서 오크 무리와 부딪치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여러 번의 전투가 발생하였다.
지금 스무 마리를 상대해서 잡아낸다고 해도 바로 다른 오크 떼를 상대하게 될 거라는 의미였다.
“넌 뒤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
하지만 명신 길드 헌터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강우석을 전투에서 열외시켰다.
팀워크를 깨면서까지 투입할 만큼 가치 있는 실력자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저는 뒤로 돌겠습니다.”
“뭐? 쓸데없는 행동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번에 증명해드리죠. 무공의 힘을.”
리더가 화를 참지 못하고 무기를 들어 올리자, 다른 팀원들이 말렸다.
“알아서 하라고 하죠. 어차피 죽어도 우리 책임 아니잖아요.”
“괜히 이능관리부와 시비 붙으면 어쩌려고!”
“그 도끼로 내려찍으면 시비 붙는 정도가 아닐걸요?”
“누가 죽이려고 도끼를 든 줄 알아? 훈계하려고 든 거야.”
“어쨌든 놔둡시다. 지가 그러겠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렇게 명신 길드 헌터들의 방관 속에 강우석은 자율 행동을 하였다.
그가 선택한 것은 명신 길드 헌터들을 모루로 세운 뒤, 자신은 망치가 되는 것이었다.
오크들이 명신 길드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오크들이 명신 길드 헌터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을 때, 강우석은 어느덧 오크들의 뒤로 이동해있었다.
강우석의 움직임은 스승인 박한새를 닮았다.
사실 무공이란 것이 그렇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
그가 검을 휘두르면 반드시 오크 한 마리가 죽었다.
반응속도가 남다른 오크가 간혹 팔이나 도끼를 들어 막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또한 의미가 없었다.
막힐 거 같을 때면 그는 검기를 사용하였다.
물론 그의 검기는 박한새가 사용하는 진짜 검기와 다르게, 그저 내공을 억지로 검에 불어넣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검기는 검기였다.
그의 검에 베이면 단단한 오크의 근육도 종이를 베듯 쉽게 베어졌다.
“혼자서 몇 마리를 잡은 거야?”
“이거 봐. 죄다 칼에 썰린 흔적인데?”
“이게 D랭크 헌터라고? 아무리 요즘 랭크 판정이 엉망이라지만, 이건 조금 심한 거 아니야?”
헌터들은 그의 활약을 지켜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혼자서 10마리나 되는 오크를 잡았으니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도 강우석은 전투가 있을 때마다 팀의 리더인 C랭크 헌터보다도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금까지 강우석이 보여준 활약만으로도 그에게 들인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단순히 동급 헌터보다 훨씬 강한 전투력을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이 아니었다.
명신 길드의 길드장인 이윤미가 그를 데려온 이유는 바로 던전 이변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침 강우석은 던전 이변의 징후를 느꼈다.
박한새가 알려주었던 상황과 완벽히 일치하는 던전 이변의 징후를 기감으로 느꼈던 것이다.
“곧 마력 간섭 현상이 발생할 겁니다. 대비하십시오.”
이윤미가 기대했던 경보기 역할도 그는 똑똑히 해주었다.
덕분에 명신 길드는 던전 이변을 처음으로 겪었으면서도 단 한 명의 피해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와, 우석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우석이? 언제부터 성 빼고 부르셨어요?”
“우리 우석이, 나랑 얼마나 친한데! 형 동생이야, 인마!”
강우석의 도움을 연달아 받았으니, 당연히 명신 길드 헌터들이 강우석을 보는 눈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강우석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길드장님. 무량사 던전에 갈 때, 강우석 그 친구도 데려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 그거 좋은데요? 그 친구 한 명이 동급 헌터 다섯 명 역할은 하니, 가성비가 아주 좋습니다!”
명신 길드 간부들이 하는 말을 듣고 이윤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사람들. 강우석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그녀가 길드장인데도 강우석을 빌려온 일에 대해 은연중 반발을 드러내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확 달라져서는 강우석을 고평가하는 간부들의 모습이 그저 황당하게만 느껴졌다.
“무량사 던전은 던전 이변이 발생하는 곳도 아닌데, 강우석 헌터를 왜 데려가요?”
“꼭 던전 이변이 아니더라도 강우석 그 친구 정도면 반드시 데려와야 할 인재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주 불러와야 혹시 나중에 영입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강우석 헌터를 영입하겠다고요?”
“길드장님. 강우석 헌터는 인재입니다. 랭크 판정만 제대로 받는다면 B랭크는 그냥 받을 정도로 말입니다.”
B랭크라니?
강우석이 그 정도의 인재였단 말인가?
이윤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무공이란 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가 본데?’
명신 길드의 간부들은 하나같이 깐깐한 성격이었다.
그녀가 워낙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니, 그 뒤처리를 하다가 성격이 시니컬하게 바뀐 것이다.
그렇다 보니 간부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굉장히 까다로웠다.
그런 간부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인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리라.
‘강우석 헌터는 무공 아카데미에서 알려진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새삼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전방 50m 앞에 가스트 무리가 보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던전.
강우석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적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그리고 그의 예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좀비를 닮은 언데드 몬스터, 가스트 무리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그들을 습격한 것이다.
“역시, 강우석. 믿고 있었다고!”
“전투도 잘하면서 정찰도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딜러인지, 탱커인지, 하나만 하라고, 젠장!”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가스트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강우석이 예고하여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았기에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 실감되네.’
팀원들의 극찬을 들으며 강우석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인생은 헌터로 각성한 이전과 각성한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했었다.
무공을 익히기 전과 익히고 난 이후로 나뉘었다.
‘이게 다 사부님 덕이야.’
모두의 스승, 박한새.
강우석은 새삼스레 박한새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박한새가 아니었으면 공무원 헌터라고 무시받던 그가 이렇게 온갖 극찬을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 사람 있다.”
그때, 야명주로 가득한 공간에서 낯선 이들이 보였다.
무량사 던전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던전이었다.
한 길드가 독점하는 던전이 아니다 보니, 사람을 마주칠 수도 있었는데 안전지대에서는 특히 그랬다.
“말하는 거 보니, 일본인들인 거 같은데요?”
“일본인이든 말든, 뭔 상관이야. 신경 꺼.”
특이하게도 안전지대에서 쉬고 있는 레이드 팀은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다른 팀의 국적 따위야 알 바 아니었다.
명신 길드는 신생 길드였기에 다른 길드나 팀과 시비가 붙는 상황을 피해야 했다.
그래서 명신 길드 헌터들은 한쪽 구석으로 이동하여 얌전하게 휴식을 취하였다.
하지만 정작 일본 헌터들이 문제였다.
“이 사람, 뭐라는 거야?”
일본도로 보이는 검을 착용한 상태로 다가온 일본 헌터.
그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강우석을 보며 실컷 떠들어댔다.
“왜 우석이한테 저 지랄 하는 거지?”
“그러게. 딱 봐도 시비 거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판 뜨자는 거 아닐까요? 계속 검을 가리키고 있는데.”
“뭔 던전에서 대결이야? 괜히 감정 격해지면 대판 싸울 수도 있는 거 몰라?”
안전지대라고 무슨 게임처럼 목숨이 무적인 게 아니었다.
야명주 덕에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을 뿐이었다.
채앵-!
일본 헌터는 느닷없이 검을 빼들었다.
“미친! 갑자기 왜 검을 빼들고 지랄이야!”
“뭣들 하고 있어! 너희도 다 무기 들어!”
“그런데 저 사람, 어디서 본 거 같은데요?”
“일본 놈을 보긴 어디서 봐!”
“검술의 달인이라고 알려진 류구지 코스케라는 사람 아니에요?”
명신 길드 헌터들이 무기를 든 채로 그와 같은 대화를 나눌 때, 강우석은 일본 헌터와 눈빛을 교환하였다.
호승심으로 가득 찬 눈빛.
무공 아카데미에서 자주 겪어본 그 눈빛을 보고 강우석은 상대 헌터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나와 검술을 겨루고 싶어 하는 거구나.’
다른 명신 길드 헌터들의 무기는 하나같이 무지막지하였다.
대형 도끼에, 대검에, 방패를 든 이는 무슨 문짝을 들고 온 거 같았다.
이 중에서 오직 강우석만이 100cm가 안 되는 길이의 양날 검을 차고 있었다.
“제가 이자와 겨루겠습니다.”
“던전에서 굳이 대련하겠다고?”
대련을 피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무엇보다 강우석은 검술의 달인이라는 자와 한번 실력을 겨뤄보고 싶었다.
‘내 무공 실력은 아카데미에서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검술은 달라. 검술만큼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그는 검술 실력 하나만큼은 자부심이 있었다.
공무원 헌터 시절부터 롱소드로 빌런들을 때려잡았기 때문이다.
명신 길드 헌터들이 자리를 피해주자 강우석이 일본도를 든 헌터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의 눈짓을 알아본 일본 헌터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이내 강우석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