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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94화 (94/275)

#094화

“단전의 내공이 대략 1년 정도 모였군.”

강충구의 등에서 손을 떼며 그리 말하자, 강충구가 갑자기 사과하였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

“영약까지 주셨는데 겨우 1년 내공밖에 모으지 못했습니다.”

“그게 왜?”

“다른 헌터들은 처음부터 10년 이상의 내공을 쥐고 시작하는데, 저는 쥐톨만 한 내공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실 지금 시점에 강충구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시간 낭비일 수도 있었다.

강충구에게 무공을 가르쳐봤자 강해지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던전에도 들어가지 못하니 말이다.

강충구 한 명을 절정 고수로 만드는 데 할애하는 시간과 카르마라면, 재능 있는 헌터를 적어도 10명 이상 절정 고수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비각성자들에게 무공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굳이 강충구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의 재능.

“비각성자가 무공을 배운 지 보름도 안 돼서 단전을 만드는 게 보통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냐?”

“하지만 사부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돕고 안 돕고를 떠나서, 비각성자가 보름 안에 단전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재능이야. 심지어 너는 1년의 내공까지 보유하고 있잖아?”

아마 지금 시점에서 비각성자 중에 최강자를 가린다면 강충구가 단연코 순위권 안에 들지 않을까 싶었다.

특별히 무술 같은 건 배우지도 않았지만, 내공 1년을 품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어드밴티지였다.

기본기만 조금 더 연습한다면 무공을 배우지 않은 F랭크 헌터도 이기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강충구를 제자로 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공의 재능을 가진 비각성자야 따지고 보면 결코 적다고 보기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강충구는 무공을 창시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지.’

내가 세상의 모든 무공을 창시할 수는 없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특성이 있었고 나에게 맞는 무공이 다른 사람에게는 안 맞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특히 창이나 도끼, 활 같은 거는 아예 다뤄본 적이 없기도 했고.

“제가 직접 알아봤는데, 장성웅 헌터의 경제 사정이 많이 안 좋은 거 같습니다.”

“월급은 잘 나오고 있는데, 왜지?”

“집안에 빚이 많아서 공무원 헌터로 받는 월급을 전부 빚 갚는 데 쓰고 있습니다.”

“너의 말은 장성웅 헌터도 외부로 파견 보내자는 거지?”

“어디까지나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강충구는 일단 기본적으로 세심한 면이 있었다.

회귀 전에도 내가 놓치는 것을 종종 짚어주었는데, 비서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생들이 어느 순간부터 마치 사단장을 대하듯 나를 대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가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서 거리를 좁히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강충구가 내 비서로서 교육생들과 거리를 좁혀나가자, 교육생들의 고충을 나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 사정이 안 좋은 교육생은 누구인지.

어떤 무공을 더 적성에 맞다고 여기는지 등등.

외부로 파견 나갈 인원을 정하는 것에도 강충구가 큰 도움을 주었다.

‘역시 뽑길 잘했군.’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한국에서 던전 이변이 발생하는 곳은 모두 스무 곳.

그리고 이 스무 곳의 던전 중 거의 대부분이 무공 아카데미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무공 사용자는 안 데리고 가는 게 손해야. 꼭 마력 간섭 현상이 아니더라도 팀원으로서 이보다 든든할 수 없다니까?”

“펜테리움 같은 각성제에 의존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나아. 가성비도 장난 아니고.”

“진짜 그렇더라. 원딜 능력이야 기대할 수 없지만, 근딜에서는 사실상 최강인 거 같던데?”

“원거리 스킬을 보유한 무공 사용자는 원딜 능력도 엄청나더라. 교관으로 있는 신경철 헌터 봐봐. 스킬만 보면 무슨 A랭크 헌터의 스킬 같다니까?”

무공 아카데미의 전력이 외부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무공 아카데미의 힘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헌터 라이선스에는 분명 E랭크라고 적혀있던 이가 C랭크 이상의 무력을 선보였다.

“무공의 잠재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헌터라면 앞으로 무조건 무공을 배워야 할 거 같은데?”

“당연히 배워야지. 랭크가 기본적으로 두 단계는 상승하는데 말이야.”

“두 단계라니. 진짜 믿기지 않을 정도군.”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들과 함께 사냥했던 헌터들은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헌터로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세이서 길드가 실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틀린 것이었군요.”

“실수는커녕 그보다 완벽한 선택이 있을까 싶습니다.”

“무공의 잠재력이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낙원 길드도 진즉에 무공을 배웠을 겁니다!”

10대 길드라고 반응이 다르지는 않았다.

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무공을 배우려 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하였다.

일개 비각성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몸을 낮추었던 유지은 길드장이 오히려 부럽게 느껴질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젠 인정해야 합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의 시대를 만든 건 박한새란 이름의 비각성자라는 사실도 말이죠.”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일개 비각성자가 헌터 업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은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으니.

하지만 언제까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공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오성 길드, 세이서 길드 등을 보며 다른 길드들도 무공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로 하였다.

다른 길드들이 모두 무공 도입에 적극적인데, 성연 길드라고 다를 이유는 없었다.

“우리도 세이서 길드처럼 던전 소유권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차라리 돈으로 때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관건은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와의 관계입니다.”

“이석우 부길드장이 박한새와 친분을 쌓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되었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성연 길드의 간부들은 조급함을 느꼈다.

박한새와의 관계를 진전시키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거라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성연 길드의 길드장인 이세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성연 길드는 다른 길드에 비해 유리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공 교관 중 한 명이 성연 길드 길드장의 자제라는 사실이었다.

‘이석우 그놈이 일을 제대로 했으면 내가 이정에게 부탁할 일은 없었을 텐데. 쯧쯧.’

던전 이변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세훈은 무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들인 이석우에게 일을 맡긴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박한새는 일개 비각성자이지 않은가.

세이서 길드처럼 길드장의 몸으로 넙죽 숙이면서까지 무공이란 것을 배우고 싶지 않았다.

10대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더는 지켜볼 수가 없다.’

아들놈들을 믿고 맡겼건만, 결과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박한새와는 아무 성과도 없이 기 싸움만 하고 돌아왔다.

이정을 설득하는 일도 이복형제라서 그런지 성과가 없었고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그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정은 바깥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산본동에 거주한 채로 수리산 던전을 관리하며 무공을 수련하는 것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교관님, 던전 입구에서 다른 길드의 헌터들이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귀찮게 하는군.”

산본동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었고 수련할 수 있는 장소도 충분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근데 이런 건 귀찮단 말이지.’

교육생들이야 이미 수리산 던전에 완전히 적응하였기에 그들이 사냥 갈 때마다 따라갈 필요가 없는 건 좋았다.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무공 수련하는 것에만 투자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간혹 찾아오는 손님들이 문제였다.

무공 아카데미의 명성이 상승하면서 헌터들이 종종 수리산 던전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용건이 뭐지?”

“너는 뭔데 반말이야?”

“용건이 뭐냐고 물었다.”

이정은 불청객을 향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공이란 것을 좀 보여달라고 했건만 저놈들이 쓸데없이 비싼 척 굴고 있어!”

무슨 거창한 용건인가 했더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용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헌터가 한둘이 아니었다.

정부 기관인 이능관리부의 본부로 찾아가는 것은 어려워도 던전을 찾아오는 것은 쉬웠던 모양이다.

“꺼져.”

“뭐? 지금 뭐라고 했냐?”

“꺼지라고 했다.”

“너, 이 새끼.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아빠가 누군지는 네 엄마에게나 물어봐.”

이정의 시큰둥한 대꾸에 상대는 잠시 이해를 못 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분개한 얼굴로 소리 쳤다.

“날 우습게 보는 거냐!”

“성인이 돼서 자기 아빠를 남에게 물어보는 놈이니 우습게 보이긴 하는군.”

화를 참지 못한 상대는 이정에게 주먹을 날렸다.

원래도 다혈질인 상대지만, 사실 이정의 얼굴을 보다 보면 누구라도 열이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시니컬하면서도 뭔가 상대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는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이정의 상대가 되지 못 하였다.

이정에게 주먹을 얻어맞은 헌터는 그대로 바닥에 뻗었다.

수리산 던전을 관리하는 공무원 헌터들은 익숙한 일인 듯, 바닥에 뻗은 헌터를 붙들고 의사에게 데려갔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헌터들이 이정을 향해 접근하였던 것이다.

“너희들은 또 누구지?”

“성연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성연 길드?”

“도련님, 길드장님께서 부르십니다.”

‘도련님’이란 단어를 듣고 이정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듣기만 해도 짜증이 치솟는 단어였다.

“누구보고 도련님이라는 거지?”

“그야 이정 도련님에게 도련님이라 부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나를 다시는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도록. 그리고 길드장? 나를 보고 싶으면 직접 오라고 해. 나보고 오라 가라 하지 말고.”

“도, 도련님. 이세훈 길드장님의 부름입니다. 어찌 부름을 거부하십니까?”

“그렇게 놀랄 일인지 나는 모르겠는데? 이세훈이 대단한 인물인 것도 아니잖아?”

자신의 아버지를 실명으로 부르는 이정의 모습에 성연 길드 헌터들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정은 그들이 무슨 표정을 짓든 개의치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축객령을 내릴 뿐이었다.

‘아버지는 무슨. 나에게 아버지 따위는 없다.’

과거에는 이세훈에게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쳤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가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옛일이었다.

지금의 이정에게 있어 이세훈은 가족이 아닌 남이었다.

어떤 기대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아버지라 부를 일도 없을 터였다.

-조심하십시오.

‘음? 갑자기 뭘 조심하라는 거지?’

그때 갑자기 배후령, 아우구스의 말이 들렸다.

이정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순간, 멀리서 한 사내가 다가왔다.

2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장신의 사내였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수리산 던전을 향해 걸어가는 거구의 사내.

당연히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던 이정은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당신, 뭐야?”

“비켜라.”

“여기는 우리 이능관리부가 관리하는 던전이다. 던전에 가고 싶으면 다른 곳을 가.”

사내는 무표정한 눈으로 이정을 바라봤다.

“내 앞을 가로막는 자는……. 죽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압력이 이정의 어깨를 짓눌렀다.

-도망치십시오. 당신은 이길 수 없는 자입니다.

언제나 웃는 소리만 내며 여유를 부리던 그의 배후령이 처음으로 그를 걱정하는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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