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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96화 (96/275)

#096화

수리산 던전 입구에 도착한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미 아우구스가 보여준 영상으로 어느 정도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제자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광경을 보니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땅으로 내려와서 그리 말하자, 노홍만이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이정이 그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하였다.

노홍만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기라도 한 거 같은 모습이었다.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내가 이정을 안심시킬 때, 노홍만이 움직이며 내게 말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비키지 않으면 힘을 행사할 수밖에.”

“왜 저희를 공격한 겁니까?”

내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면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거 같았다.

‘역시 던전 점유율 때문인가?’

던전 정보창에 녹색 예언자라는 성좌가 적혀있었다.

노홍만의 배후령이 아마 녹색 예언자가 아닐까 싶었다.

“던전 클리어를 노리는 거라면 이미 우리가 클리어한 상태입니다.”

그리 말하자, 노홍만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 생겼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분노’였다.

“감히 그린스킨의 것을 빼앗다니.”

“애초에 이 던전의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만.”

“소유권의 기준은 우리가 정한다.”

예상했던 대로 말이 안 통하는 상대였다.

이런 상대와는 무력으로 대화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어차피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었다.’

내 제자들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는데 나로서도 가만있을 생각은 없었다.

무공 아카데미의 제자를 공격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리라.

노홍만이 바닥을 발로 내리찍었다.

그러자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렸다.

“피해!”

이정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외치기 전에 이미 보법을 펼친 상태였다.

내가 피한 자리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겼다.

보법을 펼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싱크홀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린스킨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익숙하다.’

보법으로 노홍만의 공격을 피한 나는 그대로 검을 뽑은 채 노홍만을 향해 쇄도하였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고 있는데도 노홍만의 얼굴에는 약간의 긴장감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내 검기가 자신의 팔뚝을 베고 지나갈 때도 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서걱-!

“…음?”

팔뚝에서 선혈이 흘러내리자, 노홍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진정한 검기는 결을 자를 수 있습니다.”

“결?”

그는 내 말을 듣고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무적일 것이라는 안일함. 그 안일함과 오만감이 패배로 이끌 것이다.’

그린스킨 소속의 헌터들은 하나같이 몸이 무지막지하게 단단하였다.

아마 강철 육체나 강철 피부 같은 내구력을 높여주는 패시브 스킬로 무장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심지어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설령 강력한 공격에 피를 보더라도 바로 회복하는 무지막지한 회복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이정이 고전하다가 결국 패배한 것도 이런 노홍만의 스킬들 때문일 것이다.

“죽여주마!”

방심하다 큰 상처를 입게 된 노홍만은 분기를 터뜨리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쿵!

2m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탱크의 진격을 보는 것처럼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제 탱크가 달려들어도 눈 깜빡하지 않을 사람이었기에 여유롭게 검을 고쳐 잡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먼저 공격을 시도한 것은 노홍만이었다.

아직 거리가 꽤 남아있었는데도 그는 대뜸 주먹을 날렸다.

그러자 주먹 형태의 에너지 덩어리가 그의 주먹에서 방출되었다.

바로 보법을 펼쳐서 피하려고 하였으나 주먹 형태의 에너지 덩어리는 엄청난 속도로 나를 추격하였다.

‘철권 스킬이 확실히 까다롭긴 하군.’

노홍만은 근접전에서도 무지막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원거리 스킬까지 가지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 날아오는 것이 바로 그의 원거리 스킬이었는데, 생긴 건 보잘것없어도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었다.

저 주먹에 맞는다면 아무리 내구력이 단단한 헌터라도 큰 충격을 받게 되리라.

물론 나라고 해서 멀쩡할 리는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맞지 않으면 될 일이다.’

거리를 벌리고서 천천히 철권의 결을 살폈다.

그러다 철권의 결이 확실하게 파악되자, 검기로 결을 그었다.

쓰기만 하면 무조건 맞는다는 필살 스킬, 철권.

하지만 내 검기에 닿자 그대로 공중에서 소멸되었다.

“철권을 없앴다고?”

노홍만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마 속으로 당혹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상처는 아직도 치료되지 않고 있는데 철권까지 통하지 않았으니까.

“이것까지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천하의 노홍만이 철권이 한번 막혔다고 패배를 인정할 리는 없었다.

서걱, 서걱, 서걱!

연달아 철권을 날리는 노홍만.

나는 철권이 날아오는 족족 검기로 베어냈다.

몇 차례 더 반복하다 노홍만은 결국 제풀에 지쳐 포기하였다.

나에게 철권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만 포기하십시오.”

“갈-!”

그가 포효하듯 ‘갈’을 외쳤다.

단순히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마치 오크 피어라도 되듯, 노홍만의 포효는 그 자체만으로도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졌던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들이 그의 포효를 듣고 비명을 질렀다.

나를 노린 공격인데도, 사방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 역시 아무런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그가 갑자기 포효를 내지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기에, 공격을 미처 막지 못하였다.

귓가를 타고 흐르는 선혈을 느끼며 나는 쓰게 웃었다.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였다.

약간의 대미지를 준 것으로 만족을 못 했는지, 그가 다시 맹렬한 기세로 나에게 돌진하였다.

나 역시 더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기에 마주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자,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내가 휘두르는 검은 그의 전신을 쉴 새 없이 베어냈다.

노홍만의 전신은 고작 몇 초 만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확실히 단단하긴 하군.’

공격이 얕게 들어갔다.

결을 노렸는데도 이 정도였다.

나 말고 다른 무공 사용자라면 그에게 상처 하나 낼 수 없을 것이다.

설령 약간의 상처를 입혔다 해도 바로 회복될 것이고.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대미지가 잘 안 들어간다면, 그만큼 더 많은 대미지를 넣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장기전은 내가 유리하였다.

무공을 사용하면 극도로 효율적인 내공 운용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포기하십시오.”

“으드득.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노홍만이 포기하지 않자 나는 더욱더 맹렬한 공세를 펼쳤다.

그는 끈질겼다.

승산이 없는 게 명확한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체력이 다할 때까지 주먹을 휘두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두 사람의 혈투를 멀리서 지켜보는 여인이 있었다.

여명회에서 암살자로 활동하는 그녀는 노홍만과 싸우는 박한새의 모습을 보고 쾌재를 불렀다.

‘기회다!’

호시탐탐 박한새의 목숨을 노렸던 그녀였다.

하지만 무공 아카데미에 모든 이목이 집중된 상태라 도저히 기회가 나지 않았었다.

박한새가 외부 활동도 거의 하지 않았기에 틈도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예기치 않은 기회가 생겨났다.

이능관리부 본부와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박한새가 노홍만이라는 강적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창 싸우고 있을 때 타락의 궁을 쏜다면 제아무리 박한새라도 피할 수 없을 거야!’

과거, 박한새에게 패배한 일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때는 그녀의 특기인 원거리 저격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었다.

박한새가 마치 그녀의 정체를 알기라도 한 듯, 갑자기 공격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거리 저격을 하기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루드밀라는 바로 타락의 궁을 꺼내들었다.

타락의 궁에다 마력 화살을 올려놓은 그녀는 두 사람의 대결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박한새가 저렇게나 강하다고!?’

비각성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력을 가졌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미 그는 전 세계에 알려질 정도로 유명인이었고, 루드밀라는 직접 그의 실력을 경험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노홍만을 상대로 보여준 박한새의 실력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여명회에서도 노홍만을 정면에서 상대할 자는 그리 많지 않은데, 박한새는 그런 노홍만을 압도하고 있었다.

노홍만에게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도저히 각이 안 나오는데?’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한새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박한새는 단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았다.

노홍만이 기절하여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조차 말이다.

루드밀라는 결국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타락의 궁의 소환을 해제하였다.

“신궁이 저격을 포기하는 건가?”

그때, 바로 옆에서 그녀를 향한 말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니, 전신을 회색으로 칠한 사내가 옆에 서 있었다.

“언제 왔냐?”

“신궁이 저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했지. 근데 아예 시도조차 안 할 줄이야. 이거, 실망스럽기 그지없군.”

“답답하면 네가 하든지.”

“난 포기. 나는 저격이 특기가 아니거든.”

“그럼 나한테 왜 지랄이야?”

“넌 저격이 특기니까.”

“시끄럽고 용건이나 말해.”

“내가 7사도의 명령을 받고 온 거는 알고 있겠지?”

“그래서?”

“7사도께서 궁금해하시더군. 신궁이 과연 혼자서 박한새를 감당할 수 있을지.”

루드밀라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자존심 강한 그녀도 박한새를 상대로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표정만 봐도 답변은 들을 필요가 없겠어.”

사내는 피식 웃고는 루드밀라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박한새는 우리에게 맡기라고. 신궁.”

“개죽음 당하는 꼴 잘 지켜볼게. 깔깔깔!”

루드밀라는 박한새를 상대로 자신감을 내비치는 사내의 모습이 그저 같잖게 느껴졌다.

자신도 포기했던 박한새를, 정말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7사도 본인이 직접 나선다면 말이야.’

하지만 7사도가 과연 박한새 때문에 한국으로 올지는 미지수였다.

박한새가 노홍만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탈리아 헌터인 로렌초란 사람도 박한새한테 졌다며? 노홍만이라고 뭐 놀랄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건 그래. 박한새가 박한새 한 건데, 이게 뭐 놀랄 일이라고.”

“사실상 우리나라 최강자는 박한새가 아닐까?”

“비각성자가 최강자라니. 진짜 대단하다.”

그들이 놀란 것은 오히려 박한새의 후속 조치였다.

“나는 노홍만을 쓰러뜨린 것보다 노홍만을 구치소에 집어넣었다는 것에 더 놀랐어.”

“S랭크가 구치소로 끌려간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니냐?”

“사실 이게 맞는 거지. 노홍만 그 새끼, 빌런이나 다를 게 없는 놈이잖아.”

“그러니까. 싸움만 났다 하면 집을 몇 채나 부수고 수십 명씩 부상시키는데. 힘세다고 그런 빌런 놈을 안 잡아갔던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박한새는 기절한 노홍만을 그대로 구치소에 집어넣었다.

S랭크 헌터의 위상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박한새, 그자의 실력은 어느 수준인 거지?”

“허. 노홍만을 이기다니. 무공이란 게 무슨 무적처럼 느껴지는군.”

일반 사람들은 박한새가 노홍만을 쓰러뜨린 일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A랭크 이상의 일부 헌터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S랭크 헌터들 사이에서도 상성과 강약은 분명 존재하였다.

그리고 그린스킨 소속인 노홍만은 S랭크 헌터들 사이에서도 명백히 강자로 인식되는 인물이었다.

로렌초를 이겼을 때와는 당연히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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