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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97화 (97/275)

#097화

“몸은 괜찮으십니까?”

병상에 누워있던 이정이 쓰게 웃었다.

“너는 이겼고, 나는 패배하였군.”

“사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부라…. 하긴, 틀린 말은 아니긴 해. 내가 최종적으로 꺾어야 할 상대가 너니까, 너는 절대 누구에게도 지면 안 되지.”

이 와중에도 나에게 강렬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이정이었다.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당분간 푹 쉬십시오.”

“쾌검은 언제 알려줄 거지?”

“몸이 나으시면 그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도 몸은 멀쩡한데?”

“의사 말 못 들으셨습니까? 나흘 정도는 쉬셔야 합니다.”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그는 일단 중환자였다.

몸은 다 나았어도 정신 건강을 위해서 며칠 정도는 휴식을 취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교수직 제안에 관해서는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진짜 내가 아카데미 교수가 되기를 원하는 거냐?”

“만약 교수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쾌검을 가르쳐주지 않을 건가?”

“혹,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겸임 교수로라도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겸임 교수든, 그냥 정교수든 교수가 되지 않기로 한다면?”

“그래도 저와 이정 교관님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단, 이정 교관님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 뿐입니다.”

“…거절할 수가 없게 만드는군.”

“이정 교관도 느끼셨을 거 아닙니까? 남을 가르치면 얻는 게 있다는 사실을.”

“글쎄. 나는 혼자 수련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아무튼, 교수가 된다고 손해 볼 것은 없을 겁니다.”

명예와 권력, 그리고 돈.

여기에 더해 각종 영약까지 주기적으로 지급될 예정이었다.

수련 시간은 조금 뺏기겠지만, 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메리트를 생각하면 교수가 되는 건 누구에게도 손해가 아닐 것이다.

“알았다. 교수가 되기로 하지.”

“교수가 된다고 해서 내가 존대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도록. 난 누구도 내 윗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어련하겠나.

성좌에게조차 반말하는 사람인데.

“편한 대로 하십시오.”

그렇게 병실을 나오자 귓가에 중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권속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좌님의 권속이기 이전에 제 제자입니다.”

-후후, 그렇군요.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노홍만이 왜 수리산 던전을 노린 겁니까?”

-후후, 그건 던전의 점유율 때문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노홍만이 노린 것은 수리산 던전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던전 정보창에 나왔던 녹색 예언자라는 성좌가 노홍만의 배후령일 거라는 내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다.

“한 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 성좌들은 왜 던전을 노리는 겁니까?”

늘 궁금했던 거다.

신적인 능력을 가진 성좌들이 왜 던전처럼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을 노리는 것일까?

-그건 던전이 부서진 세계의 파편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파편 말씀입니까?”

꽤 거창한 설명이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던전이란 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엄청난 가치를 지닌 거 같았다.

아우구스 덕에 던전의 가치가 무척이나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성좌로서 성장하고자 한다면 던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이성은이 그리 바쁜 와중에 던전을 꾸준하게 돌았던 이유도 던전 점유율 때문이었던 거 같군.’

하지만 던전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고 지금 당장 던전을 돌며 점유율을 올릴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던전은 주인이 거의 다 정해진 상태.

내가 아무리 명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다른 길드가 차지하고 있는 던전을 무작정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리산 던전이야 지금도 꾸준하게 점유율을 올리고 있으니, 구태여 나까지 움직일 필요가 없었고 말이다.

‘나는 무공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린스킨과의 충돌을 걱정하였지만, 다행히 그린스킨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노홍만이 비겁한 술수로 패배한 게 아니라, 정당한 승부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더 나설 명분이 없는 것이리라.

아무튼, 그린스킨과의 충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였다.

“기공 수련실은 연면적 9,500㎡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입니다.”

“몇 명까지 수용이 가능하지?”

“2층과 3층은 각각 150명씩 수용이 가능하고 4층의 수련 시설은 한 번에 100명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나는 송현동의 무공 아카데미 부지에 나와있다.

강충구가 건물 하나하나를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꽤 진척이 빨랐다.

“이쪽은 교육생들이 검술과 보법 등을 수련할 연무장입니다.”

심법을 수련할 기공 수련실과 심법 외의 무공을 수련할 연무장.

무공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은 이 두 가지였다.

“규모가 상당하군.”

“지하에는 교육생들이 대련을 펼칠 수 있게 대련장을 마련해두었습니다.”

정적인 기공 수련실과 다르게 동적인 무공 수련을 할 연무장은 그 크기가 더욱 상당하였다.

거의 경기장을 보는 듯하였다.

“이쪽부터는 기숙사입니다.”

기숙사도 중요하였다.

앞으로 무수히 많은 외국인들이 무공 아카데미에 입학할 터.

꼭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지방에서 오는 내국인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무공 아카데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기숙사 시설은 잘 갖춰놓는 게 중요하였다.

‘근데 이렇게 놓고 보니 10만 평도 작아 보이는군.’

10만 평.

처음에는 크게 느껴졌었는데, 빈 공터에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10만 평이 무척이나 작게 느껴졌다.

근처 부지가 매물로 나온다면 최대한 매입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거 같았다.

어차피 자본금이야 넉넉했으니 말이다.

며칠 정도 무공 아카데미 부지에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을 관찰하며 무공 아카데미가 독립한 이후의 커리큘럼을 구상하였다.

괜한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나이기에 최대한 동선을 따라서 커리큘럼을 구상했다.

하지만 커리큘럼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였다.

즉,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정을 가장 먼저 정교수로 채용한 나는 교관들을 한 명, 한 명 불러서 교수직을 제안하였다.

“흐흐, 시켜만 주신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신경철은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승낙하였다.

“그런데 제가 담당하게 될 과목은 뭡니까?”

“권법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권법이라. 딱 좋군요. 흐흐!”

그가 팔뚝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근육이 울퉁불퉁하게 솟아났다.

나는 그런 신경철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근데 이정, 그놈은 뭐를 담당한답니까?”

역시 그는 이정에게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았다.

다짜고짜 이정이 담당하는 과목을 물어보는 걸 보면 말이다.

“검법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검법이라. 이거 참 기대됩니다.”

“기대라면?”

“누가 더 많은 수강생을 받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확실히 기대되는 일이긴 했다.

두 사람의 대외 인지도는 거의 비등비등한 상황.

실력 자체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가르치는 과목도 검법과 권법이니, 꽤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였다.

신경철에게 확답을 들은 이후 다른 교관들도 한 명씩 집무실로 불러냈다.

두 번째로 온 이는 강병철이었다.

“저야 뭐 사부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꼭 제 뜻에 따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병철 교관이 진심으로 바라는 선택을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쭉 사부님 곁에 있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교수가 되는 게 맞는 거 아닙니까?”

강병철도 신경철이 그랬던 것처럼 시원하게 대답하였다.

물론 모든 이가 강병철과 같은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연봉은 얼마나 되는데요?”

김민경이 눈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런 김민경을 보고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5억이요? 나쁘지 않은 금액이긴 한데, 조금 아쉬운데요? 다른 혜택이 더 없으면….”

“5억이 아니라 50억입니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던 김민경은 50억이란 소리를 듣고 입을 떡 벌렸다.

“정교수는 50억, 부교수는 30억, 조교수는 20억. 이렇게 연봉을 책정할 생각입니다.”

김민경은 정신을 못 차렸다.

연봉 50억의 위력은 역시 엄청난 거 같았다.

“그, 그렇게 주고도 남는 게 있나요?”

“자본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공의 창시자인 내가 돈을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민간 길드에서 고액의 학비를 받고 위탁 학생을 받을 텐데, 여기서만 연 수백억의 수익이 나올 것이다.

수리산 던전을 관리하면서 꾸준히 수익이 나오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대선 후보들도 대대적인 정부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지.’

노홍만을 쓰러뜨린 일이 정계에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이윤세 후보의 반응만 봐도 그랬다.

비각성자를 뽑지 않은 일로 나에게 반감을 드러내던 이윤세 후보가 어느 순간부터 자세를 낮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더니 온갖 선심성 공약을 했는데, 대선 후보 중 누가 당선이 되든, 연 1,000억 이상은 지원받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하긴, 무공 아카데미를 한국에 유치할 수만 있다면 1,000억도 적은 거지.’

미국이라면 조 단위의 지원을 약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몇 번 접촉을 해오기도 했고.

어쨌거나 자본금은 넉넉하였기에 교수진의 연봉에 대해 인색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하, 할게요! 어차피 사부님과는 쭉 함께할 생각이었는데, 연봉까지 그렇게 챙겨준다면 무조건 해야죠!”

“저와 함께하는 선택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뭐를 담당하면 되나요?”

“경공과 보법을 담당해주시면 됩니다.”

“도망치는 게 제 특기긴 하죠. 헤헤. 알겠어요.”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가장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했던 김민경까지 설득하였으니, 나머지는 쉽게 설득할 수 있으리라.

“너는 심법을 담당하게 될 거야.”

“심법 말씀입니까?”

“너에게 마력 흡수 스킬이 있잖아.”

내가 마력 흡수를 거론하자, 주현근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참고로 심법은 워낙 중요하기에 나의 또 다른 권속인 고정희도 심법을 다룰 예정이었다.

‘일종의 외공을 담당할 사람도 필요한데….’

심법도 중요하고 검법이나 보법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육체 단련을 담당할 외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헌터의 신체가 제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단련을 한 것과 단련을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였으니까.

‘역시 외공을 담당할 인재는 문정민밖에 없나?’

현재 일류라는 경지에 도달한 이는 극소수였다.

그리고 문정민은 그 극소수에 해당하는 인재였다.

비록 지금은 조교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의 실력을 생각하면 정교수가 된다고 해도 다른 교수들이 불만을 표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문정민까지 채용하기로 결정하자, 이제 한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마지막은 김수민이었다.

대외 인지도는 과거, 멸절 길드와 충돌했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 김수민.

하지만 인지도가 어떻건, 그녀의 실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지금이라면 이정도 그녀에게 밀릴 것이 분명하였다.

그만큼 김수민의 실력은 독보적이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무공 아카데미에 더 남아있을 생각이 없어요.”

“교수가 될 생각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김수민의 단호한 답변을 듣고 나는 턱 끝을 쓰다듬었다.

이정도, 김민경도 아니고 그녀가 거절할 줄이야.

‘아니, 김수민이기에 거절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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