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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98화 (98/275)

#098화

나는 김수민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부총장이라는 직책에 연봉 100억 원을 제시한 것이다.

‘무공 아카데미의 부총장이 되는 것. 지금 시점에서 이보다 더 영예로운 자리는 없지.’

100억이라는 연봉이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위치였다.

모든 헌터가 우러러볼 위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수민은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듣고서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마치 무공 아카데미와 연관되는 것을 꺼려 하는 거 같습니다.”

“전 그저 저의 길을 가고 싶을 뿐이에요.”

“그럼 겸직 교수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교수 중에서 길드를 운영하거나 기업을 경영하고 싶은 이들이 분명 생길 것이다.

더 높은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었으니.

무공 아카데미에서 탑이 되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라도 탑이 되고 싶어 할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기에 다른 직업을 가진 채로 교수 일도 하는 겸직 교수 제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아마 이능관리부 출신 일부는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안 될 거 같아요.”

“혹시…. 저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워서 그렇습니까?”

김수민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하는 이유가 뭘까?

조건이 야박해서 그런 것은 아닐 거다.

그녀가 욕심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으니.

가장 유력한 것은 역시 ‘복수’였다.

‘회귀 전의 김수민도 어느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순간, 바로 복수를 시작했었지.’

내가 과거를 바꾸었다고 해서 김수민의 복수 대상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수민은 무공을 배우는 순간에도 복수를 갈망하고 있었을 터.

그리고 로렌초라는 S랭크 헌터조차 쓰러뜨릴 수 있는 실력이 되자, 그때 결심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복수를 실행에 옮기자는 결심을 말이다.

“지금까지 무공 도입에 관심이 없었던 10대 길드들도 이제는 무공 도입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죠. 멸절 길드의 안지호 길드장은 본인이 직접 무공을 배우려고 저를 매일같이 찾아오고 있고 말입니다.”

한국에서의 무공에 대한 인식은 이제 좋아진 정도를 넘어 과대평가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무공만 익히면 최하위 헌터도 S랭크 헌터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인식이 생길 정도였다.

멸절, 낙원, 볼케이노 등등.

나와 관계가 썩 좋다고 보기 어려웠던 10대 길드들이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였다.

유지은이 그랬던 것처럼 길드장의 몸으로 직접 나를 찾아와 온갖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들이 무공을 배우고 나면 승산이 없을 거 같으니, 그들이 무공을 배우기 전에 복수를 실행에 옮기려는 거 아닙니까?”

정곡을 찌른 것일까?

김수민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역시 내 생각대로 그녀는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거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그녀가 회귀 전의 김수민처럼 빌런이라 불리게 놔둬야 하나?

‘그럴 순 없다.’

김수민의 지분율은 정말 어렵게 끌어올려서 85%가 된 상태였다.

워낙 헌터로서의 역량이 높았기에 지분율도 그만큼 더디게 오른 것인데, 나로선 이런 노력을 허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복수를 포기하라 할 수도 없겠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버지의 복수인데 말이야.’

그녀의 사정을 모를 때면 모를까.

지금은 김수민의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이 가면은 뭐죠?”

“정체를 숨기는 데 도움을 줄 아이템입니다.”

“이걸 왜 저에게…?”

의아함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광기의 가면을 올려주었다.

‘그녀의 복수는 정당한 복수다. 그러니 눈 감고 귀를 막는 수밖에.’

김수민은 광기의 가면을 내려다봤다.

낯익은 가면이었다.

과거, 무모하게 던전을 돌아다녔을 때 위기에 처한 그녀를 구했던 게 바로 이 가면을 쓴 사내였다.

‘그때, 나를 구해주셨던 분이 사부님이었구나.’

비각성자로 알려진 박한새가 어떻게 던전 속으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수민이 지금 느낀 감정은 단 하나.

고마움이었다.

김수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었고 그녀의 실력을 월등히 키워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복수를 암묵적으로 도와주려 하고 있다.

어쩌면 무공 아카데미 전체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김수민으로선 박한새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새 씨~.”

“유지은 길드장님, 무슨 일입니까?”

“아이, 그렇게 딱딱하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저는 용건을 물었습니다만.”

내가 딱딱한 목소리로 묻자, 그녀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 태도가 달라질 일은 없었다.

결국,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소식은 들었어요.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를 뽑고 계신다면서요?”

“저도 관심이 있는데, 저를 무공 아카데미 교수로 채용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10대 길드의 길드장이 일개 교수직을 노리다니.

이 소식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이 경악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전에 저에게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예? 한새 씨에게 할 말이요? 음, 사랑 고백 말씀하시는 건가.”

유지은은 능글맞은 목소리를 하더니 내 무릎을 쓰다듬었다.

나는 그런 유지은의 손을 붙잡고는 차갑게 말했다.

“수리산 던전이 그린스킨이 노리는 던전이란 사실을 알고 계셨지 않았습니까?”

장난을 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유지은이 슬며시 손을 뒤로 내뺐다.

“알고는 있었죠. 근데 저는 설마 한새 씨에게 소유권을 넘긴 뒤에도 노홍만 헌터가 수리산 던전을 노릴 줄은 몰랐어요.”

“정말 모르셨습니까? 노홍만의 배후령이 녹색 예언자인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 그걸 어떻게 아셨죠?”

처음으로 당혹감을 내비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반응만 봐도 그녀가 결코 선의로 나에게 수리산 던전을 넘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유지은 길드장의 배후령이 황금 사과의 주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유지은은 입을 떡 벌렸다.

노홍만의 배후령에 이어 자신의 배후령까지 알아차렸으니, 그녀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새 씨는 정말 모르는 게 없네요. 분명 비각성자면서 헌터들도 잘 모르는 성좌의 진명을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제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닙니다만.”

“…그렇네요.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죠. 한새 씨 아니, 박한새 님. 이렇게 허리를 숙여 사과드리겠습니다.”

내가 거듭 압박하자 그녀는 결국, 정수리를 보이며 사과하였다.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정도의 일로 그녀와 척을 질 수는 없었다.

중요한 정보를 숨긴 것은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으니.

“다시는 한새 씨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행동은 하지 않을게요.”

“그럼 성좌와 관련된 정보들도 제게 넘겨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한새 씨에게는 어떤 정보든 대가 없이 넘겨드릴게요.”

만족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녀의 정보력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 정보가 성좌와 관련된 정보라면 단연 최고일 테고 말이다.

“대신, 교수직은…?”

어떻게 해서든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고 싶었나 보다.

“왜 그렇게까지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야 한새 씨를 자주 볼 수 있으니까요.”

“방금 전에 저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앗, 그랬었죠? 헤헤. 근데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에요. 물론 교수가 되면 얻게 될 명예와 영향력도 무시 못 하지만 말이죠.”

명예와 영향력이라.

하긴,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을 생각하면 교수 자리에 대한 메리트는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니 말이다.

무공 아카데미 설립은 점점 현실화되어 갔다.

정교수는 이미 멤버가 다 정해진 상태.

부교수, 조교수도 상급반이나 조교를 하는 이들 중에서 선발할 예정이었다.

“초빙 교수가 되라고?”

“예, 무공 아카데미에 가끔 오셔서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강의 주제는?”

“길드를 운영하는 것이든, 아니면 던전을 사용할 때 알아야 하는 지식이든. 정승호 길드장님이 주제로 삼고 싶은 것이면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화영 길드의 길드장인 정승호에게도 교수직을 제안하였다.

초창기부터 헌터 생활을 이어왔던 정승호였다.

무공을 배우면서 S랭크 헌터를 뛰어넘는 무력까지 얻게 된 상태.

학생들로선 그에게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자네에게 받은 게 많으니,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알겠다. 자주 시간을 내보도록 하마.”

유지은 길드장에 이어 길드 랭킹 11위의 화영 길드 길드장까지 교수로 합류하였다.

실로 휘황찬란한 교수진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에 로렌초도 빠질 수 없지.’

S랭크 헌터인 로렌초도 교수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앞으로 로렌초 말고도 무공 아카데미에 합류하게 될 외국 헌터들이 적지 않을 터.

어벤져스급의 화려한 교수진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이 올라갈수록 반대로 위상이 내려가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헌터 협회였다.

“안지호 길드장께서, 주말에 일정이 풀로 잡혀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합니다.”

“내가 부르는데도 시간을 내지 않겠다고?”

헌터 협회의 회장, 김범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느꼈다.

무공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그 어떤 헌터도 그의 초대를 거절하지 않았었다.

S랭크 헌터인 오성 길드 길드장을 제외하면, 10대 길드의 길드장들조차 그가 부르면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였다.

하지만 박한새가 무공을 창시하고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김범수의 영향력도 예전만 못하였다.

‘빌어먹을.’

김범수는 요즘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뒷방 늙은이가 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헌터 협회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회장인 그의 영향력도 점점 감소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대선 후보들조차 그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대선 후보들이 그의 집무실 문턱이 닳을 정도로 매일같이 드나들었었는데 말이다.

“회장님. 아무래도 이제는 무공을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공식적으로 헌터는 무공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라는 건가?”

“대세는 정해졌습니다.”

협회 간부의 말에 김범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세계가 무공을 인정하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헌터 협회는 무공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헌터는 아예 랭크 측정이 불가할 정도였다.

협회의 영향력이 감소한 데는 이런 시대를 역행하는 조치들이 큰 영향을 끼치긴 했을 것이다.

‘박한새, 그 비각성자 놈을 인정해야 한단 말인가.’

일개 비각성자를 헌터들의 스승으로 인정해야 한다니.

헌터를 ‘선택받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김범수로선 끔찍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인정해야 할 때였다.

박한새가 비각성자를 대거 뽑기로 한 이유가 헌터 협회의 적대 행동 때문일 거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론은 더욱 안 좋아졌다.

여기서 더 적대 행동을 이어나간다면 헌터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헌터 협회가, 헌터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박한새, 그놈에게 꼭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이번 주에 한번 만나자고 연락해봐.”

결국 김범수는 박한새와 직접 만나 협상을 하기로 하였다.

무공을 인정할 테니 헌터 협회의 기득권은 인정해달라는 식의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한새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며 단호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도대체 그놈은 뭐 하는데 나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거야?”

분기를 참지 못한 김범수에게 협회 간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하였다.

“국제헌터협회 회장이 박한새 총장을 보러 한국에 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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