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화
마이클은 멍한 얼굴로 술을 마시던 카일을 툭툭 쳤다.
“카일, 혼자서 뭐 하는 거야?”
“내버려 둬.”
“여자에게 차이기라도 했냐? 예나 지금이나 병신 같은 새끼네. 크크.”
카일이 맥주잔을 강하게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내버려 두라고!”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야, 뭐 해?”
소란을 들었는지 마이클의 친구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아니, 이 새끼가 나에게 화를 내잖아.”
“카일이?”
“어, 헌터 됐다고 아주 우리를 우습게 보는 모양이야.”
“에이 설마. 그래봤자 F랭크인데, 크크.”
F랭크라는 말을 듣자, 카일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헌터도 아닌 것들이 나에게 F랭크라고 놀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웃으며 흘려들었을 말이다.
하지만 펜테리움을 복용하고부터 그는 이상할 정도로 화가 많아졌다.
평생 싸움 한번 한 적이 없었던 그가 시비만 붙었다 하면 바로 싸움이 날 정도였다.
“F랭크! F랭크가 뭐 어때서!”
카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치자, 마이클과 그의 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놀려도 바보처럼 웃기만 했던 카일의 반응이 아니었다.
“이 새끼, 진짜 왜 이래?”
“뭐를 잘못 먹었나 본데?”
“오, 제임스 왔다!”
“제임스, 여기야!”
제임스가 왔다는 말을 듣고 카일은 몸을 움찔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제임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자랐던 카일은 헌터가 된 이후로도 과거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아니, 트라우마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도 제임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였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제임스 역시 헌터였기 때문이었다.
“카일, 이 겁쟁이 새끼도 여기 있었네. 요즘 통 안 보이더니.”
제임스가 카일을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마이클을 비롯한 친구들도 헌터인 제임스가 합류하자 카일을 실컷 놀리기 시작하였다.
“여자에게 차였는지, 아주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더라고.”
“오, 그래도 겁쟁이 카일답지 않게 여자한테 고백은 했나 봐?”
“여자 아닌 거 아니야?”
“고백도 안 해보고 차였을지도 모르지. 크크.”
카일은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예전이었으면 뒷머리를 긁적이며 받아주었을 텐데, 지금은 도저히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 이놈들이 말을 할 때마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 거지?’
마치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 있는 거 같았다.
“귀찮게 굴지 말고 꺼져!”
“뭐? 지금 우리보고 꺼지라고 한 거냐?”
제임스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하자, 마이클이 이죽거렸다.
“아까도 저러더라. 우리한테 화내고 난리도 아니었어.”
“하! 겁쟁이 카일, 못 본 사이에 건방져졌네?”
“제발 입 좀 닥쳐. 네 입에서 나는 냄새가 역겹지도 않냐?”
카일의 도발을 듣고 제임스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분노한 얼굴로 카일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새끼, 다시 말해봐. 뭐라고 했…. 컥!”
멱살이 잡히자 카일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날렸다.
‘별거 아니잖아? 내가 이딴 놈에게 겁을 먹었었던 거야?’
아무리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다고 해도 그의 주먹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였다.
D랭크 헌터치고는 허접한 반사신경이 아닐 수 없었다.
“너, 뒤졌다. 절대 가만 안 둬.”
제임스가 스킬을 쓰려는지 카일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당연히 그것을 그냥 지켜볼 카일이 아니었다.
스킬이 날아오기 전에 먼저 제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 싸운다!”
“제임스 이겨라! 제임스 이겨라!”
마이클과 친구들은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서 미친 듯이 흥분하였다.
헌터와 헌터의 싸움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볼 기회가 언제 또 있겠는가.
손님들도 마이클을 따라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카일이 제임스를 쓰러뜨린 채 주먹을 멈추지 않고 계속 휘두르자, 들끓었던 열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제임스가 진 거야?”
“아니, 그보다 저거 저대로 놔둬도 돼?”
“그, 그러게.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
제임스의 얼굴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아무리 헌터가 강인한 육체를 가졌다고 해도 저런 상황에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마, 말리자.”
“카일! 그만해! 이러다 죽겠어!”
마이클이 자신의 몸을 붙잡자 카일은 불쾌감을 느꼈다.
마치 더러운 좀비가 몸에 달라붙은 기분이었다.
“노, 놓았으니까. 진정해, 친구.”
“내가 놓으라고 했지!”
멀찍이 물러났음에도 역겨운 냄새가 계속 풍기자, 카일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다.
“헌터가 일반인을 때렸어!”
이상하게도 여성의 비명까지 역겹게 느껴졌다.
카일은 역겨운 것이 보일 때마다 주먹을 휘둘렀다.
그럴 때마다 비명은 점점 커져 갔다.
‘조용히 해! 제발 닥치라고!’
비명을 지르는 모든 것이 역겨웠다.
남자, 여자, 노인.
카일은 역겹게 느껴지는 모든 것에 폭력을 행사하였다.
“미, 미쳤어. 저놈, 완전히 미쳐버렸다고!”
누군가가 자신을 미친놈이라고 불렀지만 카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미친놈이라고 외친 그자의 입에서도 역겨운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인간은 모조리 죽여야 해.’
“부회장. 캘리포니아 술집에서 일어난 헌터 난동 사건 소식은 들으셨죠?”
“듣긴 들었습니다만, 늘 있는 사건사고 아닙니까?”
“20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다쳤어요. 그런데도 늘 있는 사건사고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 제니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부회장, 테일러는 어깨를 으쓱하며 무심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분명 안타까운 소식인 것은 맞지만, 회장님께서 직접 관심을 기울일 만한 사건은 아닙니다.”
“펜테리움과 관련된 사건인데도 그런가요?”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부회장이 말했죠. 던전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펜테리움 사용을 장려해야 한다고.”
“그 덕에 던전 이변으로 발생하는 헌터들의 피해는 급감하였습니다.”
“펜테리움을 과다 복용할 경우, 헌터의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거, 부회장도 들어보셨죠? 이 사건은 절대 우연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에요.”
“전 처음부터 질 낮은 마약인 펜테리움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부회장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펜테리움은 필요악입니다. 누가 총기 난동 사건을 일으켰다고 총을 없앨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제니퍼는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던전 이변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제대로 증명된 것이 하나도 없는 펜테리움 복용을 장려하다니.
‘분명 펜테리움을 유통하는 마피아에게 엄청난 뒷돈을 받았겠지?’
한때는 영웅이라 불렸던 이가, 이렇게까지 타락했다는 게 가슴 아팠다.
“전 아무리 생각해도 펜테리움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요.”
“유통을 차단하면 애꿎은 헌터들이 던전 이변으로 피해를 보게 될 겁니다.”
“던전 이변에 대응하는 방법이 꼭 펜테리움만 있는 것은 아니죠.”
제니퍼의 그 같은 말에 테일러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무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펜테리움 같은 마약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죠?”
“무공을 창시한 이는 일개 비각성자입니다.”
“그래서요?”
“공식적으로 무공을 인정하게 된다면 전 세계의 헌터들이 우리를 우습게 볼 겁니다.”
“결과를 뻔히 봤으면서 결과를 외면하면 그게 더 우습게 보이는 행태 아닐까요?”
“그 비각성자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아내려고 하십니까?”
“글쎄요. 그건 직접 만나보고 결정할 일일 거 같네요.”
“설마 회장께서 직접 한국에 가시겠다는 겁니까? 상대는 일개 비각성자입니다!”
일개 비각성자라.
과연 무공의 창시자를 일개 비각성자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제는 미국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지.’
그렇기에 박한새와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한 명의 헌터로서 무공에 관한 소문이 어디까지가 진짜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김수민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표가 목표다 보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수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파장이 작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직은 조사만 하는 거 같군.’
오래 기다린 만큼 철저하게 준비하려는 거 같았다.
아니면 이미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일을 진행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부디 회귀 전처럼만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네.’
회귀 전의 그녀는 악명 높은 빌런이었다.
그리고 그 악명을 쌓기까지 무수히 많은 헌터가 죽었다.
나로서는 당연히 회귀 전의 일이 재현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국제 헌터 협회라.’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이 직접 나를 찾아온다고 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랐었다.
나는 늘 ‘협회’와는 사이가 안 좋았다.
그건 국제 헌터 협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어떤 행동이 나비효과를 가져다주었는지,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이 먼저 나에게 접촉하였다.
회귀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니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 지금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이 공항에 막 도착했다고 합니다.”
마침 강충구가 그와 같은 보고를 해주었다.
“마중 갈 준비를 해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나 양복을 꺼내 입었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이니 그래도 마중을 나가줘야 할 거 같았다.
로비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제니퍼 회장이야? 사진보다 훨씬 예쁜데?”
“무슨 할리우드 배우처럼 생겼네.”
“나이가 몇이랬더라. 아무튼, 적은 나이는 아니었는데, 완전히 동안이야.”
나는 뒷짐을 진 채 로비 중앙을 향해 다가오는 십수 명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중앙에 있는 여회장의 미모를 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하지만 나는 회장의 미모보다는 회장의 곁을 지키는 경호원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경호를 맡은 헌터들의 실력이 썩 뛰어나 보이지는 않은데?’
국제 헌터 협회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기구였다.
당연히 회장의 권력도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휘하로 둔 헌터들의 실력이 한눈에 봐도 형편없게 보였다.
근접 경호를 맡은 이들이라면 적어도 B랭크 이상은 되어야 할 텐데 죄다 C랭크 이하인 것을 보면 말이다.
‘회귀 전에, 제니퍼 회장이 암살당한 것이라는 음모론이 있었지. 경호 상태를 보니 마냥 음모론으로 치부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그녀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박한새라고 합니다.”
“미스터 박. 만나서 반가워요. 꼭 뵙고 싶었어요.”
나를 꼭 만나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이 왠지 진심처럼 느껴졌다.
악수하려고 그녀의 곁에 다가가자,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이 냄새는…?’
파롤의 졸개들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눈을 번뜩이며 냄새의 진원지를 확인하였다.
‘이자로군.’
수행원처럼 보이는 이였다.
하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여명회의 신도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