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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01화 (101/275)

#101화

최시훈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뒤에서 들려온 절삭음은 몬스터가 낼 만한 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사람이 검으로 무언가를 벤 소리였다.

‘하지만 마력 간섭 현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이 이어지는 동안 절삭음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자 최시훈은 죽음이 다가오는 기분을 느꼈다.

최시훈은 안간힘을 쓰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 살려주세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그의 목소리는 팀원들이 ‘겁쟁이’라고 놀리는 걸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최시훈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살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던 것이다.

팍!

그러다 무언가가 그의 뒤통수를 가격하였다.

최시훈은 단말마의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바닥으로 쓰러지며 생각했다.

‘내가 죽는다고?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만약 이게 죽음이 맞다면 실로 허무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철푸덕.

가면 쓴 괴인은 칼등에 맞고 쓰러진 사내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죽였어야 했나?’

자신이 멸절 길드의 헌터들을 암살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된다.

아직 노려야 할 대상이 많은데 벌써 적의 경계심을 끌어올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자는 배신자가 아니야.’

예전 같았으면, 상대가 관계자든 아니든, 살인멸구하여 입을 없애는 것을 우선시했을 것이다.

복수에 눈이 멀어 애꿎은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같은 길드 소속이니 애꿎은 희생자란 생각도 들지 않았을 테고.

하지만 괴인, 아니 김수민은 박한새와 교류하며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생긴 상태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애꿎은 희생자가 나오게 할 필요는 없어.’

꼭 베어야 할 이에게만 검을 휘두르리라.

이것이 복수에 나선 그녀의 다짐이었다.

“다음은 볼케이노다.”

멸절, 볼케이노, 낙원.

이렇게 세 길드가 그녀의 복수 대상이었다.

참고로 멸절 길드 소속의 배신자들은 거의 처벌이 끝난 상태였다.

일선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전부 제거했으니, 남은 것은 간부와 길드장뿐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안지호 길드장부터 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 세웠던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로 하였다.

볼케이노의 배신자들부터 처리한 뒤 그 다음 낙원을 노리리라.

그렇게 그녀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세 길드의 핵심 멤버가 된 배신자들의 제거가 끝나면 그때부터 각 길드의 지도부를 노릴 것이다.

“내년부터 무척이나 바빠지겠습니다.”

“바빠야 정상이지. 수천 명의 학생들이 입학할 텐데.”

“이정 교관은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덜 싫어하네요? 일 많아져서 엄청나게 싫어할 줄 알았더니.”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투덜거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저는 김수민 교관처럼 이정 교관이 아예 아카데미를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떠나길 바란 것은 아니고?”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

“그나저나 김수민 교관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겁니까?”

“뭐 뻔하죠. 이미 배울 거 다 배웠으니, 부귀영화를 노리고 나간 거 아니겠어요?”

“부귀영화를 노릴 거면 차라리 겸직 교수로 일하는 게 나았을 텐데.”

“외국에서 영입 제안이 왔나 보죠. 김수민 교관의 실력을 아는 곳이라면 몇백억 정도는 부르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그래봤자 김수민 교관은 격체전력을 사용할 줄 모르지 않습니까?”

“그걸 외국인들이 알겠어요?”

회의가 끝나자 교관들은 잡담을 나누었다.

가장 많이 다뤄지는 주제는 역시 김수민이었다.

교관을 관두고 야인 신분이 된 김수민.

다른 이들로선 그녀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멸절 길드에 이어 볼케이노 길드의 1군 레이드 팀이 던전 이변으로 떼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마침 이어지는 주제도 김수민과 관련된 주제였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던전 이변 하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서 떼죽음을 당하다니. 10대 길드도 이제 옛말이네.”

“그러게요. 아니, 진즉에 무공을 배웠으면 될 일인데, 왜 무공을 안 배워서 그런답니까.”

“직접 무공을 배울 필요도 없죠. 우리 교육생들을 데리고 가면 되니까 말이에요.”

“뭐 신경 쓸 필요 있나? 어차피 남 일일 뿐이다.”

“그러다 성연 길드도 당하면 어쩌려고요?”

“성연 길드? 그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성연 길드를 거론하는 거지?”

“이정 교관이 상관없다고 말하면, 저도 할 말이 없네요.”

교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김수민 교관의 복수가 시작되었군.’

꽤 오래 조용하기에 복수를 포기했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김수민은 오히려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복수를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벌써 죽은 자만 스무 명이 넘는다지?’

실로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아무리 던전 이변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했다고 해도, 10대 길드의 헌터들을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암살하다니.

새삼스레 내가 엄청난 인재를 육성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물론 이게 잘한 일인지, 아니면 훗날 후회하게 될 일인지는 아직도 아리송했지만 말이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잡담을 나누던 교관들은 내가 회의 종료를 선언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교관들 중, 두 명의 이름을 불렀다.

“강병철 교관님과 김민경 교관님. 이렇게 두 분은 잠시 남아주시길 바랍니다.”

내 말에 강병철은 즉각 대답하였고 김민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늦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다른 교관들이 나가고 두 사람만이 남자, 나는 ‘권속 후보창’을 열었다.

[권속 4/10]

[주현근]

[고정희]

[강병철]

[김민경]

원래는 주현근과 고정희, 이렇게 둘밖에 없던 권속 후보창이 갑자기 네 명으로 늘었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지분율 100%를 달성하면서 내 권속이 된 것이다.

“아마 두 분은 최근 들어 기이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기이한 경험이라면?”

“갑자기 눈앞에 홀로그램 같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김민경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였다.

하지만 강병철은 그녀와 달리,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안 그래도 사부님께 가장 먼저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사부님, 저 성좌와 계약하게 된 거 같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헉. 알고 계셨습니까?”

“‘무에서 무를 이룬 자’, 그게 접니다.”

내 충격 고백에 김민경은 입을 떡 벌렸다.

이때만큼은 강병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충격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 사부님이 서, 성좌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허어.”

더 의심하지 못하게 나는 그들에게 스킬을 선물해주었다.

주현근과 고정희도 가지고 있는 마력 흡수란 스킬이었다.

“어? 마력 흡수가 뭡니까?”

“선물이라고요?”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았습니까. 주현근 교관과 고정희 교관이 격체전력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설마 이 스킬이 격체전력을 대신한 건가요?”

“예, 맞습니다. 이제 이 스킬로 여러분들도 격체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강병철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써봐도 되겠습니까?”

“저에게 써보십시오.”

내가 팔을 내주자 그가 감사하다고 외치고는 마력 흡수를 사용하였다.

놀란 표정을 짓던 김민경도 갑자기 내 왼팔을 붙잡았다.

“저도 해봐도 될까요?”

“그러십시오.”

두 사람의 내공이 이내 내 몸속을 헤집었다.

이내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게 진짜 되네?”

스킬까지 내가 선물로 주었으니 두 사람으로선 더는 내 말을 의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근데 사부님. 어떻게 성좌가 되신 거예요? 아 아니면, 원래 성좌였다가, 사람으로 변신한 건가?”

나를 성좌로 인정한 김민경은 호기심이 많은지 반짝이는 눈으로 궁금증을 드러냈다.

“원래는 평범한 비각성자였습니다. 무공을 창시하고 성좌가 된 경우죠.”

“아, 평범한 사람도 업적을 세우면 성좌가 될 수 있나 봐요!”

내가 어깨를 으쓱일 때, 강병철이 외쳤다.

“‘무에서 무를 이룬 자’라는 칭호를 봤을 때 사실 사부님이 떠오르긴 했는데, 진짜로 사부님이 성좌였다니. 정말 사부님이 미치도록 존경스럽습니다!”

안 그래도 나를 볼 때면 늘 뜨거운 눈빛을 보내던 강병철이었다.

그런데 내가 성좌라는 걸 알게 되자, 나를 보는 눈빛이 더욱더 강렬해졌다.

‘저러다 광신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낙원 길드의 1군 헌터들이 던전 속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아, 볼케이노랑 멸절 놈들 때문에 꼰대의 잔소리가 너무 심해졌어.”

“걱정이 되나 보지.”

“걱정할 게 뭐 있다고? 우리가 그놈들처럼 멍청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하긴, 맞는 말이긴 해. 그깟 던전 이변 때문에 20명이나 당하다니.”

“그러니까. 그놈들이 우리와 같은 10대 길드라는 게 쪽팔릴 정도라니까.”

헌터들이라면 던전 이변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 이변이 벌어지면 일단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마력이 요동을 친다.

랭크가 높은 헌터라면 요동치는 마력을 금방 잠재울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몇 분 동안은 스킬 사용은 꿈도 못 꾸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던전 이변을 두려워하였다.

하지만 낙원 길드의 헌터들은 던전 이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몇 개 빨았냐?”

“오늘? 몇 개 했더라. 담배 피우러 갈 때마다 한 개씩 먹었던 거 같은데.”

그들이 던전 이변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그것은 그들이 펜테리움 복용자이기 때문이었다.

“요즘 볼케이노랑 멸절에서도 무공을 배우려고 안달 났다더라. 무공 아카데미 총장이라는 놈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던데?”

“푸하하하! 비각성자에게 무릎을 꿇는다고?”

“진짜 병신들이네.”

“뭐, 1군들이 던전 이변으로 다 뒤졌으니 그런 거겠지.”

“던전 이변이 무서우면 약을 쓸 것이지, 그놈들은 헌터로서 자존심도 없나?”

그렇게 낙원 길드의 헌터들은 던전 이변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던전 속에서 여유롭게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여유가 넘치는 것은 아니었다.

“재상아. 너, 뭐 그렇게 긴장했냐? 너답지 않게.”

“던전이니, 적의 습격을 경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여기는 초입인데, 적은 뭔 적이야.”

“적이 몬스터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야, 우리 낙원 길드야. 낙원 길드. 어떤 헌터가 우리를 건드려?”

“너는 한울 출신의 멤버들이 당하고 있는 게 우연이라고 생각해?”

한울.

과거 10대 길드가 아닌, 5대 길드 시절,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던 길드였다.

지금의 10대 길드인 멸절, 낙원, 볼케이노 이렇게 세 길드도 한울의 일개 하청 길드로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한울은 길드장이 던전에서 의문사를 당한 뒤 갑자기 무너졌다.

그리고 한울 소속이었던 헌터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멸절과 낙원, 볼케이노 길드로 소속을 바꾸었다.

“설마 한울의 잔당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거냐?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재상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사실 그도 100%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조심성이 많은 그이기에 만약을 대비하는 것일 뿐.

‘지금에 와서 한울 길드장의 복수를 할 사람이라면 가족밖에 없지.’

모두가 한울을 잊었지만, 가족이라면 또 모른다.

힘을 숨기고 몰래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한울 길드장의 가족이라고는 10대 중반의 여자아이 한 명밖에 없었던 거로 아는데.’

한울이 무너졌을 때, 중학생이었으니 지금은 겨우 20대 초중반일 터.

과연 20대 초중반의 애송이가 10대 길드의 정예 멤버를 암살할 정도로 강해졌을지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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