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지금 김수민 교관을 죽이겠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제 신조가 빌런에게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신조를 말하고 다니는 이가 전국구 조직의 우두머리를 제 식구처럼 감싸고돌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 아닌가 싶다.
“하긴, 김수민 교관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만 있다면, 안지호 길드장님께서 법을 집행하는 것에 제가 관여할 수는 없겠지요.”
물론 말 그대로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 허락해준다는 뜻이었다.
증거도 없이 김수민을 죽이려 한다?
나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김수민 교관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내 말을 들은 안지호가 눈을 부릅떴다.
아마 그로선 참을 수 없는 모욕처럼 들릴 것이다.
분명히 그는 ‘연합’을 거론하였다.
연합이라면 멸절 길드뿐만이 아닌, 다른 두 길드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일 터.
그런데 나는 그런 10대 길드의 연합을 상대로 도발을 한 셈이었다.
10대 길드 세 곳이 힘을 합쳐도 내 제자 한 명을 당해낼 수 없을 거라는 도발을 말이다.
‘안지호가 김수민을 쓰러뜨린 것도 한참 옛날 일이지.’
화룡파를 공격했을 때, 김수민과 안지호가 한번 충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김수민이 A랭크 중에서도 최상위권 실력을 가진 안지호에게 아쉬운 패배를 하였었지.
하지만 그 같은 일을 경험한 뒤로 김수민은 무시무시한 성장을 거듭하였다.
몇 달 전에는 S랭크 헌터인 로렌초도 가볍게 꺾었을 정도였다.
“총장은 가끔 보면 10대 길드들을 지나치게 우습게 보는 거 같습니다.”
“제가 그랬습니까?”
“저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왜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는 겁니까?”
“저는 딱히 멸절 길드에게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만.”
“곧 총장이 제자를 시켜서 10대 길드의 헌터들을 암살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퍼질 거 같은데…. 그래도 괜찮으신지?”
자신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으면 김수민이 벌인 일을 세간에 떠벌리겠다는 협박이었다.
‘같잖군.’
무력으로는 안 될 거 같으니 명성에 흠집을 내려는 수작인데, 나로선 하찮게만 느껴졌다.
“무슨 소문을 퍼뜨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단, 본인이 한 일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결국 안지호는 얻은 것 하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안지호가 물러나자 나는 피식 웃었다.
“아직 그렇게까지 절실함이 느껴지지는 않는군. 세 길드가 힘을 합치면 김수민 교관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인가.”
진짜 절실했다면 머리를 조아리며 무공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지호는 이전과 다르게 자신을 낮추긴 했지만, 여전히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10대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것일 터.
‘과연 간부들까지 당하고 나서도 자존심을 지키려 들지 궁금한데?’
김수민의 복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였다.
지금까지 그녀가 공격한 자들은 그녀의 부친을 배신하였던 한울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즉, 배신자를 처리했을 뿐, 김수민의 부친을 살해한 흉수는 아직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흉수가 바로 세 길드의 지도부였으니 그녀의 복수는 이제 막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뭐 뒤늦게 무공을 배우려 해봤자 가르쳐줄 생각도 없지만 말이야.’
안지호가 엄청난 인재라면 모를까.
그 말고도 가르칠 사람은 많았다.
그러니 굳이 안지호 같은 이에게 무공을 가르칠 필요는 없으리라.
내 협박이 통한 것인지, 김수민과 관련하여 엉뚱한 소문이 퍼지는 일은 없었다.
하긴, 안지호로선 나를 완전히 적으로 삼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김수민과 관련된 일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이 그에게도 유리할 게 없기도 했고.
“세 길드의 길드장이 손잡고 저를 찾아와서 협력을 요구하지 뭐예요?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호호.”
“그래서 유지은 길드장님은 뭐라고 답변하셨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냐고 당당하게 말했죠. 그랬더니 무슨 믿었던 동맹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얼굴이 되어버리더군요. 별로 끈끈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세 길드는 어떻게든 ‘연합’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 같았다.
표면적으로야 10대 길드 간의 화합을 위해서라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나를 견제하고 김수민을 잡아내기 위한 연합이었다.
‘하지만 통할 리 없지.’
지금의 상황에서 누가 그들의 편을 들어주겠는가.
그들이 나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뻔히 알려진 사실인데 말이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그쪽에서 김수민 헌터를 제거하려는 거 같은데.”
“유지은 길드장께서 김수민 교관에 대한 정보를 넘기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내 말에 유지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호호 웃었다.
“설마 제가 김수민 헌터의 정보를 넘기겠어요? 애초에 저는 김수민 헌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요.”
“정말 모르십니까?”
“…대충은 알죠. 대충은.”
혹시 몰라 찔러봤더니, 그녀가 움찔하다 진실을 밝혔다.
워낙에 정보력이 좋은 그녀였기에 김수민의 은신처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거 같았다.
“계속 잘 모르는 상태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은근히 압박하니, 그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그런데 그 세 길드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오신 겁니까?”
“호호, 그럴 리가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데요.”
10대 길드 중 무려 세 곳과 관련된 일인데도 이제는 이 정도의 일이 ‘별로 중요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시대의 흐름은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인데, 실제로 헌터들 사이에서 10대 길드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아예 10대 길드라는 말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10대 길드의 위상을 대신하는 게 바로 무공 아카데미였다.
어찌 보면 헌터 협회와 10대 길드가 누렸던 위상을 거의 동시에 누리는 것이 지금의 무공 아카데미가 아닐까 싶었다.
“제 성좌님께서 답변해주셨어요. 파롤을 상대하는 데 공동 대응을 하겠다고 확약하셨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우구스에 이어 황금 사과의 주인까지 동맹으로 얻었군.’
뭐 아직은 믿음직한 동맹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애초에 나부터 내가 성좌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상태였으니.
하지만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두 성좌가 파롤에게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동맹으로 여겨도 무방하리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펜테리움의 유통을 차단하는 일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제가 펜테리움의 부작용에 대한 소문을 퍼뜨렸거든요.”
펜테리움은 여명회의 자금줄이자, 세력 확장에 쓰이는 히든 무기였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무공이란 훌륭한 대체제가 있어서 확장 속도가 더뎠지만, 외국은 달랐다.
여명회는 암흑가를 중심으로 엄청난 속도로 세력 확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일본의 야쿠자 세력 같은 경우는 여명회의 세력 확장에 위기를 느끼고 무공 아카데미 가입 자격을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한국 같은 경우는 내년이 되면 펜테리움이 설 자리를 잃을 거예요.”
“무공 아카데미가 3,000명이나 되는 신입생을 뽑잖아요? 부작용이 우려되는 펜테리움을 쓰느니, 당연히 무공을 배우지 않겠어요? 호호.”
한국의 헌터 수라고 해봐야 몇만 명밖에 안 됐다.
3,000명이라면 거의 10%에 가까운 수.
물론 1,000명 정도는 외국인으로 뽑겠지만 어쨌든 많은 수가 무공을 배우게 될 테니 펜테리움이 설 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독자들이 문제인데, 이들도 무공을 배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치료되겠지.’
무공은 마약의 치료제 역할도 하였다.
아마 펜테리움 덕분에 무공의 인기는 더욱더 치솟지 않을까 싶었다.
콰아아앙!
도심에서 절대 들리면 안 되는 폭발음이 멀리서 전해졌다.
유지은은 놀란 눈을 하고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르고스의 눈으로 내공까지 사용하여 폭발음의 진원지를 찾자, 곧 검은 연기에 휩싸인 건물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수용소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네? 수용소에서요?”
강남 수용소는 수용소란 이름답지 않게 외관이 화려하였다.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헌터 출신의 빌런들만 수용되는 곳이기 때문인데, 그런 화려한 건물의 입구가 불에 타고 있었다.
마치 폭탄 테러라도 당한 모습이었다.
‘테러라고?’
난 흠칫 놀랐다.
수용소에는 현재 S랭크 헌터인 노홍만이 수감되어 있었다.
노홍만 말고도 내가 잡아들인 최채환이라든가, 고위험군 빌런이 많이 수감되어 있는 상태.
만약 그들 전체가 도주한다면 한국 사회에 엄청난 혼란을 주고 말 것이다.
‘무슨 이유로 이런 나비효과가 발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대한 막아야 한다.’
“아주 엄청난 짓을 저질러 버렸더군.”
안지호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
“문제 될 게 있습니까?”
“문제 될 게 있냐고?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거냐?”
전신이 회색으로 칠해진 회색 인간이 무표정하게 되묻자, 안지호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회색 인간은 빌런들이 붙잡혀 있는 강남 수용소를 박살 낸 범인이었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폭탄 테러를 일으킨 셈이었다.
아마 이 일의 파장은 한국을 넘어 외국까지 격동시킬 게 분명하였다.
“도대체 빌런들을 가둬놓은 강남 수용소를 부순 이유가 뭐야?”
“원래는 한국의 암흑가를 제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승산이 없어 보였습니다. 지금 당장으로선 말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가질 수 없으면 부숴라. 제 것으로 만들 수 없으면 부술 뿐입니다.”
안지호는 회색 인간의 대답을 듣고 더욱더 답답한 표정을 하였다.
‘이 새끼는 도대체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가질 수 없다면 부수겠다니.
한국의 암흑가를 가질 수 없을 거 같으니, 한국이란 나라를 망가뜨리겠다는 말일까?
뭐가 됐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은 아닌 거 같았다.
‘애초에 이런 놈과 손을 잡는 게 아니었는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단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김수민을 추격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안가를 찾았으나, 장소를 옮겼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실패했다는 말이잖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어봐야 열흘입니다.”
“열흘 안에는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
“좋아.”
안지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헌터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헌터가 무공을 익혔다는 이유로 안지호는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가 지금까지 확인했던 무공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나도 반드시 무공을 배우고 말리라.’
C랭크 헌터가 무공을 배워서 A랭크 상위권인 안지호를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그럼 A랭크 상위권인 안지호가 무공을 배운다면 어떨까?
비각성자인 박한새가 S랭크 헌터 둘을 연달아 쓰러뜨린 걸 보면, 안지호 역시도 S랭크 헌터쯤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게 되리라.
“김수민, 그년을 잡는다면 알지?”
“무공 지식을 공유한다는 약속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당연히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거야. 내가 찝찝하게 그년의 목숨을 살려두는 이유는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니까 말이야.”
“그건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김수민을 잡으면 후환을 남기지 않게끔 바로 처형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회색 인간의 합류로 안지호는 생각을 달리하였다.
당장 죽이는 것보다, 김수민에게서 무공 지식을 뽑아내는 게 훨씬 이익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