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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05화 (105/275)

#105화

김수민은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가 아리송한 말만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벨 것이다.”

“한 가지, 우리가 적이 되지 않을 방법이 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아.”

“무공 지식을 우리에게 넘겨. 그러면 너를 살려주고 복수까지 도와주마.”

무슨 제안을 하나 했더니, 겨우 한다는 소리가 저런 거였다.

‘근데 내가 무림인이란 사실을 어떻게 안 거지?’

그가 한 제안보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가 신경 쓰였다.

김수민이 무공을 익힌 박한새의 제자라는 사실은 아무에게도 들켜선 안 되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전부. 네가 무공 아카데미의 교관이었던 것부터, 네 목표가 배신자 처단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다.”

“살려둬서는 안 되겠군.”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알지 말아야 할 정보까지 알고 있으니, 그녀로선 ‘살인멸구’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에게 피해가 가게 둘 수는 없다.’

팔콘이란 사내를 죽여야만 박한새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리라.

“호오, 날 죽이겠다고? 굳이 우리가 싸울 필요는 없을 텐데? 내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복수를 도와주고 힘까지 주겠다. 무공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힘을 말이야.”

김수민은 코웃음을 쳤다.

무공보다 강한 힘을 주겠다고?

과연 그런 힘이라는 게 존재할지 의문이었다.

S랭크 헌터조차 절정 고수인 박한새를 이기지 못하는데 말이다.

‘무공의 무도 모르는 자가 무공을 논하니 우습기 짝이 없어.’

김수민은 이쯤 되니 더 대화를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복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김수민은 보법을 펼쳐서 순식간에 사내 앞까지 달려갔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사내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보법은 민첩을 높여주고 검기는 공격력을 높여준다지?”

김수민의 검이 정확하게 상대의 목이 있는 자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김수민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상대는 너무도 멀쩡한 상태로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빠르고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도 닿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면 속 김수민의 표정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안 닿는 거지?’

피하는 거 같은 동작을 펼치긴 했지만, 그 속도는 보법을 펼치는 김수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헌터보다 조금 날렵한 정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팔콘이란 기이한 상대는 그녀의 검에 맞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의미 없다. 무공은 나에게 있어 잔재주에 불과하니.”

사내가 뭐라 지껄이든 김수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검기를 가득 발출한 채 사내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환술 계열의 스킬을 쓰는 건가.”

능글맞은 얼굴로 대답하는 사내의 모습에 김수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더 빠르게, 더 화려하게.

공격 방법을 계속 바꿔가면서 공격하는데도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사내는 여전히 비웃는 얼굴로 여유롭게 제자리를 지켰다.

‘내 눈을 속이는 거라면 눈을 감는 수밖에.’

김수민은 눈을 감았다.

박한새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그녀는 눈에 의지하여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사방으로 내공을 퍼뜨려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빠르게 상대의 움직임을 쫓는 기술을 익혔다.

그 기술은 다름 아닌, 기감이란 이름의 기술이었다.

내공을 퍼뜨리자 그녀의 사각지대가 완전히 사라졌다.

눈이 닿지 않는 등 뒤까지, 실내에 있는 모든 물체가 그녀의 기감에 잡혔다.

당연히 사내도 그녀의 기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제는 피할 수 없을 거다!’

상대가 설령 환술 계열의 스킬을 쓴다 해도 기감을 사용하는 그녀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이번에도 그녀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상대의 기감이 느껴지는 장소에 검을 휘둘렀는데도 기이하게 검은 닿지 않았다.

마치 공간이 왜곡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공격이 사내를 비껴간 것이다.

‘공간이 왜곡되었다라.’

마침내 김수민은 사내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환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공간 자체를 왜곡하여 그녀의 공격을 무효화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때가 되었는데?”

사내, 팔콘은 기고만장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그로선 기고만장할 수밖에 없었다.

김수민이 아무리 강해도 그녀의 공격은 절대 그에게 닿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내를 보며 김수민은 차갑게 웃었다.

“나에게 무공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공간을 왜곡하여 내 공격을 피한다면 공간 전체를 잡아두면 그만이다.”

김수민은 그저 말로만 파훼법을 떠들지 않았다.

내공을 가득 실어 염동력을 펼친 뒤 사내의 사지를 결박하였다.

“이, 이 정도 레벨의 염동력 스킬을 갖고 있다고?”

“나를 잘 아는 것처럼 굴었지만 정작 내 스킬 수준도 파악하지 못했나 보군.”

사실 그렇게 말하는 김수민은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사부였으면 무공만으로도 놈을 잡아냈겠지.’

박한새의 실력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눈앞의 어설픈 사내 정도야 아무렇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더 정진해야 해. 사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끔.’

속으로 그 같은 생각을 하던 그녀는 검을 든 채로 팔콘이란 사내에게 다가갔다.

“무공이 스킬의 위력까지 늘려준다는 게 사실이었나. 빌어먹을.”

“죽기 직전까지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는군.”

김수민은 한심하단 듯, 사내를 바라보더니 검을 휘둘렀다.

염동력에 속박되어 있던 사내가 일순간 속박에서 풀려났다.

그녀가 의아해할 때, 갑자기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의 등 뒤에 날개가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날개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쉴 새 없이 김수민에게로 날아왔다.

김수민은 혀를 차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들을 검으로 튕겨내거나 염동력으로 막아냈다.

‘독침인가?’

그녀를 향해 날아온 무언가는 끝에 정체 모를 액체가 발려있었다.

아마 일종의 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도 헌터에게 통할 정도로 아주 강력한 독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등에서 날개를 꺼낸 사내는 그대로 창문을 부수고 도망쳤다.

독침 공격이 막힐 것을 예상하고 신속하게 다음 행동을 전개한 것이다.

“놓칠 거 같으냐!”

하늘로 날아갔다고 그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수민은 공중에 뜬 사내를 염동력으로 붙잡고서 그녀 역시 창밖으로 높게 뛰어올랐다.

그러곤 속박된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렀는데 이번에도 사내는 타이밍 맞게 속박을 풀어냄으로써 간신히 목숨을 구제할 수 있었다.

물론 ‘목숨’만 구제했을 뿐이었다.

사내가 속박에서 벗어날 것을 예상한 그녀가 더 넓게 검을 휘두르자, 팔 한 짝이 잘리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김수민은 팔 한 짝을 잃고 비명을 지르는 사내를 쫓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엄청나게 멀어진 사내의 위치를 확인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공답보를 할 수 있었다면 쫓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어쩔 수 없이 사내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녀로선 못내 아쉬웠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가까스로 김수민에게서 도망친 팔콘은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실 그녀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김수민의 무공 실력부터 놀랍기 짝이 없었다.

육체 강화 계열의 C랭크 헌터도 김수민 같은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반격을 시도하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에 서 있었던 것도 괜히 반격을 시도하다가 망신을 당할 게 걱정되었던 탓이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 염동력은 도대체 뭐였던 거지.’

그의 스킬을 무효화할 수준이라니.

상상도 못 할 경지였다.

그의 스킬을 무효화했다는 것은 스킬 수준이 아무리 못해도 A랭크를 넘는다는 의미였다.

헌터 협회에서 측정한 김수민의 랭크가 겨우 C랭크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실로 경악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깔깔깔!”

김수민과의 전투를 복기하며 부상 치료에 전념하던 그의 옆에 백인 여성이 다가오더니 대뜸 폭소를 터뜨렸다.

“박한새도 별거 아니라던 놈이, 겨우 박한새의 제자 따위를 이기지 못해서 팔 한 짝을 내주고 온 거야? 깔깔깔!”

백인 여성, 루드밀라를 향해 팔콘은 거칠게 외쳤다.

하지만 그가 성질을 부리건 말건, 루드밀라의 웃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랭크 측정이 잘못된 것이었다! 그년은 C랭크 수준이 아닌, S랭크 수준이었어!”

“다 예상한 거잖아. 무공을 익히면 랭크 두 단계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다는 사실 말이야.”

“두 단계 정도가 아니잖아!”

“깔깔깔, 그래서 헌터 협회 핑계라도 대려고?”

팔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루드밀라 따위에게 이런 개망신을 당할 줄이야.’

7사도가 이 꼴을 봤다면 절대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7사도는 자신을 오래 모셨던 측근이라 해도 무가치하게 느껴지면 가차 없이 살해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김수민의 무력을 경험했으니, 우리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확실하게 알았지?”

하지만 팔콘으로서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역부족하단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7사도님에게 부탁이라도 하라는 거냐?”

팔콘의 스승, 7사도.

7사도가 가진 힘을 생각하면 박한새를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여명회 전체의 도움을 받는다면 박한새가 아니라 한국 전체를 초토화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

물론 여명회의 지도자 그룹인 12사도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말이다.

“꼭 7사도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지.”

‘님’이라는 경칭을 슬쩍 빼고 부르는 루드밀라의 모습에 팔콘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녀를 쏘아봤다.

하지만 지금은 경칭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7사도님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누구의 지원을 받으라는 거야?”

“다른 세력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어?”

“다른 세력? 설마 이단들을 말하는 거냐?”

“뭐 이단이라면 이단이지. 하지만 공통의 적을 가졌다면 잠시 힘을 합치는 것도 상관없잖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파롤을 추종하는 여명회에게 있어 다른 성좌를 배후령으로 둔 헌터들은 전부 이단이었다.

물론 이는 다른 성좌의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우호적인 성좌들도 있었으나, 보통 성좌들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늙은이가 그러던데. 다른 성좌들도 박한새 그놈을 좋아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호오. 어째서지?”

“무공이란 거 자체가 성좌들이 좋아할 것은 아니지. 성좌에 의존하는 일이 줄어드니 말이야.”

권속을 뽑는 일에 관심이 없는 성좌라면, 헌터들이 무공을 배우든, 배우지 않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헌터들이 무공에 의존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기존에 뽑아두었던 권속이 무공을 배우면 더 강해지는 셈이니 기뻐할 일이었다.

하지만 권속을 늘릴 생각을 하는 성좌들이라면 박한새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지분율이라는 것을 높이려면 결국 헌터가 성좌에게 의존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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