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사부님, 최근 들려오는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수민 전 교관이 10대 길드 간부들을 암살하고 다닌다는 소문 말입니다.”
강충구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하였다.
그에게 진실을 말할지, 거짓을 말할지를.
‘아무리 제자라고 해도 모든 걸 밝힐 필요는 없지.’
김수민의 비밀은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았다.
고민을 끝낸 나는 강충구를 향해 말했다.
“의혹은 의혹일 뿐이야.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
안지호가 낸 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연합 길드’의 간부들이 연달아 불상사를 당한 사건에 대해 김수민이 용의자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소문의 근거는 간단하였다.
오러 계열의 스킬 즉, 검기를 사용하는 것이 일단 가장 큰 근거였다.
김수민의 손에 죽은 이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절삭력을 가진 스킬에 베여 죽었으니 검기를 의심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사이코메트리나 과거시 계열의 스킬 사용자가 사건 현장을 조사한 결과, 용의자는 굉장히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마치 ‘보법’을 연상케 하는 그런 움직임이었다.
더군다나, 정체를 감춰주는 아이템인 광기의 가면으로 자세한 정보는 노출되지 않았으나 용의자의 체형이 김수민과 비슷하다는 정황 증거를 발견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근거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암살 사건의 범인은 김수민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뭐 사실 저로서는 김수민 교관이 범인이라도 크게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의외의 말이었다.
“어차피 암살자가 노리는 길드들은 무공 도입에 반대하는 세력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일로 무공의 위력이 확실하게 입증되었으니 저희로선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냉정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김수민이 범인이라는 소문에 대해 가장 격렬한 반발을 보이는 것은 10대 길드들이었다.
아무래도 C랭크 헌터로 알려진 김수민이 10대 길드 중 무려 세 곳을 농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10대 길드들로선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그나저나 교수진이 점점 화려해지는 거 같습니다.”
“뭐, 그렇지.”
“겸임 교수로 10대 길드의 길드장만 세 명이라니.”
무공 아카데미 설립 준비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교수진도 거의 확정된 상황.
참고로 교수진은 강충구의 말처럼 화려한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이서, 레이븐, 화영 등등.
내로라하는 길드의 길드장들이 겸임 교수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지.’
길드장이라고 해봤자 오성 길드를 제외하면 A랭크 헌터였다.
S랭크 헌터의 명성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교수가 될 인사 중에는 S랭크 헌터도 존재하였다.
“설마 그 노홍만이 무공 아카데미 교수가 되기로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탱커로만 따지면 한국 최강이라고도 불리는 노홍만이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로 합류할 예정이었다.
“S랭크 헌터의 자존심도 한 수 접어야 할 정도로 무공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남 수용소에서 노홍만과 했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노홍만은 대뜸, 변화의 흐름이 빨라진 것은 나 때문이라면서 나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회귀자로서 이 말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그렇기에 노홍만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저로 인해 변화의 흐름이 빨라졌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말했을 텐데. 나도 자세한 의미는 알 수 없다고. 그저 나는 녹색 예언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너에게 전해주는 거뿐이다.”
“그렇다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로 한 말씀입니까?”
“너 때문에 녹색 예언자가 꽤 곤란을 겪는 모양이야.”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성좌씩이나 되는 인사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건가.
“인간을 향한 악의로 가득 찬 일부 성좌들이 너로 인해 더욱더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더군. 그러니, 네가 인류의 편에 서는 자라면 녹색 예언자에게 협조해야 한다.”
인간을 향한 악의로 가득 찬 일부 성좌?
그 모호한 표현만 들어도 어떤 성좌의 이름이 생각났다.
‘파롤, 그 악신이 본격적으로 인류 멸망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역시 미래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건 의미가 없는 거 같았다.
이미 나비효과로 미래는 바뀔 대로 바뀐 상태였으니.
‘하지만 곤란하군. 지금의 나는 무공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무공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일만큼 내게 중요한 일은 없었다.
헌터들에게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무공을 전파하기 위한 그 시작점이 바로 무공 아카데미였기 때문이다.
“녹색 예언자는 선신입니까?”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녹색 예언자에게 인류를 멸망시킬 생각이 없다는 점뿐이다.”
“그렇다면 파롤과 적대하는 겁니까?”
“파롤을 알고 있다니, 놀랍군. 질문에 대답하자면 맞다. 녹색 예언자는 파롤을 극도로 증오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적의 적은 동맹이지.’
회귀 전에는 그린스킨의 소식을 별로 듣지 못하였다.
내가 폐관수련하듯, 무공 수련에만 열중하던 시기에 이미 몰락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니 그린스킨의 몰락 원인은 파롤에게 있는 듯하였다.
즉, 그린스킨의 성좌인 녹색 예언자도 인류의 편에 선 일종의 선신이라는 뜻.
“좋습니다. 노홍만 헌터를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당장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이를 움직이게 하면 그만이다.
노홍만을 비롯한 그린스킨 정도라면 나를 대신하여 파롤을 견제하는 일 정도는 능히 수행할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노홍만을 내가 잡아넣었는데, 내가 다시 풀어줘야 하는 건가?’
“노홍만을 교수로 받아들였으니, 로렌초도 교수로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충구의 말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안 그래도 로렌초에게 교수직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S랭크 헌터인 로렌초는 내가 일찍부터 눈여겨보던 인재였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지금껏 방치했었지만, 지금은 노력 끝에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한 상태였다.
무공에 대한 열의도 상당한 데다 재능까지 갖추고 있으니 나로선 로렌초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로렌초에, 노홍만이라니. 화려한 교수진을 보니 벌써 무공 아카데미의 미래가 기대되는 듯합니다.”
“분명 기대 이상이 될 거다.”
오성 길드의 진종호 길드장도 노리고 있었다.
그림자의 왕이라 불리는 그를 교수로 섭외할 수만 있다면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은 최고 정점에 오를 것이리라.
물론 나로서는 국내에서 최고 정점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무공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뉴스나 인터넷에서는 연일 김수민의 활약상을 보도하고 있었다.
이틀 전에는 낙원 길드의 간부인 누구누구가 당했고 어제는 볼케이노 간부의 누구누구가 당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물론 범인이 김수민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은 아니었기에, ‘가면 쓴 괴한의 무차별 습격’이라 보도되고 있었다.
“무공의 위력이 이렇게까지 대단할 줄은 꿈에도 몰랐소. 낙원, 볼케이노, 멸절. 이렇게 세 길드를 두려움에 떨게 하다니.”
성연 길드의 이세훈 길드장.
이정의 부친이기도 한 그가 어느 날 찾아와서는 그와 같이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라. 하하하, 이번 사태를 두고 그렇게 편한 소리를 할 사람은 아마 박 총장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소.”
“세 길드에게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두고 저를 의심하는 것이라면, 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고밖에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강충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일을 친하지도 않은 이세훈에게 밝힐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내 말이 틀린 것이 아니기도 했고.
‘난 무관한 사람이긴 하지. 내가 지시한 일이 아니니까.’
김수민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무공을 가르친 것 외에는 그녀를 따로 도운 적이 없었으니, 무관하다는 말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긴 내가 추궁할 일도 아니지. 나는 제3자에 불과하니 말이야.”
“그런데 용건이 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본론을 묻자, 그가 잠시 뜸을 들였다.
“부탁 하나 하고 싶은 게 있소.”
부탁이라.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희가 서로 부탁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만.”
“지금까지는 그랬어도 앞으로는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오? 어쩌면 세이서 길드보다 우리와 더 우호적인 관계가 될 수 있으니.”
내가 까칠하게 말했는데도 그는 능글맞게 받아주었다.
원래라면 성연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자존심 때문에라도 이런 태도를 보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뭐 더 따지고 보면 ‘비각성자’와는 아예 동석할 생각조차 안 할 인사였고.
그런데도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나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그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려고 저자세를 취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뭐가 됐건 일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거 같았다.
“그럼 일단 들어는 보겠습니다. 어떤 부탁을 하시려고 그럽니까?”
내가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였다.
“사람을 빌리고 싶소.”
“사람? 무공 아카데미의 사람을 빌리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던전 이변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꼭 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무공 사용자는 던전 이변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공 아카데미 교육생들의 몸값은 하늘을 찌를 듯 올랐다.
10대 길드들도 비싼 돈을 주고 아카데미 교육생을 고용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나는 이세훈을 향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중급반 교육생을 고용하는 것쯤은 나에게 부탁할 일이 아니었다.
“교관을 빌리고 싶소.”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중급반 교육생이 아니라, 교관을 빌리고 싶다고?
이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안 그래도 교육생들 가르치느라 수련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다른 길드로 파견이라니.
내가 지시하면 따르긴 하겠지만 불만이 상당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들이 수련 말고 다른 것에 시간을 뺏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죄송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습니다. 김수민 교관이 빠진 일로 현재 교관들은 과중한 업무에…….”
“30억을 주겠소.”
그가 내 말을 끊고서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였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30억 말씀입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석 달 동안 던전에 같이 가주기만 하면 30억을 주겠소.”
이걸 통이 크다고 해야 할까?
석 달이라고 해봤자 일주일에 한 번이면 횟수로는 얼마 되지 않았다.
즉, 수련에는 크게 지장이 가지 않는다는 뜻.
‘교관을 데려갈 정도면 6성급이나 7성급 던전을 갈 테지. 그러면 당연히 교관이 벌어올 카르마도 엄청날 거야.’
카르마를 많이 벌어온다면 그 카르마로 영약을 구매해도 좋았다.
부족한 수련 시간을 영약으로 때운다면 성연 길드로 파견 갔던 교관에게도 결코 손해는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