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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07화 (107/275)

#107화

이세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 한 명을 무려 30억이나 주고 고용하게 되었지만, 그는 후회 없었다.

오히려 30억이 아니라 그 이상도 부를 생각이었다.

무공 아카데미 교관의 가치는 그 정도로 엄청났으니 말이다.

‘제아무리 S랭크 헌터를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지만, 자금력만큼은 역시 한계가 있는 모양이군.’

이세훈은 조소를 지었다.

박한새에게 충분한 자금력이 있었다면 절대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7성급 던전인 후지산 던전 공략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다지만, 박한새로서도 무공 아카데미 교관을 내주고 싶지 않았을 테니.

‘요즘 이능관리부에서 독립한다고 날뛴다더니, 그래서 더 돈이 부족한 모양이야.’

박한새의 자금줄이라고는 이능관리부 하나뿐일 거다.

헌터들처럼 던전을 사냥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 이능관리부에서 독립한다고 하니, 자금력이 얼마나 부족하겠는가.

‘돈이 없는 것은 강병철도 마찬가지겠지.’

무공 아카데미 교관들은 아무리 실력이 A랭크 헌터급에 해당한다고 해도 결국 공무원 헌터였다.

실력을 생각하면 실로 터무니없는 박봉을 받고 있을 터.

그가 고용하기로 한 강병철이란 사내도 아마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 헌터 출신의 강병철.

고작 E랭크 헌터에 불과한 그가 모아둔 돈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는가.

성연 길드의 일개 간부보다 못한 돈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말은 ‘회유’하기 쉬워진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반드시 강병철을 성연의 사람으로 만들고 말리라.’

꼭 무공을 배우는 방법이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이세훈은 무공의 원리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교관급’에 해당하는 인재 한 명만 포섭할 수 있으면 무공을 자체적으로 수급하는 게 가능하였다.

교관급은 ‘격체전력’이란 기술을 사용하여 상대에게 단전을 만드는 방법이나 내력을 움직이는 방법 등을 알려줄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정 그놈은 격체전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겠지. 배은망덕한 패륜아 놈이니 말이야.”

원래는 이정에게서 무공을 배울 생각이었다.

버린 자식이라지만, 무공을 배워 괄목상대하게 성장하였으니, 적당히 이용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정은 단호하게 자신은 성연의 사람이 아니라고 외쳤다.

그리고 성연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이세훈, 그의 자식이란 사실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마.’

버린 자식 따위의 도움이 없어도 무공을 도입하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말 것이다.

이세훈은 가족들과의 식사 도중, 자신의 장남을 불렀다.

“석우야.”

“예, 아버지.”

“강병철에게 간이든 쓸개든 다 줄 것처럼 대해라.”

“강병철이라면 같이 던전을 가기로 한, 그 무공 아카데미 교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다.”

이석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비틀었다.

E랭크 헌터에 불과한 강병철에게 자세를 낮추라는 말이 그에게는 그저 불쾌하게만 느껴졌다.

“왜 대답을 안 하는 것이냐.”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지는 않으리라 믿겠다.”

여전히 이석우의 표정은 불만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러자 이세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희도 알겠지만, 10대 길드 체제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멸절 길드를 두고 말씀하시는 건지요?”

“꼭 멸절이나 볼케이노, 낙원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10대 길드 체제는 곧 종말을 맞이하게 될 거야.”

이미 10대 길드를 두고 말들이 많은 상황.

10대 길드에 포함되지 않은 화영 길드의 경우, 외국에서는 한국의 그 어떤 길드보다 인정을 받고 있었다.

“10대 길드 중 살아남는 길드는 무공을 도입한 길드밖에 없을 거다.”

지금은 바야흐로 무공의 시대.

명성만 믿고 무공을 등한시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성연 길드가 바로 그 도태되는 길드 중 한 곳이었다.

오성, 화영, 세이서, 레이븐 등등.

일찍이 무공을 도입한 길드들은 벌써 저 멀리 내달리고 있었다.

반면 성연 길드는 제자리에서 정체되고 있었고 말이다.

“우리가 살아남을 방법도 무공을 도입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니 너희는 강병철을 스승처럼 대해야 한다.”

“스승 말씀입니까?”

“그래. 스승을 대하듯 극진한 예를 차려 대해야만 한다. 그래야 강병철이 우리 성연의 사람이 될 테니까.”

그가 그렇게까지 설명하니, 그제야 이석우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무공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이석우였다.

알량한 자존심만 버린다면 이세훈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이다.

“지수야.”

“왜, 아빠?”

이세훈은 이번엔 자신이 금지옥엽처럼 여기던 막내딸을 불렀다.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강병철을 너의 남자로 만들어라.”

그 말을 듣고 이세훈의 자녀들은 크게 놀랐다.

평소에 이세훈이 자신의 막내딸인 이지수를 얼마나 귀하게 다뤘는지를 생각하면 실로 놀랄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당연히 가장 놀란 것은 이지수 본인이었다.

“아니, 나보고 지금 E랭크 헌터 따위와 사귀라고 말한 거야?”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한 거냐!”

이세훈이 대뜸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이지수가 너무 놀란 나머지, 딸꾹질하였다.

이세훈이 그녀에게 소리를 지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너를 애지중지 키운 이유를 상기해라. 너는 우리 성연 길드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의무가 있다.”

“어허!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냐!”

“아버지, 지수도 잘 알아들었을 거예요.”

이지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곤 이내 각오를 다진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요. 강병철, 그자를 반드시 제 것으로 만들게요.”

사실 그녀도 자신의 처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단지 상대가 E랭크 헌터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뿐이었다.

‘차라리 비각성자지만, 무공을 창시한 박한새라는 사내가 더 낫지 않았을까? 사진 보니 얼굴도 괜찮던데…….’

강병철은 처음 성연 길드에 파견 가기로 결정되었을 때, 한 가지 기대를 하였었다.

‘분명 고랭크 헌터들은 나를 개무시하겠지?’

고랭크 헌터 특유의 오만함은 이미 질리도록 경험하였다.

그가 느끼기에 고랭크 헌터들은 선민사상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날 무시하는 놈들, 죄다 박살 내주면 아주 재미있겠어.’

실제로 다른 길드로 파견 나간 중급반 교육생들이 다른 길드 헌터들과 시비가 붙는 일은 잦았다.

헌터 랭크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인데 늘 박살당하는 쪽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헌터들이었다.

두 단계, 심지어 세 단계의 랭크 차이도 극복할 수 있는 게 무공이었다.

무공 아카데미의 교관인 강병철은 세 단계를 넘어 다섯 단계나 차이가 나는 S랭크까지 상대할 수 있다고 자부하였다.

그렇기에 성연 길드에서 누구와 시비가 붙어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시비가 붙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강병철 교관님.”

“길드장님이 왜 여기에?”

“교관님이 오셨는데 제가 직접 마중을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연 길드는 강병철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그를 마치 상전 대하듯 대하였다.

“이쪽은 부길드장, 이석우입니다.”

“강병철 교관님을 직접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쪽은 성연 길드의 핵심 간부이자, A랭크 헌터인 박태휘라고 합니다.”

“박태휘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든 필요한 게 있으면 지시만 내려주십시오.”

길드장 본인은 물론이고, 후계자 이석우, 그 외에 핵심 간부들까지.

모두가 강병철에게 극진한 예를 보여주었다.

‘뭐야, 얘네들 왜 이래?’

어찌나 예의를 갖추는지, 강병철로선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살면서 이런 대접을 받았던 적은 없었기에 더욱더 당혹스러웠다.

‘근데 이것도 나쁘지만은 않은데?’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분명 재미있었을 거다.

하지만 실력을 보여주기도 전에 대접을 받는 것도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결국, 그의 스승인 박한새가 고랭크 헌터들에게조차 완전히 인정받았다는 의미였으니까.

‘근데 길드장과 간부들이 나를 이렇게 대접해준다면 일반 길드원들은 질투감을 느낄 수도 있겠는데?’

강병철은 간부들만 극진한 예를 보이고 같이 레이드를 뛸 레이드 팀원들은 반응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의 그는 사실상 낙하산 인사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것도 간부진의 총애를 받는 낙하산 인사 말이다.

하지만 일선의 헌터들 또한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병철 교관님이 함께해 주시니, 던전 이변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습니다.”

“던전 이변뿐이겠어? 아까 일본 헌터들 봤지? 강병철 교관님이 무공 아카데미 교관이라니까, 쫄아서 도망친 거?”

헌터들은 강병철에게 그저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떨었다.

별거 아닌 일로 호들갑 떨며 온갖 극찬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진심으로 싸워줄 수밖에 없겠는데?’

원래는 무시받지 않을 정도로만 사냥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의 역할은 던전 이변이 있을 때 레이드 팀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던전 이변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는 사냥에 참여하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성연 길드의 헌터들이 이렇게 존경심을 보이니 그도 힘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강병철이 그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위기에 처한 헌터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방어막을 빼면 어떡해!”

“탱커들, 막아!”

“젠장! 디노사우르스의 독을 맞는다면 즉사라고!”

공룡 형태의 몬스터, 디노사우르스.

하지만 크기만 컸지, 스킬을 잘 활용한다면 위협은 되지 않았다.

가장 위협적인 독 공격만 스킬로 차단하면 됐으니.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독 공격을 차단하지 못해서 위기 상황이 만들어졌다.

디노사우르스가 이 타이밍에 독을 쏜다면 정면의 탱커는 즉사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디노사우르스가 독을 쏘는 것보다 강병철이 디노사우르스의 목을 베는 것이 더 빨랐다.

“살았다. 강병철 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강병철! 강병철!”

살아남은 탱커와 레이드 팀원들은 환호를 지르며 강병철의 이름을 연호하였다.

이지수.

그녀는 성연 길드의 아이돌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단순히 이세훈이 금지옥엽으로 아끼는 막내딸이기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모델과도 같은 몸매에 웬만한 연예인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외모.

그 모든 것을 갖추었기에 성연 길드의 아이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왜 이런 여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강병철은 당혹스러웠다.

처음 만날 때부터 호감을 표하던 그녀.

지금은 아예 팔짱까지 끼고 있었다.

마치 연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오늘 시간 되세요?”

“집에서 무공을 수련할 생각이었는데….”

“치.”

“물론 지수 씨를 본 순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거든요.”

당혹스러웠지만, 이지수처럼 아름다운 미녀가 유혹하는데 뒤로 뺄 수는 없었다.

강병철은 그녀와 거의 매일같이 데이트하며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지수가 물었다.

“저 혹시, 무공이란 거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무공 아카데미는 누구에게나 길이 열려있습니다.”

강병철이 원론적인 대답을 하자, 그녀가 볼을 부풀렸다.

“아니요. 무공 아카데미는 경쟁률이 치열해서 들어가기 어렵잖아요.”

“곧 3,000명을 뽑는다고 하니…….”

“병철 씨가 저에게 가르쳐주면 안 돼요?”

갑자기 그녀가 강병철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좀 가르쳐주세요. 저도 오빠들처럼 레이드 같은 것에 참여하고 싶어요.”

강병철은 헤벌쭉 웃었다.

그가 언제 이런 미녀에게 유혹을 당해봤겠는가.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박한새는 그에게 있어 하늘이었고, 아무리 이지수 같은 미녀가 유혹한다고 해도 하늘을 거역할 생각이 없었다.

-가르쳐주어도 상관없다.

그러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방금 이야기했던 바로 그 하늘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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