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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08화 (108/275)

#108화

-사부께서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박한새 총장에게는 알리지 않고 저희 둘만이 아는 비밀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두, 둘만이 아는 비밀이요?

-부탁드려요. 꼭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강병철이 은근히 연기에 소질이 있군.’

겉으로만 보면 이지수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간 듯 보였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기에 불과하였다.

강병철은 이미 나의 허락을 받은 상황.

저렇게 뒤로 빼는 모습은 오히려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이런 허접한 시도가 먹힐 줄 알았던 건가?’

미인계는 확실히 유용한 수단이긴 했다.

심지어 미인계를 하는 이지수란 여인은 이세훈이라는 막강한 권력자가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막내딸.

헌터인 데다, 외모도 상당하였으니 미인계를 쓰기에 이보다 적합한 인재는 없었다.

더군다나 성연 길드는 단순히 미인계만 쓴 것이 아니었다.

길드장인 이세훈부터 E랭크 헌터인 강병철에게 극진한 예를 보여주었다.

아마 돈도 따로 엄청나게 챙겨줄 것이다.

E랭크 헌터가 아닌, B랭크 헌터여도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돈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성연 길드의 수작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무공을 가르치는 사부가 무인들에게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를 모르는 모양이야.’

헌터도 그렇지만, 무인은 ‘힘’을 숭상하는 존재였다.

돈이나 여자, 명예보다는 더 강해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인들은 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강병철처럼 헌터로서의 랭크가 낮은 무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심지어 강병철은 내 권속이기도 하지.’

만의 하나로 배신할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내게 더 배울 게 없다고 여기거나, 미인계에 완벽하게 넘어간다면 나를 배신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강병철은 그럴 리 없었다.

그는 내 권속이기 때문이었다.

‘강병철을 회유하여 나의 무공을 빼앗으려는 생각이겠지만, 반대로 그 강병철에 의해 성연 길드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강병철에게 무공을 전파하는 걸 허락한 이유는 간단하였다.

10대 길드 중 하나이며,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성연 길드를 내 뜻대로 다루기 위함이었다.

나는 문밖에서 폭발음이 들리자 미간을 좁혔다.

“로렌초가 또 사고를 친 건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강충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신경철 교관과 로렌초가 대결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신경철 교관을 노린다고?”

내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로렌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교관들에게 매번 패배하던 그가, 단전을 만들자마자 김민경에 이어 고정희까지 꺾었을 정도였다.

‘김수민을 제외하고 삼인자나 마찬가지인 신경철인데, 과연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군.’

나 다음이 이정이고 그다음이 주현근이다.

그리고 무공 아카데미의 세 번째 실력자가 다름 아닌 신경철.

과연 무공을 배운 로렌초가 신경철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었다.

로렌초.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한 여성 때문이었다.

인도네시아의 7성급 던전에서 만났던 정호연.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육감적이면서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보고 호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사랑’에 빠진 것은 던전 이변이 일어난 상황에서 호쾌하게 몬스터와 싸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무공을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은 실로 아름다웠다.

전쟁의 여신인 이슈타르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녀를 그려야 한다!’

정호연을 본 다음 날.

로렌초는 매일같이 그녀를 그려냈다.

던전을 사냥할 때보다 더 많은 마력을 쏟아부어 그녀의 얼굴에 있는 검은 점까지 완벽하게 묘사하였다.

하지만 로렌초는 이내 실망을 금치 못하였다.

그가 그려낸 정호연은 겉모습만 정호연이었고, 움직임은 인형의 그것처럼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력이 다할 때까지 온갖 시도를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왜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지 않는 걸까?’

금방 결론이 나왔다.

무공을 배워야 한다고.

정호연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묘사하려면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결국, 그는 정호연이란 한 명의 여성 때문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지고 한국행을 선택하였다.

“로렌초. 너는 S랭크 헌터야!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S랭크 헌터라고! 그런 네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정부에서 사람이 왔어. 네가 전에 부탁했던 그림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 구해줄 테니, 제발 이탈리아로 돌아와달라고 애걸하더군.”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그를 푸대접하는 박한새의 모습을 보고 그의 매니저가 강하게 호소하였다.

돌아가자고.

이 빌어먹을 나라에 더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로렌초는 집념의 사내였다.

S랭크 헌터로서의 자존심?

그런 건 그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았다.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반드시 하는 것.

그것이 S랭크 헌터로서의 자존심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하였다.

‘무공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정호연과 같은 움직임을 펼친다고!’

로렌초의 눈에는 무공 아카데미가 보물창고처럼 보였다.

지금껏 그가 모아뒀던 온갖 금은보화나 문화재 등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언어가 안 통해서 무공을 안 가르쳐주겠다고? 그럼 무슨 수를 써서든 한국어부터 배우고 말리라!’

그리고 이 같은 로렌초의 집념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결실을 보았다.

박한새에게서 직접 무공을 사사하게 된 것이다.

로렌초는 무공의 효과를 바로 체감하였다.

그가 그린 정호연의 움직임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바뀐 것만 봐도 무공의 효과는 확실하게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내가 보법까지 배운다면 미스 정의 움직임은 내가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봤던 움직임과 완전히 똑같아질 거야!’

단전을 만들어낸 로렌초는 바로 보법을 배우려고 하였다.

하지만 정호연만큼 높은 수준의 보법을 완벽하게 펼치는 것은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S랭크 헌터라고 해도 무공의 자질만 봤을 때, 정호연도 그에게 밀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교관들과 모의 대련을 해보십시오. 숙련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진도가 막힌 로렌초에게 박한새가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로렌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장 먼저 김민경에게 대결을 신청하였다.

“사부에게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와 대련을 하고 싶다고요?”

“근데 왜 하필 저예요? 제가 가장 약해 보이는 건 아니겠죠?”

“김민경, 네가 제일 만만하다.”

“이제 한국말 잘하시네요. 한국말 못했을 때는 그저 귀여웠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짜증이 나네?”

김민경은 전력을 다해 로렌초와 맞붙었다.

애초에 상대는 S랭크 헌터.

그녀가 방심할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김민경은 자신이 있었다.

이미 몇 차례 이겨본 상대였기 때문이다.

‘무공을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날 이기겠어?’

그러나 그녀의 자신감은 이내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김민경은 로렌초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로렌초가 소환한 정호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S랭크 헌터의 벽은 엄청나네요. 이렇게 빨리 강해지다니.”

“고맙다. 덕분에 미스 정의 움직임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근데 왜 하필 정호연 헌터를 소환하신 거예요? 사부님도 있고, 다른 남자 교관들도 많은데.”

“미스 정, 예쁘다. 그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변태 같은 새끼.”

그다음은 고정희였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이미 김민경의 소식을 전해 들은 고정희는 로렌초와의 대결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주현근과 함께 처음으로 박한새의 권속이 된 여인이었다.

애써 자신감을 가지며 대결에 임하였다.

“이 몸, 준비 완료.”

“그럼 제가 선공하겠습니다!”

고정희는 보법을 펼쳐서 무서운 속도로 로렌초와의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정호연이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나서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론 진짜 정호연이 아닌, 로렌초가 소환한 정호연이었다.

‘여기서 시간을 뺏기면 질 거야!’

정호연이 날린 검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한 그녀는 자신을 공격하는 정호연을 무시하고 로렌초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로렌초와 가까워지자 그녀는 자신의 스킬인 ‘결계’를 사용하였다.

퉁.

로렌초가 소환한 정호연이 고정희의 뒤를 따라오다가 투명한 결계에 막혀서 멈칫하였다.

결계 안에는 로렌초와 고정희 단둘이 남은 상황.

그녀는 로렌초가 소환하는 소환수를 배제하고자 결계를 사용한 것이었다.

“하, 항복하세요!”

“미스 정의 실력이 곧 나의 실력이다.”

로렌초는 고정희와 단둘이 남은 상황에서도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이런 상황에서 기권밖에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무공을 익힌 고정희는 근접전의 달인이었고 반면 그는 근접전에서만큼은 A랭크 헌터보다 못한 실력이었으니.

하지만 그것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로렌초는 검을 들고 오히려 먼저 고정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고정희는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움직이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잘 싸우는 거야?’

고정희도 그가 무공을 배웠으니 근접전 실력이 늘어났을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공의 효과가 대단해도 사람을 이렇게 확 바꿔놓았을 줄은 예상 못 하였다.

무공을 배우기 이전의 로렌초는 근접전이 펼쳐질 상황이 되면 겁부터 먹고 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탱커나 근거리 딜러처럼 호쾌하게 근접전을 시도하였다.

“져, 졌습니다.”

결국, 수세에 몰린 고정희는 로렌초의 검기에 검이 부서지자 기권을 선언하고 말았다.

김민경과 고정희.

그렇게 연달아 두 사람을 꺾은 로렌초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무력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실감하였다.

“신경철, 다음은 너다.”

로렌초의 도전장을 받은 신경철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S랭크 헌터라는 사실 외에는 헌터로서 그 어떤 자질도 보여주지 못하던 로렌초였다.

노력, 용기, 신념 등.

로렌초는 이것 중에서 단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신을 향해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이니 황당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사부에게 조금 배웠다고 잘난 척하기는. 나는 너처럼 하루 이틀 배운 삼류 무인이 아니다.”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큰소리 쳤던 신경철은 자신의 첫 공격이 막히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라락!

“이걸 버텼다고?”

로렌초가 그려낸 얼음 정령은 그을림만 보일 뿐, 멀쩡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신경철과 붙었을 때만 해도 얼음 정령은 신경철의 공격을 단 한 번도 버티지 못했었다.

모래성처럼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지금은 형체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시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게 고랭크 헌터의 벽인가.’

C랭크였던 김수민.

B랭크였던 이정.

신경철이 아무리 노력해도 두 사람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신경철은 두 사람을 보고서도 전혀 좌절하지 않았다.

박한새는 비각성자였다.

비각성자의 몸으로 B랭크인 이정과 C랭크인 김수민을 압도하였다.

그러니 D랭크인 자신도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두 사람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근데 무공을 익힌 지 겨우 열흘도 안 된 로렌초가 자신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니 신경철의 자신감도 크게 흔들렸다.

‘앞으로 S랭크 헌터들이 무공을 배우면 죄다 나를 추월할 텐데, 내가 사부님 곁에 계속 서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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