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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09화 (109/275)

#109화

나는 축 처져있는 신경철의 어깨를 꽉 잡았다.

“사부님….”

늘 패기 넘치던 신경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처럼 보였다.

로렌초에게 패배한 것이 그에게 큰 좌절감을 심어준 거 같았다.

‘지금으로선 해줄 수 있는 말이 없군.’

어떤 위로를 해도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신경철은 누구보다 열심히 무공을 수련한 자.

그런 그가 무공을 익힌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로렌초에게 패배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될 리 없었다.

‘지분율 100%가 돼서 나의 권속이 되면 그때는 방법이 생기겠지.’

지금은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권속이 된다면?

스킬도 줄 수 있고 스탯을 올려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의 몸에 ‘강림’하여 직접 나의 무공을 깨우쳐주는 것도 가능하리라.

물론 강림이란 권능은 너무 많은 카르마를 소모하여 자주 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로렌초의 성과를 봤으니, 노홍만의 성과도 확인해야 할 거 같았다.

“무공의 효과는 어떤 거 같습니까?”

내 말에 노홍만은 양반 자세를 풀고 벌떡 일어났다.

“벌써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감각이 좋아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홍만이 말한 두 가지가 무공을 처음 익힐 때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효과들이었다.

“내공을 다루는 법을 배우다 보면 더 많은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감각이 좋아지는 것.

이 정도는 진정한 무공의 효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뭐가 더 좋아지지?”

“내공으로 시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청력이나 다른 감각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가.”

“물론 그 밖에도 자신의 육체를 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무공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육체 강화였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하게.

내공을 다루는 실력이 늘어나면 그 사람의 육체는 한계가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

“지금의 나보다 더 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건가?”

“믿기지 않는군.”

그는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였다.

노홍만은 근접전 능력만큼은 한국 최강이라 불리던 헌터였다.

그리고 근접전 능력이 강한 만큼, 단단하면서 강인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그가 무공을 배워 더 강한 육체를 가지게 된다니.

무공을 이제 막 접하게 된 노홍만으로선 선뜻 믿기 어려울 것이다.

“걱정되지는 않나?”

“어떤 게 말입니까?”

“내가 무공을 배워서 더 강해지는 것.”

“겨우 며칠 만에 나는 내가 강해졌음을 체감하였다. 너의 말처럼, 무공을 배우면 배울수록 더 강해지겠지. 그리고 그렇게 강해지다 보면 곧 S랭크 헌터 한 명이 아닌, 수 명과 붙어도 이길 수 있는 실력이 될 거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노홍만은 원래 S랭크 헌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노홍만이 무공을 배워서 더 강해진다?

무공을 배우지 못한 S랭크 헌터는 상대가 안 될 게 분명하였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여러 명의 S랭크 헌터가 덤벼도 능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노홍만 헌터가 강해지는 것을 제가 왜 걱정해야 합니까?”

“걱정되지 않는다고? 내가 너를 꺾게 될 수도 있는데?”

“참된 스승이라면 자신을 꺾은 제자를 칭찬해야 하는 법입니다.”

내 말에 노홍만은 눈을 크게 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헌터의 삶을 살아온 그로선 나의 말이 꽤 충격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을 듣고 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조금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저를 꺾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의 무공 수준은 아무리 높게 쳐도 삼류에 지나지 않았다.

삼류에 지나지 않은 무인이 절정 고수인 나를 두고 자신에게 질 것이 두렵지 않냐는 소리를 하다니.

회귀 전에 사람들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하였으면 아마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웃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황당무계한 소리였으니까.

“그 자신감, 곧 꺾어주마.”

“열심히 해보십시오.”

나는 노홍만을 응원해주었다.

원래 목표는 클수록 좋은 법이었다.

절정 고수를 목표로 하면 언젠가 일류 고수라도 될 수 있으리라.

삼류 무인에 지나지 않은 노홍만의 도전장.

내 실력을 생각하면 노홍만의 도전장은 가볍게 무시해도 좋았다.

그와 나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했으니.

하지만 나는 상대가 아무리 모자라도 방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상대가 S랭크 헌터에 무공의 자질까지 갖춘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생각하면 설령 노홍만이 검기를 배운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노홍만의 무공 자질은 상당히 훌륭하였다.

S랭크 헌터는 단순히 스킬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마력 보유량부터 마력 감응력과 마력을 활용하는 능력까지.

그리고 이 모든 능력들은 무공과 연관이 있었다.

마력 보유량이 많으면 내공으로 전환할 때 보유 내공이 많아지게 된다.

마력 감응력이나 마력을 활용하는 능력도 마찬가지로 내공을 다루거나 보법, 검기 등을 사용할 때 도움이 되는 능력들이었고 말이다.

현재로선 아마 노홍만을 꺾을 수 있는 교관은 없을 것이다.

설령 김수민이 와도 노홍만만큼은 어렵지 않을까?

그만큼 노홍만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홍만의 실력과 관계없이 그가 나를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회귀 전에도 나는 무수히 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당연히 그중에는 ‘무공을 익힌 S랭크 헌터’도 있었다.

회귀 전의 나는 어떤 도전에서도 패배하지 않았다.

스킬이 없고 내공 보유량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잘 활용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절대 강자로 불렸다.

그리고 그건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카르마를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이 회귀 전보다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노홍만에게 지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노홍만이 아무리 강해져도 내가 이길 거라는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스승이 괜히 스승이겠는가.

제자와 비교했을 때, 압도하는 무언가를 갖추어야지만, 제자가 존경하는 스승이 될 수 있었다.

지지 않는 수준에서 만족할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겨야만 했다.

‘노홍만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절정 고수의 경지를 넘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

제자를 키우고 전 세계의 헌터에게 무공을 전파하는 것.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나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였다.

내가 경지를 높여야 다른 이도 나의 경지로 이끌 수 있었고, 그렇게 되어야 인류 전체의 전력이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절정 이상의 경지에 도달해야 신경철 같은 이를 절정 고수의 경지로 이끌어줄 수 있다.’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역시 S랭크 헌터들이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니, 강한 자극제가 되는 거 같았다.

루이스.

그는 남미, 페루 사람이었다.

마추픽추가 위치해있는 쿠스코 출신이었는데, 고향을 사랑하면서도 그는 고향을 등지고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루이스가 고향을 떠난 이유는 그가 헌터로 각성했기 때문이었다.

페루에서 헌터로 각성한다면 반드시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정부 소속이 되거나 아니면 마피아 또는 반군 소속이 되거나.

다른 나라처럼 길드를 만들어서 던전 사냥에만 몰두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가진 자들은 헌터라는 이유로 자신의 편에 서기를 강요하였고, 자신의 편에 서지 않을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노렸다.

페루의 상황이 이러했기에 루이스는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 소속이 되든, 마피아나 반군 소속이 되든 결국, 검이 향할 곳은 몬스터가 아닌, 같은 나라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

고향을 떠난 그는 다짐하였다.

A랭크 헌터 이상의 강자가 되어 돌아오겠다고.

몬스터보다 인간을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를 바꾸고 말겠다는 다짐이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이 처음 세운 다짐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심지어 헌터 생활을 하며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고향에 보내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의 삶을 바꾸겠다는 다짐이 흔들린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실력이 정체했기 때문이었다.

‘D랭크. 이게 내 한계인 건가.’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랭크였다.

아마 이 정도 랭크에 수년간 다져진 경험이라면 어떤 길드에서도 나름대로 인정받을 것이다.

연 10만 달러 이상의 수익도 가능하였고.

하지만 그래봤자 고랭크라고 부르기 민망한 랭크가 D랭크였다.

헌터 전력이 그리 강한 편에 속하지 않은 페루에서도 D랭크 헌터는 흔한 존재였다.

페루에서 활동하는 D랭크 헌터만 거의 이천 명에 가까울 정도이니.

이렇게 널리고 널린 D랭크 헌터가 마피아, 정부군, 반군들 틈바구니에서 자립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언젠가 고향 사회를 개혁하고 말겠다는 그의 목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목표인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헌터가 그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하였다.

“루이스. 톰이라고 알아? 대머리 톰이라 불리던 놈.”

“당연히 알지. 던전에서 자주 마주치던 사이였잖아. 얼마 전에 외국으로 떠났다고 들었는데, 맞지?”

“한국이란 나라에 갔었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톰 랭크가 지금 몇인 줄 알아?”

“랭크? 원래도 D랭크였으니, 지금도 D랭크이겠지. 당연히.”

그가 정체한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랭크를 높이는 것.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헌터는 처음 측정된 랭크에서 평생토록 머물 정도였다.

“D랭크라면 내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겠어? B랭크야! B랭크!”

“뭐? 대머리 톰이 B랭크 헌터가 되었다고?”

루이스는 눈을 부릅떴다.

자신과 동급이었던 헌터가 한 단계도 아니고 무려 두 단계나 랭크가 올라서 돌아왔다니?

선뜻 믿기 어려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야, 약이라도 한 거야?”

헌터 관련 커뮤니티나 SNS에서 핫한 각성제였다.

물론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말이 많기에 루이스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약은 무슨. 세상에 헌터 랭크를 올려주는 약이 어디에 있어?”

“그러면 어떻게 된 건데? 어떻게 해야 D랭크였던 사람이 몇 달 만에 B랭크가 돼서 돌아오는 거야?”

동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잘됐으니 기뻐할 일이었다.

하지만 D랭크의 벽에 막혀있던 루이스로선 기뻐하기보단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국에 갔었다는 말을 들어놓고 눈치 못 챘어? 톰, 그 녀석이 무공을 배웠다나 봐. 비각성자도 헌터보다 강하게 만든다는 그 무공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헌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무공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헌터뿐만이 아니었다.

비각성자로서 헌터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여준 뒤, 헌터들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박한새의 모습은 일반인들조차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미국처럼 히어로를 좋아하는 나라의 경우, 박한새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듣고 그를 영웅으로 숭상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루이스 역시도 무공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사기가 아니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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