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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12화 (112/275)

#112화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었다.

김수민은 검을 빼들고 안지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멸절 길드 측에서 온갖 공격이 날아왔다.

불, 얼음, 모래….

방금 그녀가 있던 장소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군대로 따지면 여단급, 아니 사단급 이상의 화력이 집중되어야 이 정도 수준의 파괴력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설령 S랭크 헌터가 이 자리에 있었어도 모골이 송연해질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김수민의 표정은 멸절 길드의 화력을 본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팔콘이란 사내가 했던 말이다.

물론 김수민은 팔콘처럼 공간 왜곡이라는 스킬 하나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염동력도 있었고 자신이 수련해서 거듭 발전 중인 무공도 있었다.

멸절 길드에서 시도하는 그 어떤 공격도 그녀에게 통하지 않았다.

논타겟팅 스킬은 보법으로 피했고 타겟팅 스킬은 염동력이나 검기로 튕겨냈다.

“막아! 더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너, 너무 빠릅니다!”

처음엔 7성급 던전 보스를 레이드하듯, 체계적으로 포지션까지 정해서 공격에 나섰던 멸절 길드의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을 튕겨내며 빠르게 접근하는 그녀의 모습에 반쯤 패닉 상태가 되었다.

7성급 던전 보스도 그들을 상대로 이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딜러들이 반격……!”

마침내 한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7성급 던전 보스 레이드도 경험한 적이 있는 노련한 탱커였다.

하지만 7성급 던전 보스의 공격도 막아낸 적이 있던 그 탱커는 김수민의 공격 한 번을 막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미친!”

“황탱이 당했다!”

주변 헌터들이 탱커의 죽음으로 당혹감을 느낄 때, 김수민은 다음 타겟을 노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탱커였는데 무려 A랭크 헌터였다.

캉!

베이는 소리가 아닌, 둔탁한 소리가 났다.

김수민이 날린 회심의 공격을 A랭크 헌터가 막아낸 것이다.

“별거 아니야! 침착하게 반응하면…!”

하지만 A랭크 헌터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본능적으로 반응하여 김수민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김수민의 공격은 그의 인지를 초월하였다.

더군다나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 다르게 김수민의 공격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티, 팀장님!”

“팀장님까지 당할 정도면 얼마나 빠른 거야, 도대체!”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김수민은 검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염동력을 사용하여 적의 움직임을 묶었다.

염동력 숙련도가 올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염동력의 활용은 공격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에도 눈이 달린 거냐!”

그녀의 뒤를 공격하려던 헌터가 염동력에 묶여서는 기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그가 외친 그 한마디가 그의 유언이 되었다.

염동력으로 묶자마자 바로 목을 베어낸 것이다.

이처럼 무공과 염동력의 조합은 엄청났다.

한눈에 봐도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설마 1팀 팀장이 저렇게 빨리 당할 줄이야.’

한국에서 손꼽히는 탱커가 겨우 몇 초 만에 김수민의 손에 죽고 말았다.

김수민의 무력이 기존에 예상했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된 이상, 길드원들을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겠어.’

안지호.

그는 익스플로전이란 이름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광범위한 공간을 폭발시키는 스킬이었는데, 적아를 가리지 않았다.

평소엔 팀킬이 될까 두려워 스킬 사용을 자제하였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콰아아아앙!

마음을 독하게 먹은 안지호가 익스플로전을 사용하였다.

“뭐, 뭐야!”

“익스플로전이다!”

“젠장, 왜 아군을 공격하는 건데!”

폭발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멸절 길드 헌터들은 원망 어린 눈길로 안지호가 있는 곳을 쏘아봤다.

하지만 안지호는 그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개의치 않았다.

그저 가면 쓴 괴인, 김수민의 상태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었다.

‘이걸 피했다고?’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고 익스플로전을 사용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김수민이 보법을 펼쳐서 그의 공격을 피했던 것이다.

‘더 화력을 높여야 한다!’

안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방금 공격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아군이 당할 피해를 우려하여 공격 범위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수민의 날렵한 움직임을 확인한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1팀 전원, 아니 2팀까지 날린다고 해도 저년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입은 손실도 이미 천문학적이었다.

10대 길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

여기서 멸절 길드의 최정예 레이드 팀인 1팀과 2팀이 전멸한다?

사실상 길드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피해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김수민을 잡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데.

콰아아아앙-!

“기, 길드장님!”

“도대체 이게 무슨….”

김수민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마치 미사일 폭격이 휩쓸고 간 것처럼 끔찍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안지호가 결단을 내리고 최대 화력으로 익스플로전을 쏜 결과였다.

가쁜 숨을 내뱉던 안지호는 간부들의 반응을 무시하고는 다급히 크레이터를 훑어보았다.

김수민을 찾으려는 것인데, 크레이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멸절 길드의 헌터 서른 명과 김수민이 그의 공격에 맞고 사라진 것이다.

‘드디어 그년을 죽였군!’

안지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엄청난 피해였지만, 김수민을 죽인 것에 성공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저년을 잡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목숨이었어.”

“그, 그건 그렇지만 저들은 멸절의 정예 멤버들입니다.”

“사람은 다시 뽑으면 될 일이다. 우리가 여기서 죽는 것보단 이게 나은 결과야.”

안지호가 강하게 말하니 간부들은 마지못해 인정하였다.

“김수민은 확실하게 죽었겠죠?”

“저기 흔적도 안 남은 거 안 보여?”

“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했습니다.”

갑자기 하늘 위에서 중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들었던 괴인의 목소리였다.

“이 정도로 내가 죽을 거로 생각했으면 오산이다.”

그 목소리를 듣고 간부들은 패닉에 빠졌다.

“사, 살아있습니다.”

“우린 이제 끝이야.”

안지호도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김수민이 있는 곳을 확인하였다.

운 좋게 살았어도 최소 중상을 입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말이다.

‘사, 상처가 하나도 없다니!’

그의 예상과 달리 김수민의 겉모습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마력을 전부 끌어다 써서 공격을 날렸건만 그녀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뭐, 뭣들 하는 거야! 어서 공격해!”

자신의 곁을 지키는 간부들에게 안지호가 다급히 외쳤다.

이보다 최악일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안지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놈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에이스도 버리고 정예 멤버들도 버렸는데, 간부들이라고 못 버릴 것은 없었다.

일단 목숨만 구제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사회생하고 말리라.

“사, 살려주십시오. 저는 한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시면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함구하겠습니다!”

“하, 함구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길드원들은 보스 몬스터에게 다 당한 거 아니었습니까! 하, 하, 하.”

하지만 그가 간부들을 버리려고 하듯, 간부들 역시 안지호를 버렸다.

간부들은 김수민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으며 목숨을 구걸하였다.

그것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말이다.

‘저딴 게 멸절 길드의 간부들이라니.’

안지호는 망연자실하였다.

음모를 잘 꾸미고 꾀가 많은 그도 지금의 상황에선 그 어떤 수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이곳의 그 누구도 살려줄 생각이 없다.”

무릎을 꿇고 있던 간부들의 머리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풀썩.

거의 동시에 쓰러지는 간부들의 모습을 보며 안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잔혹한 년. 저 중에는 한울 사태 이후에 들어온 간부도 있다.”

안지호가 진심으로 간부들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김수민을 조금이라도 동요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너의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미, 미친년.”

안지호는 욕설을 내뱉으며 최후의 저항을 시도하였다.

물론 통할 리가 없었다.

김수민은 안지호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더니, 안지호의 뒤를 점하였다.

푹.

하지만 김수민은 안지호에게 검을 휘두르는 대신, 손가락을 찔렀다.

“뭐, 뭐 하는 거지?”

“너는 곱게 죽이지 않을 거다.”

“뭐라고? 그냥 죽여, 죽이란 말이다! 으아아아아악!”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지호는 비명을 내질렀다.

분근착골.

박한새에게 배운 악랄한 고문술이 안지호에게 사용되었다.

처음 쓴 분근착골이었지만, 결과를 보니 성공적인 듯싶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복수에 성공할 줄이야.’

나는 혀를 내둘렀다.

김수민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당당하게 혼자서 복수에 성공했다.

‘지분율도 많이 올랐지.’

역시 실전만큼 좋은 공부는 없었다.

지분율이란 것은 실력이 올라야 오르는 것인데, 그녀의 지분율은 어느덧 90% 중반대가 되었다.

연합 길드와의 전쟁을 통해 엄청난 성장을 경험했다는 의미였다.

“어떻습니까? 복수에 성공한 소감이.”

“아직 제 복수는 끝나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 아직 한 사람이 남아있었다.

미국으로 도망친 낙원 길드 길드장 말이다.

“낙원 길드의 길드장까지 처리한다면 기분이 어떨 거 같습니까?”

“만약 마지막 남은 자까지 처리하여 복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크게 기쁘거나 통쾌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하지만…. 후회만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됐습니다.”

복수는 그녀에게 있어 의무 같은 것이었을 거다.

마치 운명처럼 헌터로 각성했고 또 운명처럼 나를 만났으니 복수를 의무나 운명처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니 후련한 기분 같은 것은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원래 복수란 허망한 법이지.’

쓴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복수란 것을 행한 적이 없지는 않았다.

회귀 전의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악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악연들은 나의 제자나 동료들에게 분풀이하고는 했다.

제자들과 동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나는 직접 나서서 응징을 하였다.

김수민이 한 것보다 더욱더 잔혹한 응징을 말이다.

하지만 복수를 했다고 기분이 좋아진 적은 없었다.

그저 씁쓸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같은 일이 벌어지면 나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

김수민을 말리지 못한 것도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상황이라면 반드시 복수를 실천했을 것이니까.

‘그나저나 미국으로 갔다가 괜히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한국에서는 김수민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미국은 달랐다.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이었다.

헌터의 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성좌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성좌가 얽혀있다면 김수민 정도의 실력으로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성좌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잠시 걱정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10년 뒤의 미국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미국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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