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113화 (113/275)

#113화

낙원 길드의 길드장이 정확히 미국의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별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걱정을 떨쳐낸 나는 그녀에게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복수를 성공한 이후의 계획은 따로 세워둔 게 있으십니까?”

“아직 복수 이후의 일에 대해선 생각해본 게 없어요.”

하긴, 복수라는 게 뒤를 생각하고 할 만큼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여명회란 세력과 팔콘이란 사내를 조사해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나는 그녀의 입에서 ‘여명회’란 단어가 튀어나오자 흠칫 놀랐다.

DX 길드가 그녀에게 접근했던 것을 제외하면 지금의 김수민은 여명회와 전혀 관련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가 10대 길드의 길드장들도 잘 모르는 여명회란 조직을 태연하게 거론하니 나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명회라면?”

“정동윤이라는 이름의 볼케이노 간부를 암살할 때, 제 앞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어요. 자신이 여명회라는 단체에 속해있다고 하였는데, 그자가 저에 대한 정보를 너무도 자세하게 알고 있었어요.”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분율이 높은 권속 후보일 뿐, 아직 내 권속이 아니다 보니,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을 알 수는 없었다.

“여명회는 쉬운 상대가 아닐 겁니다.”

“여명회란 단체를 아시나 봐요?”

“예, 알고 있습니다. 여명회가 아주 위험한 단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부가 위험하다고 할 정도면 세력이 상당히 큰가 보네요.”

단순히 세력이 큰 게 아니었다.

성좌 중에서 순위권 안에 꼽히는 힘을 가진 게 악신, 파롤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파롤이 인간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명회는 파롤이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세운 단체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여명회를 경계할 이유는 넘쳐났다.

“여명회는 사부의 적인가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뿐만이 아닌, 인류의 적이 될 단체입니다.”

“그러면 더더욱 공격해야겠네요.”

“일단 힘을 기르십시오. 저 역시 힘을 기르며 여명회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 저의 존재를 알고 있는 파롤이란 자를 꼭 처리하고 싶어요.”

나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영약, 묵혈정령실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앞으로 내공의 부족함을 느끼게 될 날이 올 겁니다.”

여명회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그녀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더 강해져야 지분율이 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탕! 탕! 탕!

엎드려 쏴 자세로 표적지를 향해 사격하던 대위는 사격이 끝나자 속으로 생각했다.

‘한 발이 조금 흔들렸다. 다음에는 더 집중해서 쏴야겠어.’

20발 전부 표적의 정중앙을 맞혔다.

딱 한 발이 미세하게 정중앙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대위는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역시 안 대위네. 어떻게 한 발이 안 빗나가냐.”

“사단에서 제일 잘 쏘잖아.”

“사단이 아니라, 군단에서 가장 잘 쏠 거 같은데?”

대위, 안능희가 이번에도 ‘만발 사수’가 되었음이 확인되자 주변에서는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개인화기 사격훈련을 했다 하면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 그녀였다.

그녀의 사격 실력을 보면 같은 군인으로서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수고했어. 안 대위.”

“어떻게 그렇게 잘 쏘는지 모르겠어. 안 대위는 우리 사단의 자랑이네.”

안능희는 직속상관의 칭찬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그녀에게 있어 이 정도는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박 중사도 그렇게 사격을 잘했다지?”

대대장의 말에 안능희의 표정이 처음으로 바뀌었다.

박한새.

안능희에게 있어 그는 눈을 감고 있어도 보이는 남자였고, 귀를 닫고 있어도 들리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저보다 잘했었습니다.”

“인재긴 인재였어. 하긴, 그렇게 대단한 인재니 사회에 나가서 그런 엄청난 일을 한 거겠지.”

박한새, 그가 한 일은 그냥 ‘엄청난 일’이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자부심 넘치는 헌터들조차 그의 제자가 되고 싶어 안달일 정도였으니까.

“안 대위.”

“대위가 박 중사를 만나러 가야겠어.”

“잘 못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대대장의 말에 안능희는 흠칫 놀랐다.

그러자 대대장이 부연 설명을 하였다.

“박 중사가 무공 아카데미를 세운 것은 알고 있지? 곧 우리 군에서도 무공 아카데미와 관련해서 협상하려고 하는데, 상부에서는 대위가 함께 가는 것이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을 내린 모양이야.”

안능희는 미간을 좁혔다.

“협상 같은 건 사령부나 본부에서 하는 일 아닙니까? 저는 어디까지나 일개 중대장에 불과합니다만.”

“딱 보면 모르겠나. 미인계지, 미인계.”

“대대장님.”

“노, 농담이야. 뭘 그렇게 정색하고 그러나?”

그런 대대장의 모습에 안능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제가 가야 하는 겁니까?”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그리고 군에서 박 중사와 그나마 친한 간부가 안 대위밖에 없잖아? 박 중사가 워낙 FM이라서 인기가 없었다고 하니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

1년 동안 같은 부대, 심지어 같은 소대에서 소대장과 부소대장으로 있었으니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가까운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었지만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재회하는 것은 원치 않았는데….’

군인이란 사실이 늘 자랑스럽던 그녀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뭔가 아직도 어색하네요. 저를 가르쳐주시던 교관님들과 한자리에 있다니.”

회의실에 새로운 인물이 합류하였다.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가 될, 세이서 길드의 길드장 유지은이었다.

“어색해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유지은 길드장님도 교수가 될 몸이니까.”

“한새 씨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호호.”

“유지은 길드장님. 축하드립니다.”

갑자기 유지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신경철을 보고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축하받을 일이 있었나요?”

“아, 연말이라 당연히 좋은 일이 있으신 줄 알고 한번 말해봤는데 없으신가 봅니다.”

“뭐예요. 호호. 근데 왜 제가 좋은 일 없다고 하니 웃으시나요?”

“길드장님과 연말을 함께 보낼 기회가 저에게도 남아있을 거 같아서 웃었습니다.”

그 말에 유지은이 귀여운 동생 바라보듯 신경철을 바라보더니, 호호 웃었다.

‘단단히 빠진 모양이군.’

나는 신경철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수련에 통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거 같던데, 왠지 유지은 때문인 거 같았다.

‘하긴, 겉으로만 봤을 때는 매력적인 여인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유지은은 무척이나 화려하게 생긴 여성이었다.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피부에 입체적인 눈매, 우아한 몸매까지.

심지어 A랭크 헌터이기도 하니 더더욱 화려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녀의 검은 속을 알고 있는 나는 화려하기만 한 겉모습에 속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신경철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김민경이 대뜸 나에게 물었다.

“사부는 연말 계획 따로 없으시죠?”

“저는 평소와 똑같이 지낼 생각입니다.”

무공 아카데미 설립일이 코앞인데 다른 일 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남으면 무공 수련을 해야겠지.’

절정 그 이상의 경지.

적어도 9성급 던전이 열리기 전까지는 절정을 뛰어넘고 싶었다.

“그러면 저도 평소처럼 사부에게 가르침을 받아야겠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일 때, 유지은이 김민경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민경 씨는 데이트 같은 거 안 하세요? 남자들에게 인기 많을 거 같은데.”

“‘씨’요?”

김민경이 예민한 목소리로 내뱉자, 유지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호호. 뭐 어때요, 이제 같은 교수인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요.”

“원한다면 그렇게 불러줄게. 유지은 언.니.”

“바로 말 놓네? 너도 나랑 말 놓고 싶었구나?”

“나는 말 놓으라고 한 적 없는데?”

“호, 호. 민경이 성격 참 재미있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뭔가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적을 눈앞에 둔 것처럼 살벌함이 느껴졌다.

똑똑.

다행히 그때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총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어디서 찾아오신 손님입니까?”

“국방부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이한철 소장이라고 합니다.”

‘군 무공 도입 추진단’이라는 국방부 장관 직속의 조직에서 나온 인물이었다.

계급은 무려 소장.

내가 군에 있을 때는 그야말로 쳐다도 못 봤을 계급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지금의 내게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소장의 옆에 있는 다이아 세 개의 계급인 대위를 눈여겨봤다.

안능희.

그녀는 내가 봤던 그 어떤 장교보다 듬직했던 진짜 군인이었다.

고결한 헌신과 강인한 정신력 같은 참군인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소질부터, 실질적인 임무 수행 능력과 응급 상황 대처 능력까지.

군인으로서 그녀는 완벽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안능희 대위입니다.”

“대위가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늘 표정이 없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왠지 심사가 복잡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일개 중사였던 이가 지금은 국방부 장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으니까.’

국방부 장관이 뭔가.

대통령조차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함부로 대하기는커녕 내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청와대에서는 벌써 무공 아카데미 총장은 의전 서열을 몇 번째로 둬야 하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한철 소장이란 사람과는 특별한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다.

국방부에서 날 찾아오는 이유야 뻔했고 내가 들려줄 답도 뻔하였다.

“저는 군이라고 특별한 혜택을 줄 생각이 없습니다. 대신, 입학 신청한 인원에 대해서는 불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공정하게 심사하겠습니다.”

내가 부사관 출신이라고 군을 특별 대우 해줄 이유는 없었다.

능력이 되면 뽑고, 능력이 되지 않으면 뽑지 않을 뿐이다.

안 그래도 비각성자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경지를 높일 수 있는데, 군 출신이란 이유로 재능 없는 무인을 양성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꼭 훌륭한 인재를 데리고 와서 정당하게 무공 아카데미의 입학생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군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으니 좋은 성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안능희를 바라보며 그같이 말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두 사람이 물러나고 주현근이 집무실로 찾아왔다.

“설마 안능희 중위, 아니 안능희 대위님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나도 몰랐다.”

주현근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의 재회인데,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사부님,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안능희 대위랑 무슨 관계였어요?”

“그건 왜 묻지?”

“늘 대답을 피하셨잖아요. 분명 심상치 않은 관계처럼 보였는데 말이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