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대신 회귀함-115화 (115/275)

#115화

아케론 길드의 응접실에는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디트로이트의 흡혈귀라 불리는 아드리안 패튼.

회생 유령이란 별명을 가진 브루노 클라크.

그리고 아케론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코빈 윌리엄스까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알려진다면 미국 전역이 떠들썩해질 게 분명하였다.

“칵 퉤! 더러운 박쥐 새끼가 왔군.”

“낄낄, 어디서 똥 냄새가 나나 했더니 오크리프의 촌놈이잖아? 촌놈이 여기는 웬일이래?”

“너 따위가 알 필요는 없다.”

“꺼지라는 의미였는데, 촌놈이라 눈치도 없네. 낄낄!”

물론 S랭크 헌터들답게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아드리안과 브루노의 경우 사실상 앙숙이나 다름없을 정도.

“우리가 시답지 않은 신경전이나 하려고 모인 것은 아닐 텐데.”

코빈 윌리엄스의 중재에 두 사람은 서로 노려보면서도 말싸움을 멈추었다.

S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진 것이 코빈 윌리엄스였다.

무엇보다 아케론 길드의 위상을 생각하면 S랭크 헌터인 두 사람도 코빈 윌리엄스의 체면을 생각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예의를 차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재해급 빌런이란 자는 진짜 오는 거 맞겠지? 반드시 와야 할 거야. 이 몸을 헛걸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될 테니 말이야. 낄낄.”

“나 역시 시간 날리는 것은 용납할 생각이 없다. 만약 그자가 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보상을 치러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은 마치 도발하듯 코빈 윌리엄스에게 한마디씩 하였다.

이럴 때만큼은 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올 거니 걱정하지 마라. 확실한 미끼를 가져왔으니까.”

여기서 그가 말하는 미끼란 낙원 길드를 말했다.

미국에서는 복수의 화신으로 알려진 재해급 빌런이라면 낙원 길드를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이곳을 올 수밖에 없으리라.

“그보다 나는 전리품에 대해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정하고 싶은데,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떻지?”

코빈 윌리엄스의 말에 아드리안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전리품이라면 그 빌런 년이 가지고 있을 무공 지식을 말하는 거야?”

“뭐 정하고 말 게 있어? 공평하게 나누면 그만인데?”

“무공 지식은 똑같이 배분한다고 해도, 빌런의 심문을 누가 담당할지, 또 어디에 가둬놓을지를 정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는 코빈 윌리엄스의 속셈은 간단하였다.

김수민의 신변을 자신이 관리하는 것.

미끼를 가져와 함정을 판 것도 아케론이고 두 사람을 불러 모은 것도 아케론이니 응당 김수민의 신변도 아케론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년의 몸은 내가 가장 먼저 사용하고 싶은데?”

“사용하겠다는 건 무슨 의미지?”

“처녀일 수도 있잖아. 키킥!”

아드리안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재해급 빌런이라 불리는 헌터의 몸을 갖는 것.

그에게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수민의 사진을 확인한 상태였기에 더더욱 그러하였다.

“우리 길드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샌님처럼 구네. 뒤로는 나보다 더 더러운 주제에!”

코빈 윌리엄스는 미간을 구기다가,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빌런의 신변은 우리 길드에서 관리하겠다. 아케론이 투자한 것이 많으니, 무공 지식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했으면 좋겠군.”

“쳇. 뒤로 무슨 짓을 하려고.”

“나는 무공 지식만 얻으면 빌런의 신변 따위는 관여할 생각이 없다.”

“두 사람이 그렇게 나서면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잖아? 키킥! 뭐 좋아. 나도 무공 지식만 갖는 것으로 만족해주지.”

합의가 끝나자 코빈 윌리엄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드리안 패튼.

그는 ‘재해급’ 빌런이라는 자가 함정에 빠지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다.

‘김수민이라고 했었지? 올 거면 빨리 와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키킥.’

원래 그는 무공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문들, 이를테면 비각성자가 S랭크 헌터를 이겼다는 그런 소문에 대해서는 헛소문으로 치부하였다.

아드리안의 상식에서 비각성자가 헌터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였으니까.

그 헌터가 S랭크 헌터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고.

하지만 그가 무관심한 것과 달리, 그의 성좌는 무공에 관심을 보였다.

재해급 빌런을 잡는 것에 그가 동참하기로 한 것도 바로 성좌 때문이었다.

‘무공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그년의 몸은 미치도록 탐이 난단 말이지.’

한편 브루노 클라크도 김수민이 함정에 걸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던전을 돌라는 지시만 내리던 성좌께서 이런 지시를 내리다니. 무공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인가?’

성좌라고 다 자신의 권속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성좌들은 권속의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노예 다루듯, 던전 사냥을 무한 반복시키는 성좌가 대부분이었다.

브루노 클라크도 그런 노예 취급당하는 권속 중 한 명이었는데, 처음으로 색다른 지시가 내려왔다.

성좌로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공을 배우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무공이 아무리 대단해봤자 S급 스킬에 못 미칠 텐데 말이야.’

브루노 클라크는 무공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조금 몸이 가벼워지고 조금 감각이 예민해지는 수준일 터.

그냥 패시브 스킬 여러 개 합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성좌가 시킨 일인데.

그는 묵묵히 아케론이 마련해준 게스트룸에서 재해급 빌런이 찾아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갑자기 숙소 방향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아케론 길드에서 마련한 게스트룸에 묵고 있던 아드리안은 입술에 침을 적셨다.

‘키킥! 드디어 왔구나!’

그는 어젯밤을 함께 보냈던 나신의 여인을 거칠게 밀쳐냈다.

C랭크 헌터인 여성이라 제법 재미있었지만, ‘재해급’ 빌런이 온다는데 평범한 외모의 C랭크 헌터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낙원 길드의 헌터들이 묵고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소란이 한창이었다.

“빌어먹을! 진짜로 미국까지 찾아올 줄이야!”

“1팀 팀장님이 당하셨습니다!”

“버, 벌써 강 팀장님이 당하셨다고?”

아드리안은 미간을 찌푸렸다.

낙원 길드의 헌터들은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실컷 떠들고 있었다.

‘여자는! 여자는 어디 있는 거야!’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김수민을 찾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가면 쓴 괴한이 나타났다.

“킴! 킴! 당신이 킴인가! 키킥! 몸매가 예뻐 보이는데!”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이미 그는 괴한의 외모를 알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김수민의 얼굴을 떠올리며 괴한의 몸매를 들여다보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제삼자라면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때, 괴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경고하였다.

아드리안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려고 할 때, 괴한이 살기를 내뿜었다.

S랭크 헌터쯤 되면 굳이 실력을 확인하지 않아도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만약 상대 쪽에서 ‘기세’를 내뿜는다면 더욱더 확실하게 가늠할 수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가면 쓴 괴한이 그들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공기의 흐름마저 바꿔버릴 정도로 진한 마력이 그를 압박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이, 이 정도 수준의 마력이라고?’

성좌의 도움을 받기 전의 그는 B랭크 헌터였다.

그리고 지금 그는 B랭크 헌터 시절, S랭크 헌터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감히 저항할 생각을 할 수조차 없는 압도적인 힘.

괴한에게서 바로 그런 힘이 엿보였다.

S랭크 헌터가 되고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저게 그 빌런인가.”

갑자기 그의 옆에 브루노 클라크가 나타났다.

“엄청난 마력이군.”

“이 마력을 느끼고도 그딴 감상평밖에 못 한다고? 누가 촌놈 아니랄까 봐 표현력도 한심하기 짝이 없어!”

“지금 표현력이니 감상평이니 그딴 게 중요한 것이 아닐 텐데?”

“난 어차피 안 싸울 거야.”

“뭐라고? 설마 도망치겠다는 건가.”

“싸우면 이기긴 하겠지. 우리가 모였는데, 지겠어? 키킥! 근데 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싸우고 싶지 않거든.”

“사람들에게 겁쟁이 소리 듣는 게 두렵지도 않나?”

“내가 우매한 민중들의 평가 따위를 신경 쓸 사람으로 보여? 키킥. 그딴 건 안중에도 없다고. 나한테 내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어!”

브루노 클라크는 미간을 좁혔다.

설마 디트로이트의 흡혈귀가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S랭크 헌터들에게 툭하면 시비를 걸고 다니던 사내인데 말이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건가.’

사실 그가 느끼기에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로 여겨졌다.

주변을 장악한 재해급 빌런의 마력.

그 마력이 너무 강렬하여 마력 싸움을 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도망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 싸워라. 싸워서 내가 바라는 것을 가져와라.

하지만 브루노 클라크는 아드리안과 같은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성좌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한 명은 물러났고 한 명은 자리를 지켰다.

그녀와 싸우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김수민은 검을 들었다.

상대가 S랭크 헌터인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사부가 준 영약 덕에 내공은 넘쳐 나.’

S랭크 헌터와 아케론 길드의 헌터들을 상대하려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박한새가 그녀에게 묵혈정령실이란 영약을 준 상태였다.

원래도 내공이 많은 편에 속하던 그녀는 이 영약 덕에 더 많은 내공을 보유하게 되었다.

만약 박한새가 그녀의 내공을 정밀하게 측정하였다면 아마 3갑자 내공을 가졌다고 말했을 것이다.

1갑자를 갓 넘은 박한새와 비교했을 때, 3배를 뛰어넘는 양이었다.

3갑자의 내공은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S랭크 헌터가 마력을 내공으로 전환해도 3갑자는커녕 2갑자를 넘는 경우도 그리 흔치 않으니, 그녀는 무공을 익힌 S랭크 헌터보다 내공이 많다고 볼 수 있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S랭크 헌터라면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제삼자라고 관용을 베푸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고는 끝이었다.

김수민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빠르군!”

190cm 장신의 백인 헌터, 브루노 클라크가 기겁하는 목소리로 외치더니 갑자기 모습이 흐릿해졌다.

마치 유령처럼 투명하게 변한 것인데 김수민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일단 검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원거리 스킬을 베어냈다.

그러는 동시에 염동력으로 아케론 길드 헌터들을 공격하였다.

“데미안이 붙잡혔다!”

“사, 살려줘! 내 힘으론 풀 수 없어!”

“거리를 벌려! 염동력 범위에서 벗어나려면 최소 50m 이상 벌려야 한다!”

김수민이 단 한 번 공격을 시도했을 뿐인데, 아케론 길드의 헌터들은 패닉에 빠졌다.

수십 명이 동시에 장비 아이템을 뺏긴 것도 모자라 팀의 에이스인 데미안이 염동력에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재해급 빌런을 처음으로 경험한 그들로선 실로 충격적인 무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김수민은 그들이 패닉에 빠지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S랭크 헌터인 브루노 클라크를 상대하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게 무슨 암살자란 말인가!’

아케론 길드의 길드 마스터, 코빈 윌리엄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런 식의 광경이 펼쳐질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