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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16화 (116/275)

#116화

“마, 마스터. 작전을 바꿔야 할 거 같습니다.”

“…빌어먹을.”

코빈 윌리엄스는 뒤늦게 깨달았다.

가면 쓴 괴한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설마 차륜전도 안 통할 줄이야.’

S랭크 헌터라도 체력의 한계는 있었다.

대형 길드들이 S랭크 헌터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그들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거리에서 쪼아준 뒤에 탱커와 딜러들이 차례차례 들어가 체력을 빼준다면 제아무리 S랭크 헌터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실제로 코빈 윌리엄스는 이러한 전략으로 S랭크급 빌런을 잡아낸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상대만큼은 차륜전이 통하지 않았다.

적의 움직임은 여전히 가벼웠고 지친 것은 오히려 아케론 길드 헌터들 쪽이었다.

‘그나마 손속에 사정을 두는 자라서 다행이군.’

김수민은 장비를 잃은 이를 공격하지 않았다.

아케론 길드는 그녀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길드와 달리, 그녀의 원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관용 덕에 아케론 길드는 거의 사상자가 없다시피 하였다.

‘손속에 사정을 둔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겠지.’

지치거나 여유가 없는 상태였으면 피를 봐서 아군의 사기를 꺾으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러지 않았다.

계속 덤벼도 상관없다는 듯, 아이템만 빼앗을 뿐이었다.

“브루노 클라크는 어디 갔지?”

브루노 클라크.

이 전투의 유일한 희망인 자였다.

S랭크 헌터답게 빌런의 공격을 수차례 막아냈다.

회색 유령이란 별명답게 그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빌런에게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디에서 휴식이라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휴식이 아니라 내뺀 거 같은데?”

“서, 설마 회색 유령이 빌런을 상대로 도주했겠습니까?”

“디트로이트의 흡혈귀인지 뭔지 하는 놈은 전투 시작 전에 이미 도망가지 않았었나?”

부관은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찬 코빈 윌리엄스는 결국 자신의 길드원들을 향해 외쳤다.

“물러나라! 우리가 잡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러자 그가 명령하기만 기다렸다는 듯, 아케론 길드의 헌터들이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가면 쓴 빌런도 그들을 붙잡지 않고 뒤로 물러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가면 쓴 이여! 우리는 그대의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겠다. 패배를 승복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니 승자로서 아량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를 지켜주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코빈 윌리엄스가 큰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하니 전장 뒤편에서 그들을 응원하고 있던 낙원 길드 길드장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우린 할 만큼 했다.”

“예? 아니, 할 만큼 하는 거로 끝날 게 아니라….”

“내가 왜 네까짓 놈들 때문에 길드원들의 목숨을 걸어야 하지?”

상대가 길드원을 잔혹하게 죽였다면, 헌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죽을 때까지 싸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상대는 ‘재해급’ 빌런이란 별명답지 않게 관대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대로 싸움을 포기한다고 해도 그의 명예가 크게 꺾이지는 않으리라.

“네놈들 똥은 네놈들이 닦아라.”

“시발! 지켜준다고 했으면서…!”

코빈 윌리엄스는 그를 더 상대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러자 낙원 길드의 길드장이 다급하게 도망치려고 하였다.

물론 그게 가능할 리는 없었다.

“사, 살려줘!!”

“끄아아아악!”

코빈 윌리엄스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케론 길드에는 관용을 베풀던 상대가 실로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길드를 운영하며 별의별 상황을 다 겪어본 코빈 윌리엄스조차 질겁하게 만들 정도의 무자비함이었다.

‘반드시 무공을 배워야겠군.’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코빈 윌리엄스는 한숨을 내쉬며 그 같은 생각을 하였다.

원래도 무공에 관심이 많았는데, 가면 쓴 빌런의 실력을 확인하고 더욱더 절실해졌다.

‘이 나이에 아카데미라니. 하. 꼴이 우습게 되었어.’

ABC 마트의 건물 옥상.

하회탈 가면을 쓴 괴한이 옥상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죽은 이후, 역대급 유망주라 불리던 그녀의 오빠 역시, 던전에서 실종되었다.

그녀가 조사한 결과, 오빠의 실종에 관여한 것이 바로 그녀가 복수했던 낙원, 볼케이노, 멸절 길드였다.

남편과 장남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녀의 어머니 또한 쓰러지고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행복하던 그녀의 가정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드디어 놈들을 다 죽였어요. 아버지, 어머니, 오빠.”

복수.

늘 꿈꿔왔던 복수를 마침내 실현하였다.

가족들의 억울함도 조금은 풀어졌으리라.

“이제 저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그녀는 오직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았었다.

헌터로 각성하기 이전에도 그녀는 복수를 꿈꿨고 헌터로 각성했을 때는 더욱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었다.

만약 박한새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복수에 나섰을 것이다.

그것이 삶의 이유였으니까.

복수가 끝나자 그녀는 삶의 목표를 잃었다.

‘일단 원래 계획했던 대로 팔콘이란 자부터 찾아내자.’

팔콘.

그자를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그녀의 정체를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빌런이 되는 것도 마다치 않았는데 정체가 발각되는 게 무엇이 두려울까.

하지만 자신의 은인이자 사부인 박한새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팔콘이란 자는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이왕이면 여명회란 단체도 없애는 게 좋겠어.’

그녀가 느끼기에 박한새란 사람은 이상주의자였다.

무공을 전파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는 이상주의자.

그런 박한새가 여명회를 거론할 때만큼은 유독 적개심을 보여주었다.

여명회를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상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수민으로선 여명회를 처단해야 할 이유는 그거 하나면 충분하였다.

박한새의 적은 그녀의 적이기도 했으니까.

‘어차피 삶의 목표를 이루었으니, 이제부터는 사부를 위한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시 가면을 고쳐 쓴 그녀는 옥상 위에서 뛰어내렸다.

‘재해급’ 빌런에게 S랭크 헌터 두 명이 당하고 초대형 길드인 아케론 길드가 박살이 난 상황에 대해 전미가 떠들썩하였다.

“국제 헌터 협회에서 재해급 빌런이란 등급을 새로 추가했을 때는 괜히 오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잖아!”

“S랭크 헌터 두 명이 당할 정도면 얼마나 강한 거야?”

“그냥 S랭크 헌터 두 명만 당한 것이 아니잖아. 아케론도 당했다고!”

“아니지. 그래도 디트로이트의 흡혈귀는 싸우지 않았으니, S랭크 헌터 한 명과 아케론만 당한 거야.”

“왜 싸우지 않았겠어? 두려워서 도망친 거잖아!”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재해급 빌런.

사실상 한국에서만 인정받던 재해급 빌런이란 등급이 마침내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그 정도로 김수민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그 빌런은 뭐 그렇게 강하대?”

“그니까. 아무리 두 S랭크 헌터가 S랭크 중에서 수준이 낮은 편이라지만….”

“내가 듣기로 재해급 빌런, 원래는 C랭크 헌터였다던데?”

“개소리하지 마. C랭크 헌터가 어떻게 그렇게 강해져?”

“왜 강해졌겠어. 무공을 익혔으니 강해졌겠지.”

“무공이라면 비각성자 코리안이 만들었다는 그 무술을 말하는 거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김수민에 대한 관심은 곧 무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미국 헌터들은 던전 레이드를 위해서든 단순 친목 모임이든 서로 만날 때마다 무공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무공이 등장하고 시간이 꽤 지났기에 신뢰도 높은 정보들이 공유되었다.

무공을 익히면 무슨무슨 성좌의 노예가 될 거라느니, 무공은 헌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해방군’의 짓이라느니.

그런 신뢰성 없는 정보들은 더는 공유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국제 헌터 협회에서 무공 아카데미 입학 신청을 받는다고 하던데, 한번 신청해볼까?”

“아, 나도 그 이야기 들었어. 근데 결격 사유 엄청 많지 않나?”

“내가 듣기로 가벼운 범죄라도 죄를 지은 사람은 신청을 안 받는다나?”

“미친, 공무원 뽑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까다로워?”

“뭐가 됐든, 나는 일단 신청하고 본다! 강해질 수 있으면 아무리 절차가 까다로워도 무조건 고 해야지!”

“맞아! 내가 한국 소문 들었는데, 앞으로 무공을 배우지 않으면 헌터계에서 도태된다더라!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배워야 해!”

협회 회장인 제니퍼의 판단으로 신속하게 박한새와 협상한 결과, 국제 헌터 협회는 박한새로부터 하나의 권리를 받아낼 수 있었다.

그 권리란 다름 아닌, ‘추천권’.

즉, 세계의 우수 헌터를 추천할 수 있는 권리였다.

사실 박한새로선 국내 헌터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국제 헌터 협회에게 일거리를 떠맡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제 헌터 협회가 박한새를 대신하여 ‘우수 헌터’를 가려내게 만든 셈이었으니까.

추천권은 말 그대로 추천권이라, 그 학생을 뽑을지, 말지는 박한새에게 달려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박한새에겐 일거리 떠넘기기나 다를 게 없는 이 추천권이란 권리는 국제 헌터 협회의 위상을 크게 높여주었다.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헌터들은 무공을 배우기 위해선 무조건 국제 헌터 협회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무공의 인기가 많아질수록 자연히 국제 헌터 협회의 위상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케론 길드의 길드원 전부가 입학 신청을 했다고요?”

“예, 총원 3,291명이 입학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하아. 일거리가 늘어도 너무 많이 늘었네요.”

제니퍼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의 인기가 많아진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었다.

국제 헌터 협회의 영향력과 위상이 강해진다는 의미였으니.

하지만 인기가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

박한새의 요구가 워낙에 까다로워 그의 요구에 맞는 헌터를 가려내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여기저기서 압박이 들어오기도 했던 것이다.

“S랭크 헌터이신 브루노 클라크도 입학 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브루노 클라크? 아니 그 사람이 왜요?”

“무공을 익혔다던 재해급 빌런에게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S랭크 헌터로서 자존심이 있지 않나?

뭐 정작 제니퍼도 무공을 배울 기회가 생겼을 때, 바로 기회를 챙겼지만 말이다.

“아드리안 패튼도 입학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제니퍼는 혀를 내둘렀다.

S랭크 헌터까지 끌어들일 정도라니.

무공의 위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S랭크 헌터라도 결격 사유가 있으면 통과시켜줄 수 없지.’

이건 그녀의 판단이 아니었다.

그는 그 어떤 예외도 두지 말라고 이야기하였다.

설령 S랭크 헌터라도.

‘문제는 그 후폭풍을 내가 맞아야 한다는 거지만.’

다시금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비서에게 물었다.

“두 사람, 혹시 법을 어긴 적이 있나요?”

“둘 다 있습니다. 아드리안 패튼은 음주운전과 상해죄 처벌 이력이 있고, 브루노 클라크는 절도죄 처벌 이력이 있습니다.”

“아드리안 패튼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니 그렇다 치고, 브루노 클라크 그 사람은 S랭크 헌터이면서 웬 절도죄래요?”

범죄 이력이 있다면 받아줄 수 없었다.

박한새는 아무래도 인류애 넘치는 헌터를 원하는 듯하였으니.

‘불합격 처리하면 괜히 깽판 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S랭크 헌터의 깽판이라니.

예전 같았으면 실로 두렵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뭐 무공을 배운 지금은 그저 성가시다는 생각 하나밖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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