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아드리안은 제니퍼 회장을 직접 찾았다.
자신을 불합격 처리한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가 직접 찾아 항의했음에도 제니퍼 회장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제길! 이 여자, 기세가 장난 아니잖아?’
마력으로 압박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기세에서 밀렸다.
평범한 A랭크 수준으로 생각했건만, 전혀 아니었다.
국제 헌터 협회라는 거대 국제기구의 장이 괜히 된 것이 아니라는 듯, S랭크 헌터를 넘어서는 기세를 뿜어냈다.
결국에 아드리안은 몇 마디 못 하고 얻은 것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나를 거부하다니. 그깟 범죄 몇 개 저지른 게 별거라고!”
그가 불합격 처리된 이유.
별거 아니었다.
사소하기 그지없는 범죄 이력 때문에 불합격 처리되었다.
‘무슨 지구 방위대를 구하는 것도 아닌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황당하였다.
S랭크 헌터인 자신을 이리도 푸대접하다니.
헌터가 폭행죄에 연루되는 일은 흔하디흔한 일인데 말이다.
아드리안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게 누구야. 빌런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오크리프의 촌놈 아니야?”
껴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구분 못 해서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는 S랭크 헌터였다.
“비겁한 도망자 따위가 누굴 놀리는 거냐.”
“키킥.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내는 게 실력이다. 촌놈이라 이런 간단한 이치도 모르나 봐?”
자신을 비웃는 아드리안의 모습에 브루노는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그로선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브루노 역시도 김수민의 경지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하였었다.
단지 성좌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김수민과 맞붙었을 뿐이었다.
“네놈 말고 다른 S랭크 헌터와 함께했다면 나는 지지 않았을 거다.”
“혼자서 이길 수 있었을 거란 말은 죽어도 못 하네. 킥킥! 아직도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봐?”
“네가 재해급 빌런의 실력을 봤으면 그딴 소리는 하지 못할 거다.”
“뭔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너 싸우는 거 끝까지 구경했는데.”
“유효타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하고 개발렸잖아. 회색 유령은 무슨! 재해급 빌런을 상대로는 그저 불쌍한 망령과 다를 게 없던데?”
멀리 도망쳤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걸 지켜보고 있었을 줄이야.
브루노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그가 분노하든 말든, 그저 놀리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협회 본부에는 왜 왔대? 그 망신을 당하고?”
“내가 왜 그걸 설명해야 하지?”
“뻔하지. 무공 배우러 온 거면서 뭘 또 숨겨? 키킥!”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드리안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네가 당하는 모습 보니, 배우면 재미있을 거 같더라고.”
“아까 성질부린 거 봤다. 회장과 대화가 잘 안 됐나 보지?”
“…너는? 설마 너는 입학 지원서 통과된 거냐?”
“아니. 결격 사유가 있다면서 불합격 처리를 하더군.”
“크큭, 너도 상황은 똑같구나!”
브루노는 혀를 찼다.
디트로이트의 문제아와 같은 취급이라니.
본인을 신사라고 생각하는 브루노로선 실로 굴욕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거지? 이대로 포기할 건가?”
“제니퍼 그 계집년이 거절한다고 내가 포기할 거 같아?”
“코리아로 직접 찾아갈 생각이다. 무공의 창시자 본인이 내 실력을 보고도 과연 불합격 처리할 수 있을지 보자고!”
국제 헌터 협회를 거치지 않고 한국을 직접 찾아간다라.
아드리안 역시 무공의 위력을 지켜봤기 때문인지 적극성이 남달랐다.
‘저 냄새 나는 놈을 따라 하는 건 싫지만 이번만큼은 저놈의 말이 틀리지 않는 거 같군.’
새해가 되면서 더더욱 일이 많아졌다.
무공 아카데미 설립에 관해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힘에 겨운 것은 입학생 모집이었다.
“국제 헌터 협회에서 전하기를, 까다로운 결격 기준에 대해 헌터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강충구의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국내에서만 입학생을 뽑아도 일거리가 엄청났을 거다.
그런데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의 인재를 뽑으려 하니 일거리가 그야말로 폭주하는 상태였다.
‘그나마 국제 헌터 협회가 대신 심사해줘서 다행이지.’
이미 세계적으로 무공의 인기가 뜨거워진 상황이었다.
외국인 헌터까지 내가 직접 뽑으려고 했다면 아마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까다로운 결격 기준이라면 범죄 이력 조회를 말하는 거지?”
“예, 아무래도 외국의 헌터들은 사소하더라도 범죄 이력 하나 정도씩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치안이 안 좋은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입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헌터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헌터는 헌터로 처음 각성하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갖 사고를 치고는 한다.
한국도 아마 치안이 안 좋은 나라였으면 너도 나도 사고를 쳤을 터.
“외국의 헌터들은 사소하기 그지없는 범죄 이력 하나 때문에 무공을 배울 수 없다고 하니 불만이 상당한 듯합니다.”
이건 외국의 헌터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까다로운 결격 사유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단순하게 범죄 이력만 조회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검사까지 실시하기로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절차들이다. 내가 헌터들에게 무공을 베푸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인류를 위해서니까.’
무공 아카데미.
사람들은 단순하게 무공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내가 전 세계 모든 헌터의 스승이 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무공 아카데미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무공 아카데미를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게 무공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가장 큰 목적은 따로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일체감 형성’이었다.
즉, 파롤 같은 공공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전 인류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기준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다.”
“국제 헌터 협회에서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거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얻은 게 많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이지.”
내가 무공까지 직접 가르쳐준 상황이다.
지금의 제니퍼라면 S랭크 헌터가 협박을 해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근데 사실 국제 헌터 협회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가 더 큰 문제죠.”
“우리?”
“신청자가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메일 열어보기가 두려울 정도로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집무실 한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열 마리의 좀비 떼(?)를 바라보았다.
“주, 죽여줘. 아니 제발 나를 기절시켜줘.”
“무공을 배운 게 한이다. 무공을 안 배웠으면 이미 쓰러졌을 텐데.”
“사부는 악마야. 힘을 주고 내 영혼을 가져갔어….”
“하, 하. 이 사람들은 무공을 익힌 내가 뭐 하고 있는지 알게 돼도 과연 무공을 배우려 들까? 아니지. 어차피 무공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숨어서 무공 익힐 일도 없겠구나.”
무공을 익혔기에 체력적으로는 비각성자 중 최고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이들이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들은 강충구처럼 내 제자인 동시에 행정 업무를 맡은 이들이었다.
비각성자는 무인으로 키우는 것이 오래 걸리기에 미래의 인재들을 미리 영입하여 키우기 시작한 것인데, 공식적으로는 비서로 알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헌터들의 반발을 생각하면 비각성자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손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은 비서를 가장한 게 아닌, 실제 비서 업무를 맡기 시작하였다.
워낙 업무량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짬 처리였다.
‘저걸 보니 뭔가 미안해지는군.’
헌터들의 입학 신청서를 체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이 나라 헌터의 수를 다 합쳐도 4만 명이 채 안 됐으니.
실제로 헌터 신청자는 2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비각성자들의 입학 신청서였다.
신청자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서 10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겨우 10명으로 100만 명이 넘는 신청자들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앞으로 신체 능력 평가나 마력 능력 평가 같은 것도 감독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그거까지 맡기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
100만 명 중에서 알짜 1,000명을 가려내야 했다.
당연히 신청서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였다.
신청서는 어디까지나 나이, 성별 같은 기본적인 정보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무인으로서의 자질을 확인하려면 여러 시험을 통해 신청자의 정확한 스펙을 가려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체 능력 평가나 마력 능력 평가, 정신력 평가 등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위해 우리가 직접 감독해야 했다.
‘하아, 쉬운 일이 없군.’
내가 한숨을 내쉴 때,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노크하였다.
“헌터 협회의 김범수 회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김범수.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이었다.
“우리 협회에서는, 무공이란 고도의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헌터들에게 공유해주려는 박한새 총장의 태도를 높게 보고 있소.”
“헌터들을 대신하여 박한새 총장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왜 갑자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이유는 뻔하겠지.’
아집이 강한 김범수가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꾼 이유는 엄청난 ‘이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리라.
그게 바로 무공 아카데미였고 말이다.
“협회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니 감사 인사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 하. 공익을 위한 박한새 총장의 마음, 협회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소.”
“그런데 오늘 찾아오신 용건이?”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묻자, 그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려는 듯, 헛기침하였다.
하지만 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뻔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자 김범수는 입술을 조금 깨물다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본론을 꺼냈다.
“입학 신청이 폭주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들었소. 총장도 알겠지만, 협회는 분기마다 헌터 자격시험을 실시하는 중이오.”
“저희를 도와주겠다는 말씀입니까?”
“비각성자를 평가할 때는 현장 통제에 도움이 되게끔 인력을 지원해주겠소. 그리고 헌터들의 경우, 우리가 시험 감독을 대리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너무도 노골적인 요구였다.
‘어떻게든 헌터들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다는 건가.’
원래 시험이란 건 주관하는 쪽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이었다.
협회가 나의 등장 이전까지 10대 길드들도 쩔쩔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보인 것도 그들이 헌터 자격시험을 주관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될 거 같습니다.”
“정녕 이 정도도 타협을 안 해준단 말이오?”
“타협이란 건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헌터 협회에게 추천권을 주는 것. 이 간단한 것이 정녕, 할 수 없는 타협이라는 거요?”
“국제 헌터 협회에게는 똑같은 권리를 줬으면서 왜 우리는!”
“국제 헌터 협회는 최소한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단체지 않습니까?”
“그 말은 우리 협회는 신뢰성과 공정성이 아예 없는 단체라는 말이오!”
김범수가 버럭 외쳤지만, 나는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현실이 그랬다.
일단 협회 회장인 김범수부터가 권력욕에 찌든 사람이었으니.
‘그리고 어디까지나 추천권은 추천권이지. 국제 헌터 협회에서 추천한 헌터들을 우리 쪽에서 다시 심사하면 될 일이야.’
반대로 국내에서는 굳이 그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
수십만 명의 비각성자가 시험에 응시할 텐데, 헌터 몇만 명을 조금 더한다고 문제 될 건 없지 않겠는가.
“역시 비각성자와는 말이 안 통하는군!”
내 태연한 얼굴을 보고 더욱더 분노한 그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