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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18화 (118/275)

#118화

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김범수는 자신의 측근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봤다.

그의 측근, 하태현 이사는 태연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다.

“자네, 일어나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저는 아직 박한새 총장과 할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뭐, 뭣이!?”

“박한새 총장과의 협의는 김범수 회장님의 기분에 좌우돼서는 안 될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러니 회장님은 그만 물러나시지요.”

“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남의 집에서 하극상이라도 하려는 겐가!”

하태현 이사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러자 김범수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믿었던 측근의 배신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저는 이사님께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범수 회장의 의견은 협회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이사님이 협회 전체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말씀입니까?”

“일단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협회 간부들은 김범수 회장과 뜻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겁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협회 내부에서 절대 권력을 자랑하던 김범수였는데….

“너무 당혹스럽게 여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헌터 협회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협회가 왜 무너집니까?”

“지금의 협회를 생각하면 무너진다고 표현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협회는 던전 이변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이미 헌터들에게 신뢰를 잃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회장의 고집까지 더해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하지 않았습니까?”

“저와 협의가 되면 여론이 반전하리라 여기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협회가 무공을 대하는 자세만 바꾸어도 헌터들의 여론은 달라질 겁니다.”

“그럼 김범수 회장처럼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지는 않겠군요.”

“저희는 그저 현장 통제를 도울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90회 이상 헌터 자격시험을 주관하였던 헌터 협회가 입학시험을 도와준다면 나로선 나쁠 게 없었다.

협회에는 노련한 직원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좋습니다. 단, 이것만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말씀하시지요.”

“입학시험을 감독하실 때, 비각성자에게 불공정한 행위를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하태현 이사 역시도 헌터였다.

헌터 협회의 간부인 만큼 비각성자들에게 차별적인 대우를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감독관은 우리 교관들이 맡겠지만, 협회에서 파견된 현장 직원이 비각성자들에게 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식으로 방해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제가 있는 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태현 이사까지 물러나자, 강충구가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어차피 김범수 회장이 회장직을 지키면 오늘 하태현 이사와 한 협의도 의미 없지 않습니까?”

강충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김범수 회장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이미 내부를 확실하게 장악했다는 사실을 의미해.”

“흠, 김범수 회장의 권력은 무소불위인 줄 알았는데…….”

하태현 이사.

그는 회귀 전에도 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는 인사였다.

그때도 김범수를 강제로 퇴임시키고 회장 자리에 올랐다.

아마 이번이라고 다르지는 않으리라.

“내일이 되면 알게 될 거다.”

내 예상대로였다.

다음 날이 되기 무섭게 주요 언론사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김범수 회장을 저격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사소한 가족 문제부터 백억 단위의 ‘억’ 소리 나는 뇌물수수 문제까지.

김범수 회장은 지금까지 어떻게 무마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온갖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와 동시에 하태현 이사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다.

무공 아카데미 총장 즉, 나와의 협의를 원만하게 이루어냈다는 기사였다.

상반된 두 기사는 누가 지는 해이고 누가 뜨는 해인지 명약관화하게 알려주었다.

‘과연 하태현 이사와는 어떤 관계가 될지 모르겠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태현 이사의 권력욕은 김범수보다 컸으면 컸지 더 작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협회와 세부적인 논의를 하자 어느덧, ‘입학시험’의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교관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무공 아카데미 제1기 입학 신청자는 100만 명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1기는 따로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무공 아카데미란 이름을 달고 입학생을 모집한 것은 이번이 최초였다.

“100만 명이라니.”

“경쟁률이 몇 대 몇인 겁니까?”

“한국 헌터는 최대 1,000명을 뽑기로 했으니 거의 천 대 일이죠.”

“와, 천 대 일이라니.”

교관들은 혀를 내둘렀다.

무공 아카데미에 입학을 신청한 비각성자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그나마 30세 미만으로 제한하지 않았으면 100만 명이 아니라, 300만 명 이상이 신청했을 거 같습니다.”

300만?

나는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봤다.

중, 고등학생의 장래희망 직업 1위가 헌터인 것은 10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그만큼 헌터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무공을 배우기만 한다면 그들이 부러워하던 헌터의 삶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을 터.

당연히 신청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비각성자만 신청자가 많은 것이 아니지.’

헌터들의 수도 무시 못 하였다.

신청자가 무려 2만 명.

한국 헌터의 수가 3만 명 조금 넘는 수준이니 절반 이상이 신청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홍보를 안 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놀라운 사실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몇몇 언론사와 인터뷰만 했을 뿐, 따로 돈을 주고 광고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부정행위만 잘 감시하면 되는 건가요?”

인성검사를 맡기로 한 김민경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응시자가 많을 것이니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사부님 덕에 체력이 좋아져서 그 정도는 끄떡없어요! 근데, 인성 검사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당연히 있을 겁니다.”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뭔들 못 하겠는가?

아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격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난 마력 능력을 담당하면 되는 건가?”

“예. 이정 교관이라면 상대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긴 하지. 주현근 교관과 고정희 교관의 내공이 갑자기 불어났다는 사실도 알아차렸으니까.”

“아무튼, 알겠다. 귀찮긴 해도 누구보다 먼저 무공을 배운 대가라고 생각하겠다.”

그렇게 이정은 마력 담당을 맡기로 정해졌다.

주현근도 마찬가지로 마력 담당, 강병철과 신경철은 신체 능력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나, 질문 있다.”

그때, 구석에서 조그만 인형 크기의 소환수를 만들어서 가지고 놀던 로렌초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노홍만과 달리 그는 교관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정신력 시험이라는 거, 왜 하는 건지 알고 싶다.”

정신력이란 절정 무인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질 중 하나였다.

물론 그보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구원할 구원자들에게 불굴의 정신력은 필수조건 중의 하나였다.

“정신력은 무인이 갖춰야 할 자질입니다.”

세계 멸망이니, 악신과의 전쟁이니.

뭐 그런 이야기는 아직 할 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기본적인 이야기만 하였다.

그리고 이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공을 배우는 데 있어 정신력은 굉장히 중요했으니까.

“그럼 정신력 시험은 내가 맡겠다!”

“정신력 시험의 시험 감독관을 하고 싶단 말씀입니까?”

내 말에 로렌초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나, 누구보다 완벽하게 정신력을 테스트할 수 있다.”

완벽하게 정신력을 테스트할 수 있다고?

나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그러자 로렌초가 갑자기 스킬을 사용하였다.

“바로 이것으로!”

순간 빛이 뿜어져 나오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을 거다.

로렌초의 손에 들려있는 아름다운 검을 보면 말이다.

“그 검은 뭡니까?”

“성검, 아트록스! 바티칸의 보물이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하였다.

성검, 아트록스.

아직 8성급 던전이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그야말로 세계 최고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카르마 상점에서도 구매할 수 없는 아이템을 구현하다니.’

로렌초의 ‘복제’ 능력은 확실히 범상치 않은 거 같았다.

주현근, 고정희, 김민경, 강병철.

나는 네 사람을 따로 불러냈다.

그들은 내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권속이었기에 남들에게 할 수 없는 부탁도 할 수 있었다.

“시험 감독관을 하실 여러분께 따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하실 필요 없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주현근이 장난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였다.

역시 공과 사 구분이 철저한 그답게, 내가 ‘존댓말’을 할 때면 그 누구보다 진지해지고는 했다.

“맞아요. 명령을 내리는 것에 부담 느끼시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는 사부님의 제자이자, 권속이잖아요?”

“저, 저도요.”

“아예 말을 놔주시면 안 되나요? 매번 말을 높이셔서 거리감이 느껴져요, 사부.”

나는 웬만큼 친해지지 않고서는 쉽게 말을 놓지 못하였다.

군에서 병사들에게 반말하는 것조차 고역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 누구보다 높은 사람이었던 아버지가 모두에게 존대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이 남았던 것일 뿐.

“그건 노력해보겠습니다.”

“쳇. 맨날 말로만….”

“아무튼, 제가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시험을 감독하실 때, 특정 인물들을 감시해달라는 겁니다.”

“특정 인물이라면?”

“배후령을 가진 헌터들을 말합니다.”

노홍만, 유지은, 이정.

내 주변에 배후령을 가진 헌터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이정의 성좌인 아우구스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나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유지은, 노홍만의 성좌가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최근 일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성좌들만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닐 거다.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다른 성좌들 역시 나에게 관심이 생겼을 터.

‘무엇보다 여명회가 있다.’

김수민이 내게 말했지 않은가.

여명회 소속의 팔콘이란 자가 자신을 회유하려고 했었다고.

이것만 봐도 여명회가 무공 관련 지식을 알아내는 일에 적극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무공 아카데미에 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을 게 분명하였다.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오려는 자들이 전부 순수한 목적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악의를 가지고 들어오는 자들도 있습니다.”

“악의라면, 설마 테러나 뭐 그런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악신을 배후령으로 둔 헌터의 경우 분명히 무공 아카데미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을 겁니다.”

“테, 테러라니.”

네 사람 모두 크게 놀랐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감독관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고 전쟁에 임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눈빛이 달라진 네 사람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였으면 상당히 부담이 되었을 터.

하지만 다행히 나에겐 든든한 아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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