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교관들에게 입학시험을 감독할 때 꼭 알아야 할 사항들을 알려준 뒤, 완공된 무공 아카데미 시설도 구경할 겸, 교관들을 데리고 시험장으로 쓰일 무공 아카데미 부지로 향하였다.
“아카데미 안에 산책로도 있네요? 예쁘다!”
여성 교관인 김민경은 잘 꾸며진 산책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지, 나무와 꽃들을 보며 연신 감탄하였다.
“저기가 훈련장입니까?”
“호오, 규모가 상당한데요?”
“운동 시설도 잘 갖추어졌군. 앞으로 운동은 여기서 하는 게 좋겠어.”
반면 남성 교관들이 눈여겨 살핀 것은 무공 수련과 관련된 시설들이었다.
심법을 수련할 기공 수련실과 심법 외의 무공을 수련할 연무장 등등.
그러다 신경철이 문뜩 아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뭔가 하나 없는 게 아쉽습니다.”
나는 그런 신경철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공 아카데미에 어떤 게 또 새로 필요한 거 같습니까?”
“무공을 창시하고 최초의 무공 아카데미를 설립한 사부님의 동상 한 개 정도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나는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황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현근과 김민경이 신경철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맞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업적을 세우신 분인데, 그 업적만큼 세계적으로 가장 큰 동상을 세우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 거 같습니다.”
“제가 아까 좋은 위치 봐뒀는데, 거기에다 동상을 설치하면 조경도 더 예뻐지고 구경할 맛도 생길 거예요.”
다들 진심인 거 같아서 더 무서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연무장 안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연무장은 ‘신체 능력 평가’가 이루어질 시험장이었다.
“어…….”
“음!”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교관들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시험장으로 쓰일 건물 내부가 엉망이라서 저런 반응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건물 내부는 오히려 신축 건물답게 깨끗하면서 세련되었다.
그들이 침음을 낸 것은 바로 ‘결계’ 때문이었다.
신체 능력 평가를 할 때 공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시험장 전체에다 결계를 설치한 것이다.
“마력을 제한하는 결계가 쳐져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주현근이 가장 먼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그러자 신경철이 동감이라는 듯 말을 거들었다.
“전 솔직히 단전을 만든 무인이라면 결계 정도야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전 고정희의 실력을 떠올려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E랭크 공무원 헌터였던 고정희는 원룸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결계를 세우는 것도 힘들어했으니까.
‘무공을 익힌 헌터들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실전에서도 제법 쓸 만하다는 의미지.’
물론 여기 있는 교관들의 경우, 결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 전부가 1갑자 이상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주현근과 고정희의 경우 원래 내공이 부족한 편이었으나 내가 영약을 선물하여 1갑자 무인이 된 상태였다.
뭐, 고정희는 본인이 만든 결계이니 애초에 결계의 영향을 받을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 위력의 결계라면 무공을 배우지 않은 C랭크 이하 헌터는 아예 스킬 사용을 못 하겠군.”
이정이 날카로운 눈으로 결계 내부를 훑어보며 그 같은 감상평을 내렸다.
“B랭크 이상의 헌터들도 결계의 저항 때문에 쉽게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신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이런 걸 설치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결계를 설치한 사람은 고정희 교관이니 고정희 교관을 칭찬해주시길 바랍니다.”
고정희가 얼굴을 붉히며 모든 게 내 덕이라면서 자신의 공을 떠넘겼다.
교육생들 앞에서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더니, 상황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 같았다.
“시험 응시하러 온 헌터들, 여기 들어오는 순간 무척이나 당황할 게 눈에 보이는 거 같습니다.”
강병철이 싱글싱글 웃으며 하는 말에 모두가 피식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공 아카데미 내부에 자리한 강의실에서는 한창 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무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거 같은 인성시험이었다.
딩동댕동.
마침내 시험이 끝나자 응시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겹다.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
한 헌터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친구로 보이는 헌터가 따끔하게 한마디 하였다.
“우리 사부님이 인성 좋은 제자를 원하신다잖아!”
“박한새가 벌써 네 사부님이냐?”
“어허! 어딜 우리 사부님께 경칭도 사용하지 않고 말하느냐!”
무공을 배우는데 왜 인성검사가 필요한 것일까?
불만을 제기한 헌터뿐만이 아니라, 이 강의실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무공 아카데미가 유일하였다.
한마디로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결국 헌터는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고 다음 시험을 준비하였다.
몇 시간 뒤.
강의실에서 벗어난 헌터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오늘 마지막 시험이 신체 능력 평가라고 했었지?”
“어. 오늘은 아마 근력이랑 순발력만 시험 볼걸?”
“흐흐! 드디어 내 시간이군!”
“우리들의 시간이지. 너만 헌터가 아니잖아?”
신체 능력 평가는 헌터들이 가장 바라던 평가였다.
그들의 능력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평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던 헌터들은 시험장에 들어가는 순간 기함을 내질렀다.
“뭐야, 이게?”
“모, 몸이 무거운데?”
비각성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들은 애초에 마력이란 것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헌터들은 시험장에 들어가는 순간,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력을 제한하는 결계에 영향을 받은 것인데, 헌터에게 있어 마력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하던 안능희는 신장이 180cm가 채 안 되는 헌터가 300kg 이상 되는 역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스킬을 쓰지 못하니 어느 정도는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계에 억눌린 헌터들의 모습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었다.
마력이 제한된 지금이라면 헌터들의 기록을 절반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막상 시험이 시작되고 헌터들의 기록을 보고 나니 그녀는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의 수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절반은커녕 그 절반의 절반도 아득하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순발력 테스트만큼은 다를 거다.’
안능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차피 근력 테스트는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었다.
비각성자인 동시에 남성보다 근력이 약한 여성이 헌터의 기록을 넘볼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안능희는 오늘의 마지막 시험인 50m 달리기 테스트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안능희는 골인 지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였다.
그녀의 경쟁자는 모두 9명.
총 10명 중에 선두는 그녀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속도로 최선두를 지켰다.
“휘유~. 저게 비각성자라고?”
“야, 너보다 잘 뛰는 거 같은데?”
“지랄. 내가 아무리 못 뛰어도 비각성자보다 느리겠냐.”
안능희는 결국 골인 지점에 가장 빨리 도착하였다.
그녀의 기록은 6.22초.
‘비각성자’ 사이에서는 남녀 따질 것 없이, 순위권 안에 드는 기록이었다.
시험이 끝난 뒤에도 주변에서는 그녀를 향한 감탄이 이어졌다.
“근데 진짜 농담이 아니라, 비각성자 중에서는 가장 잘 뛰는 거 같은데?”
“6초 극초반도 있으니 가장 잘 뛴 건 아니지. 뭐, 여자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기록이긴 해.”
“비각성자치고 제법 괜찮은 육체를 가진 건가?”
“저런 사람이 무공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겠지? 어디까지나 ‘비각성자’들과 비교할 때 하는 이야기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감탄사를 내뱉는 헌터들은 꼭 이 말을 덧붙여서 말했다.
그 말이란 다름 아닌, ‘비각성자치고’였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헌터조차 저렇게 빠르다니….’
근력은 처음부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비각성자이면서 성별 자체가 여성이었다.
신체 특성상 남성보다는 근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순발력 평가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비각성자의 몸으로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던 그녀였다.
자연히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기록을 비교해보니 50m 달리기에서 놀라운 기록을 보여줬던 그녀조차 헌터들과 비교하면 최하위에 불과하였다.
헌터들은 F랭크조차도 5초대의 속도를 보여주었다.
“역시 능희! 우리 사단, 아니 우리 육군 전체의 자랑이야!”
동기가 자랑스럽다는 듯 그리 말하자 안능희는 고개를 저었다.
“기뻐할 일이 아니야.”
“왜? 이 정도 기록이면 비각성자 중에서는 1,000위 안에 들지 않아? 아카데미는 무조건 들어갈 거 같은데?”
“설령 그렇게 들어간다 해도, 정당하게 들어간 것은 아니니,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아.”
만약 헌터와 똑같은 기준으로 시험을 치렀으면 어땠을까?
그녀를 비롯한 그 어떤 비각성자도 무공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거다.
헌터와 비각성자의 신체 조건 차이는 그만큼 엄청 났다.
“젠장! 기록 개망했는데, 합격 못 하겠지?”
“푸하하, 헌터 각성 왜 했냐. 헌터 각성 안 했으면 무조건 붙을 기록인데.”
“내 말이. 요즘은 괜히 헌터 각성했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비각성자였으면 내 성적이었어도 무조건 합격인 건데.”
투덜거리는 헌터들의 모습을 보며 안능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부터 정신력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협회에서 나온 직원이 새로운 시험장으로 응시생들을 안내하였다.
“정신력? 뭐 물속에 들어가서 숨 참기라도 하는 건가?”
“그냥 인성검사처럼 앉아서 시험 보는 거 아닐까?”
응시생들은 정신력 테스트란 말에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어떤 식으로 시험을 진행할지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갑다. 나눈, 시험 담당자, 로렌초.”
그때 외국인 한 명이 나타났다.
외국인은 어눌한 한국어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데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떤 헌터가 외국인을 가리키며 외쳤다.
“S랭크 헌터 로렌초다!”
“헉, S랭크 헌터라고?”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의 S랭크 헌터가 무공을 배운다고 했었지!”
외국인의 정체가 무려 S랭크 헌터인 것으로 밝혀지자 시험 응시생들은 화들짝 놀랐다.
“나 S랭크 헌터 실물 처음 봐!”
“나도, 나도!”
“로렌초 님, 사인 해주시면 안 돼요?”
“저는 사진 좀!”
진중하던 시험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연예인 팬 사인회처럼 바뀌었다.
그러자 헌터 협회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다급히 현장 통제에 나섰다.
정작 로렌초는 사람들이 알아준 게 기분 좋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일이 화답해주었지만 말이다.
“여기, 정신력 시험장이다.”
정신력 시험장의 내부 시설은 이전까지 경험했던 시험장들의 내부 시설과는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시험장 내부에 흙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흙더미에 거대한 대검이 덩그러니 꽂혀있었다.
마치 전설 속 엑스칼리버를 보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