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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21화 (121/275)

#121화

입학시험이 치러지자, 무공 아카데미 교관들은 전부 시험 감독관이 되었다.

이정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개인 수련을 최우선시하는 그였으나, 그렇다고 주어진 역할에 소홀히 할 정도로 무책임한 성격은 아니었다.

박한새에게 받은 은혜도 있는 만큼 군말 없이 감독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렇게 눈여겨볼 인재는 없는 거 같군.’

시험 응시생들의 수준은 이정의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

이미 그는 수백 명의 교육생에게 무공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무공의 자질을 보는 안목이 어느 정도 쌓인 상태였다.

그리고 이정이 보기에 입학시험에 도전하는 응시생들의 평균 수준은 그가 가르친 제자들의 자질에 크게 못 미쳤다.

‘박한새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던 거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하였다.

현재 무공 아카데미에서 무공을 배우는 이들은 지금과 같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원래 공무원 헌터였거나, 뒤늦게 무공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온 헌터들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공의 자질이 무척 뛰어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입학시험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던 이들도 무공 아카데미의 기존 멤버들과 비교하면 거의 평균일 정도였다.

‘박한새의 안목도 배워야 하는 건가? 정말 배울 게 끝이 없군.’

예전에는 무공의 기본만 배우고 무공 아카데미에서 나갈 생각이었다.

박한새 밑에 있으면 교관 일이든, 아니면 다른 일이든, 쓸데없는 시간 허비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본’이란 것은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배우고 배워도 배울 게 한참이나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가 군말 없이 박한새의 지시에 따르기 시작한 것도 최소 몇 년 정도는 박한새 밑에서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던 까닭이다.

응시생 명찰을 단 이가 이정을 향해 다가왔다.

“이게 누구야? 스승의 은혜를 지킨답시고 아버지와 가문을 내다 버린 패륜아, 이정 교관 아니신가?”

이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성연 길드의 차남, 이창우.

이복형제답게 이정과 이창우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아니, 좋지 않은 수준을 넘어 철천지원수나 다를 게 없었다.

이정이 성연 길드 길드장인 이세훈의 제안을 거절한 뒤로 관계는 더더욱 나빠졌다.

하지만 이정은 지금껏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이창우의 경우 그에게 얻어맞은 뒤로 이전처럼 깝죽거리지 못하고 얌전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시비를 걸면서 다가올 줄이야.’

시간이 지났다고 지난 일을 잊기라도 한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또다시 교훈을 새겨줄 필요가 있으리라.

“또 맞고 싶어서 까부는 거냐?”

“무공 아카데미의 긍지 높은 교관이 되었으면서 패륜아 짓을 저지르겠다고?”

“널 때리는 게 왜 패륜아 짓이 되는 거지?”

“그야 가족이잖아?”

“가족이라.”

이정은 같잖다는 듯, 조소를 흘렸다.

그는 맹세코 단 한 번도 성연가를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가족보단 원수에 가깝지 않을까?

“너 같은 가족 둔 적 없으니, 개소리 말고 꺼져.”

“가족이 될 수 없다면, 스승과 제자 관계는 될 수 있겠네. 내가 제자라는 게 슬프지만 말이야. 크크.”

“네놈이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게 가능할 거로 생각하나?”

“왜 안 될 거로 생각하지? 나, 성연 길드의 에이스야.”

“그 성연 길드라서 안 된다는 거다. 박한새 총장이 성연 길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나?”

“그 말은 우리에게 불공정 심사를 하겠다는 뜻인데, 언론에 알려지면 논란이 생기겠어?”

“내가 그런 것에 신경 쓸 사람으로 보이나?”

“…하긴, 가족도 내다 버리는 패륜아인데 명예가 있을 리 없지.”

이정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그대로 이창우의 멱살을 잡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이 이상 나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삼자가 봤을 때는 감독관이 시험 응시생을 폭행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 이정 감독관님. 진정하세요.”

결국, 헌터 협회 직원이 나선 뒤에야 멱살을 풀어주는 이정이었다.

이정과 거리를 벌린 이창우는 이를 갈며 외쳤다.

“그렇게 기고만장한 태도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적어도 네놈들에게만큼은 이 태도가 변할 날은 오지 않을 거다.”

“우리가 무공을 배운 뒤에도 과연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못 배운다고 했을 텐데?”

그가 그리 말했음에도 이창우는 제 할 말만 하였다.

“이정, 네놈은 만약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면 B랭크가 한계였을 거다.”

“B랭크 따위가 무공을 배웠다고 A랭크 헌터를 무시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지. 그렇다면 A랭크 헌터가 무공을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몇 번 말하게 하는 거지? 너는 무공을 배울 수 없다. 시험에서 떨어지게 될 거니 말이야.”

“무공이라는 게 꼭 무공 아카데미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네놈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당당하게 무공을 배워 볼 테니, 기대하라고.”

이창우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자 이정은 미간을 좁혔다.

장남인 이석우에 비해 여러모로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창우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감을 내비칠 이는 아니었다.

즉, 무공을 배울 만한 방법이 그에게는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어디 있다는 거지?’

이정조차도 누군가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한 세월이 걸릴 일이었다.

격체전력이란 기술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S랭크 헌터들을 제외하면, 무공 아카데미에서 박한새 다음으로 강하다는 그조차 이런 상황인데 누가, 어떻게 이창우에게 무공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강병철 그자가?’

갑자기 교관 회의 때, 강병철과 신경철이 나누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이정은 본래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인물.

그렇기에 강병철의 연애사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문뜩 강병철과 신경철이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성연 길드의 공주, 이지수랑 그렇고 그런 관계라며?

-하, 하.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 조금 친해진 거뿐입니다.

-이미 소문 다 났어. 성연 가문의 아가씨가 너 좋아한다는 소문 말이야.

신경철이 거론한 대상은 이정의 이복동생, 이지수였다.

평소였으면 강병철이 이지수와 어떤 관계를 맺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이창우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고 나서 둘의 관계를 떠올리자 괜한 의심이 들었다.

강병철은 주현근, 김민경, 고정희와 함께 격체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실력의 소유자였으니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입학시험이 벌어지는 내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혈기 넘치는 20대 수천 명이 모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중에 헌터도 무려 수백 명이었고 말이다.

오늘도 또 한 건 사고가 발생하였다.

헌터 두 명이 서로 시비가 붙은 평범한 사고였다.

“그래서 신경철 교관이 나섰는데….”

“그럼 문제가 해결되었겠군요.”

“신경철 교관이 두 사람을 기절시켰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교관이 되면서 성격이 조금 얌전해졌나 싶더니.

“신경철 교관이 몇 시험장이었죠?”

“제3 시험장입니다.”

나는 혹시 몰라 신경철이 있는 장소로 향하였다.

“저 사람, 박한새 아니야?”

“와아! 진짜 박한새다!”

제3 시험장에 도착하자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 거 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든 이와 같은 반응이 나왔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경철 교관이 사고를 친 줄 알았는데, 큰 사고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하긴, 신경철의 성격상 나에게 피해가 갈 행동을 할 리는 없었다.

그저 조금 과격하게 말렸을 뿐, 어차피 같은 헌터끼리 일어난 일이니, 큰 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작 제3 시험장에 도착한 내가 관심을 보인 것은 따로 있었다.

“미친! 비각성자의 힘이 왜 이렇게 세?”

“그니까, 이 정도면 거의 헌터 수준인데?”

“수십 년 전에 태어났으면 올림픽 메달은 그냥 쓸어 담는 수준이었겠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록을 보고 감탄하는 기색이었는데, 감탄하는 사람은 비각성자들뿐만이 아니었다.

C랭크 이상의 고랭크 헌터들도 누군가의 기록을 보고서 감탄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인재이길래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지?’

어찌 보면 서로 경쟁하는 사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 나올 정도면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는 뜻일 터.

심지어 ‘비각성자’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비각성자가 웬만한 헌터보다 더 좋은 기록을 보였다는 소리였다.

신체 능력이 좋으면 무공을 배우는 데 있어 엄청난 이점이었다.

강인한 근골을 지녀야만 절정 고수가 될 수 있단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나로선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웬만한 헌터보다 강인한 육체를 가진 비각성자라니.

설령 다른 자질이 부족하더라도 제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시험 응시생을 확인한 순간, 내 표정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쥐새끼가 있군.”

“예? 쥐새끼라니요?”

옆에 있던 강충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험한 말을 잘 쓰지 않는 내가 ‘쥐새끼’라는 비속어를 사용했으니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자의 이름이 뭐지?”

“아마 이름이 민병관이었을 겁니다.”

“민병관이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기에 수상하였다.

웬만한 헌터보다 강인한 육체를 가진 비각성자를 미래에서 온 내가 모를 리 없으니까.

나는 민병관이란 사내에게 다가갔다.

“민병관 응시자님 되십니까?”

“예, 제, 제가 민병관입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입학 준비를 하는 응시생 앞에 대학 총장이 나타난 셈이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팔을 걷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예?”

“팔을 좀 걷어주셨으면 합니다.”

“왜, 왜 그래야 하죠? 저, 피부병이 있어서 숨기고 싶은데.”

나의 요구에 왜소한 체격의 사내는 떨떠름하게 반응하였다.

마치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 것처럼.

“민병관 응시자님이 부정행위를 하였다는 정황을 발견하였습니다.”

“부, 부정행위요? 제가 무슨 부정행위를 했다고?”

“명확한 판별을 위해서니 팔을 걷어주십시오.”

민병관은 구겨진 얼굴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징그럽게 생긴 팔뚝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저 팔뚝은?”

“스킬인가? 존나 기괴하게 생겼네.”

“무슨 몬스터처럼 생겼는데?”

“근데 스킬을 어떻게 쓴 거지? 여기 마력 못 쓰는 공간이잖아?”

“그러게. 나도 시험 삼아 스킬 써보려고 했는데, 안 써져.”

나는 민병관의 팔뚝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웃기는군. 이런 외형을 한 채로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오려고 한 것인가?’

뭐 의도야 뻔했다.

어차피 패는 많으니 물량전으로 한 번씩 보내보는 거겠지.

즉, 눈앞의 민병관은 버리는 패였다.

아마 민병관 본인은 누구에게 이용당하는지조차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민병관 응시자님은 여기서 이만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왜 귀가해야 합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 몸으로 무공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안 될 건 없지 않습니까! 비각성자 중에서 저보다 성적이 잘 나온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나는 버럭 외치는 그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몸을 움찔하였다.

기세에서 밀린 것이다.

“아무리 기록이 잘 나와도 민병관 응시자님은 실격 처리 될 겁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그는 이를 악물더니 이내 휙 하고 몸을 돌렸다.

“몸 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몬스터의 팔을 이식한 대가는 아주 혹독할 것이니.”

기겁한 얼굴로 뒤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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