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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22화 (122/275)

#122화

복도를 걷던 팔콘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켰다.

물을 마실 필요가 없는 몸인데도 이상하게 오늘은 계속 갈증이 느껴졌다.

그만큼 긴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늘 당당하게 행동하던 팔콘이었다.

아마 세계 어디를 가도 그는 당당할 것이다.

오직 이곳.

7사도라 불리는 그의 스승이 있는 곳만 아니라면.

“스승님.”

“들어와.”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킹사이즈를 넘어, 그랜드킹사이즈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크고 화려한 침대에 7명의 남녀가 있었다.

정확히는 한 명의 남성과 여섯 명의 여성이었는데, 팔콘이 들어왔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나신인 채였다.

만약 이 광경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나신의 여성들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거나.

하지만 팔콘은 오랫동안 7사도를 모셔온 몸이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침실 입구에서 무릎을 꿇었다.

10분, 20분, 30분….

그가 무릎을 꿇은 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7사도는 그의 존재를 잊었는지 계속해서 나신의 여인들과 어울릴 뿐이었다.

그러다 세 시간이 되었을 때 마침내 열락의 시간이 끝이 났다.

나신의 여인들은 기절하듯 침대에 쓰러졌고 7사도만이 멀쩡하게 전라의 상태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국에서의 일은?”

“본래는 무공의 창시자인 박한새란 자를 납치할 계획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도무지 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상황?”

“그, 박한새란 자가 워낙에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기도 했고, S랭크 헌터들까지 끼어있어서….”

7사도의 눈빛에 팔콘은 고개를 푹 숙였다.

무심하기 그지없는 눈빛이었으나, 팔콘에게는 그저 두렵게만 느껴졌다.

“무공 아카데미에서 뛰쳐나온 계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 팔콘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내가 김수민을 납치하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원래라면 몰라야 했다.

던전 이변이 발생한 뒤로 세계 곳곳에서 급격하게 세력을 불려 나가는 여명회였지만, 아직 한국은 미개척지였다.

무공이란 게 만들어지면서 더더욱 진입이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그러니만큼 제아무리 7사도라고 해도 한국의 정보는 어두워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스승님이라면….’

팔콘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진실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괜히 어쭙잖게 속이려 들었다가는 그땐 정말 죽은 목숨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스승, 7사도는 김수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는지, 더 질문하지 않고 다른 걸 물었다.

“무공 아카데미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해서 잠입을 시도할 계획입니다.”

박한새가 무공이라는 독창적인 기술을 가진 것을 제외하면 학교 총장으로선 아마추어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래서 사람을 잠입시키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무공 아카데미의 벽은 견고하였다.

이미 그가 보낸 인원 대부분이 실격 처리가 난 것만 봐도 아카데미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팔콘은 무공 아카데미에 사람을 잠입시키는 시도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무공이라는 값비싼 무기를 얻게 될 테니 그로서는 포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뭐, 좋아. 대신 반드시 얻어 와야 해. 무공이란 거, 나도 한번 배워보고 싶으니 말이야.”

“근데 만약 못 얻을 거 같으면…. 없애.”

“무공이란 지식을 가진 자, 모두 없애버리라고. 내가 가질 수 없으면 아무도 가질 수 없게끔.”

나른한 목소리.

마치 농담처럼 말하는 7사도였지만 팔콘은 알았다.

저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이 7사도의 진심이란 사실을 말이다.

마력을 각성한 모든 이들이 헌터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마력을 각성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의 경우, 각성자 등록을 아예 안 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대격변 초기에야 헌터가 되면 의무만 많아지니 각성자 등록을 기피하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였다.

의무는 줄어들고 혜택만 늘어난 상황.

그렇기에 마력을 각성한 이들은 웬만하면 바로 각성자 등록을 하고서 헌터 자격시험에 도전하고는 했다.

즉, 마력을 각성했음에도 각성자 등록을 안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뜻이었다.

‘근데 하필 그 일부의 사람들이 무공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도전하고 있단 말이지.’

벌써 적발된 인원이 10명.

기록이 헌터와 비견될 정도로 좋은 이들은 거의 대부분 미등록 각성자였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이 여명회에서 보낸 첩자일 것이다.

민병관을 적발했을 때부터 이미 그들이 작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까.

‘역시 쉽지 않군.’

주현근, 강병철, 고정희, 김민경.

이렇게 네 사람이 도와주고는 있어도 역시 여명회의 잠입 시도를 원천봉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전처럼 파롤의 졸개를 처단하라는 퀘스트라도 떠줬으면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퀘스트도 뜨지 않는 게 아쉬웠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알고 있겠지만, 내 이름은 아드리안 패튼이다.”

“아드리안 패튼 씨.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공이란 게 궁금해서 말이야. 키킥.”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오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뭐, 무공을 배울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죄송하지만, 외국인의 입학 신청은 국제 헌터 협회를 통해서 받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 대꾸하자 아드리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 아드리안 패튼이야. 아드리안 패튼! S랭크 헌터라고!”

“설령 S랭크 헌터라고 하셔도 예외는 없습니다.”

하지만 S랭크 헌터가 괜히 S랭크 헌터가 아니었다.

아드리안은 마치 로렌초가 그랬던 것처럼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심지어 아드리안뿐만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한 명이 더 늘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S랭크 헌터였다.

“학비는 얼마든지 주겠다. 그러니 내게 무공을 가르쳐라.”

다짜고짜 무공을 가르쳐달라니.

S랭크 헌터가 거의 다 그렇겠지만, 브루노 클라크 역시도 오만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죄송하지만 브루노 클라크 헌터님은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이 내가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나의 단호한 답변에 브루노 클라크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S랭크 헌터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말은 마력으로 실력 행사를 했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었다.

브루노 클라크의 거대한 마력이 나를 압박하였다.

만약 내가 평범한 비각성자라면 바로 기절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압박이었다.

그러자 나 역시 내공을 일으켰다.

“으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기세 싸움의 승자는 나였다.

내게 있어 S랭크 헌터는, 타고난 마력만 많을 뿐, 마력을 활용하는 법은 하나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오성 길드의 진종호 길드장만이 그나마 마력을 곧잘 활용하는 편이었다.

“무공을 익힌 이들은 전부 괴물들밖에 없는 건가.”

그의 모습은 S랭크 헌터답지 않게 어딘가 처량해 보였다.

일개 비각성자에게 기세 싸움으로 압도적인 패배를 경험했으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현재 심정이 어떠하든 간에 내 결정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로렌초처럼 배후령이 없는 S랭크 헌터라면 모를까, 두 사람 다 배후령이 있지.’

물론 그 성좌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애초에 내가 아는 성좌는 몇 안 되니까.

하지만 안전하게 가려면 성좌를 가진 헌터는 배제하는 게 맞았다.

파롤 같은 악신 성향을 가진 이에게 무공이 알려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사, 사부님. 정신력 시험장을 가셔야 할 거 같습니다.”

입학시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강충구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나는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났나 싶어 다급하게 정신력 시험장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누군가가 성검 아트록스를 들어 올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검을 들어 올린 사람은 특기자 전형으로 선발된다고 하였었지?”

성검을 들어 올린 헌터의 이름은 아드리안 패튼.

“성검을 들어 올렸으니 나에게도 자격이 생긴 거 맞지? 키킥! 자격 얻기 참 쉽네!”

낄낄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미간을 주물렀다.

“억지를 부리시는군요.”

“이게 왜 억지야? 성검 들어 올린 자는 전부 합격이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험 응시생들 기준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드리안 패튼 헌터는 응시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질만 증명했으면 됐지, 가리는 건 또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아드리안이 한쪽을 가리켰다.

“나를 거부하면 여론이 안 좋을 텐데, 감당 가능하겠어?”

S랭크 헌터라면 그 나라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든 나라에서 탐을 내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아마 한국 정부에서도 지금쯤 아드리안과 브루노 클라크를 회유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역시 이자의 가치관은 나와 맞지 않는 거 같군.’

아드리안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였다.

꼭 배후령의 유무가 아니더라도 함께하고 싶은 인물은 아니었다.

‘물론 이런 자라도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가기는 해야 하겠지. 사람을 가려도 좋을 정도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니까.’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성격이 나쁘거나 이기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었다.

암울하기 그지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아드리안을 무공 아카데미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국내의 여론은 아드리안 패튼 헌터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킥킥! 그렇게 나오겠다, 이 말이지?”

미소를 짓고 있지만, 그의 눈은 차갑기만 하였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무공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브루노 클라크도 마찬가지였다.

두 S랭크 헌터는 이왕 한국까지 온 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공을 배우려고 들 터.

S랭크 헌터의 무력을 생각하면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이었다.

내가 아드리안 패튼의 입학 신청을 거절하였다는 소문은 곧바로 전국을 강타하였다.

[ㅁㅊ. S랭크 헌터를 버려?]

[아 존나 아깝다. 아드리안이 합류했으면 우리나라 헌터 순위가 적어도 한 단계는 더 올랐을 텐데.]

[심지어 아드리안뿐만이 아님. 브루노 클라크도 있음.]

[회색 유령 브루노 클라크? 내가 좋아하는 헌터인데 브루노도 무공 노리고 있었음?]

[ㅅㅂ. 박한새는 그럼 S랭크 헌터 두 명을 거절한 거임?]

[박한새 새끼. 사람들이 계속 띄워주니까 존나 오만하네 ㅡㅡ 지가 뭔데 S랭크 헌터를 거절함?]

[뭐기는 무공 창시자지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자기가 세운 학교인데 학생 받아주는 것도 자기 맘이긴 함.]

[근데 아까운 것은 사실이잖아. S랭크 헌터 두 명이 합류했으면 우리나라 헌터 순위는 단번에 세계 7위 되었을 듯.]

아드리안 패튼이 협박했던 것처럼 나에 대한 비난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미국, 중국,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S랭크 헌터를 회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나의 선택은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공으로 S랭크 헌터를 얻어낼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무공 아카데미의 사람을 뽑는 일 가지고 왜 전혀 관계도 없는 자들이 왈가왈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충구는 인터넷을 보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S랭크 헌터의 숫자가 국가의 자존심과 직결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정부까지 저러는 건 진짜 아니지 않습니까?”

여론이 움직이자 정부도 움직였다.

청와대 측에서 직접 나에게 아드리안 패튼과 브루노 클라크를 두고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 것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 교관들의 랭크만 재측정해도 사람들의 불만은 쑥 들어갈 테니까.”

이번 입학시험을 계기로 헌터 협회와의 관계가 원만해졌다.

그리고 헌터 협회와 관계가 원만해졌다는 사실은 그동안 협회에서 미루어왔던 랭크 재측정도 재개할 거란 사실을 의미하였다.

‘S랭크 헌터 두 명? 어차피 우리 무공 아카데미에서 최소 다섯 명 이상의 S랭크 헌터가 생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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