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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23화 (123/275)

#123화

“총장이 말한 대로 일단 랭크 재측정 신청서를 내긴 했다.”

이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근이나 고정희는 애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도 B랭크 헌터였고 무공까지 배운 이정은 100% S랭크 헌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정 교관이라면 S랭크 헌터로 측정되실 겁니다.”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S랭크 헌터들이 무공을 배우면 랭크 측정법도 크게 달라질 텐데 말이야.”

실제로 회귀 전에도 무공이 어느 정도 전파된 시점에 랭크 측정법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무공 전파가 그렇게 단숨에 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내 말에 이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보니까, 성연 길드에서는 몇 명 신청을 안 했다더군.”

“예, 다른 10대 길드와 비교하면 신청률이 저조한 편이긴 합니다.”

“심지어 성연의 후계자인 이석우조차 무공 아카데미에 입학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닌 척하였지만, 역시 이정은 성연 길드에 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그의 친부가 성연 길드의 이세훈 길드장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하지 않나?”

“어떤 점이 말씀입니까?”

“이석우, 그놈은 내가 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놈이지. 그런데 그놈이 무공 아카데미 입학을 포기했어.”

“모든 헌터가 무공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무공을 인정하지 않는 헌터들도 많습니다.”

“이석우 그놈이 무공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나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던 그놈은 무공 하나 때문에 나를 가족으로 받아주려고 하였었다.”

“…그렇습니까?”

“나는 강병철을 의심하고 있다.”

이정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강병철 이름이 나올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강병철이 성연 길드에서 사적으로 무공을 가르치고 있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강병철 교관이 말씀입니까?”

“총장도 모르는 일이었나?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고민하였다.

그에게 진실을 이야기할지, 거짓을 이야기할지.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 성연 길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에 이정은 눈썹을 찌푸렸다.

“성연? 늘 말했듯, 나는 그놈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 나는 그놈들을 적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야.”

“만약 이세훈 길드장이 후계자의 자리를 약속한다고 해도 말입니까?”

“왜 내게 그런 걸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후계자가 된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지? 나에게 있어 성연이란 길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곳이다.”

확실히 이정의 성격이라면 성연 길드쯤은 줘도 안 먹는 곳이라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는 권력욕이랄 게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오직 힘.

본인의 무력을 키우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내였다.

“이정 교관이 추측하신 것처럼 강병철 교관이 성연 길드에서 무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알고도 방관한 건가? 안일하기 그지없군. 무공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방관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저의 지시로 시작된 일입니다.”

“뭐!?”

내 말이 그리도 충격적이었던 것일까?

그답지 않게 눈을 부릅뜨며 놀라워하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무공은 무공 아카데미에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나?”

“성연 길드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통제할 목적이라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성연 길드는 10대 길드다.”

“멸절, 볼케이노, 낙원. 10대 길드 중에 세 곳이 몰락했습니다. 아직도 10대 길드의 이름이 유효하게 통용된다고 생각하십니까?”

10대 길드란 이름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결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아마 본인들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일 거다.

그만큼 무공이 등장한 이후로 헌터 업계의 판도는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박한새, 너는 성연 길드를 마음에 안 들어 하지 않았나? 아무리 통제하려는 의도라고 해도, 왜 적대 길드에게까지 무공을 전파하려는 거지?”

그로선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성연 길드의 후계자인 이석우와 내가 썩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교관들 중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성연 길드에 무공을 제공하는 짓을 하다니?

“저의 적이라고 인류의 적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이정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로서도 이 이상 설명해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인류 전체가 힘을 합쳐야만 해결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란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으니까.

이정과 면담이 끝난 뒤, 나는 오랜만에 강병철과 독대하였다.

“시험 감독관 일을 하시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십니까?”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시험을 치르는 입장에서, 시험을 감독하는 입장이 되니 오히려 재미있기만 합니다. 하하하.”

“저는 늘 강병철 교관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본인 수련할 시간도 부족한데, 여러 가지 일을 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공 수련하랴, 남 가르치랴, 감독관으로 일하랴, 심지어 성연 길드에서 일종의 첩자 역할도 맡고 있었다.

하루가 48시간이어도 그에게는 부족하게만 느껴질 것이리라.

“그런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흐흐,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사부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의 모습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시험 감독관 하시면서 혹시 눈여겨볼 인재가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안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은 인재가 몇 명 있었습니다. 다른 자질은 어떨지 몰라도, 일단 몸 하나는 튼튼해 보이는 그런 인재들입니다.”

“명단을 보내주시면 심사에 꼭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좀 수상하게 느껴지는 헌터들도 발견했습니다.”

“어떤 점을 보고 수상하다고 느끼셨습니까?”

“전혀 강해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기록이 잘 나오는 헌터들이 있었습니다.”

비각성자들이야 내가 잘 걸러냈지만, 헌터들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나 혼자서 전체를 감독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수상하게 느껴지는 헌터들의 명단도 넘겨주시면 제가 검토해서 합격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성연 길드에서의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우선, 가장 연고가 적을 신입 길드원 다섯 명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길드원들은 강병철 교관을 잘 따릅니까?”

“처음엔 긴가민가한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가 S랭크로 측정될 거란 소문이 돌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재측정하길 잘했군요.”

S랭크면 길드장인 이세훈보다 랭크가 높았다.

일반 길드원들 입장에서는 강병철을 길드장과 거의 동급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더군다나 무공을 배운 신입 길드원들이 단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반응이 더 좋아졌습니다.”

“길드원들은 지금 경지가 어떻게 됩니까?”

“모두 주천화부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강병철의 말에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주천화부 경지라면 다른 길드원들도 변화를 느낄 수 있겠군요.”

“예, 던전에서도 꽤 활약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찾는 길드원들이 늘었습니다.”

동료가 강해지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S랭크라면 그에게 무언가를 배운다고 해도 전혀 굴욕적이지 않았다.

헌터가 닿을 수 있는 최고 경지가 바로 S랭크였으니.

“이세훈 길드장은 어떻습니까?”

“저를 굳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부길드장이나 다른 간부들도 그렇습니까?”

“예, 제가 길드장의 딸인 이지수 헌터와 워낙 관계가 돈독해 보여서 저를 좋게 보는 거 같습니다.”

강병철은 성연 길드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나로선 실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길드장을 비롯한 간부진이 그 정도 믿음을 보이고 있다면, 강병철 교관이 S랭크 헌터를 데려온다고 해도 크게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예? S랭크라 하시면?”

“아드리안 패튼과 브루노 클라크를 말하는 겁니다.”

“그 두 사람을 성연 길드로 데려가란 말씀입니까?”

“예. 그냥 다시 미국으로 돌려보내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들 아니겠습니까?”

강병철이 처음으로 내게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럴 거면 무공 아카데미로 받아들이지 그랬냐, 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을 무공 아카데미로 받아들인다면 물을 흐리게 될 터.

‘정의’를 가진 무인을 양성하려는 나에게 있어 두 사람은 독이었다.

“한 가지 더, 강병철 교관께서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제 적이 되어주십시오.”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강병철이 눈을 부릅떴다.

충신인 자신보고 적이 되라고 하였으니 그가 경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과거, 이능관리부에서 제자를 뽑았을 때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혼자서 제자를 뽑았었다.

그때는 워낙에 숫자가 적기도 했고 내가 아는 이름도 많이 있을 때라, 굳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국내에서만 무려 2,000명을 뽑는 지금 상황에서 입학생 전부를 내가 독단으로 뽑을 수는 없었다.

하여 입학시험이 모두 끝이 나자, 헌터 협회의 도움을 받아 적격자와 부적격자를 추려냈다.

‘협회의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추려내는 것도 일이었겠어.’

나 혼자서 100만 명이 넘는 신청자를 일일이 추려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교관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헌터 협회의 지원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권혁진 헌터와 김성한 헌터. 이 두 사람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스펙을 가졌는데, 둘 중 누구를 뽑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협회에서 신체 능력, 마력 능력, 인성, 정신 능력 등을 기준으로 ‘적격자’를 추려주었으나, 협회에서 추린 인원 전체를 입학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협회가 추려준 인원이 1만 명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회의를 열었다.

진정한 옥석을 가려내기 위함이었다.

“스펙이 비슷하다면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 더 적은 권혁진을 뽑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나이로 뽑는 것은 조금 아닌 거 같습니다. 저희가 진짜 학교도 아닌데,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인성 테스트 결과나, 그동안 보여주었던 행적을 생각하면 김성한 헌터를 뽑는 게 조금 더 취지에 맞습니다.”

비각성자의 경우는 논란이 생길 여지가 없었다.

기록에 따라 선별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헌터는 달랐다.

마력 보유량도 제각각이었고 무엇보다 헌터에게는 스킬이란 것이 있었다.

마침 신경철이 권혁진의 보유 스킬을 거론하였다.

“권혁진은 반드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마탄의 사수로 만들어준 그의 스킬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보법을 사용한 채 마탄을 사용한다면 누구도 그에게 접근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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