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스킬이냐, 마력이냐.
이는 상당한 논쟁거리였다.
헌터에게는 당연히 스킬이 더 중요하겠지만 무인에게는 마력도 스킬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현재만 봤을 때, 마탄이 강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사부님과 같은 절정 고수의 경지에 올랐을 때도 마탄이 위력적으로 느껴지겠습니까?”
“무공의 경지가 오르면 스킬의 위력도 오르는 법입니다.”
“그래봤자 무공에 비교하면 한계는 명확합니다.”
신경철이 미간을 좁힐 때, 주현근은 말을 이었다.
“훗날 마탄은 우리 무인들에게 있어 잔재주에 지나지 않게 될 겁니다. 사부님이 사용하시는 검막이란 것을 저희도 사용하게 되면 마탄은 아무런 의미 없이 내공만 소모하는 스킬이 될 겁니다.”
스킬 예찬론자가 있다면 무공 예찬론자도 있는 법.
그리고 당연히 무공 예찬론자는 스킬이 ‘직감’ 하나밖에 없는 주현근이었다.
주현근은 권혁진이 사용하는 마탄이란 스킬이 나중에는 무의미해질 거라고 강하게 이야기하였다.
심지어 그의 이야기는 ‘마탄’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다른 스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스킬은 무공에 상쇄될 겁니다.”
그러니 만약 동등한 조건이라면 스킬을 가진 쪽보다는 마력 보유량이 더 많은 쪽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주현근의 논리였다.
사실 논리적으로는 오류인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일단 무공이 모든 스킬의 상성이라는 식의 표현부터 잘못되었다.
김수민이 보유한 염동력이란 스킬처럼 무공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킬이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여서 그런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킬과 비교해도 무공이 우월하다는 주현근의 논리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였다.
권속들의 경우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고 말이다.
“마탄의 사수, 권혁진을 뽑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나는 두 사람의 논쟁에서 신경철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연히 주현근보다 신경철이 더 좋다는 그런 유치한 이유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권혁진이 김성한보다는 더 나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인이 될 것이라 해도 동등한 조건이라면 더 뛰어난 스킬을 가진 쪽이 낫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주현근의 반박을 기다렸다.
하지만 주현근은 지금까지 강하게 주장했던 것과 달리, 나의 말을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헌터 협회 관계자들 역시도 별말 없이 내 선택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그들은 발언권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까닭이다.
“사실 권혁진을 뽑냐, 김성한을 뽑냐, 그런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브루노 클라크와 아드리안 패튼이 문제입니다.”
강충구의 말에 여기저기서 침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도 브루노 클라크와 아드리안 패튼으로 생긴 논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질 면에서는 압도적이니, 지금이라도 두 사람을 무공 아카데미로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질이 압도적이면 뭐 합니까. 언제든 빌런이 될 수 있는 자들인데.”
“맞습니다. 무인이 될 자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성품입니다.”
이번 논쟁은 시시하게 끝이 났다.
내가 결정을 내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아까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S랭크 헌터가 예전만큼 귀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 나는 강병철에게 신호를 주었다.
-지금이 나설 타이밍입니다. 저를 질타해주십시오.
내가 신호를 주자마자 강병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S랭크 헌터는 여전히 귀합니다. 무공의 시대가 오면서 더더욱 귀해졌습니다. 노홍만 헌터나 로렌초 헌터를 보십시오. 성취가 가장 빠르지 않습니까?”
“헌터 랭크가 높다는 것이 꼭 무공에 자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내공이 많아야 경지를 올릴 때 유리하다고. S랭크 헌터는 보통 마력 보유량도 많으니 무인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사부님! 부디 재고 바랍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두 헌터에게 사과하고 다시 무공 아카데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충신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줬던 게 강병철이었다.
그런 그가 내가 결정한 일을 두고 반대 의견을 내세우다니.
심지어 ‘외부 인사’라고 할 수 있는 헌터 협회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강 교관, 지금 뭐 하는 거야? 사부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사과하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이야!”
신경철이 버럭 화를 냈다.
그는 나의 권위가 꺾이는 것을 용납할 인물이 아니었다.
나를 사부가 아닌, 주군처럼 대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저는 제 의견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 의견에 어디 틀린 것이 있습니까?”
“강 교관! 정말 미쳤어!?”
“사부님은 그저 S랭크 헌터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안 그래도 강한 그들이 무공까지 익히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교관들은 모두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방관자나 다를 게 없는 헌터 협회 관계자만이 조용히 웅성거릴 뿐이었다.
“저 말이 진짜야?”
“가능성 없는 말은 아니지.”
“하지만 노홍만 헌터나 이탈리아 헌터는 받아들였잖아?”
“그들을 보고 더 느낀 거지. S랭크 헌터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하긴, 비각성자가 S랭크 헌터를 감당하긴 쉽지 않지.”
“헌터가 가진 재능은 결국 무인의 재능으로도 이어진다고 하니 더더욱 그럴 거야. 박 총장의 제자 중 몇 명은 이미 박 총장의 실력을 뛰어넘었다는 소문도 있어.”
나는 헌터 협회 관계자들이 작게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 실력을 뛰어넘은 제자가 도대체 누구지? 있으면 내 앞으로 데려다주었으면 좋겠군.’
나를 뛰어넘는 제자라.
오히려 좋았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선 한 명이라도 더 동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분위기가 과열된 거 같으니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회의 종료를 선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강병철은 내게 사과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마치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듯, 당당한 발걸음으로.
-아드리안 패튼과 브루노 클라크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강병철의 등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강병철은 듬직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권속들에겐 강병철의 사정을 이야기해줄 테지만, 다른 이들은 강병철이 스승의 은혜를 잊은 무도한 자라고 생각할 터.
누구보다 친하게 지냈던 신경철과도 사이가 안 좋아질 거다.
나로선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원래도 그랬으나, 입학시험이 시작된 이후로 박한새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연히 회의장에서 강병철과 박한새 사이에 의견 다툼이 일어난 일도 그날 바로 전국에 파다하게 알려졌다.
“무공 아카데미 교관들은 박한새의 충신만 있는 거 아니었어?”
“꼭 충신만 있는 건 아니지. 이정 봐봐. 박한새한테 대놓고 반말한다잖아.”
“근데 강병철은 진짜 의외긴 해.”
“더 배울 게 없어서 저러는 거 아니야?”
“와! 만약 진짜 그런 거라면 강병철 인성 개쓰레기인 거네?”
“그런 소문도 있어. 강병철이 성연 길드의 회유에 넘어갔다는 소문.”
“갑자기 성연 길드는 왜 나와?”
“강병철이 던전 이변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성연 길드에 파견 나갔잖아. 그때 친해졌다나 봐.”
“팝콘각이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온갖 소문이 퍼졌다.
강병철이 사실은 선민사상을 가진 사람이라 비각성자를 무시했다는 둥.
박한새의 실력을 뛰어넘었다는 둥.
성연 길드의 영애인 이지수와 사랑에 빠졌다는 둥.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강병철은 어떤 소문이 퍼지든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그는 당당하게 이세훈 길드장을 만났다.
“존경하는 사부님이지만 저는 사실 사부님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호오, 어떤 때에 그런 걸 느끼셨는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역시 입학생을 받아들이는 기준입니다. 인성이라든가, 범죄 이력이라든가. 그런 걸 왜 그렇게 중시하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세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병철의 말에 동조해주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의 속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박한새와 사이가 벌어진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그의 속내가 말이다.
“이번에 S랭크 헌터 건도 그렇습니다.”
“무공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았나 봅니다.”
“솔직히 아깝지 않습니까? S랭크 헌터를 받아들이면 무공 아카데미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지겠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적인 손해입니다. 사실상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걸 거절하다니, 저였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강 교관은 애국자이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길드장님. 미국의 두 헌터를 성연 길드로 영입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두 헌터라면 아드리안 패튼과 브루노 클라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 두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S랭크 헌터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두 명씩이나 자신의 길드에 들어오는 일을 과연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세훈 길드장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지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S랭크 헌터는 하나같이 자유로운 영혼들뿐인데, 두 사람이 과연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고 하겠습니까?”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강 교관이 직접 말씀입니까?”
“무공을 배우러 머나먼 한국까지 온 두 사람입니다. 저도 무공을 가르칠 수 있으니 제가 회유하면 넘어올 겁니다.”
강병철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자, 이세훈 길드장은 크게 반색하였다.
‘너무 기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두 사람은 당신의 사람이 아닌, 사부님의 사람이 될 테니까.’
박한새는 이미 성연 길드의 미래를 정해놨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대적자이지만, 실제로는 박한새의 친위 세력이 바로 성연 길드의 미래였다.
“킥킥! 회색 유령, 아직도 미국에 안 돌아가고 뭐 하는 거야?”
“볼일이 안 끝났는데 돌아갈 이유는 없지.”
“그렇게 거절당하고 미련이 남은 거냐? 촌놈답게, S랭크 헌터로서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야.”
“그러는 네놈이라고 다를 게 있나?”
“키킥. 이 몸은 반드시 무공을 배울 생각이라서.”
“미스터 박에게 거절을 당한 것은 네놈도 마찬가지일 텐데?”
“뭐 무공 아카데미라는 곳에서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네놈도 나와 같은 제안을 받은 모양이군.”
“설마 성연 길드를 말하는 거야?”
“그렇다. 나 역시 너와 같은 제안을 받았지.”
“하! 건방진 놈들! 나로 부족해서 촌놈까지 영입하려 한다고?”
S랭크 헌터치고 길드에 묶여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S랭크 헌터들은 자신들을 1인 군단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1인 군단에게 있어 길드는 짐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배후령 때문에 길드 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불쾌하기 짝이 없군.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 거야?’
한국이란 나라에 오고 나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적이 없는 거 같았다.
그를 잡은 물고기라 생각하는 미국조차 극진한 대우를 보여주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쩔 거냐?”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공이라는 비기는 오직 한국에서만 배울 수 있었으니까.
“일단 가봐야지. 무공을 배웠다는 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은 해봐야 할 테니 말이야.”
“있으면?”
“배울 거다. 그러고서 더 배울 게 없을 때쯤, 이번에 받은 모욕을 갚아줘야지. 킥킥!”
브루노 클라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을 신사라고 생각하는 그로선 대놓고 배신을 거론하는 아드리안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브루노 클라크의 선택도 아드리안과 다르지는 않았다.
일단 성연 길드에 들어가 무공을 배우는 것.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물론 아드리안이 그러려는 것처럼, 무공을 배운 대가는 줄 생각이 없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