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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26화 (126/275)

#126화

아카데미 구경을 끝낸 뒤, 그녀를 총장실로 안내하였다.

“총장실 내부도 깔끔해서 좋네요.”

좋게 말하면 깔끔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별다른 게 없어서 삭막하게 느껴지는 총장실이었다.

인테리어에 돈을 크게 쓰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에 앉으십시오.”

“그런데, 총장실에는 마력 집적진을 설치하지 않으셨나 봐요?”

“감이 좋아지셨습니다.”

“누구 제자인데요. 호호.”

제자라.

그녀에게 무공을 조금 가르쳐주긴 했지만 그게 제자라 부를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입학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거,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회장님 덕분입니다. 국제 헌터 협회가 외국인 전형을 담당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입학시험을 주관하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외국인 헌터까지 뽑아야 했으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됐을 거다.

“저야말로 고맙죠. 무공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일부 주관하는 게 얼마나 큰 이권인데요.”

이권이라니.

꽤 노골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제니퍼였다.

“그런데 국제 헌터 협회에서 보내준 명단을 확인했을 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국제 헌터 협회에서는 대략 삼천 명의 헌터 명단을 보내주었다.

인성과 신체 능력, 마력 능력, 그리고 범죄 이력 등등.

내가 심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확실하게 심사를 해주었다.

하지만 한 가지, ‘출신’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명단을 확인해본 결과,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선진국 출신의 헌터 비율이 지나치게 낮은 거 같았습니다.”

물론 출신에 대한 차별이라고 해서 선진국 헌터 위주로 명단을 추천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제니퍼는 본인 국적이 미국이면서 추천 명단에서는 정작 미국 헌터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았다.

고랭크 헌터가 미국에 몰려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유독 미국을 차별한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죄송해요. 보다 절실함을 가지고 있을 헌터들 위주로 추천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꼭 선진국 헌터들이라고 절실함이 없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기는 하죠. 힘에 대한 갈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까.”

“꼭 힘에 대한 갈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요?”

“앞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위기가 찾아올 겁니다.”

“위기라고요?”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후진국이야 워낙 사회 체제가 불안하니 언제 위기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서유럽, 한국 같은 선진국들은 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상태였던 것이다.

“곧 8성급 던전이 열릴 겁니다. 그리고 8성급 던전이 열릴 때, 헌터 강국이라 자부하는 나라들조차 엄청난 피해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원래 나는 미래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국제 헌터 협회의 수장이었다.

전 세계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녀가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정보는 공개할 필요성이 있었다.

“8성급 던전이 열릴 것은 각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는 일이니, 잘 대비하지 않을까요?”

“만약 8성급 던전이 생성되자마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면 어떨 거 같습니까?”

과거, 7성급 던전이 생성되었을 때는 그저 기존의 6성급 던전이 갑자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변화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던전 안에서 레이드를 하고 있던 헌터들만 피해를 봤을 뿐, 각국이 피해를 입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8성급과 9성급은 이전의 던전들과는 사뭇 달랐다.

던전이 생성될 때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였고, 던전 잠식도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즉, 기존보다 훨씬 더 레이드를 자주 뛰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미스터 박의 말은 추측인가요, 아니면….”

“경고라고 말하겠습니다.”

“무공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도 있었나요?”

“저에게 무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니퍼는 도무지 내 생각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 대통령님과도 약속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만 일어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시계를 가리키며 그리 말하자,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제니퍼가 손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나누어야 할 대화가 많이 남은 거 같은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꼭 오늘만 날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또 보고 싶은데요.”

“오늘 말입니까? 시간이 벌써 늦었는데….”

“그때처럼 저를 찾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이룬 무공 성취도 미스터 박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어요.”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며 호텔로 찾아오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하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새벽에 찾아갈 테니,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려주십시오.”

그날 새벽.

제니퍼가 묵고 있는 호텔 창문을 손가락으로 두들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이 열렸다.

“한국 호텔의 룸서비스가 참 좋네요. 창문으로 오다니.”

“보안도 그만큼 훌륭할 겁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제니퍼가 피식 웃었다.

“원래 농담도 잘 하셨나요?”

“혹시라도 저 때문에 한국에 실망하게 될까 봐 해본 말이었습니다.”

호텔의 보안을 뚫은 것은 내가 대단해서였지, 한국 호텔의 보안이 허접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작정한다면 미국의 백악관도 뚫는 게 가능할 것이다.

무공만이라면 어려울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각종 아이템과 스킬을 구매할 수 있는 카르마 상점까지 있으니까.

“적어도 한국 남자에게 실망할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제니퍼가 그리 말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가운만 입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야릇한 분위기였다.

하긴 침실에 남녀가 단둘이 있는데 야릇한 분위기가 안 날 수는 없었다.

“그럼 다행입니다.”

“전처럼 제 등을 보여주면 될까요?”

당장이라도 가운을 벗을 듯, 손을 올리는 그녀를 보고 나는 크게 헛기침을 하였다.

“가운을 입은 상태로도 괜찮습니다.”

“직접 손을 맞대야 더 효율이 좋지 않을까요?”

어딘가 아쉬운 눈빛의 그녀였다.

그러자 나도 왠지 모르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잡념을 떨쳐내고 그녀의 등에 손을 올렸다.

무공 수준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녀의 등에 손을 댄 순간, 내 표정은 심각하게 바뀌었다.

“혈도가 손상되었군요. 독에 당하셨던 겁니까?”

그녀의 혈도는 엉망진창이었다.

이 정도로 혈도가 엉망이 되었다는 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었다.

“바로 아셨네요.”

“어떻게 된 겁니까?”

“저는 몰랐는데, 협회 내부에서 저를 독살시키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이들이 있었나 봐요.”

나는 미간을 좁혔다.

아마 그녀에게 독살을 시도하였던 세력은 여명회가 아닐까 싶었다.

여명회는 국제 헌터 협회를 장악하려고 안달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미스터 박이 아니었으면 저는 나지카의 독에 당한 순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미스터 박.”

전갈 몬스터, 나지카.

S랭크 헌터조차 나지카의 독에 당하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치명적인 독인데, 당연히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지카가 출현하는 던전도 몇 곳 없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조심스럽지만, 조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미스터 박은 제게 스승이나 다름없는걸요. 아까 8성급 던전 이야기도 그렇고 저는 언제든 미스터 박의 조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진지한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나는 단호한 얼굴로 말하였다.

“피를 보는 건 가능하면 피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꼭 피를 봐야 할 상황이라면 약간의 망설임도 가지면 안 됩니다.”

“특히 그게 내부의 적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단숨에 끝을 내십시오.”

평소에는 아량을 베풀어라.

단, 적이 확실할 경우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말아라.

내가 그녀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었다.

그녀가 대적해야 할 내부의 적은 자비를 보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과연 제니퍼가 내 조언을 들을까?’

제니퍼는 유약하다고 보기 힘든 성정의 소유자였다.

애초에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이 되는 것은 험난하기 그지없는 가시밭길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약한 성정은 아니어도 내게 있어 단호함이 부족하게 느껴지긴 했다.

특히 ‘피’를 봐야 하는 상황일 때 더더욱.

‘만약 제니퍼가 적을 베겠다고 확실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김수민 교관에게 부탁해야겠어. 제니퍼를 도와달라고 말이야.’

복수를 마친 김수민은 여전히 미국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한국의 여명회 세력보다 미국의 여명회 세력이 크다고 내가 전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악신, 파롤에게서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거창한 신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나의 적을 자신의 적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 결과, 그녀는 복수에 성공한 이후 새로운 목표를 세웠는데, 그게 바로 여명회를 멸하는 것이었다.

여명회를 멸하려는 목적을 세운 그녀가 제니퍼와 힘을 합친다면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이 분명하였다.

“그나저나 제니퍼에게 한 말은 나 자신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군.”

적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피를 봐야 한다면 조금도 지체하지 말아야 하는 것.

이건 단순히 제니퍼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명회라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

나에게도 자비란 사치에 불과하였다.

‘무공 아카데미로 잠입하려는 시도가 무산되었으니 분명 지금쯤 다른 수작을 부리려고 하고 있을 거다.’

놈들의 패턴은 뻔하였다.

거슬리는 자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하였다.

당연히 나 역시도 그들에게는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 배제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을 터.

아마 곧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컸다.

“사부님, 화영 길드의 정승호 길드장께서 방문하셨습니다.”

그때 마침 화영 길드의 길드장, 정승호가 찾아왔다.

“바쁠 때 찾아와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정승호 길드장님이라면 언제든 찾아오셔도 좋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DX 길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왔다.”

직설적인 성격답게 바로 본론을 꺼내는 정승호였다.

참고로 정승호는 나와 동맹을 맺은 이후, DX 길드와 그 뒤에 있는 오 회장이란 자를 조사하고 있었다.

즉, 여명회의 한국 지부를 조사하였던 것.

그의 스킬 자체가 첩보, 암살에 특화되어 있었기에 내가 직접 그에게 여명회의 조사를 부탁한 것이었다.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구역질이 나더군.”

“괜히 제가 그들을 절대악이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히 그래. 처음엔 그냥 약쟁이들인 줄 알았건만, 어떤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놈들이었어.”

현재 여명회의 한국 지부는 펜테리움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펜테리움 자체가 불법 마약이었으니, 그들의 세력 확장은 음지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질 나쁜 이들만 모여들었다.

조폭은 예사였고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빌런들까지.

그리고 그런 자들이 모였으니 평소 행실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놈들, 무공 아카데미를 테러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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