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마침내 개교일이 되었다.
‘기자가 몇 명이야?’
원희수는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광경은 처음 봤다.
당연히 기자들에게 카메라 세례(?)를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그만큼 무공 아카데미의 개교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물론 무공 아카데미의 개교를 기대한 것은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입학생 여러분,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원희수는 안내 직원을 따라 대강당으로 향하였다.
대강당에는 이미 수천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인파가 모여 있었다.
“헌터 랭크가 뭐야?”
그러던 중 갑자기 같은 입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말을 걸었다.
“랭크가 뭐냐고.”
“저, 저는 D랭크 헌터인데요?”
“나랑 똑같네. 나도 D랭크 헌터야.”
“그런데 왜 반말이신지?”
“너도 반말하든가.”
원희수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상대와 통성명을 하였다.
상대의 나이는 마침 그와 똑같았다.
“무공 배우고 나면 뭐 할 거냐?”
“글쎄…. 일단 길드에 복귀해서 간부가 되지 않을까? 길드장님이 좋은 제안을 했었거든.”
“그래? 나랑은 다르네. 나는 JS 길드 출신이긴 한데 곧 나가려고.”
“어? JS 길드면 꽤 유명한 길드인데 왜 나가?”
JS 길드는 JS 그룹이 세운 길드였다.
오성 그룹이 세운 오성 길드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견 길드였다.
“무공을 배울 텐데 굳이 길드에 얽매일 필요는 없잖아.”
“그건 그렇네.”
원희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지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공을 배운다면 무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것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무력이 강해진다는 말은 헌터로서의 몸값이 상승한다는 의미와도 다를 게 없었다.
몸값이 상승했는데 과거의 길드에 얽매인다?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무공을 배우기도 전이었다.
무공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머나먼 미래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강단으로 한 명씩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원희수는 대화하는 것을 멈추고 강단을 바라보았다.
“로렌초 헌터다!”
“꺄악! 잘생겼어!”
가장 먼저 강단 위로 올라온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풍성한 콧수염과 목에 찬 금목걸이가 인상적인 이탈리아 남성을 보고 여학생들이 환호하였다.
그 뒤로 교수들이 속속 강단 위로 올라왔다.
교수들이 올라올 때마다 환호는 끊이지 않았다.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S랭크 헌터가 몇 명인 거야?”
“저기 오른쪽 두 번째에 있는 강병철 교수도 S랭크 헌터가 됐다던데.”
“이정, 신경철, 강병철, 유지은 그리고 기존의 S랭크 헌터 두 사람까지. 모두 합하면 여섯 명이야, 그럼?”
“미친. 한 세력에 S랭크 헌터가 여섯 명이나 된다고?”
“그 정도면 세계 최강 아니야?”
원희수는 헌터 생활 3년 차이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S랭크 헌터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S랭크 헌터는커녕 A랭크 헌터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만큼 고랭크 헌터의 숫자는 적었다.
‘오늘 S랭크 헌터를 몇 명이나 보는 거야?’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S랭크 헌터.
그런데 오늘 그는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여섯 명의 S랭크 헌터를 보았다.
“일류 무인, 로렌초. 괴수학 담당이다.”
“내 이름은 노홍만이다. 마찬가지로 일류 무인이다.”
두 S랭크 헌터가 가장 먼저 자기소개를 하였다.
“일류 무인이라는 게 정확히 뭐지?”
“그러게.”
“주현근 교수와 고정희 교수는 초일류라던데?”
“엥? 노홍만 교수가 더 강하지 않아?”
그때 교수진 정중앙에 있던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무공 아카데미 총장인 박한새였다.
“박한새 총장이다!”
“발걸음부터 무림 고수의 기운이 느껴져!”
박한새가 강단 중심에 서자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가 박한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를 환영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무공의 창시자이자, 절정 고수이며 이 아카데미를 설립한 박한새 총장님입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절정 고수는 또 뭐지?”
“초일류보다 더 높은 경지겠지.”
“헌터 기준으로 하면 도대체 무슨 경지인 거야?”
“S랭크 헌터도 그냥 일류 수준이잖아. 헌터 랭크로 따지면 SSS 아닐까?”
“SSS라고? 아주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버리네.”
“우리도 무공을 익히면 언젠가 그 정도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원희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정 고수가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라고 했지?’
일류라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무공 기술이었다.
하지만 내공을 검에다 발출하는 것으로 검기란 기술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몸을 다루듯 검기를 다뤄야지만,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나도 꼭 절정 고수가 되고 말겠어!’
한편, 안능희도 입학 환영회에 참석하여 멀리서 박한새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무공 아카데미 입학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청운의 뜻을 품고 새로운 출발점에 선 여러분의 인생이 값진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연설이었다.
환영회의 취지에 걸맞게 입학생을 환영한다는 내용과 몇 마디 당부만이 담겨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지루한 연설도 그가 하니 절로 집중하게 되었다.
안능희만 그런 것이 아닌지, 주변에서 다른 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초집중한 상태로 박한새의 연설을 들었다.
‘내가 알던 박한새 중사가 아닌 거 같아.’
박한새의 연설을 멍하니 듣던 안능희는 쓴웃음을 지었다.
수천 명의 입학생이 숨죽이며 연설을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경청하는 존재가 바로 박한새였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레벨의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젠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없겠지?’
그녀는 일개 학생이었고 상대는 무려 학교 총장이었으니.
“무공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가지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입학을 축하합니다.”
어느덧 박한새의 연설이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가 무려 다섯 번이나 이어졌지만, 아무도 지루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입학 환영회 절차가 모두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해산하였다.
안능희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학교를 구경하고자 강당을 나와 강당 주변을 걸었다.
“소대장님.”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안능희는 눈을 크게 떴다.
뒤를 돌아보니 박한새가 그녀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소대장님이 합격할 것을 예상했었습니다.”
그녀의 현재 계급은 대위, 직급은 중대장이었다.
당연히 소대장이라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지만, 나는 이게 더 자연스러웠다.
내게 있어 그녀는 영원한 소대장이었으니.
“소대장님은 늘 겸손하십니다.”
“제가 겸손한 게 아니라, 박 중사님이 저를 과대평가해주시고는 했었죠.”
나는 딱히 그녀를 과대평가한 적이 없었다.
과거의 그녀는 그야말로 군 전체의 모범이었다.
군에 입대한 헌터들조차 그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이번 무공 아카데미 입학시험으로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냈다.
“아카데미에서도 증명해내실 겁니다. 소대장님이 무공의 자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내가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박한새 총장님과 대화하는 저 여성분은 누구래?”
“그분 아니야? 안능희 대위인가 하는.”
“아 그, 박한새 총장님이 부사관이었던 시절에 부대 상사였던 사람?”
“근데 분위기가 왠지 좋아 보이는데?”
“뭔가 잘 어울리는 거 같긴 해.”
어느새 내 주변으로 구름처럼 모인 학생들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안능희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상황이 이러니 깊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을 거 같았다.
그때 마침 강충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성 길드의 진수호 길드장이 총장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자 안능희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너무 시간을 뺏은 거 같네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나는 그런 안능희를 붙잡지 못하였다.
쓴웃음을 지으며 총장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뭔가 아쉽군.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말이야.’
아쉬움을 느끼며 총장실에 들어가니 소파에 강렬한 아우라를 가진 사내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오성 길드의 길드장, 진수호였다.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상관없다. 부탁하러 온 입장이니, 이 정도 기다림은 아무것도 아니지.”
진수호 정도 되는 인물이 부탁할 것이 있었던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나를 보좌하던 강충구가 진수호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진수호 길드장님. 이쪽은 무공 아카데미의 박한새 총장님입니다. 예의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강충구를 혼낼 새도 없이 진수호가 나에게 사과하였다.
“내가, 아니 제가 실수한 거 같구려. 앞으로 예의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재벌 2세이자, S랭크 헌터이며 10대 길드 중 한 곳인 오성 길드의 길드장인 그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진 사내였다.
심지어 그는 S랭크 헌터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가장 강한 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헌터라는 사실은 이견이 없었다.
진수호의 성격은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실제로 그는 누구에게도 존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대통령에게조차도 말이다.
‘그런 그가 내게 존대를 하다니.’
대종사라 불리던 회귀 전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듣기 거북합니다.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빈말이 아니라 진짜 거북했다.
회귀 전, 그와 나의 관계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든든한 동지 관계였다.
당연히 나이 차도 있는 만큼 내가 그에게 존대하였었다.
인제 와서 말투를 달리하면 나로선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거북하다고 하니, 편히 말하겠네.”
“예, 그래 주십시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부탁이란 게 무엇입니까?”
내가 묻자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재가 있네. 이자에게 무공을 가르치면 자네가 가르치는 어떤 제자보다 성취가 빠를 거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야.”
나는 작게 감탄하였다.
진수호는 내가 알기로 칭찬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워낙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보니, 남을 평가하는 것에도 굉장히 엄격했던 것이다.
그런 진수호가 이 정도로 칭찬을 하는 인재라니.
‘아무리 무공의 자질과 헌터에게 필요한 자질이 다르다지만, 진수호 길드장의 추천이라면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설령 미래의 내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자라고 해도 반드시 영입해야 할 인재였다.
“누구입니까? 진수호 길드장님께서 추천하시려는 인재가?”
애써 흥분을 감추며 묻자, 진수호가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이성은이라는 자다. 얼마 전에 A랭크 헌터가 되었지.”
이성은.
너무도 익숙한 이름 석 자를 듣고 나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