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간부들은 적비단을 동원한다는 7사도의 말을 듣고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적비단.
일개 폭력 조직이라고는 하나, 현재 시점에서 그들은 여명회의 날카로운 칼이었다.
파롤이 아직 다른 성좌들의 눈을 피해 힘을 숨기는 상황이라, 여명회 역시도 온전하게 힘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적비단을 키웠다.
양지에서는 여명회가, 음지에서는 적비단이 세력을 확장할 의도였다.
그 결과 적비단은 S랭크 헌터만 무려 네 명이 넘는, 길드로 치면 세계 최고라 칭해도 과언이 아닌 폭력 조직이 되었다.
적비단이 움직인다면 대종사라 불리는 박한새를 죽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주군! 적비단 단주가 급하게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7사도가 적비단을 동원하려던 찰나, 마침 적비단의 소식이 들려왔다.
“적비단?”
“예! 그들의 사업장이 왕자성의 대대적인 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왕자성.
그는 원래라면 여명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인물이었다.
여명회로서도 그의 소속인 그린스킨이 부담스러워 그와 충돌할 의사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적비단의 대항자로서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기어코 적비단의 사업장에 공격을 가한 듯싶었다.
적비단이 중국 암흑가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본으로 순식간에 세력을 불렸다.
다른 조직에서 견제를 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먹힐 뿐이었다.
펜테리움이라는 헌터 전용의 각성제를 유통하기 시작하면서 적비단의 세력은 더욱더 급격하게 확장하였다.
현재 시점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삼합회 전체가 적비단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적비단의 천하나 다를 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청년이 적비단의 왕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청년의 이름은 왕자성.
그린스킨이라는 국제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대협! 거사에 성공하였습니다!”
“우와아아!”
“적비단을 무찔렀다!”
거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천도 동맹, 사해방, 죽련방 등.
출신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환호를 질렀다.
한때 그들은 서로 적대하는 관계였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왕자성이 등장한 이래, 그들은 적비단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곧 홍콩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와아아아! 홍콩을 되찾자! 적비단을 멸하자!”
환호하는 동지들을 보며 왕자성은 멋있게 주먹을 내뻗었다.
축배를 들고 기뻐한 것은 잠시뿐.
왕자성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적비단과의 전쟁을 대비하기로 하였다.
‘놈들은 분명 피의 보복을 시도할 거다.’
적비단은 지금껏 도전자를 용납한 적이 없었다.
자신들에게 대항한다면 무자비하게 응징하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반드시 그들에게 보복하려 할 것이다.
‘유격전으로 가면 승산은 있다.’
실로 막강하기 그지없는 적이었다.
무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왕자성조차도 정면승부는 감히 생각도 못 할 정도.
하지만 유격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S랭크 헌터가 1인 군단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이 작정하고 유격전을 펼치면 군단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공격으로 얻은 전리품이 상당한 거 같소.”
“자신들이 공격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인지, 현금을 그대로 금고에 넣어놓고 있었습니다.”
적비단의 행태를 보면 확실히 그들이 방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동산 관련 문서부터 달러와 금괴, 각종 보석까지.
거의 방치했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금품을 보관하는 일에 소홀하였다.
한 번의 습격으로 왕자성의 연맹 세력은 한화로 수천억에 달하는 금전적인 수익을 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러 전리품 중에서 왕자성의 연맹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여겼던 전리품은 ‘펜테리움’이었다.
헌터 전용 각성제인 펜테리움은 연맹의 조직원들도 사용하는 약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펜테리움을 왜 이렇게 많이 모아둔 것이오?”
“일부러 모아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면 이 많은 양의 펜테리움은 왜 홍콩에 있는 것이오?”
“본래 한국으로 가려던 물량이었으나, 유통 조직이 붕괴하여 물량을 옮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오. 그렇소?”
한국이라.
왕자성은 작게 탄성을 질렀다.
‘한국의 저력이 상당한 거 같군. 그 적비단의 진출을 막다니 말이야.’
동남아 각지는 물론이고 중국, 대만, 홍콩 심지어 일본으로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는 적비단이었다.
적비단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고자 마음먹은 나라 중에 지금껏 실패를 경험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런데 오직 한국.
한국에서만 적비단이 실패를 겪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적비단의 한국 지부를 없앤 것이 그 유명한 박한새라는 말도 있습니다.”
왕자성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중국에서도 거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려 ‘무공’을 창시한 이가 아니던가.
진정한 무공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중국에서는 무공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단지 구현에 성공한 이가 없었을 뿐.
심지어 고랭크 헌터들 중에서도 본인이 협객이라는 둥, 절정 고수라는 둥, 무인 행세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무공이란 엄청난 의미를 가졌다.
무공 아카데미에서 무조건 ‘한국어’,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제약이 아니었다면 신청자가 중국에서만 만 단위를 훌쩍 넘겼을 것이 분명하였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박한새 대종사가 우리의 동지가 될 수도 있겠구려.”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생각에서 그냥 내뱉어본 말일 뿐.
하지만 이때의 왕자성은 몰랐다.
그냥 내뱉은 말이 머지않아 현실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적비단의 반격이 곧 시작될 것을 예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적비단의 반격은 왕자성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전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가오슝현의 사업장이 습격받고 있습니다!”
대만 중부와 대만 남부는 왕자성의 세력권이었다.
그런데 그중 남부인 가오슝현에 적비단이 공격을 가하였다.
“인원은 몇 명이오?”
“샤오펑이란 이름의 부단주급 간부가 백 명 정도를 동원하였습니다.”
겨우 백 명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세계 3대 폭력 조직이라 불리는 삼합회의 내전에서 백 명은 너무 작은 숫자였으니.
하지만 그들이 전부 헌터에다 심지어 C랭크 이상의 고랭크 헌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백 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더 많이 끌고 올 줄 알았건만, 겨우 부단주 한 명? 아무리 부단주들이 S랭크 헌터급 강자라는 소문이 있다지만,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S랭크급 강자라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아직은 S랭크 헌터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그린스킨 소속의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랭크의 헌터들보다 강력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즉, 왕자성은 S랭크 헌터 중에서도 최소 중상위권 정도 되는 무력을 갖추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가겠소.”
웬만하면 정면승부는 피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상대가 겨우 부단주 한 명만 동원하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들이 방심할 때, S랭크급 강자라는 부단주 한 명 정도는 제거하고 가는 게 좋으리라.
“하지만 의장님이 가시면 중부는 누가 막습니까?”
남부도 중요했지만 중부도 중요하였다.
특히 그의 연맹은 여러 세력이 힘을 합친 곳이니, 중부에 거점을 둔 세력들은 그가 남부로 가는 것을 우려하였다.
왕자성이 남부에 가 있을 때, 중부가 공격당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홍곤 오십 명만 데리고 가겠소.”
홍곤은 본래 행동대장을 이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헌터의 시대가 열린 이후, C랭크 헌터 이상의 조직원들을 홍곤이라 불렀다.
‘오십이면 충분하다.’
상대는 백 명을 동원했다지만, 연맹에서 자랑하는 홍곤들이라면 인당 두 명은 상대할 수 있으리라.
정 안 되면 그가 적비단 부단주를 빠르게 제거하고 싸움에 합류하면 될 일이었다.
적비단의 부단주, 샤오펑.
그는 단원들을 이끌고 가오슝현의 한 상점가를 습격하고 있었다.
“손님이고 직원이고 가리지 마라. 모조리 때려눕혀!”
“미친놈들! 지금이 무슨 중세시대도 아니고!”
아무리 삼합회가 엄청난 위상을 가졌다지만 대낮에 민간인들을 습격할 정도로 정신 나간 짓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비단은 달랐다.
그들은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대만의 그 어떤 신문사도 적비단이 두려워서 오늘의 일을 보도하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 역시도 확실하게 통제할 자신이 있었고 말이다.
“1순위로 노려야 할 놈들은 어떻게 됐지?”
샤오펑의 물음에 그의 심복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명단에 적혀있는 인원은 거의 다 붙잡았습니다.”
“왕자성의 전 여자친구라는 년도?”
“예, 그년도 붙잡아 놨습니다.”
그들은 상점가를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적비단이 가오슝현의 상점가를 공격한 것은 ‘연맹’ 소속 간부의 지인들이 여러 가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연맹의 의장인 왕자성 지인, 정확히는 전 여자친구도 이곳에서 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마침 샤오펑의 심복이 왕자성의 전 여자친구라는 여자를 끌고 왔다.
“너, 왕자성 알지?”
“와, 왕자성이요?”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다짜고짜 폭력을 가하는 샤오펑의 모습에 여인은 두려움에 떨었다.
물론 샤오펑이 진심으로 때렸으면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단 한 방에 그녀는 즉사했을 것이니.
“왕자성을 아냐고 물었다.”
“예, 예전에 잠깐 만난 적은 있어요.”
“네가 죽으면 왕자성이 분노할까, 아니면 슬퍼할까?”
“……예?”
샤오펑은 잔혹한 웃음을 지으며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전부 죽여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아, 여자들은 죽이기 전에 사진 잘 찍어놔. 남편과 아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네놈들이 원한다면 동영상도 좋다.”
“흐흐!”
“감사합니다. 부단주님!”
동영상으로 찍어도 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 없었다.
적비단의 단원들은 흥분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점찍어두었던 여인을 끌고 갔다.
샤오펑 역시도 왕자성의 전 여자친구라던 여인을 한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하였다.
“이놈들! 멈추지 못할까!”
“크헉!”
“스, 습격이다!”
비명을 지르는 적비단 단원들의 모습에 샤오펑은 미간을 좁혔다.
그런 그에게 무언가가 날아왔다.
“흡!”
샤오펑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였다.
순식간에 진흙처럼 바뀐 그의 육신을 그린스킨의 고유 스킬, 철권이 가격하였다.
“왕자성!”
“네가 적비단의 부단주, 샤오펑이냐? 내 철권을 막은 걸 보니, 확실히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나 보군.”
그 말을 들은 샤오펑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소문?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소문만 듣고 나에게 덤빈 거라면 곧 후회하게 될 거다!”
왕자성은 S랭크 헌터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하는 강자였다.
하지만 샤오펑은 그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
적비단에서 단 한 명의 부단주를 출전시킨 이유.
그 이유는 바로 왕자성을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이제 세상은 알게 될 거다. 내가 S랭크급 강자가 아닌, S랭크를 뛰어넘는 강자란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