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다행히 두 부단주는 죽음은 모면하였다.
샤오펑의 죽음으로 처음부터 신중하게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죽음만 모면했을 뿐, 둘 다 큰 중상을 입었다.
당분간은 전투에 참여할 수 없을 터.
그리고 그들이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안 13연맹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기껏 적비단의 세력권으로 만들었던 대만의 사업장은 다시 잃게 될 것이고, 어쩌면 홍콩의 사업장도 잃게 될 수도 있으리라.
‘이 일을 어찌 보고해야 한단 말인가!’
단주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참패하였다.
물론 그가 직접 나선다면 반전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주의 무력은 부단주들과 비교했을 때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7사도는 그저 단주가 통솔력이 있고 자신의 말을 잘 따른다는 이유로 단주로 삼은 것이었다.
‘나까지 가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일단 7사도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게 낫겠어.’
그렇게 삼합회 전체를 자신의 발아래로 굴복시키려던 적비단의 야욕은 좌절되고 말았다.
여명회에서 더 지원을 해주지 않는 한, 삼합회 전체를 통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낮부터 중국계 폭력 조직 간의 세력 싸움! 동원된 헌터 수준은 10대 길드 이상으로….>
<중국, 대만, 홍콩 등에서 연이어 발생하는 테러! 과연 한국은 안전한가?>
적비단과 그에 대항하는 왕자성의 전쟁은 이제 전 세계가 알게 되었다.
아무리 여명회에서 감추려고 해도 사건의 규모가 워낙 크기에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세계는 난리가 났다.
단순히 폭력 단체 간의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동원된 헌터들의 무력이나 그 스케일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바로 이웃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 충격의 여파가 작지 않았다.
10대 길드들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을 정도.
‘S랭크 헌터급 전력을 세 명이나 처리하다니. 잘됐군.’
정부나 10대 길드들의 반응과 무관하게 나는 이번 소식을 듣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희소식도 이런 희소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적의 S랭크급 전력을 무려 세 명이나 전쟁에서 이탈시켰다.
두 명은 죽지 않고 중상일 뿐이라지만, 왕자성이 앞으로 전쟁을 계속 이어 나갈 것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전략적 우위였다.
‘물론 여명회의 전력을 생각하면 지금 기준에서 S랭크 헌터 세 명쯤은 엄청난 타격이라 보기는 어렵긴 하지.’
곧 회귀 전처럼 랭크 인식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지금의 S랭크 헌터 중 상당수는 A랭크 혹은 B랭크 헌터로 취급당하게 될 터.
무공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파워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명회는 지금 기준에서 S랭크 헌터 수십 명, 어쩌면 백 명 가까이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전력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고, 단합된 전력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중국 지부에 한해서는 작지 않은 타격인 건 사실이야. 아마 당분간은 나를 방해할 생각은 꿈도 못 꾸겠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기사들도 살펴보았다.
<삼합회 내분에 참여한 S랭크 헌터들의 충격적인 정체!>
<미국의 S랭크 헌터들은 왜 삼합회 내전에 개입하였는가?>
<브루노 클라크의 과거 발언 화제 “나는 무공을 배우려고 한국에 왔다.“>
브루노 클라크와 아드리안의 활약도 기사로 나왔다.
두 사람이 한동안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더 관심이 증가하였다.
아마 지금쯤 이세훈 길드장은 두 사람이 성연 길드의 사람이란 사실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었다.
<국제 헌터 협회장, 제니퍼 ‘개혁과 혁신을 위해 맞서 싸울 것.’>
아시아가 삼합회의 내전으로 진통을 겪고 있지만, 세계 여론 아니, 정확히는 세계 헌터들의 여론까지 아시아에 쏠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수의 헌터들이 아시아보다는 국제 헌터 협회의 변화에 관심을 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 제니퍼가 협회의 개혁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심을 내리자마자 무서울 정도의 추진력을 보여주는군.’
역시 그녀는 보통 인물이 아닌 거 같았다.
그녀는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헌터였다.
물론 그녀가 S랭크 헌터들보다 강해서 생긴 인기는 아니었다.
제니퍼는 강했지만, A랭크 헌터들 사이에서 강했을 뿐, S랭크 헌터를 넘어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인기의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그녀가 ‘정의의 히어로’였기 때문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로 위기가 닥친 나라가 있으면 그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출격하였다.
그 나라가 가난해서 그녀에게 돈을 지급하지 못한다고 해도 제니퍼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을 이재민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고는 하였다.
B랭크 헌터로 출발했을 때부터 그녀는 정의의 히어로였고, A랭크 헌터가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마더 테레사의 재림이라느니, 정의의 히어로라느니.
그녀에게는 보통의 헌터들과는 사뭇 다른 별명이 붙었다.
그만큼 그녀의 살신성인 정신을 사람들은 높게 평가하였던 것이다.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로도 그녀의 별명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약자를 위해 움직였다.
기존까지 국제 헌터 협회가 강대국 출신의 헌터들을 위해 존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행동은 기존의 국제 헌터 협회의 움직임과는 상반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으로서 그녀는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변심했다느니, 무능하다는 비판만 들어야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회장이 강력한 권력을 가졌고 그녀가 일반 헌터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도 겨우 단 한 명이었다.
단 한 명 바뀌었다고 썩은 내가 진동하던 협회가 바로 세워질 리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성격이 문제가 되었다.
단호함이 부족한 것이 그녀의 약점이었다.
이에 더해 헌터 시절의 별명들은 그녀로 하여금 유약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협회의 간부진이, A랭크 헌터인 그녀를 우습게 여기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협회의 간부진은 자신들이 엄청난 착각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들었어? 존 메이어 감사원이 비리 혐의로 잘렸다는데?”
“존 메이어? 그 사람, 임팩트 길드에서 밀어주는 사람 아니야?”
“맞을걸?”
“협회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협회가 갑자기 저러는 게 아니고, 협회장인 제니퍼가 달라진 거야.”
“제니퍼 회장이 마음 독하게 먹었나 보네.”
협회 간부들이 잇따라 비리 혐의로 해임되거나 구속되었다.
처음엔 그저 보여주기 식으로 생각했던 헌터들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누가 협회 간부들을 공격하고 있는지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철의 여인’
제니퍼는 과거의 별명이 연상되지 않을 만큼, 강인한 별명을 얻었다.
그녀의 강한 개혁 의지를 보고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협회장이 갑자기 왜 저러는 겁니까?”
“미친 겁니다. 미친 거!”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겁니까?”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제니퍼 협회장을 지지하는 헌터들의 기세가 매섭습니다! 여론이 제니퍼 협회장의 편이란 말입니다!”
협회 이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정의의 히어로니, 마더 테레사의 재림이니.
제니퍼가 가진 별명들은 하나같이 위협적이지 않은 별명들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제니퍼를 협회장으로 지지하였다.
헌터들의 협회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이 제니퍼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설마 그 유약하게 느껴졌던 제니퍼가 숙청의 칼날을 빼들 줄이야.
이제는 그들의 자리까지 위협하고 있을 정도였다.
“제가 제니퍼 협회장을 만나겠습니다.”
“오오, 조지프 이사님이 직접 말씀입니까?”
조지프 그랜트.
국제 헌터 협회의 실세인 그가 나선다고 하자, 이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니퍼는 처음 회장이 되었을 때부터 그에게 저자세로 일관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지프 그랜트는 그녀가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던 시절, 그녀의 교육을 담당하던 교관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스승이나 다를 게 없는 상대였으니 어려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조지프 이사께서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불편한 소식이 들려와서 말입니다.”
“혹시 존 메이어 감사원 건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저에게 말해봐야 의미는 없을 거예요.”
조지프 그랜트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선제공격하듯 저와 같은 말을 꺼낼 줄은 예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조지프 그랜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존 메이어 감사원은 히어로 중의 히어로입니다. 그가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해임되고 구속까지 된다면, 앞으로 누가 정의를 위해 싸우려 하겠습니까. 부디 선처해주십시오.”
“선처는 없습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들려오는 그녀의 답변을 듣고 조지프 그랜트는 미간을 좁혔다.
이 정도의 변화라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존 메이어 감사원을 해임한다면 대형 길드들과의 관계가 더 악화할 겁니다.”
“조지프 이사. 당신은 협회의 이사가 맞나요?”
“…물론 맞습니다.”
“그러면 길드가 아닌, 협회를 위해 행동하세요.”
심지어 자신을 가르치려고 구는 그녀의 모습에 조지프 그랜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니퍼와의 독대가 끝나자, 조지프 그랜트는 눈에 살기를 띠었다.
‘그년의 뒤에 누가 있는 거지? 누가 있기에 그년을 이토록 변하게 만든 거야!’
누구든, 정체만 파악한다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하지만 조지프 그랜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제니퍼가 휘두르는 숙청의 칼날은 현재 그의 사람, 정확히는 ‘여명회’의 첩자들에게 향해 있었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옷을 벗은 상태.
제니퍼가 하는 짓을 더 놔뒀다가는 국제 헌터 협회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니퍼, 그년을 죽여야겠어.’
원래도 국제 헌터 협회를 장악하기 위해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절실하지는 않았었다.
과거에는 그저 조금 거슬리는 수준의 장애물 정도로 여겼다면, 지금은 시급히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조지프 그랜트 본인이 당할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위험분자였다.
“조지프 그랜트, 맞나?”
“너, 너는…, 어벤져?”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중성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조지프 그랜트는 눈을 부릅떴다.
처음에는 상대가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어서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그 가면이 그의 머릿속에도 있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가면이라는 것에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가면은 재해급 빌런이라 불리는 ‘어벤져’란 빌런이 사용하는 가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벤져가 왜 나를 찾아온 거지?’
한국 출신이나, 복수를 위해 미국까지 건너온 복수귀.
지금은 그야말로 미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빌런이었다.
“네가 왜 나를 찾아온 것이냐?”
“그래, 그게 내 이름이네만.”
“그럼 됐다.”
“끄으윽.”
갑자기 심장이 조여오자, 조지프 그랜트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7성급 보스 몬스터, 메두사의 공격에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하기 어려웠다.
‘이, 이년이 왜 나를 죽이려는 거야?’
마력을 동원하여 저항하려 하였으나, A랭크 헌터인 그는 어벤져의 염동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스킬조차 무용지물.
“이유가 뭐냐. 나를 죽이려는 이유가!”
억지로 입을 열고 그녀에게 물었다.
어벤져가 그를 죽이려 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라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어벤져에게서 대답을 얻어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