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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대신 회귀함-139화 (139/275)

#139화

조지프 그랜트의 죽음에 일반 헌터들은 꼴좋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역시 그놈다운 죽음이네. 헌터가 돼서 심근경색이 뭐야, 심근경색이?”

“마약이라도 빨다가 죽은 거 아니야?”

“뭐가 됐건 잘 뒤졌다. 돈만 밝히는 쓰레기 같은 놈이었잖아!”

대형 길드에서 논란이 있을 때마다, 대놓고 대형 길드의 편을 들어 주었던 조지프 그랜트였다.

헌터 시절의 명성도 지금에 와서는 과장되었거나, 조작되었다는 논란도 있을 정도.

당연히 일반 헌터들로선 그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반면 고랭크 헌터이거나, 길드를 운영하는 이들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조지프 그랜트 이사는 아무리 그래도 A랭크 헌터요. A랭크 헌터!”

“확실히 수상한 죽음이긴 합니다.”

“그가 하필 제니퍼 협회장의 최대 정적이라는 점도 신경 쓰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제니퍼 협회장입니다. 빌런에게조차 살생을 최대한 피하던 여자란 말입니다.”

“예전의 제니퍼라면 물론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근데 지금은? 괜히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 부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성격이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긴 했습니다.”

몇몇 이들은 진지하게 조지프 그랜트의 타살설을 의심하였다.

물론 그 타살설의 배후로는 제니퍼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자 인터넷에서도 조금씩 그녀를 의심하는 여론이 생겨났다.

원래 음모론이란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도 사람들이 흥미롭게 여긴다면 계속해서 언급되는 법이었다.

헌터계의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제니퍼가 살인교사설 의혹을 받다니.

이보다 흥미로운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녀에 관한 더 큰 이슈로 모든 음모론이 묻혔다.

그녀가 한때 전미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재해급’ 빌런, 어벤져와 맞붙은 것이었다.

어벤저.

한국에서는 본명인 김수민으로 불리고 있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미국인들은 아주 많았다.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한 그녀의 여정은 히어로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을 열광하게 하였다.

심지어 그 원수가 A랭크 헌터만 여럿 보유한 대형 길드라는 점이 더더욱 미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래서 몇몇 미국인들은 그런 어벤저를 ‘영웅’이라 부르며 추앙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런 어벤져에 대한 인식이 얼마 전부터 조금씩 바뀌었다.

복수에 성공한 것으로 그녀의 스토리가 끝이 났으면 미국인들은 그녀를 계속 영웅으로 추앙했겠지만,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마피아의 본거지를 습격하여 마피아 빌런들을 학살하나 싶더니, 뜬금없이 경찰 간부나 정부 주요 인물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사람들은 새삼 그녀가 ‘빌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몇몇 이들은 어벤져가 습격한 정부 인사나 경찰 간부가 부패 혐의를 강하게 받는 인물이었단 점을 거론하며 그녀가 어쩌면 다크 히어로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이 부인할 수 없는 빌런임을 다시금 증명하였다.

무려 국제 헌터 협회를 공격한 것이었다.

“지, 지원은 언제 오는 거야!”

“겨우 한 명이다. 상대는 겨우 한 명이라고!”

“컥! 수, 숨이…!”

어벤져의 손에 많은 헌터가 무력하게 쓰러졌다.

심지어 그중에는 S랭크 헌터도 있었다.

만약 그대로 어벤져가 날뛰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국제 헌터 협회의 위상은 땅 밑으로 처박혔을 것이다.

하지만 영웅은 극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법이었다.

“더 행패를 부리는 것은 제가 용납하지 않겠어요!”

영웅임을 증명하듯 나타난 한 명의 여인.

그녀는 다름 아닌, 국제 헌터 협회의 회장, 제니퍼였다.

“오오! 저길 봐! 제니퍼 협회장이야!”

“제니퍼 협회장이 저리 강했었나?”

“어벤져에게도 밀리지 않고 있어!”

“와아아아! 제니퍼 협회장, 이겨라!”

무려 그녀는 어벤져와 1시간 가까이 혈투를 벌였다.

S랭크 헌터도 어벤져를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활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원군이 왔다.

인근 대형 길드에서 고랭크 헌터들을 대거 파견한 것이다.

“어벤져가 도망친다!”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제니퍼 협회장 만세!”

어벤져가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고 물러난 뒤, 제니퍼를 향해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재해급 빌런을 막아낸 그녀였으니,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무공 아카데미 학생들은 늘 바빴다.

아시아에서 엄청난 스케일의 삼합회 내전이 벌어지고.

북미에서는 한국 헌터 출신의 김수민이라는 재해급 빌런이 온갖 사고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무공 아카데미에 다니는 헌터들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더더욱 바빴다.

“일주일 뒤. 이 반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를, 대련을 통해 파악할 것이다.”

랭킹전이 예고된 상황!

사실상 중간고사나 다를 게 없는 랭킹전이었으니, 학생들은 외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번 랭킹전에서 스킬 사용은 금지한다. 오직 무공으로 승부를 가려라.”

노홍만의 말에 학생들의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헌터 랭크가 높고 대인전에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가진 헌터의 경우, 불만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반면 랭크가 낮거나 그럴듯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오직 무공만으로 승부를 본다는 사실에 기쁨을 드러냈다.

그리고 송호영은 이중 후자 쪽이었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가능성 있어!’

송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헌터 시절 그의 랭크는 고작 E.

20살에 각성하고 29살이 될 때까지 랭크는 E에서 고정이었다.

그가 승급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스킬이었다.

패시브 스킬 외에 변변한 스킬을 가지지 못한 그로선 D랭크조차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것이다.

무공 아카데미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행히 그는 무공에 재능이 있었다.

평균 랭크가 ‘C’나 되는 5반에 그가 있다는 것도 그만큼 그의 무공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단, 아직은 무공의 힘으로 스킬 차이를 극복할 수준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와 같은 반의 학생들 역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호영이 오빠, 기분 좋겠네?”

“미정아.”

“스킬 없이 붙으면 반에서 5위 안에 드는 건 문제 없을 거라더니, 딱 오빠가 원하는 상황이 됐어.”

송호영은 자신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여성을 보며 묘한 감흥을 느꼈다.

여성의 이름은 이미정.

10대 길드 중 한 곳인 새벽 길드 출신의 B랭크 헌터였다.

‘만약 무공 아카데미에 오지 않았으면 미정이 정도 되는 헌터와 친해질 일은 절대 없었겠지.’

만약 무공 아카데미에 오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오빠 취급을 받을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송호영은 고작 E랭크였고 반면 이미정은 B랭크였으니까.

E랭크와 B랭크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같은 길드였으면 간부 또는 길드장과 말단 정도의 차이였을 것이다.

송호영의 경우 애초에 그녀의 길드인 새벽 길드로 갈 수조차 없었겠지만 말이다.

“혹시 랭킹전에서 나랑 붙게 되면 살살 해줘.”

잠시 멍 때리던 그에게 이미정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냥은 못 봐주겠는데?”

“응?”

“맛있는 거 사주면 봐줄 수도 있고.”

송호영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처음엔 그녀를 상대할 때마다 어찌 대해야 할지 망설이고는 했었다.

헌터에게 있어 랭크는 신분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높은 신분의 그녀를 친한 동생처럼 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송호영은 그녀에게 적응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공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 모두가 ‘새로운 법칙’에 적응하였다.

‘이곳에서는 오직 무공의 경지로 서열을 정한다.’

헌터가 무인이 되었다고 약육강식의 법칙을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이 강함과 약함을 구별하는 기준이 헌터 랭크가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

그들이 새롭게 서열을 정하는 방법은 간단하였다.

바로 무공의 경지.

무공을 어디까지 배웠는지가 강함의 척도였다.

그냥 농담처럼 한 말인데, 이미정은 정말로 그에게 밥을 사주었다.

무려 인당 수십만 원대의 호화스러운 해산물 뷔페에서 말이다.

“그렇게 사달라고 조르더니, 왜 막상 사주려니까 부담스러워해?”

“여기 너무 비싸잖아. 난 삼겹살 체질이라고.”

“해산물 좋아한다며? 그리고 나 B랭크 헌터야. 한 달 월급이 직장인 연봉보다 높아.”

“…그건 좀 부럽네.”

“오빠도 곧 그렇게 될 텐데 뭘.”

송호영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너무 부담스럽게 여길 필요도 없었다.

무공을 배운 그는 이미 D랭크를 넘어 C랭크 이상의 무력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경지를 높이면 이 정도 뷔페는 매일 와도 될 정도의 연봉을 받게 될 터.

“나중에는 내가 많이 사줄게.”

“기억한다? 무르기 없기.”

“오빠, 먼저 음식 가져와서 먹고 있어. 나는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와.”

“그럴래? 알았어.”

이미정이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웠을 때, 갑자기 그의 뒤에서 그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호영? 네가 이런 곳에 어떻게 왔어?”

송호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평생 듣지 않기를 바랐던 여성의 목소리였다.

“정지인….”

“여자랑 단둘이 온 거야, 설마?”

“네가 무슨 상관이지?”

“꼴에 여자에게 잘 보이겠다고 무리했나 보네. E랭크 주제에 말이야.”

정지인의 말을 듣고 송호영은 이를 악물었다.

송호영.

그는 돌싱이었다.

20살, 각성하자마자 사귀었던 여인과 결혼하였다가 몇 년 이어지지 못하고 이혼한 것.

그리고 눈앞의 여인이 바로 그녀의 부인이었던 정지인이라는 여성이었다.

‘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왜 어렸을 때는 정지인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을까.

사치스럽고 남을 업신여기며 늘 거짓말만 하는 그녀의 진면목을 말이다.

“지인 씨!”

그때, 금발 머리에 피어싱을 한 남성이 정지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스킨십이었다.

“이분, 누구셔?”

“응, 전에 말했던 그 남자야. 인사라도 할까 했는데, 일어나주지도 않네….”

송호영은 가증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금발 사내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송호영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우리 예쁜 지인 씨를 두고 딴 여자와 바람피운 정신 나간 놈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거든.”

사내의 말을 듣고 송호영은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일편단심 그 자체였던 송호영으로선 그저 황당하게만 느껴지는 말이었다.

“근데 생긴 거 보면 생각보다 볼품없는데? 이런 놈이 지인 씨를 두고 바람을 피우다니. 지인 씨가 너무 아까워.”

“나는 얼굴을 보지 않고 마음만 봤었거든. 근데 설마 마음까지 그렇게 악독할 줄은 몰랐어.”

“가식을 떨 거면 다른 곳에서 떨어줬으면 좋겠는데.”

송호영은 더는 참지 못하고 정지인에게 한마디 하였다.

그러자 금발 사내가 사나운 표정을 지은 채 송호영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금 너 우리 지인 씨에게 뭐라고 했냐?”

“얼굴 보는 것도 역겨우니까, 내 앞에서 꺼지라고.”

“주제에 헌터라고 건방 떠네? 기껏해야 E랭크 따위가 말이야. 근데 건방을 떨 거면 상대를 가려가면서 건방을 떨어야 하지 않겠어?”

금발 사내는 마치 자신이 고랭크 헌터라는 것을 암시하듯 그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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