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왜, 당신은 고랭크 헌터라도 되나 보지?”
“흐흐, 그래. 적어도 너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랭크가 높지.”
그 말에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금발 사내가 헌터라는 사실은 이미 예상했다.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봤자 B랭크 이하다.’
아니, 설령 B랭크 이상이라 해도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무공 아카데미 학생도 아닌데 말이다.
“헌터라는 이유로 건방 떠는 건 너인 거 같은데? 초면인 상대에게 시비 거는 걸 보면 말이야.”
“지인 씨를 봐서 참아주려고 했더니만, 이 자식이 주제도 모르고.”
금발 사내가 더욱더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얼굴만 보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그러자 정지인이 마치 그를 놀리듯, 금발 사내의 랭크를 밝혔다.
“송호영, 사람 가려가면서 시비 걸어. 우리 달링의 랭크가 몇인 줄 알아? C야! C! 심지어 10대 길드의 길드원이라고!”
왜 저렇게 오만한가 했더니, 역시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송호영은 상대의 랭크를 듣고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C면 어떻고 10대 길드의 길드원이면 또 어떤가.
어차피 무공도 모르는 자였다.
설령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미래는 그가 훨씬 밝을 수밖에 없으리라.
“업계에서 매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사과해.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지인 씨에게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왜 그래야 하냐고? 하! 지인 씨 앞이라고 괜한 자존심 세우는 거 같은데, 그러다 진짜 업계를 떠나야 할 수도 있어.”
“해볼 수 있으면 해봐.”
“뭐? 하! 진짜 정신 나간 새끼네, 이거? 안 되겠다. 너 오늘 한번 죽어보자.”
금발 사내는 더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송호영이 그런 금발 사내를 무덤덤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누군가가 나타났다.
새로 나타난 누군가는 다름 아닌, 송호영의 동행인인 이미정이었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이미정은 금발 사내의 손을 붙잡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뒤를 돌아본 금발 사내는 이미정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경악하였다.
“서, 선배님!”
두 사람은 같은 길드 출신이었다.
당연히 랭크가 높은 이미정이 직급도 더 높았다.
새벽 길드에 먼저 들어오기도 했고 말이다.
“너 설마 지금 우리 호영이 오빠랑 싸우려고 한 거야?”
“오빠라니요, 선배님. 지금 이, 이놈보고 오빠라고 한 겁니까?”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를 보이던 금발 사내가 이미정의 반응을 보고서 주춤하였다.
“나보다 나이 많으니 오빠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불러?”
“하지만 이자는 E랭크 헌터지 않습니까.”
“그게 중요해? 같은 무공 아카데미 학생인데?”
“헉! 이놈이 아니, 이분이 무공 아카데미 학생이셨습니까?”
헌터치고 무공 아카데미에 입학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금발 사내 역시도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가려고 악을 썼던 사람 중 한 명.
당연히 무공을 배운 헌터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었다.
마침 이미정이 그를 보며 비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풉! 그나저나 너도 참 용기가 대단하네? C랭크 헌터 주제에 우리 오빠와 싸움을 벌이려고 하다니. 우리 반 B랭크 헌터들도 감히 우리 오빠에게 건방진 행동을 하지 못하는데 말이야.”
금발 사내는 입을 떡 벌린 채 아연실색하였다.
아무리 무공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해도 그 정도였다고?
하지만 금발 사내가 아는 이미정이라면 허튼소리를 할 여자는 아니었다.
애초에 B랭크 헌터인 데다 무공의 재능까지 상당하여 이제는 길드장보다 더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고 봐야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지인도 놀란 눈이 되었다.
‘왜 하필 나와 헤어진 뒤에 강해지는 건데! 수년째 구질구질하게 살았으면서!’
송호영이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심지어 무공의 재능까지 갖춘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와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녀가 송호영과 이별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미래가 보잘것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니.
“호영이 오빠한테 무례하게 군 거 지금이라도 사과해. 마음에 안 들면 오빠와 대련을 해보든가.”
“됐다, 미정아. 어차피 다신 안 볼 사람이야.”
“아니, 난 사과를 들어야겠어. 이놈 때문에 괜히 오빠가 새벽 길드에 악감정을 가지면 큰일이잖아?”
금발 사내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 정도라고? 우리 새벽 길드가 고작 E랭크 헌터 따위에게 눈치를 봐야 한단 말이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개 비각성자인 박한새가, 모든 헌터가 눈치를 보는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송호영이 무공의 자질을 갖춘 게 사실이고, 교수진에 버금가는 무력을 갖게 된다면 새벽 길드가 눈치를 보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S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무력의 소유자들이었으니.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송호영이 미래에 무공 아카데미의 교수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선배가 될 것은 100% 정해진 미래였다.
금발 사내는 바로 허리를 숙여 자신의 무례한 태도를 사과하였다.
그런 금발 사내의 모습에 정지인은 씩씩거리더니, 그대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역시 쟤는 끝까지 사과를 안 하는구나.’
하긴, 오히려 그녀가 사과를 했으면 더 의심했을 거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사과였을 테니.
‘다시는 보지 말자. 정지인.’
만약 그녀가 애걸복걸하며 다시 만나자고 해도 그는 절대 그녀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이미 그는 정지인의 본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호영이 오빠, 혹시 웹소설 같은 거 봐?”
금발 사내까지 물러나자, 이미정이 뜬금없이 송호영에게 물었다.
“웹소설? 아니, 그런 거 안 보는데…. 근데 왜?”
“난 무공 배운다고 무협지 읽으면서 웹소설 보게 됐는데, 뭔가 오늘의 오빠, 웹소설 주인공 같다?”
“내가?”
송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 같다니.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얼굴도 평범하고 헌터 랭크도 E인 데다, 심지어 돌싱이지 않은가.
“제목은 ‘이혼 후 무공 고수’이면 딱일 거 같아!”
놀리는 건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송호영은 그저 뒷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박한새가 아직 이능관리부에서 독립하기 전, 그의 밑에서 무공을 배우던 사람은 9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중, 원래 공무원 헌터였다는 이유로 운 좋게 무공을 배우게 된 이들의 숫자가 대략 절반이었다.
이들 대다수는 박한새가 무공 아카데미를 만들어 독립할 때, 박한새를 따라오지 아니하고 이능관리부에 잔류하였다.
박한새가 싫어서 따라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 스스로 누군가를 가르칠 재목이 아닌 것을 알기에 잔류를 선택한 것이었다.
400명이 넘는 이들이 잔류를 선택한 결과, 나머지 절반만이 박한새를 따라 무공 아카데미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420명은 경지가 높다면 교수직을, 경지가 낮다면 조교직 또는 행정직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노영배는 이 중 운이 좋은 경우였다.
교수직, 그것도 무려 ‘부교수’가 되었으니까.
그가 비교적 늦은 시점에 무공을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운이 좋다고밖에 설명하기 어려웠다.
‘운은 무슨. 내 재능이 뛰어나서 그런 거지.’
박한새로부터 ‘천재’라는 평가를 받은 이들은 유례없는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는 했다.
그리고 노영배 역시도 박한새에게 ‘권법의 천재’라는 평가를 들었었다.
늘 그렇듯 박한새의 평가는 정확하였다.
노영배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여 정교수인 김민경, 고정희 등에 거의 버금가는 무공 경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은 운 따위가 아닌, 그의 재능 덕이었으니.
‘내가 운이 좋았다면 재능 있는 놈들을 맡았겠지! 근데 하필 내가 맡은 놈들은 재능 없는 놈들밖에 없단 말이야.’
노영배는 재능 만능주의자였다.
그는 무공을 익힐 때 오직 중요한 것은 재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그는 재능을 가장 우선시하였다.
즉, 재능이 있는 이들에게는 친절하였고 재능이 없는 이들에게는 매몰찼다.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노영배는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질문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교수라는 게 원래 무언가를 가르치는 직업이었으니.
하지만 질문하는 대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반의 유일한 비각성자, 안능희.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아예 헌터조차 아닌 그녀의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질문 시간 아니니 질문하지 마라.”
“예? 하지만….”
안능희가 말꼬리를 흐리며 대답하자, 노영배는 더욱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질문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결국, 안능희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런 안능희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노영배는 혀를 찼다.
‘비각성자 주제에. 내 수업을 청강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길 것이지.’
그는 마음속 깊이 박한새를 존경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왜 박한새는 비각성자를 무공 아카데미에 받아들인 것일까?
본인이 비각성자여서?
만약 그런 이유로 비각성자들을 무공 아카데미에 받아들였다면 굉장히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비각성자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노영배 교수 너무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학생을 대놓고 차별할 수가 있는지!”
“그러니까 말이야. 랭크가 높은 학생들의 질문은 잘 받아주면서 왜 능희 언니가 질문할 때마다 저런대?”
20반 구석.
안능희의 곁에 모인 여학생들이 교수인 노영배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광경이었다.
헌터로서 나름대로 인정받던 그녀들이 일개 비각성자인 안능희를 중심으로 뭉친다는 것은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안능희의 리더십은 헌터들에게도 빛을 발하였다.
헌터들밖에 없는 20반에서 부반장이 된 것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학생들로부터 인망을 얻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곁에 모여 노영배의 뒷담화를 하며 위로해주기 바쁜 것도 그녀가 인망을 얻었다는 증거였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언니는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맞아, 이럴 때는 그냥 ‘노영배 개땡땡 같은 놈!’ 이렇게 외쳐도 괜찮다니까.”
같은 반 학생들의 위로를 듣고 안능희는 픽 웃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과 달리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노영배의 차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질문하지 못하게 막는 것?
그 정도는 약과였다.
예전에는 왜 비각성자란 사실을 숨겼냐며 온갖 모욕을 퍼부었던 적도 있었다.
그녀는 딱히 비각성자란 사실을 숨긴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조차 이런 차별을 받는데 다른 비각성자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노영배 같은 사람이 또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비각성자를 담당하는 반에도 아마 그런 인물이 한두 명은 꼭 있을 터.
‘반드시 이번 랭킹전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줘야 해.’
비각성자 중에서 독보적인 성적을 보이는 그녀였다.
그녀가 활약해주지 않는다면 비각성자들은 계속 무시를 당하게 되리라.
그렇기에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였다.
이번 랭킹전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를 보이고 말겠다는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