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나는 검에 검기를 발출하였다.
“보이십니까? 이게 흔히 절정 고수들이 사용하는 진짜 검기입니다.”
그녀는 감탄의 기색이 섞인 눈으로 나의 검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일반인들 눈으로는 그냥 아지랑이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비각성자이기는 하나, 무공을 익힌 몸.
더군다나 마력 감응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에 속하는 그녀였기에 나의 검기가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보았던 검기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질 거다.
지금까지 그녀가 봐왔던 검기는 형체가 계속 바뀌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을 테니까.
나는 아예 그녀가 봐왔던 검기를 직접 재현해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건 이류 무인이 흔히 사용하는 검기입니다. 어때 보입니까?”
“뭔가 정갈하지 않은 느낌이에요. 불안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그저 내공을 검에다 발출한, 학생들이 흔히 사용하는 검기입니다.”
내가 지금 발출한 검기는 진짜 검기라고 보기 어려운 가짜 검기였다.
제대로 된 검기와 부딪치면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날 그런 검기.
그리고 바로 이 가짜 검기가 학생들이 검기라고 자부하는 바로 그 검기였다.
“결을 파악할 수 있다면 능희 씨의 검기로도 이런 검기를 파훼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결이란 것을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교수들조차 아직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하지만 정신력이 좋은 그녀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그녀의 정신력을 믿었다.
단순하게 적의 움직임을 좇고, 보이지 않는 적을 찾는 그런 종류의 안법이라면 내공이 많을수록 유리하였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려는 안법은 심안, 마음의 눈이었다.
즉, 내공의 유무와 관계없이 얼마나 뛰어난 정신력을 가졌는지가 중요하였다.
“결이요?”
“예. 자세히 보십시오. 뭔가 기운이 어긋난 것처럼 보이는 부위가 있지 않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보일 때까지 보십시오.”
“보다 보면 결이 언젠가 보일 겁니다.”
안능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결이란 게 뭔지, 그리고 그걸 왜 배워야 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정신을 집중하고 내 검기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런다고 쉽게 결을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내 눈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것처럼 보이는 검기라도 결을 볼 줄 모르면 그조차 그냥 평범하게 보일 테니까.
“너무 가까이 오시면 베일 수도 있습니다.”
“아, 죄송해요.”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검기에 얼굴을 비비려고 들었다.
‘역시 집중력이 상당하군.’
그저 내 검을 노려보는 것밖에 하지 않고 있는데도 땀을 흘렸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한계가 있지.’
나는 대뜸 그녀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안능희가 깜짝 놀랐는지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저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서 결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극이 강하니, 자연스레 정신이 열린 것이지요.”
“예? 그게 무슨….”
“능희 씨가 간신히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검을 휘두를 겁니다. 그러니 피하거나 능희 씨의 검기로 막아보십시오.”
잠시 당황하던 안능희는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아마 그녀가 바라왔던 수련이 이런 수련이었을 터.
“갑니다.”
보법으로 거리를 좁힌 뒤, 위에서 아래로 검을 그었다.
피하지 않고 검기를 발출하여 막아낸 그녀.
하지만 표정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안 그래도 불안정하기 그지없던 그녀의 검기는 내 검기와 부딪치는 순간, 거의 깨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러자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내 검을 밀어내고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재정비를 하려는 것인데 그걸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물러나는 그녀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 검을 내질렀다.
그녀는 간신히 공격을 피하였다.
하지만 내 검을 피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내가 그냥 검을 휘두른 게 아닌, 살기를 강하게 발산하고서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내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가하는 살기도 점점 강해졌다.
지금 정도의 살기면, 6성급 던전 보스의 앞에 서는 것보다 더한 공포가 그녀의 심상을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하급 헌터라면 제자리에서 쓰러질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눈에서는 강한 의지를 내뿜고 있었다.
역시 그녀의 정신력은 범상치 않았다.
“방금은 원래였으면 죽는 거였습니다. 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검을 들어서 막을 생각을 하십시오. 모든 공격을 피하겠다는 생각은 절정 고수인 저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칭찬하는 대신, 강하게 윽박질렀다.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검기로 내 검기를 부수라고 말이다.
안능희는 지칠 대로 지쳐서는 검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였다.
내가 다가가자, 억지로 검을 들어 올리며 검기를 발출하려고 하였으나, 아지랑이조차 피어오르지 않았다.
단전에 내공이 텅텅 비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오늘은 그녀와 특훈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내 살기를 하루도 아니고 무려 일주일 동안 받아냈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그녀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물론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리는 상태가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반쯤 눕다시피 앉아있는 그녀에게 조그만 환약을 건넸다.
창령단이라는 이름의 영약이었다.
“드십시오.”
“……고마워요.”
분명 영약인데도 창령단을 받는 그녀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 영약의 효과가 내공을 늘려주는 게 아닌, 그저 본래 가진 내공을 회복해주는 수준의 효과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복용을 도울 테니 앉으십시오.”
“…네.”
빨리 내공을 회복하고 다시 수련을 시작하자는 의미로 나는 그녀가 창령단을 복용하는 걸 도와주었다.
“다 회복되셨습니까?”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다시 검기를 일으켰다.
“다시 해봅시다.”
한눈에 봐도 기운이 없어 보이는 그녀였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그녀라지만, 내 살기를 받아내는 게 쉬울 순 없었을 터.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가능성이 없다면 나도 포기했겠지만, 그녀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고 싶었다.
“누군 좋겠다. 비각성자 주제에 인맥발로 총장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다니.”
“심지어 영약도 얻어먹는다던데?”
“영약까지? 너무 특혜 아니야?”
“아니 애초에, 안능희라는 여자도 참 웃기지 않냐? 총장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으면 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게. 기회를 우리한테 양보하면 훨씬 더 유용하게 써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총장님의 시간만 아까워.”
복도를 지나치는데 그녀를 향한 악담이 들렸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그녀는 무덤덤하였다.
‘한새 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몇 명 없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지. 심지어 나는 비각성자니까.’
그녀가 느끼기에도 과도한 특혜였다.
무려 무공의 창시자에게서 1:1 과외를 받는 셈이니까.
사실상 천금을 줘도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그렇기에 자신을 향한 악담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거 들었어? 20반의 그 비각성자 있잖아?”
“장교 출신의 그 여자?”
“어, 그 비각성자를 두고 노영배 교수와 총장이 내기를 했다던데?”
“내기? 무슨 내기?”
“비각성자가 랭킹전에서 50위 안에 들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내기. 노영배 교수가 비각성자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서 총장이 화났나 봐.”
“헐, 뭐야. 50위? 비각성자가 50위 안에 들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빡쳐도 그런 내기를 해선 안 됐었는데 말이야.”
“와…. 총장님도 실수하실 때가 있나 보네.”
“애초에 그 여자, 검기는 쓸 줄 아나?”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비각성자 따위가.”
자신을 향한 악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안능희였다.
하지만 그 악담이 박한새에게까지 번지자 안능희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한새 씨의 명예도 실추되겠구나.’
이미 그녀의 어깨는 충분히 무거운 상태였다.
천 명에 달하는 비각성자들의 미래가 그녀의 어깨에 달려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런데 여기서 박한새의 명예라는 엄청난 가치가 새롭게 그녀의 어깨 위에 얹어졌다.
자연히 그녀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를 악문 안능희는 자포자기하는 대신, 더욱더 수련에 집중하였다.
랭킹전은 앞 반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오늘은 1, 2, 3, 4반의 랭킹전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호구영, 목은 깨끗이 씻었냐?”
송호영은 자신의 대련 상대인 홍대영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남의 목 걱정하지 말고, 네 목이나 잘 관리해.”
“주제도 모르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홍대영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요즘 들어 건방지다느니, 주제를 모른다느니 그런 소리를 자주 듣고 있었다.
‘내가 진짜 오만해진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10년 가까이 E랭크 헌터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B랭크 헌터에 버금가는 실력자가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바뀌었다면 성격이 달라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겸손해지자. 내가 강해진 것은 어디까지나 총장님 덕분이야.’
그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채찍질하였다.
이런 마음가짐이 그가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이유였다.
“네 랭크가 E였냐? 아니면 F였냐? 뭐 그게 그거지만 말이야.”
“랭크가 무슨 상관이지?”
“무슨 상관이냐고? 헌터가 그딴 말을 하다니, 진짜 어이가 없네.”
송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도 저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남아있을 줄이야.
‘하긴, 평생을 랭크가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홍대영의 랭크는 C.
C 정도 되면 나름대로 엘리트 소리를 듣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홍대영도 C랭크 헌터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터.
무공 아카데미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런 자부심을 버리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난 정말로 이해가 안 가. 왜 총장님은 너희 같은 가능성 없는 약자들을 챙기는 것일까. 그 시간에 재능 있는 고랭크 헌터들에게 가르침을 주면 몇 배는 더 나은 결과가 나올 텐데 말이야.”
안능희만 박한새에게 특훈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랭크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성취’를 인정받은 몇몇 인원이 박한새에게 불려가 가르침을 받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다.
송호영 역시도 박한새에게 가르침을 받고 괄목상대하게 성장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네 안목이 더 좋을까, 아니면 무공을 창시하고 훌륭한 제자들을 양성해온 총장님의 안목이 더 좋을까?”
“뭐 이 새끼야?”
“오늘 확실하게 증명해줄게. 총장님의 안목이 훨씬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자신감 넘치는 송호영의 모습에 홍대영은 살기를 가득 내뿜으며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