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안능희의 경기를 구경하러 대련장을 찾은 사람들은 안능희의 경기가 순식간에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비각성자였고 상대는 E랭크라 하나 일단 헌터였다.
무공까지 익힌 E랭크 헌터를 비각성자가 이길 수는 없는 일.
그리고 그들의 예상처럼 안능희의 경기는 5초도 안 돼서 끝이 났다.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승부가 갈린 것이다.
“아, 안능희 승!”
다만 승자는 그들의 예상과 달리, 안능희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검이 갑자기 왜 부서져?”
“방심해서 검기를 안 쓴 건가?”
“아니, 설령 검기를 안 썼다고 저렇게 검이 부서지는 게 말이 되나?”
“야, 근데 이러면 우리 내기는 어떻게 되는 거임?”
“뭘 어떻게 돼. 안능희가 이겼는데.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지.”
모두가 믿기지 않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안능희의 승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학생들이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저 상대 쪽에서 방심한 나머지 검기를 사용하지 않아 패배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교수진의 생각은 달랐다.
“분명 둘 다 검기를 사용했는데, 안능희의 검기가 이겼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신경철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이정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였다.
“또 박한새가 무슨 짓을 한 거 같군.”
“무슨 짓을 해야 비각성자가 각성자의 검기를 부술 수 있는 건데? 검기 수준이 그렇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고.”
“내가 어떻게 알겠어?”
교수들은 안능희의 상대가 방심해서 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보기에 검기 수준은 둘 다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교수들이 보기에도 의문점이 많은 경기인 것은 사실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검기를 가지고 싸우는데 이렇게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와아아아! 안능희 만세!”
“젠장! 믿고 있었다고!”
“연승 가즈아~!”
안능희의 승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헌터들과 달리, 비각성자들은 그저 환호하였다.
그녀의 승리가 곧 그들의 승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안능희의 경기는 계속 이어졌다.
기권만 하지 않는다면 총 5판의 경기를 치러야 했던 것.
“안능희 승!”
다음 경기도 안능희는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그러자 노영배가 놀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는 안능희의 첫 경기를 아예 보러 오지도 않았다.
자신이 내기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안능희는 첫 번째 경기에서 승리를 따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노영배는 헐레벌떡 뛰어와 안능희의 두 번째 경기를 관람하였다.
“두 번의 승리로 안능희 학생은 50위 안에는 들 수 있을 거 같은데, 노영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2연승으로 안능희의 승점은 벌써 2점이 확보되었다.
다른 자들의 승점은 아직 안 나왔지만, 여기서 1번만 더 이긴다면 무조건 50위 안에 안착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기세라면 3연승이 아니라, 4연승도 문제 될 게 없지.’
단, 5연승은 힘들 거 같았다.
하필 그녀의 대진표 마지막에 만만치 않은 상대가 예정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편하게 말입니까?”
“안능희 학생은 무공에 재능이 있습니다. 노영배 교수께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재능이.”
노영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그로선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비각성자가 헌터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니.
단순히 그가 헌터라서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무공을 익히기에 헌터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였다.
“한 가지 의문만 해결하면 안능희 학생을 마음속 깊이 인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의문이라면, 뭘 말씀하시는지?”
“안능희 학생은 어떤 사술을 썼기에 검기를 부술 수 있었던 겁니까?”
사술이라.
안능희가 헌터였으면 스킬이라고 했을 텐데, 비각성자이니 무협지마냥 사술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게 뭔가 우습게 느껴졌다.
“제가 가르친 것은 별거 없습니다. 바로 ‘보는 법’입니다.”
“보는 법이요?”
“어차피 지금 쉬는 시간이니 잠깐 교수님께 시범을 보여주겠습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나는 강한 살기를 내뿜었다.
다른 관중들에게 향하지 않고 그에게만 향하는 정제된 살기였다.
“…헉!”
내 살기를 마주한 노영배는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의 공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었다.
살기를 내뿜는 걸 중단하자, 그가 어리바리한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당한 거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노영배가 정신력이 유독 약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살기가 지나칠 정도로 강했고, 노영배가 방심하던 상황이라 더 극적인 효과를 본 것.
만약에 노영배가 나와 전투하는 도중에 살기를 마주한 것이었다면 내공을 이용해서라도 패닉을 이겨냈을 것이다.
“방금 같은 살기를 계속 마주하다 보면 심안이란 게 열립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의 공포를 수없이 견딜 때 심안이 열리는 겁니다.”
“그, 그럼 안능희 학생은 방금 같은 살기를 계속 마주했다는 말입니까?”
“예. 죽음의 공포를 주기 위해 가장 확실한 수단입니다.”
“허어….”
그는 놀란 듯, 한참을 말없이 침묵하였다.
“총장님께서 괜히 정신력을 보고 사람을 뽑은 게 아니었나 봅니다.”
“예, 그렇습니다. 정신력은 어찌 보면 무공을 익히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재능입니다. 그리고 안능희 학생은 바로 그 재능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아마 그가 예상했던 무공의 재능은 아닐 것이다.
정신력이란 것은 그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재능이었을 테니.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과하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온 결과를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던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총장님.”
“저에게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능희 학생에게 사과하라는 말씀입니까? 알겠습니다. 수업하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발언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공개적인 사과라니.
교수로서 실로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야겠습니다. 총장님이 비각성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비각성자의 잠재력을 우습게 보다니.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면 저에게 확실한 교훈이 필요합니다.”
그런 생각이라면 나도 말릴 이유는 없었다.
‘드디어 능희 씨를 인정하는 교수가 생겼군.’
시작이 좋았다.
처음에는 안능희를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곧 비각성자들 전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리라.
“앞선 경기들은 봤다. 검기로 검기를 아주 박살 내던데.”
안능희는 잠시 자신의 대결 상대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누가 봐도 외국인인 흑인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사용하니 신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눈빛을 고치고 상대, 마크햄의 말에 답변하였다.
“대결 상대에게 나의 정보를 알려줄 생각은 없다.”
“대답 안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뻔하니까. 총장이 가르쳐준 기술 아니야?”
“뭐가 됐든 상관없다. 어차피 너의 약점은 분명하니.”
약점?
비릿한 미소를 짓는 마크햄의 모습에 안능희는 미간을 좁혔다.
“경기 시작!”
마침 심판을 맡은 홍준기란 이름의 조교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안능희는 자리를 지킨 채,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공격이 오면 굳건하게 막아내겠다는 기세였다.
하지만 마크햄은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웃복서마냥 치고 빠지며 얕은 공격만 할 뿐이었다.
‘치고 빠지며 장기전을 노리겠다는 건가.’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녀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대로는 곤란해.’
마크햄의 판단은 정확하였다.
비록 박한새의 특훈으로 내공이 조금 늘긴 했어도 그녀의 내공 보유량은 여전히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
그리고 하필 상대는 D랭크 헌터 출신이었다.
‘함정을 파야겠어.’
더는 상대의 의도에 말려들 수 없었다.
의도를 파악한 이상, 그녀도 행동에 나서야만 했다.
안능희는 보법을 펼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곤 온 힘을 다해 검격을 쏟아냈다.
물론 상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녀의 검격에 맞대응하지 않은 채, 보법으로 거리를 벌리며 공격을 피하였다.
추격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그녀는 어느덧 지친 듯, 자세가 조금씩 무너졌다.
비각성자인 그녀가 지금껏 버틴 것도 어찌 보면 대단한 것.
그렇기에 관중들은 지칠 대로 지쳐서 움직임이 느릿해진 그녀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렇게 지친 척하면, 내가 속을 거 같아?”
하지만 정작 상대는 안능희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다.
지친 척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아차린 것이다.
‘괜히 내공만 소모해버렸어.’
일부러 적을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함정을 파서 마지막 회심의 일격을 날리는 게 그녀가 생각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그 함정이 실패로 끝이 났으니, 그녀의 승산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안능희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야말로 ‘최후의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내공조차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내공이 방전된 상태였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관중석에서 야유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
“비각성자를 상대로 뭐 하는 거야!”
“쫄보네, 쫄보.”
“빨리 끝내라! 다 죽어가잖아!”
안능희를 향한 야유는 아니었다.
D랭크 헌터인 마크햄을 향한 야유였다.
“쯧, 시끄럽게 구는군.”
마크햄은 혀를 차더니, 안능희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누가 봐도 그녀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뭐, 너도 이제는 지쳤을 테니, 슬슬 공세를 취해도 상관없겠어.”
지금이라면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으리라.
설령 상대가 검기를 부수는 특이한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피하면 그만이니.
다가오는 상대를 보며 안능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단전에는 내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체력도 거의 다했으니 패배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이겨야 해! 반드시!’
이런 상황에서도 안능희는 의지를 불태웠다.
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절대 패배해서는 안 됐다.
그녀는 단전을 자극하여 얼마 남지 않은 내공을 전부 끌어 올렸다.
검기를 발출하려고 하였으나, 아지랑이조차 피어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검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상대가 아닌 그녀의 검이 부서진다고 해도, 그래서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해도 안능희는 적과 싸울 것이다.
최후의 일격은 완벽하였다.
모든 내공을 끌어모아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격을 가하였다.
컨디션이 정상일 때도 과연 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완벽한 일격이었다.
마크햄도 도저히 피하지 못하고 그녀의 검격을 자신의 검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그는 곧 비명을 질렀다.
“뭣?! 아직도 여력을 남겨놓았던 것이냐!”
검이 부서졌다.
안능희의 검이 아닌, 마크햄의 검이.
‘내가 검기를 내뿜었었던가?’
마크햄의 말처럼 여력을 남겨둔 것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발악이었을 뿐.
검기를 내뿜었는지조차 그녀에겐 의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겼으니까.
비각성자도 헌터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으니까!